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287화 (287/488)

287. 재능은 때론 저주가 된다 (5)

로즈는 연락을 받자마자 부산으로 떠났다.

제일 빠른 KTX 기차를 예매하고 곧바로 출발.

가는 도중 연락을 지속해서 주고받았는데.

수습하러 떠난 길인데, 이미 사고를 칠 만큼 친 광익이다.

‘대표라는 자식이.’

이렇게 날뛰어도 된단 말인가.

무슨 생각으로?

로즈는 광익이 바보가 아니란 걸 안다. 정말 바보였다면 자신이 여기에 있을 이유도 없으니까.

그런데도 가끔 이런 걸 보면 사람을 식겁하게 만든다.

실제로 강혜민이란 애가 잡혀갔다면 은밀히 찾아야 할 거 아닌가.

그런데 이런 난리를 쳐?

아예 방송에 나가서 찾는다고 광고를 하는 게 나을 판 아닌가.

그리 도착한 부산이다.

“정보상? 연락처? 광익이한테 이미 주긴 했는데.”

“줘. 거기부터 갈 거야.”

로즈는 이미 사고 치는 광익을 말릴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늦은 감이 있으니까.

대신, 그녀는 광익이 오간 길을 되짚었다.

자신이 보기에 지금 대표라는 놈은 흥분했다.

놓친 게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더라도 자신이라면 다른 걸 찾을지도 몰랐다.

그리 찾은 엘레강스 호프.

안은 비었다.

급히 비운 흔적이 엿보였다.

로즈는 아는 커넥션이 꽤 있었다.

프로메테우스 시절 한국 지부를 책임지던 그녀다.

부산에도 아는 이름이 몇 명 있기에 그쪽에서 정보를 캐내려 했다.

몇 명은 연락이 되지 않았고 마담이란 여자만 연락이 닿았다.

우스운 게, 전 세계 도시마다 마담이란 별명의 정보상이 하나씩 있다는 거다.

미국에도 있고 영국도, 일본, 한국 다 있다.

그보다 더 웃기는 건 마담이란 별칭의 정보상은 전부 발이 넓다는 거였고.

“누구? 머리카락 없는 애?”

탈모를 정복한 현재 인류에게 대머리만큼 눈에 띄는 특징은 없다.

“그 인간 요즘 안 좋은 쪽에 어울리던데, 약도 파는 것 같고.”

마담이 말한다. 웃기는 소리다. 자기는 약에 손 안 대는 것처럼 말하는 게 우습다.

요즘 세상에 약 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뒷세계에 사는 이들 중 마약 거래를 하지 않는 이들을 찾는 게 더 어렵다.

약 유통망이 이리 활발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긴 했다.

일반인한테 파는 것만 아니라 혼혈 프리랜서들이 많이 찾기도 하니까.

그걸 전부 통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여간 그런 이유로 마담 역시 마약을 사고팔면서 굳이 이리 말하는 걸 보면.

‘그 대머리가 최근에 시장에 영향을 끼쳤단 소리다.’

마담은 제 사업체에 위협을 느껴 어찌할까 하는 판에 로즈가 물으니, 냅다 일러바치는 거고.

프로메테우스나 테러단체 쪽에서 찍고 해치우면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니까.

로즈는 순순히 넘어가 줬다.

“그래?”

이 외 몇 개의 정보를 더 넘긴 마담이다.

그녀는 로즈가 제 앓은 이 몇 개를 해결해 주길 바랐다.

로즈는 정보를 조합해 생각하며 광익의 동선을 홀로그램 맵으로 찾았다.

아파트, 고물상, 그럼 다음은?

뒷세계를 두들겨 패다 보면 윗선에 연결되기 마련이다.

광익의 경로는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로즈는 농후한 테러리스트 경험이 있다.

그러므로 그 동선을 예측하기 어렵지 않았다.

윗선으로 치고 올라가면 조직 보스가 될 것이고.

밑으로 파고들면 암시장을 뒤엎겠지.

목적은 사람을 찾는 거니, 밑보단 위로 갔을 거다.

로즈는 동선을 파악하고 미리 움직였다.

그런데도 광익이 더 빨랐다.

그는 이미 빌딩을 타고 올라가 조직 보스를 쥐어패고 나온 참이었다.

“미친 거야?”

얼굴을 보자마자 말이 멋대로 튀어나왔다.

그만큼 답답해서 그랬다.

그리 몇 마디 나누고 따라오라 말하고 사진을 찍은 여자의 손에서 홀로그램 시계를 뺏었다.

“미안한데, 사진은 지운다.”

그리 말하니.

“내 팬한테 왜 그러냐.”

광익이 투덜거렸다.

이건 진짜 미친놈인가, 여기서 팬이 왜 나와.

“강혜민을 구하려고 하는 거야, 아니면 스트레스 해소야?”

여기저기 다니며 사람만 신나게 패고 다니니 하는 말이다.

“그 머리카락 없는 아저씨 위치는 알고?”

“알아내는 중, 무슨 생각인지 들어나 보자.”

과연 생각이란 게 있을까 싶어서 물으니.

광익이 술술 말했다.

“내가 만약 납치한 장본인이야. 주문으로 그 납치 대상자에게 뭘 빼먹으려고 한다고 치자.”

이건 생각 없이 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납치에 성공하자마자 어떤 미친놈이 그 납치 대상자를 찾으러 다녀, 그럼 넌 여유 있게 있을 수 있어? 적당한 소란도 아니고 도시를 발칵 뒤집어서 자길 찾고 락 다운도 거는데?”

“그럼?”

“꽤 불편하겠지. 당장 납치 대상자한테 뭘 할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불편할 거야. 그럼 일단 이쪽 일이 더 급하다고 느끼지 않겠어?”

“……그걸 노렸다고?”

“안 죽이고 다 풀어 줬으니까 그중에 그쪽 끄나풀도 몇 있을 수 있겠지. 그럼 알아서 얘기를 전할 테고. 내가 혜민이 사진을 거듭 보여 줬으니,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알 거야.”

뭐지, 이 미친놈은.

얌전히 미쳐야 하는데 똑똑하게 미쳤다.

강혜민이란 애가 납치됐다는 소식을 들은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그사이 이런 시나리오를 짰다고?

하지만 맹점도 있지 않나, 있었다.

로즈가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상대가 널 알아보고 내빼면?”

청기사 슬레이어.

그 일곱 글자가 가진 무게감은 장난이 아니다.

로즈 자신조차도 어떻게 이런 놈과 싸웠을까 할 정도로.

모르긴 몰라도 지금 프로메테우스 간부진은 고민일 것이다.

이 사람 목에 진짜 현상금을 계속 걸어 놔야 할지 말이다.

거물도 너무 거물이 되어 버렸으니까.

“그럴 리 없어. 내 상대는 마법사니까.”

상대를 확정했다. 어떻게?

자신이 모르는 걸 아는 거다.

강혜민을 통해 알아낸 거겠지.

그걸 통해 상대를 가상으로, 그리고 성격을 유추한 걸 기반으로 행동한 거다.

로즈는 감탄했다.

광익은 짧은 시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거다.

당장 강혜민을 찾을 수 없기에 상대가 쉬이 수작을 부리지 못하게 압박을 넣었다.

“마법사는 특수종을 얕봐.”

광익이 말했다.

로즈도 안다. 프로메테우스 시절 음지에서 활약하는 마법사 집단 몇을 본 적이 있다.

그중 누구도 존중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오만하고 거만했다.

“불멸은 마법으로 잡고 변신은 초능으로 잡는다? 우습군, 주문을 깨달은 자라면 불멸이고 변신이고 초능이고 상대가 되지 않는 건 당연하다.”

이런 말을 대놓고 하는 부류였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하나같이 전부가 다 그렇다.

양지로 나온 마법 연맹이란 이들의 콧대도 얼마나 높은가.

그들은 먼저 요구하지 않는다. 상대가 부탁하면 그걸 들어 주는 식이다.

오만함.

로즈가 생각하는 마법사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내가 눈엣가시가 되겠지. 그럼 어떻게 할까? 나라면 그냥 안 둘 거야. 그냥 두기에는 또 내 이름값이 가볍지 않을 거니까.”

다 맞는 말이다.

소름이 돋았다. 여기까지 계산한 거다.

청기사 슬레이어, 세최특.

그 이름 하나만은 지금 전 세계 최고로 유명한 남자.

마법사는 오만하기에 그들은 최고의 특수종이라는 상대를 얕볼지도 몰랐다.

상대가 만약 그냥 허접한 특수종이라면 무시하겠지만, 광익은 현재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특수종이다.

놔두자니 신경이 쓰일 터다.

그럼 그냥 두고 보진 않겠지.

로즈는 인정했다.

이 새끼는 천재였다.

* * *

“그 정보상은 두더지처럼 숨었다.”

로즈가 말했다.

당연하다. 걸렸으니 당장 숨어야지.

그쪽이 끄나풀이라고 생각하진 못하긴 했지만.

알았다고 해도 난 건드리지 않았을 거다.

수풀을 건드리면 뱀이 숨는 법이다.

작정하고 숨은 주문쟁이를 찾는 건 아무리 나라도 무리다.

다만, 그 위치만 어느 정도 특정한다면 찾을 만하긴 할 것이다. 그보다 좋은 건 초대장을 받는 거고.

생각하며 걷는데 묘한 눈빛이 느껴졌다.

로즈가 날 보는 눈빛이 묘했다.

그걸 보며 내가 뜬금없이 물었다.

“너, 약속 잊은 건 아니지? 테러 집단 정보 넘기기로 한 거.”

“안다. 아직 중요한 내용을 몰라서 말할 수 없을 뿐이다. 그게 채워지면 그때 밝히지.”

로즈의 말대로라면 급한 건 아니라고 한다.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이런 타입은 다그치면 더 말을 하지 않는다.

놔두면 된다. 말하라고 고문을 할 타이밍도 아니니까.

눈빛이 여전히 묘하기에 난 말해야 했다.

“나 좋아하지 마라.”

“……뭐?”

“국제결혼 생각 없다.”

“미친 새끼.”

“우리 엄마한테 점수 따려고 잘하는 것 같은데, 난 그런 거에 안 넘어간다.”

“또라이 새끼.”

“고백으로 날 혼내 줄 생각이라면 접으라고.”

“너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

예방 주사는 미리 놓는 거다. 이리 말해 뒀으니, 허튼짓은 안 하겠지.

로즈는 짜증을 가라앉히듯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마냥 기다리는 건 안 좋아.”

로즈가 와서 좋은 것도 있었다.

전직 테러리스트의 경험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

“겉으로 들쑤셨다면 이제 속으로도 하는 게 좋겠지.”

“뭘?”

“상대에게 경계심을 심어 주고 싶다면 조직 대가리를 때리는 것보다 좋은 게 있어.”

“추천받는다.”

내 말에 로즈가 고개를 끄덕이고 전화를 몇 통 돌렸다.

“생선 머리 없는 곳 있어? 요즘 가게 사정 나쁜 것 같은데 경쟁 업체 가서 악플 좀 달아 줄게.”

“기왕이면 찝찝한 바지 껴입은 곳이 더 좋지 않아? 뜨거운 냄비라 데일까 봐 건드리지도 못하잖아.”

“그래, 거기랑 거기. 걱정하지 마, 이쪽은 세최특이 메인이야.”

내가 메인이라고 한다.

무슨 요리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세탁소 관리자 같기도 한 대화였다.

“날 먹을 생각이라면 관둬라. 안 된다고 했다.”

메인이라는 말에 한마디 하니.

로즈가 대꾸도 하지 않았다.

상대도 하고 싶지 않다는 투다.

그녀는 그리 말하고 따라오라고 나섰다.

가다가 바이크 한 대를 빌렸다.

주인한테 돈다발을 쥐여 주니 행복한 얼굴로 키를 내줬다.

부앙.

혼자서 다닐 때는 달리면 되지만, 로즈가 있으니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 둘은 바이크를 타고 움직였다.

도착한 건 생선 보관 창고였다.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냉동고가 망가진 것 같았다.

팔레트나 나무 상자 따위도 널브러졌다. 관리가 엉망진창이다.

“뭐요?”

앞을 지키는 남자가 둘, 끝이 휘어진 쇠꼬챙이 같은 걸 들고 있었다.

후크의 손 모양 같다. 저걸 뭐라고 불러야 하나, 갈고리?

갈고리를 쥔 남자 중 하나가 위협적으로 고개를 까닥거렸다.

“제압해.”

로즈가 말했다.

그냥? 말 한마디 없이?

“뭐고? 이것들은?”

둘 중 하나가 말했고 난 오늘 종일 한 일을 재현했다.

상대를 때려눕혔다.

“물어볼 필요도 없어.”

로즈가 말한다. 난 둘을 기절시키고 안으로 들어갔다.

혼혈 변신족이 몇, 불멸자도 몇 있었다.

전부 덤비기에 다 때려눕혔다.

대략 스물쯤 됐는데 난 생채기도 나지 않았다.

로즈는 뒤에서 팔짱만 끼고 구경했다.

대표가 일하는데 노는 직원이라.

회사 돌아가는 꼴이 왜 이 모양인가.

“한 명만 놔두자.”

로즈가 뒤에서 속삭였다. 나만 들릴 목소리다.

“똘똘한 놈으로.”

로즈가 마저 주문했다. 그대로 했다.

내 의도를 알았으니 그에 로즈도 맞춘 거고, 나도 금세 그 의도를 알았으니까.

내가 종일 한 건 겉으로 들썩이게 만든 거고.

지금 로즈와 함께하는 건 상대가 가진 무언가를 건드리는 거다.

느낌으로 알았다.

그리 전부 때려눕히고 한 놈만 남긴 뒤, 고약한 냄새를 참으며 창고 안을 뒤졌다.

“판타스틱하네.”

마약을 잔뜩 발견했다. 컨테이너 몇 개를 채울 만한 양이다.

안쪽을 더 살폈다. 그 외, 별다를 건 없었다.

“꽝이네.”

로즈가 말했다.

이게 꽝이라고 왜?

“아는 경찰 있으면 던져 줘. 실적 되겠네.”

그 말에 지혜 팀장 누나한테 전화하니까.

“아, 부산에 좋아할 만한 개새, 사람이 있네요. 마침.”

이리 말한다.

창고를 비우고 또 움직였다. 내가 일부러 기절시키지 않은 놈이 실눈을 뜨곤, 떠나는 우리를 바라봤다.

놔뒀다. 그러라고 놔둔 거니까.

다음은 불법 사행 오락실이었다.

꽤 넓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조폭 같은 놈은 없고 동네에서 힘깨나 쓸 것 같은 양아치만 몇 보였다.

때려눕히고 안쪽을 살피니까 비밀 문이 있었다. 따고 들어갔다.

물론 기술을 활용했다. 힘으로 벽으로 된 문에 주먹 찜질해서 문 인테리어를 새로 해 준 거다.

이번에는 마약 제조 시설이다.

“꽝.”

로즈가 또 말했다.

난 시설을 또 경찰에 제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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