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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285화 (285/488)

285. 재능은 때론 저주가 된다 (3)

총구가 뒤통수에 닿았다고 당황할 필요는 없다.

상대가 방아쇠를 누르는 것보다 빠르게 고개를 돌리면 그만이니까.

변신족의 육체는 그걸 가능케 했다.

목을 돌리며 허리를 튼다.

상대가 방아쇠를 당겼다.

탕!

“악!”

총성과 비명이 같이 울렸다. 피한 그대로 옆으로 빙글 돌아서 허리를 틀며 섰다.

내가 피하는 바람에 내 앞에 있던 마법사의 어깨에 구멍이 났다.

총구가 날 따라왔다.

그 틈에 앞으로 한 걸음.

발끝을 세워 위로 찬다. 정확히는 총을 든 손목을 끊어 찼다.

딱. 우득!

한 방에 손목이 부러졌다.

“끅!”

비명을 삼킨 파란 눈 주문쟁이의 손목이 덜렁거린다.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이 힘없이 빠지며 권총이 밑으로 흘러내리듯 떨어졌다.

그걸 가볍게 발등으로 받아서 위로 툭 올려 찼다.

권총을 낚아채고 파란 눈깔 마법사의 미간을 겨눴다.

“나 불멸자다.”

무엇보다 훌륭한 위협이다.

이 거리에서 사격하면 표적을 절대 놓칠 리 없다는 거니.

놈이 눈알을 굴렸다.

그사이 맞은 놈이 제 입가를 가리며 주춤주춤 일어났다. 손가락 사이로 피가 줄줄 샜다.

“아프냐?”

걱정되어 물으니.

웬 미친놈 보듯 둘이 날 바라본다. 사람이 걱정을 해 줘도 말이야.

“얘 본 적 있는 사람 손?”

간단명료한 물음이 이어졌다. 혜민의 볼을 부풀린 홀로그램이다.

나한테 있는 사진이 다 이런 것뿐이다.

혜민이는 참으로 미친 아이라 정상적인 사진이 없다. 그나마 이게 가장 나았다.

나머지는 볼을 손가락으로 찌른 사진이나 깜찍한 척하는 사진 따위뿐이다.

가슴골을 찍은 사진도 있다.

그런 걸 누구한테 보여 줄 수 있을까.

강혜민 이 미친 아이.

혼자서 무슨 매듭을 짓겠다고 이상한 일에 끼어 들은 거냐.

애초에 NS에 받으려고 했으니, 회사 차원에서 일을 처리했다면 얼마나 편한가.

그럼 이런 일도 없었을 거다.

“없어?”

둘 다 아는 눈치가 아니다. 파란 눈 주문쟁이가 안광을 뿜어냈다. 눈빛이 달라진다. 마력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혜민과 주문 특훈을 한 적이 있다.

그때의 감각을 기억한다. 불멸자의 감각이 상대가 말없이 반항한다고 포착했다.

방아쇠를 당겼다.

탕.

허벅지에 한 발.

“끄악!”

리드미컬한 비명이 터졌다.

레지던스형 아파트다. 아무래도 곧 사람이 몰려올 듯했다. 총성을 들었으니, 경찰이 올지도 모르겠다.

아까부터 현관 밖이 소란스럽다.

“얘를 모르면 아는 주문쟁이라도 알려 줄래?”

“내가 와 알려 주겠노.”

파란 눈이 말했다. 허벅지를 손으로 누르는데 많이 아파 보였다.

“안 알려 주면 어쩌게?”

손에 든 권총을 흔들었다.

“우리가 누군지는 알고?”

앞니가 털린 주문쟁이가 물었다.

“주문쟁이 나부랭이.”

“우리 일루미나티다. 이래 놓고 무사히 넘어갈 거로 생각하는 건 아이겠지?”

파란 눈 자식, 경상도 패치 참 알차게도 됐다.

말투가 구수하네.

일루미나티,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아니, 자세히 설명도 들었다.

불멸특수대 시절에도 들었고 혜민이한테도 들었다.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가장 큰 마법사 연맹 중 하나.

긁적.

권총을 든 손으로 머리를 긁었다.

뜨내기 주문쟁이를 찾아왔는데, 왜 연맹 소속이 나타났을까?

“그래서 알아, 몰라?”

물론 중요한 건 그딴 게 아니므로 난 다시 정중히 부탁했다.

정중함의 증명으로 총구를 이마에 꾹 누른 채로.

“원망하고 복수라도 하려면 일단 살아야 하지 않겠나?”

앞에서 자꾸 경상도 패치된 말을 듣다 보니 내 억양도 이상해졌다.

그걸 놀린다고 생각했는지, 파란 눈 주문쟁이가 인상을 썼다.

미간을 찌푸린 놈이 사납게 날 노려봤다.

“부탁하는데, 어설프게 마력 좀 그만 쓸래? 반대쪽 허벅지에도 피어싱하고 싶어?”

진심이 담긴 부탁이었다.

이건 진짜 위협이 아니다. 마력 움직일 때마다 감각에 틱틱 걸리는데 자꾸 이러네.

내 말에 두 명 다 안색이 더 안 좋아졌다.

“마법사가 아닌데 어떻게.”

앞니 털린 친구가 말했다. 놀랐지만, 놀람을 감추는 기색이다.

“잘.”

말하면서도 난 둘을 꽤 자세히 관찰했다.

진짜 아는 게 없어 보였다.

허공에 떠 있던 볼을 부풀린 혜민이 홀로그램을 지웠다.

“암시장에 관련된 주문쟁이 이름 하나만 대라.”

그럼 그나마 이들이 아는 걸 물어봐야겠지.

“말하면 우리 죽이고 그냥 가려고?”

파란 눈이 묻길래, 권총을 손에서 빙글 돌려 그 친구한테 던져 줬다.

“……이건 무슨 짓이고.”

“자신감.”

권총 한 자루를 갖든 기관총을 갖고 덤비든 상관없다는 증명이다.

그러니 총이 있든 없든 죽이는 건 일도 아니라는 말이자, 죽이려고 했다면 언제든 가능했을 거란 말이다.

파란 눈 친구가 고민하더니, 품에서 손을 넣었다가 빼 명함 하나를 던졌다.

“암시장 관리자다.”

“고맙고 미안하다.”

“그럴 거 읍다. 나중에 내 찾아갈 기다.”

“그래, 그때 오면 홍차에 쿠키 줄게.”

딩동.

쿵쿵쿵.

타이밍 좋게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문을 두드렸다.

“경찰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난 명함을 품에 넣고 베란다 밖으로 나갔다.

마법사 둘의 뜨거운 시선을 배웅 삼아 벽에 매달려 아파트 옆으로 기었다. 스파이더맨처럼 벽을 땅처럼 삼아 내려가니, 밑에 순찰차 몇 대와 형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보였다.

난 명함에 적힌 주소를 보고 그들 사이를 지나쳐 걸었다.

명함에 적힌 곳은 그리 멀지 않았다.

가볍게 뛰어서 도착하니, 고물상이 보였다.

그냥 고물상은 아니었다.

앞을 지키는 도베르만이 몇 마리, 그 뒤쪽으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오감을 통해 상대 숫자를 알 수 있었다. 네 명이었다.

“크르르.”

날 본 도베르만 하나가 이를 드러냈다.

“크릉.”

나도 같이 이를 드러냈다. 살기와 함께 노려보자, 도베르만이 금세 눈을 내리깐다.

한 마리가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땅을 파는 시늉을 한다.

나머지 세 마리도 매한가지다. 다들 땅에 고개를 박는다. 그렇게 네 놈 다 낑낑거리다 오줌을 지렸다.

야생의 살기에 반항하는 개가 있다면 그 개야말로 특수종이리라.

물론 이 개 중에 특수종은 없었다.

고물상 안쪽으로 들어갔다. 구조가 특이했다.

문 안에 또 문이 있다.

시멘트를 대충 처발라 둔 벽과 툭 차면 바스러질 것 같은 나무 문이 보였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자, 덩치 넷이 드럼통 하나를 두고 담배를 꼬나물고 있는 게 보였다.

친해 보인다. 넷이 같이 담배를 피우는 걸 보니.

“실내 금연 모르냐?”

그리 말하고 들어서니, 넷 다 몸을 일으켰다.

“누고?”

“사장 어딨어?”

“그니까 누고?”

발밑에 반쯤 부러진 각목이 있길래 허리를 굽혀 그걸 주웠다.

넷 다 일반인이 아니었다.

혼혈 변신족이다.

프리랜서는 기본적으로 인력시장에 나선 일꾼이다. 돈이 필요하면 이리 고용주를 갖기도 한다.

넷 다 그런 거로 보였다. 혼혈 변신족은 가성비 좋은 경호원이다.

“말로 할 생각 없지?”

“이거 미친놈 아이가.”

말하며 한 명이 손을 들어 귀에 대고 빙빙 돌린다. 그걸 보며 각목을 손에서 빙글 돌렸다.

그러자 한 놈이 품에서 칼을 꺼냈다. 사시미나 단검 따위가 아니라 전투용 보위 나이프다.

어디서 군사 훈련 좀 받은 것 같다만.

불멸특수대 훈련을 이수한 내 눈에는 반쯤 아마추어로 보였다.

상대가 될 턱이 없기에.

딱딱딱딱!

“사장.”

빡빡빡빡!

“어디.”

우둑우둑우둑우둑!

“있니?”

머리통을 동시에 한 대씩, 막으려고 바둥거리는 놈들 팔뚝을 한 대씩, 마지막으로 정강이를 때려 똑같이 왼 다리를 전부 부러뜨려 주니.

“악.”

“으윽.”

“억.”

“미친!”

넷 다 다양한 신음과 비명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각목을 어깨에 올리며 넷에게 살기를 쏘아 보냈다.

혼혈 변신족 넷이나 도베르만 넷이나.

다들 겁에 질린 채 눈을 마주치지 못했고.

그사이 뒤쪽 지하실이다. 진즉에 눈치챈 비밀통로다.

바람 새는 소리가 들려서 금세 알았다.

바닥에서부터 누군가 머리를 빼꼼 내민다.

제 딴에는 안 들키게 살짝 내밀었겠지만.

넷을 보는 척하다가 뒤로 돌아 대쉬한다. 한달음에 내달려 바닥에 달린 문을 뒤집었다.

이 또한 사슬 따위로 묶여 있었다. 난 다시 자물쇠 따기를 시도했다.

우드드득.

이두박근에 힘을 줘 뜯어내자, 문이 훌렁 열렸다.

그 안에 깜짝 놀란 눈을 한 여자가 보였다. 얼마나 놀랐는지, 히끅 하고 딸꾹질까지 한다.

“김 대표님?”

내가 받은 명함에 적힌 성씨는 김이었다.

“……히끅, 누구, 히끅, 시죠?”

이쪽은 마법사가 아니라 일반인이다.

시간 낭비할 것 없이 홀로그램을 띄웠다.

“알아요?”

혜민이 제 볼을 부풀린 사진이다.

여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모르는 눈치였다.

적당히 겁을 먹긴 했는데 황당함이 더 큰 표정이다.

“여기 누가 관리하는지는 알고 이러는 건가요?”

여자는 여유를 가장했다.

“누가 하는데요?”

“큰 손이요.”

그건 또 누군데.

몰라서 고개를 갸웃하자, 여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부산 큰 손 몰라요? 누군데 큰 손도 모르고 여기서 꼬장이죠? 그러다 큰일 나요. 당신.”

큰일은 무슨.

각목으로 어깨를 몇 번 툭툭 두드리다가 뒤를 향해 던졌다.

품에서 총을 꺼내던 친구의 머리에 각목이 빡 하고 꽂혔다.

머리를 맞은 친구가 뒤로 고꾸라졌다.

살기를 풀어 주자, 겁대가리를 상실하고 움직인 거다.

그러자 나머지 셋도 권총을 꺼낸다.

군사 훈련을 받은 놈은 속사수였다.

품에서 총을 뽑자마자 쏜다. 속사수이긴 했지만, 명사수는 아니었다.

탕! 팅!

내 머리 위쪽 철판에 빨간 불똥이 튀었다.

나머지 둘도 날 겨누기에, 난 여자의 뒷덜미를 쥐고 들었다.

“얍.”

방패 삼아 들자.

“치사스러운 새끼.”

“가만히 안 내려놓나?”

“쏴 봐. 쏘고 싶으면 마음껏 쏘라고.”

“꼬롬하기로.”

말하며 뒤로 물러났다.

대치가 길지 않았는데.

웨엥, 웨엥, 웨엥- 하고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경찰차와 구급차, 소방차는 사이렌 소리가 다르다.

이건 반응이 빨라도 너무 빠른데.

지하 통로와 김 대표란 여자를 번갈아 보자 금세 알 수 있었다.

그사이에 경찰을 불러?

암시장의 관리자가?

“경찰이라니, 너무 치사한데.”

“인질로 잡아 놓았으면서, 누가 누구보고 치사하다는 거죠?”

김 대표가 말했다. 할 말은 다 하네. 뭐, 그럴 강단 정도는 있어야 암시장 관리자를 하겠지.

딸꾹질도 어느새 멈췄다.

“큰 손인가 뭔가 하는 사람 좀 만납시다.”

“내가 순순히 안내할까요?”

난 총구를 손가락 삼아 세 명의 왼 다리를 가리켰다.

“저 남녀 평등주의자입니다.”

“뭐?”

“사지를 전부 부러뜨리고 시작할까요?”

거듭 말하지만, 이건 협박이 아니다. 부탁이지.

“미친, 큰 손 앞에 가면 너 죽어.”

“지금 내 걱정하는 겁니까? 첫눈에 반해서 그런 거라면 미안한데, 제가 눈이 좀 높아서.”

“이 또라이가.”

많이 듣던 말이다. 칭찬에 그녀를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셋 중 한 놈이 왼쪽으로 각을 넓히려고 해서 그쪽도 막은 거다.

“그래서요?”

“좋아. 가자, 가자고. 안내한다고.”

“좋아요.”

말하고 남은 손으로 품에서 연막탄을 하나 꺼내 던졌다.

언제고 이런 거 한번 해 보고 싶었지.

오늘은 내가 닌자다.

펑.

연막탄이 터졌다. 나는 눈을 감고 숨을 참은 뒤, 땅을 툭툭 발로 차며 뒤로 물러났다.

불멸자의 감각이 있기에 이 정도는 장애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앞에 셋은 아니겠지.

그대로 고물상 담을 넘었다.

김 대표는 그 뒤 순순히 날 안내했다.

“큰 손이 누군데요?”

가면서 물었다.

대롱대롱 매달린 그녀가 답했다.

“부산 조직 우두머리.”

기시감이 느껴졌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서울 조폭 두목을 갈아엎은 게 엊그제 같은데.

“갑시다.”

하는 김에 부산도 접수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그쪽이 혜민이 행방을 알 확률도 높지 않겠나.

마법 세계는 음지.

부산 음지를 지배하는 두목 이름은 큰 손.

연관이 있을 것 같지 않나.

그대로 큰 손이 있다는 빌딩으로 갔다.

“몇 층에 있을까요?”

“사장실은 22층.”

꽤 높다. 한국 제2의 도시라더니, 높은 빌딩이 참 많기도 하다.

“뒤로 가면 후문이 있어. 그쪽으로 가서 내가 손님 데려왔다고 하며 쉽게 올라갈 수 있을 거야.”

거짓말이다. 수위나 경호원이 오자마자 난리를 칠 것이다. 그걸 뚫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굳이 그럴 이유는 없었다.

“수고스럽게 그럴 필요 없어요. 꽉 잡아요. 놓치면 죽어요.”

“뭐?”

등 뒤로 김 대표를 돌렸다. 한 손으로 궁둥이를 받쳐 업고 빌딩 위로 뛰었다.

툭. 가볍게 땅을 찼다. 몸이 붕 떴다. 빌딩 외벽이 우툴두툴했다. 벽에 달라붙었다.

가벼운 점프 한 번에 1m 높이다. 난 적당히 손가락을 걸고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뭐고 저거.”

아무래도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짓이었다.

대낮이기도 했고.

누군가 날 발견하고 밑에서 중얼거렸다.

곧 사람이 몇 모이더니 누군가 폰으로 날 촬영하기도 했다.

“꺄악. 나 고소공포증 있어!”

김 대표가 외쳤다.

그러니까 꽉 잡으라고 하지 않았나.

22층이라고 했던가.

난 궁둥이를 받치던 손도 놨다. 김대표가 다리까지 써서 날 꽉 안았다.

김대표의 가슴과 등이 밀착됐다.

그대로 난 빌딩 위를 기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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