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289화 (289/488)

289. 재능은 때론 저주가 된다 (7)

“애들 준비시킬까요?”

큰 손은 부하의 물음에 고개를 들었다.

쓰러진 애들이 아닌 참모 격인 놈이다.

그런데 참모라는 놈이 이렇게 멍청해도 되는 걸까?

큰 손은 한숨이 나오려는 걸 참고 말했다.

“준비시켜서 뭐 하게?”

“이대로 넘어가면 주변에서 우리를 우습게 볼 겁니다.”

이 새끼 계속 참모 시켜야 하나?

그게 맞나?

여기서 뺨을 후려갈기고 내쫓아야 하는 거 아닐까.

“내가 이 난리 친 사람이 누구라고 했지?”

“세최특, 청기사 슬레이어 그놈이죠.”

참모라는 놈이 참 당당하다.

아내 동생이라고 받아 주는 게 아니었다. 큰 손의 후회는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결혼을 왜 했을까 하는 데까지 도달했다.

“불멸 계통 애들 열만 붙여 주시면 제가 하겠습니다.”

참모이자 처남이 말한다.

큰 손은 뺨을 후리려다가 말았다.

애들 오백을 데려가도 쥐어 터지고 올 것이다.

“너 네임드랑 싸울 수 있냐?”

큰 손은 아내를 떠올리며 화를 눌러 참고 물었다.

“네?”

“네임드랑 맞짱 가능하냐고.”

“아니요. 그런 괴물이랑 어떻게 싸웁니까?”

“너 혼자서 휠 나이트는 몇이나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냐?”

범죄 조직이란 본래 특수종 세계에 반 이상은 발을 걸치고 사는 이들이다.

하물며 큰 손은 한때 협객을 꿈꾸며 조직원을 동원해 자체적으로 블랙홀을 처리한 적도 있었다.

그런 태도로 살아왔기에 정치권도 경찰도, 자신의 조직을 큰 위협으로 보지 않는 거고.

큰 손의 조직원은 그래서 인베이더의 위험을 잘 알았다. 주입식 교육 덕분에 이 처남 새끼도 인베이더의 위험성을 알았고.

“에이, 휠 나이트 한 마리도 너무 위험하죠.”

아내 동생이 말했고 큰 손은 이번에는 참지 못했다.

때리진 않았지만.

“이거 대가리 빻은 새끼 아이가. 머리가 확 돌아삤나? 뒈지고 싶나? 그리 뒈지고 싶으면 건물 옥상에서 번지를 해라. 이 문디 새끼야!”

아내 동생이 욕을 처먹고 고개를 수그렸다. 그러며 제 눈치를 본다.

그래도 가족이다.

큰 손은 다시 화를 눌러 참고 표준어를 구사했다.

“휠 나이트 뚝배기를 수없이 깨고 네임드랑 싸운 그 특수종이 세최특이에요. 처남님아. 시발, 제발, 제발 정신 좀 챙기고 삽시다.”

복수는 무슨.

그런 짓을 했다가 역풍 안 맞으면 다행이지.

눈을 돌렸다. TV에 한창 뉴스가 나오는 중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세최특이 한 일은 법을 무시한 처사였다.

하지만 뉴스 앵커는 청기사 슬레이어가 부산에 와서 범죄 소탕을 하고 있고, 경찰과 공조한 것인지 궁금하다는 말만 했다.

부정적인 의견은 조금도 없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지금이라면 청기사 슬레이어가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해도 지지율이 80%쯤 나올지도 몰랐다.

큰 손은 답답함에, 서울에 있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근까지 서울 조직 연합 두목이었던 사람이다.

“잘 지냈소?”

“아니, 어쩐 일이야?”

한때는 형제처럼 지내던 이다. 지금도 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큰 손은 자기가 당한 일을 읊었다.

상대는 그 말에 웃지 않았다.

“이 친구야. 서울 조직은 와해야. 그 정도면 다행인 거지. 나도 이제 NS 하청 업체라고. 이거 못했다면 입에 풀칠도 못 하고 미친 광신도, 아니다. 하여간 다행이라고 생각해라.”

서울 조직 연합의 수장이었던 남자는 이제 NS의 하청 업체가 되어 있었다.

그걸 들은 큰 손은 결심했다.

“야, 그냥 없었던 일로 치면 되는 거다.”

복수는 무슨, 앞으로도 잘 피해 다니자고.

“근데 그 세최특이 마법사 무리를 찾는 것 같던데요.”

어쩌다 보니 오줌을 지린 채 옆에 자리한 암시장 관리자다.

그녀는 귀가 밝았다. 광익이 사람을 찾으면서 한 말을 들었다.

그녀는 광익의 의도를 짐작했다.

‘마법사?’

그 말에 큰 손은 생각에 잠겼다.

최근 부산에 주문쟁이 무리가 들어와서 골치가 아프긴 했다.

나서서 제압하자니, 마법사가 얼마나 골치 아픈 존재인가.

괜히 건드렸다가 저주라도 받으면 해주하는 데만 돈이 수억이다.

마법 연맹이란 새끼들은 얼마나 오만하고 돈을 밝히는지.

돈도 돈이지만, 기분이 더러워서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

양지의 마법사가 이 정도다.

음지의 마법사는 더 미친놈들이고.

‘그 주문쟁이들?’

세최특이 노린 게 그 무리라고?

“인베이더를 상대할 때는 효율성이 개판이라고 해도, 사람 상대로는 항상 지들이 최고라고 하잖아요. 주문쟁이들이 노리는 거면, 청기사 슬레이어가 괜찮을까요?”

암시장 관리자 주절주절 사족을 붙이며 물었다.

큰 손은 끙하고 신음을 흘렸다.

청기사 슬레이어가 당한다라.

믿기지 않는다. 그럴 수가 있을까 싶다.

반대로 그 마법사 무리는?

큰 손은 주문에 호되게 당한 기억이 있다.

주문은 특수종과 상성이 안 좋다.

일이 생기면 마법사도 기관단총을 들고 다니는 세상이지만, 그들의 주력은 어디까지나 마법.

하물며 음지를 거니는 마법사의 특기는 저주다.

인베이더는 저주 따위에 허덕이지 않겠지만,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상성은 어디에나 있는 법 아닌가.

“후, 시발.”

큰 손은 절로 욕설이 나왔다.

하필 왜 부산에서 지랄인 건지.

누가 이겨도 자신한테 좋은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런데도.

큰 손도 특수종 세상에 산다.

당하긴 했지만, 네임드를 죽였다고 했을 때, 세최특을 응원하기도 했다.

그 소식에 기분이 좋아 애들 용돈도 주고 술도 좀 마셨었다.

그러니.

‘기왕이면 세최특이.’

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 *

쩍.

커피잔에 금이 갔다.

“어머?”

강슬혜가 금이 간 잔을 살폈다. 자기가 손에 힘을 너무 많이 줬나?

“놔둬, 내가 치울게.”

마주 앉아 있던 남편이 금이 간 잔을 싱크대에 넣고 다른 잔을 가져왔다.

강슬혜는 금이 간 잔이 신경 쓰였다. 불운의 상징으로 보였다.

“그런 거 아니야. 우연이야. 잔에 금이 갈 수도 있지.”

눈치 빠른 남편이 말했다. 유연호는 말하며 TV로 시선을 돌렸다.

그걸 본 강슬혜도 금이 간 잔에서 신경을 거두고 말했다.

“광익이는 왜 부산까지 가서 저러는지.”

“혜민이 구하러 갔다잖아.”

남편이 한 모금 머금은 커피를 삼키며 말했다.

“혜민이, 며느리로 어떨까요?”

강슬혜가 물었다.

“나쁘지 않지.”

유연호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둘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양육의 목표는 결국 애를 자립하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아내의 말에 남편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우리 애도 다 컸지.”

“혜민이가 주문 사냥꾼 애들하고 엮인 건 알죠?”

안다. 괜히 피닉스 팀장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제 아들은 세계가 주시하는 특수종이다.

한국 정부는 그 유광익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아득바득 용을 쓸 것이다.

그 증거로, 요새 출근하면 장관이 전화부터 한다.

그만둘 생각하지 마라.

연봉을 두 배로 올려 주겠다.

휴가도 두 배로 주겠다.

일 열심히 하지 마라.

대신 집에서 아들 좀 잘 타일러 줘라.

혹시나 아들이 타국으로 이민이라도 가면 어쩌나 난감하다고 한다.

한국에서 회사까지 차린 아들이 가면 어딜 간다고.

물론 회사까지 통째로 사는 이들이 많긴 했다.

보통 이름 좀 날린다는 특수종이 나와 회사를 차릴 때는 제 몸값을 부풀리기 위해서니까.

그 회사가 세계 정부 연합, 올드 포스의 자기업이 되거나 단군 그룹의 투자를 받기도 하며 그리 어울리는 거다.

그런데 NS는 어떤가.

스케일이 달랐다.

그러니 불안한 거다.

유연호는 당장은 그런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왜?”

“아들 부산 갔습니다.”

“휴가?”

“출장이요.”

“출장?”

자연스레 사정을 설명하니.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지. 이 새끼들이 감히!”

장관이 성을 내며 나섰다.

“어떤 개애자아식들이 우리 광익이 친구를 건드려!”

우리 광익이?

장관은 흥분했다.

“앙, 이 새끼들! 다 죽인다!”

그는 화끈했다. 유연호는 말릴 수도 없었다.

“무슨 생각해요?”

아내의 말에 상념에서 깬 유연호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별일 없겠죠?”

상대가 마법사다. 강슬혜도 몇 번 상대해 본 적 있었다.

마법사는 까다롭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상대적 강함이란 말이 있다.

‘변신은 초능으로 잡고 불멸은 마법으로 잡는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란 거다.

초능력자의 능력 발동은 빠르지만, 흔적이 남기에 불멸자는 그걸 캐치할 수 있다.

하지만 마력은 다르다.

어지간해선 마력 준동을 느낄 수 없다.

하물며 준비된 마법사는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재주가 아주 뛰어나므로 위험했다.

“누구 아들인데.”

유연호가 말했다. 장관이 그리 화를 내며 나섰으니, 적절한 지원이 갔을 것이다.

거기에 유연호는 아들 걱정을 관두기로 했다. 마법사, 자신도 상대해 봤지만, 아들이 당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주관과 객관을 떠나서 냉정히 내린 판단이다.

“다 큰 자식 걱정해서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 애가 더 클까? 우리 애가 그걸 바랄까?”

유연호가 이어 말하자, 강슬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걱정은 됐기에 동생 둘에게 말해 뒀다.

이러저러해서 지금 광익이가 주문 사냥꾼 애들하고 엮인 것 같다고 전했다.

이긍낙, 성이 다른 이복동생이 먼저 답했다.

“누님, 그룹 차원에서 지원이 있을 겁니다. 상대가 무슨 개수작을 부리든, 그냥 두고 보진 않을 거고요.”

이어서 호응이한테도 답이 왔다.

“누님, 네임드 슬레이어란 별명이 붙은 특수종입니다. 걱정은 접어 두시죠.”

두 반응 다 흡족했다.

호응이가 말은 저래도 뒤에서 사정을 알아볼 것이다. 그런 성격이다.

“산책이나 할까?”

말하며 남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발장에서 운동화를 신던 유연호가 말했다.

“신발 끈이 끊어졌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아요.”

“우연이야. 우연.”

“끈 없는 신발 신어요.”

강슬혜가 말했다.

유연호는 그 말대로 했다.

둘은 나가면서 서울에서는 거의 보이지도 않는 까마귀를 봤고, 골목 하나를 끼고 돌자마자 까만 고양이를 봤다.

“우연이야. 우연.”

유연호가 말했다.

“알아요.”

강슬혜가 답했다.

* * *

정부는 사람을 보냈다.

부산 지부에서 가장 마법사를 잘 상대한다는 남자를.

혼혈 불멸자였지만, 몇 가지 주문을 배운 이다.

“전문 주문쟁이를 상대하라고요?”

그 특수종은 난감한 기색을 표했다.

스펠 유저란 몇 놈과 싸워 봤고, 운이 좋아 그런 놈 몇 놈을 잡아 족치긴 했다.

그 와중에 자기가 마법에 약간의 재능을 가졌음을 알았다.

그리 마법을 익혔다.

그 덕분에 주문을 보는 눈이 좀 생기긴 했지만.

“지원 병력 넣어 줄게. 얼마든지.”

부산 소속 불멸특수대장이 말했다.

그는 필요하면 당장 블랙홀 몇 개를 늦게 처리하더라도 전 병력을 지원해 줄 기세였다.

“그럼 저격수 열과 기동대 하나만 지원해 주시죠.”

남자는 말했다.

“그러지.”

부산 담당 불멸특수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 행안부 장관 압박이 장난이 아니었다. 대장은 진지했다.

남자는 움직였고, 광익의 위치를 쫓았다.

찾는 데 꽤 공을 들였지만 결국엔 찾았다.

공장부지 쪽에 도착하니,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

여기가 무슨 핫플인가? 사람이 잘도 모인다.

“형씨도 왔어?”

정장 차림의 남자다.

단군 그룹 소속, 마법 쓰는 변신족이란 별명의 괴물이다.

자신과 비슷한 타입이다.

뒤늦게 마법 재능을 깨닫고 마법을 배운 쪽.

그리고 저쪽은 자신보다 스펠을 쓰는 게 더 능숙하진 않지만, 스펠 기어는 더 잘 썼다.

둘은 라이벌이자, 친구 같은 사이였다.

“너도?”

“같은 목적인 것 같은데.”

그들도 청기사 슬레이어를 안다. 그의 출신도.

한쪽은 정부, 한쪽은 단군 그룹.

당연한 결과였다.

“경호.”

그래도 확인은 필요했다.

정장 남자가 말했고 혼혈 불멸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동대 하나 저격수 열이요.”

“발 빠른 전투 요원 열.”

전력을 확인한 둘이 작전 지역으로 눈을 돌렸다.

광익은 이미 도착했을 것이다.

그가 위기라면 구하면 그만이다.

그리 생각하고 둘 다 마력을 움직여 눈을 떴다.

주문 세계는 오묘하고 기묘하다.

그냥 보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훈련과 재능으로 그 마력 준동을 느끼는 놈도 있다지만, 그런 놈은 둘 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순혈 불멸자도 어지간한 훈련으로는 마력 움직임을 읽지 못한다.

그러니 불멸은 마법으로 잡는다는 말이 나오는 거다.

알아채지 못한 채 맞고 나서야 자신이 당했음을 아니까.

둘은 마법 세계의 눈을 떴고 동시에 놀랐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관찰하다가 먼저 입을 연 건 혼혈 불멸자였다.

“대규모 저주 맞죠?”

“마법진에 수작이란 수작은 다 부려 놨어.”

“부대원 진입 가능한가요?”

“불가.”

같은 결론이다.

저곳은 지금 주문 세계 그 자체다.

마법진을 깔고 그 위에 주문을 덧씌웠다.

그거로 자기들만의 세계를 만든 거다.

저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혼혈 불멸자는 혹시나 청기사 슬레이어의 신상에 문제가 생기면 사직서를 쓸 각오를 하라고 했다.

‘뜨내기랑 붙은 게 아니잖아?’

자기가 손 쓸 수 없다.

옆에 선 남자도 같은 결론이다.

저어어어기 그룹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이다.

청기사 슬레이어를 도와라.

못하면 각오하란 말이 덧붙었다.

어떻게든 도우란 말이었다.

그런데 저기로 들어갈 자신은 없다.

들어가는 순간 중첩된 저주에 병신이 될 것 같았다.

“상황 참 엿 같네.”

변신족이 말했고, 혼혈 불멸자는 그 말에 동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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