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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284화 (284/488)

284. 재능은 때론 저주가 된다. (2)

돈과 화투는 둔 채, 품에서 칼을 꺼내는 친구가 둘.

머리카락 대신 돌기를 기르는 사람은 오히려 한 걸음 물러서서 팔짱을 꼈다.

자세를 보니 셋 중에서는 리더로 보였다.

“경찰?”

경상도 억양으로 왼쪽에 선 남자가 물었다. 일반인이었다.

“어려 뵈는데.”

우측에 있는 남자다. 이쪽도 일반인.

말을 나눌 상대는 머리 돌기 남자뿐이었다. 그쪽은 초능 특수종이고 리더 같으니.

초능 특수종인 걸 가늠해 볼 것도 없이 헤어스타일 때문에 한눈에 알아봤다.

누가 저런 머리를 하고 돌아다닌단 말인가.

“어서 보낸 뜨내기가?”

말이 많네.

난 입을 다물고 행동으로 보여 줬다.

땅을 차고 잽 두 방.

좌우로 균형감 있게 때렸다. 힘 조절을 적당히 하고 때렸는데.

뻥! 쩡!

후두두둑.

허공에 노란 치아가 흩날린다. 어두컴컴한 조명 사이 떨어지는 치아, 흩어지는 핏물, 잽 한 방에 발이 떠서 뒤로 날아가 테이블 몇 개를 엎으며 쓰러지는 남자 둘.

둘 다 사지를 부르르 떨다가 졸도했다.

“뭐가 이렇게 허약하냐.”

내가 중얼거렸다.

적당히 실력 차이만 보여 주려고 했는데 한 방에 졸도라니.

힘 조절 실패다. 머릿속으로 계속 청기사와의 전투를 곱씹고 있었던 탓이다.

그래서 평소보다 힘이 조금 더 들어갔다.

주먹을 회수하며 어설픈 파이팅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들린 목소리다.

“……너 뭐야?”

팔짱 낀 채, 상황을 주시하던 머리 돌기 남자가 양손에 칼을 쥔다.

“친구를 찾으러 왔거든요. 좀 도와주실래요?”

그런 그를 보며 난 부탁했다.

“지랄 마, 대뜸 오자마자 사람을 때려눕혀 놓고 무슨 개수작이야?”

이 작자는 사투리를 안 쓰네.

머리 돌기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중고 형 알죠?”

“김중고?”

아는 눈치다. 내 말에 남자가 미간을 팍 찡그렸다가 도로 폈다.

잠깐이지만, 속으로 중고 형 욕을 잔뜩 한 듯했다.

“사람 좀 찾고 싶은데, 비용은 지불할게요. 저 둘 치료비도.”

내가 마음이 좀 급해서 시작을 과격하게 하긴 했지만, 어쨌든 제대로 된 거래를 하러 왔다.

뒷골목 세계에 정보를 사러 온 참에 다 때려 부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넌 부탁을 이따위로 하냐? 너 같으면 들어주겠냐?”

“이름은 강혜민이고요. 모녀가 같이 움직였어요.”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이.”

혜민이와 연락이 끊겼고, 그 와중에 전화를 받은 놈은 선 넘지 말라고 한다. 그리 말한 놈의 얼굴을 꼭 보고 싶다고 생각하니, 절로 머리가 돌아갔다.

부산에 오가는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예전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이곳을 마약의 메카 중 하나라고 불렀다.

그만큼 몸을 숨기고 뭘 하기 좋은 장소라는 거다.

실제로 바다 위에 뜬 화물선에서 마약 제조실을 만든 놈들도 있었다.

숨기도 좋고, 부산이 그리 좁은 지역도 아니고.

이름만 갖고 사람을 찾긴 어렵다.

그럼?

단서는 많다. 그 단서를 토대로 찾으면 그만이다.

혜민의 어머니는 암시장의 큰 손.

그리고 혜민이는 프리랜서 시장에서 해결사 노릇을 했다.

그 둘도 아는 커넥션이 있었을 거다.

혜민이와 혜민이 어머니가 캐내려고 한 게 무엇일까.

거기에 따라 찾는 시간이 달라질 것이다.

“개소리 집어치워라. 여기가 어디라고…….”

“혹시.”

난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주문이나 마법 관련된 팀, 아니면 사람이 부산에 들어온 적 있습니까? 흔적이라도?”

물으며 생각했다. 경찰 쪽, 그러니까 지혜 팀장 누나한테 전화해서 그쪽 정보도 얻으면 좋을 것 같다고.

머리 돌기 남자가 잠깐 입을 벙긋거렸다. 당황한 기색이 엿보였다. 표정을 꽤 잘 숨기는 편이지만, 내 눈을 속일 순 없었다.

불멸자의 감각은 타고난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속이기 어렵다.

다행히 이 남자도 그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아는 게 있나 보네요.”

웃으며 말하고, 옆에 있던 테이블에 손가락을 꽂았다.

시간이 있다면 말로 잘 타이르겠는데.

내가 좀 급해서.

법보다 가까운 주먹의 위력을 알려 주는 게 빠를 터였다.

이 정도는 뒷골목 세계에서는 정중한 쪽에 속하리라 생각했다.

우드득.

테이블 끝을 잡아 들어 올렸다. 수틀리면 상대 머리통 위로 왕관이 되어 줄 두꺼운 나무 테이블이다.

“염병, 너 누구냐 대체.”

상대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테이블을 든 채로 난 정체를 밝혔다.

“유광익, NS 대표요.”

그 말에 머리 돌기 남자가 눈을 깜빡이더니 되물었다.

“청기사 슬레이어?”

요즘은 그렇게도 불리니,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눈 깜빡임이 빨라졌다. 칼을 쥔 손에 힘이 빠졌다.

“그 청기사 슬레이어? 세최특이요?”

존댓말도 썼다.

“네, 그 청기사 슬레이어, 세최특이요.”

그러자 남자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생김새를 확인하는 듯 눈알을 굴리더니, 남자가 허탈한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진즉에 말씀을 하시지.”

이름 하나에 대우가 달라졌다. 칼을 수납하고 손을 가랑이 사이로 모은다. 남자의 태도가 더없이 공손해졌다.

“뭘 찾는다고요?”

“갑자기 친절해지는 게 여기 정보상 컨셉인가요?”

“세최특 맞잖아요. 화면에서 얼굴 본 적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 서울에서 기자 회견하다가 무슨 출장 간다고 하더니 여길 온 겁니까? 홍길동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돌아다니시는구나.”

뭐가 됐든 우호적인 변화이기에, 난 할 말을 했다.

“사람 좀 찾아 주세요.”

정확히는 마법사를 찾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상대가 머리를 긁적였다.

돌기 사이로 하얀 무언가가 우수수 떨어졌다.

“비듬 아니에요. 이게 제 초능이긴 한데, 돌기 사이로 각질이 생깁니다.”

그게 비듬 아닌가?

하여간 혜민 모녀가 부산에 왔으니, 어떻게든 주문의 흔적을 쫓으면 될 일이다.

자세히도 필요 없었다. 단서 몇 개면 충분했다.

머리를 긁어 각질인지 비듬인지를 털어 낸 남자가 내 눈치를 봤다.

“처음부터 이름을 밝히시지.”

머리 돌기 남자가 제 동료 둘을 힐끗 바라봤다.

쓰러진 두 사람은 아직도 깨어나지 못했다.

“그러네, 그건 미안하네요. 그래서 주문과 관련된 사건 같은 건 없었어요?”

“그걸 왜 이쪽에 물으십니까?”

“정보 다룬다고 들었는데.”

“그렇긴 한데.”

음지에서 일어나는 일은 때로는 뉴스에 나오지도 않고 묻힌다. 그게 꽤 큰일이어도 그럴 수 있었다.

특히나 주문과 마법 세계의 일은 음지 오브 더 음지 아닌가.

그래서 내가 여길 찾아온 거기도 하고.

“얘기할 생각 없어요?”

처음에는 무력, 다음에는 명성, 세 번째는 돈이다.

현금 뭉치를 테이블 위로 던졌다.

대충 봐도 몇백만 원이다.

이름값만으로 내 요구를 다 들어줄 것 같았으면 처음부터 무력행사도 안 했다.

아, 물론 내 이름 하나로 상대 태도가 이 정도로 달라질 건 예상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돈의 위력도 효과적이었다.

남자가 비밀을 털어놨다.

“주문 사냥꾼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귀가 쫑긋 섰다. 물론 겉으로는 태연한 척 무표정을 유지했지만.

주문 사냥꾼, 마법 세계에서 일인 전승 스펠 크리에이터 따위를 잡아가는 놈들이다.

“여기로 가시면 몇 놈 있을 겁니다.”

단서였다.

* * *

“세최특?”

스피커 목소리 마법사가 중얼거렸다.

다섯 다 후드를 푹 눌러써서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은신처로 삼은 공장 2층에 마련된 사무실 안이었다.

“청기사 슬레이어?”

네임드 퇴치는 마법 세계에서도 놀라운 일인 건 마찬가지다.

“프로메테우스에서 현상금 걸지 않았나?”

“오십억.”

“나쁘지 않군.”

“발도 넓고 행동력도 있다. 벌써 하위 그룹 쪽 하나에 닿았다.”

“골치 아픈 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넷이 떠들며 한 명의 눈치를 봤다.

“경고했는데도 선을 넘었으니.”

앳된 목소리가 입을 열자, 나머지 넷이 입을 다물었다.

“그 대가를 치러야겠지.”

마법의 문외한인 특수종에게 주문은 치명적이다.

청기사 슬레이어가 주먹 한 방에 사람 머리를 부술 수 있다곤 해도,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특수종이든 뭐든 인간인 이상, 수준급 마법사를 그냥 상대할 수는 없다.

그들은 그렇게 믿었다.

마법사 다섯.

이들은 상중하로 나눴을 때 중급 이상의 스펠 유저였다.

그중 하나는 상급에 다다른 스펠 유저고.

그들은 특수종 하나를 겁내지 않았다.

오히려 이걸 기회로 봤다.

“미친 과학자 놈들도 탐낸다고 했습니다. 그쪽에 줄을 대면 프로메테우스가 줄 돈의 배는 낼 겁니다.”

후드 중 하나가 말했다.

마법사는 언제나 금전이 부족하다.

주문을 배울 때도 돈이 들고, 실험에도 돈이 든다.

미친 과학 집단보다 돈이 배로 드는 게 마법사 집단이다.

하물며 음지에서 사는 주문 사냥꾼 팀에게 돈이 아니라면 뭐가 의미가 있을까.

그러니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하물며 그 상대가 작정하고 덤비는 판에야.

놔두다가 뒤통수를 맞느니, 먼저 나서서 처리하는 게 나을 터였다.

“유인해.”

앳된 목소리의 마법사가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밖으로 나가 강혜민을 가둔 곳으로 향했다. 문에 손을 대고 중얼거리자, 문에서 작은 떨림이 생겼다.

주문으로 잠근 문이었다.

뜨드드드.

어설프게 만든 철문이 바닥과 맞닿아 여닫을 때마다 불쾌한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깬 혜민이 눈을 떴다.

창고 구석, 금줄에 사지가 묶인 채다.

덕분에 마력을 조금도 쓸 수 없었다.

마력을 쓸 수 없는 혜민은 격투기에 심취한 여자일 뿐이었다.

“엄마는?”

마법사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봤다.

후드 안쪽에 유리처럼 빛나는 눈동자가 있었다.

눈깔이 다이아몬드처럼 어슴푸레한 조명을 반사했다.

“엄마한테 무슨 일 있으면 죽인다.”

마법사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럴 이유가 없으므로.

그는 그저 제가 잡은 사냥감을 바라볼 뿐이었다.

주문 사냥꾼이자, 현상금 사냥꾼으로 산 지 이십 년.

그중 십오 년을 쫓은 대상이었다.

젖먹이를 데리고 잘도 도망 다니더니 결국에는 잡혔다.

물론 잡는 과정에서 희생이 만만찮았다.

죽은 마법사가 열둘이다.

그중 중급 수준의 스펠 유저가 셋이다.

팀 전력의 십 분의 일은 날려 먹은 셈이다.

그래도 기쁘다.

세최특은 고작 현상금 50억이지만, 이쪽은 그야말로 보물 그 자체이니.

“후, 뭐, 엄마야 잘 있겠지. 애초에 엄마 능력이 탐이 나서 잡은 거니까. 그치?”

도발과 질문을 뒤섞는다. 어떤 답이라도 듣고 싶은 듯했다.

마법사는 답하지 않았다.

“개자식.”

혜민은 욕설을 퍼부었다.

그래도 마법사는 어떤 제지도 가하지 않았다.

상품에 손을 대는 건 아마추어나 하는 짓이므로.

그는 돌아 나와 따로 잡아둔 스펠 크리에이터에게 향했다.

이쪽은 꽤 험하게 손을 썼다.

딸을 유인하라고 하니, 말을 참 안 듣지 않나.

두 다리를 부러뜨렸는데도 말을 안 들었다.

“점괘가 엉망이었는데 강행했어요. 흉 속에 길이 있는 거로 보였거든요. 착각이었나 봐요.”

하얗게 질린 안색에 식은땀도 흘린다. 단련되지 않은 몸이기에 뼈가 부러진 고통만으로도 기절할 만큼 아플 것인데.

어떤 응급조치도 안 했다.

혜민의 모친, 김주희도 딱히 요구하지 않았다.

애초에 들어 줄 상대가 아니었다.

“그랬군.”

마법사가 입을 연다.

“함정 팔 생각은 어떻게 했어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요?”

김주희는 의문이 들었다. 분명 함정이었다. 마법사가 자신을 노리는 걸 예상한 함정.

덕분에 거하게 당한 거고.

미래는 가변성이다. 예지의 영역에서 이뤄진 일은 아니다.

하물며 그 누구도, 이런 마이크로 단위로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으니까.

상대는 자신이 올 걸 예상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언제고 한 번은 날 노리지 않을까 해서, 그래서 매번 준비했지.”

오, 끔찍한 놈.

김주희는 속으로 욕했다. 매번 이런 함정을 공들여 팠다는 거 아닌가.

걸릴지 안 걸릴지도 모를 함정을?

거기에 소모된 자원이 아까울 지경이다.

“바라는 건 엘릭서죠? 제가 만들어 줄 수도 있어요.”

“당신이 만들 수 있다면 진즉에 만들어서 날 뿌리쳤겠지.”

맞는 말이다.

상대가 바라는 건 자신이 만들어 줄 수 없는 거다.

사실 알아도 만들 생각도 없다.

그건 외도(外道)다. 그런 길을 가서야 훌륭한 주문을 쓸 수 없다.

눕는 게 편하다고 평생 누워 있게 되면 사람이 어떻게 되겠나.

외도란 그런 거였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길을 더 빨리 가게 하려고 수명을 깎고.

때로는 갈 수 없는 길로 발을 내딛게 해 주는 것.

서양식으로 말하면 흑마법이라고 해도 좋았다.

“기쁘다. 최후의 마도 병기를 내 손으로 직접 잡아서.”

마법사가 말했고 김주희는 겉으로 태연한 척했으나, 속으로는 아찔함을 느꼈다.

그녀는 울고 싶었다.

* * *

“마법사지?”

불멸자의 감각은 날카롭다.

난 단서를 쫓았고 주문쟁이를 만났으며.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뻑.

“꺽.”

아까의 경험으로 힘 조절은 완벽하다.

정확히 치아 몇 개만 부러뜨렸다. 날아가서 벽에 처박히는 일 따윈 없다.

주먹질은 수작을 부리려던 놈이 더는 수작을 부리지 못하게 했다.

대뜸 아파트 안으로 쳐들어왔기에 상대는 꽤 당황한 눈치다.

그 당황한 타이밍에 내가 주먹을 휘두른 거고.

나라도 그럴 법했다. 갑자기 18층 베란다 창문을 손으로 뜯어내고 들어오는 놈이 있으면 놀라는 건 당연했다.

휘이이이잉!

부산의 바닷바람이 내 등을 떠민다. 소금 냄새가 느껴지는 바람이었다.

난 창을 등지고 쓰러진 친구 앞에 쪼그려 앉았다.

“얘 알아?”

너무 아픈지, 눈물을 흘리는 놈 앞에 홀로그램을 띄웠다.

볼을 부풀린 혜민이 얼굴이다.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모, 모라.”

발음이 샌다. 한 놈을 그리 두니, 뒤에서 누군가 내 뒤통수에 총구를 들이댔다.

“이거 완전 미친 새끼 아이가.”

경상도 언어 패치가 끝난, 파란 눈이 인상적인 주문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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