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 재능은 때론 저주가 된다 (1)
“우리 또 이사 가?”
어릴 때 혜민은 이리 묻는 날이 많았다. 그만큼 집을 자주 옮겼다.
“그래야지. 점괘가 안 좋네.”
“우리 마법사라면서. 마법사가 무슨 점괘를 쳐, 예지도 아니고.”
어린 딸의 투정에 혜민의 엄마는 인자하게 웃으며 답했다.
“예지력을 타고난 사람도 있지. 하지만 미래는 시시각각 변하니까, 그걸 정확히 알 수는 없단다.”
“점괘는 뭐가 다르고?”
이때부터 혜민은 적당히 껄렁껄렁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태도가 큰 걱정거리는 아니었다.
당장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한 시점이었으니까.
“다르지. 딸. 점괘는 그냥 내 운을 보는 거야. 풍수지리랑 비슷한 거고.”
“풍수지리는 뭔데?”
“……딸 학교 공부는 좀 하니?”
도망 다니는 처지라고 했으면서 꼬박꼬박 학교는 보낸다. 학교 따위 뭐가 중요하다고 이러는 건지.
불만 가득한 눈빛으로 딸이 어머니를 바라봤다.
“이사하면 과외부터 해야겠다.”
어머니는 혜민의 태도를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험한 세상 살아가는 딸이다. 적당히 강단이 있는 편이 좋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곳 터가 안 좋아서 이사해야 한다는 거야.”
“작년엔 좋다며.”
“그때는 좋았지.”
하늘의 별자리가 변하고 달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면 점괘가 변하는 게 일상이란다.
어머니는 그리 말했다.
“무슨 마법사가 점을 치냐고.”
혜민은 여전히 투덜거렸다.
“선조의 지혜란다. 마녀 사냥 같은 거 당할 때 점쟁이라고 하면 잘 넘어가 주기도 하고 그랬지. 그리고 돈은 안 버니? 돈도 벌어야 했으니까. 대놓고 주문 쓰면 화형감이었지만, 다른 사람 앞날 슬쩍 봐주고 축복해 주면 돈주머니가 생겼단다.”
마녀라 불린 선조는 그렇게 점을 배웠다.
그리고 이왕 배운 거 잘 써먹으면 좋은 거 아닌가.
전투 능력은 형편없지만, 다른 주문 재능은 탁월했기에 혜민의 모친, 김주희는 점을 잘 쳤다.
타로 카드도 아니고 트럼프 카드 몇 장으로 친 점을 기준 삼아 둘은 다시 이사했다.
리어카에 짐을 싣고 달밤에 몰래 도망가는 이사는 아니었다.
혜민의 어머니는 돈이 많았다.
주문과 스크롤을 암시장에 내다 팔아서 많이 부유했다.
이삿짐센터를 부르고 다시 고가의 고급 아파트로 이사다.
그렇게 몇 번의 이사, 몇 년의 시간, 혜민의 머리가 조금 굵어졌을 때.
“언제까지 도망 다니면서 살아야 해? 우리 왜 도망 다니는데?”
어디서 돈이라도 잔뜩 훔쳤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을 때 혜민은 그런 생각이었다.
혜민의 어머니는 딸이 언제고 알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하는 일이 뭐라고?”
“스펠 크리에이터.”
“세상에는 주문 사냥꾼이란 놈들이 있단다. 현상금 사냥꾼도 있고.”
대단한 비극은 없었다.
그저 엄마의 재능은 꽤 뛰어난 편이고, 그걸 이용하려고 한 사람이 많았다는 걸 알았을 뿐.
마법 연맹에 관한 것도 그때 알았는데.
“그럼 연맹에 가입하면 되는 거 아니야?”
일인 전승 학파라고 해서 연맹에 가입하지 말란 법은 없다.
혜민의 어머니는 그런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답했다.
“싫다. 내가 만든 주문을 멋대로 팔아먹고 수수료를 떼먹잖니. 만든 건 난데, 왜 지들이 수수료를 떼먹니.”
그때 혜민은 제 엄마가 생각보다 꼬인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그 수수료가 아까워서 평생 도망자로 살자고?
어머니는 도망자의 삶을 감수했다.
참 별난 성격이었다.
혜민은 한때 마법 따위 개나 줘버리라 생각하고 비행 소녀를 장래 희망으로 삼아, 하이킥으로 동네 양아치 머리통을 갈기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기 가면 이번에는 진짜 과외받아도 되겠다. 우리 딸 성적 좀 올릴 수 있겠어.”
“……응?”
이게 뭔 소리인가.
사람 만나는 걸 기피해서 택배도 안 시키는 분이 무슨 과외를 한다고.
“아주 길해.”
그리 이사한 아파트다.
엄마가 이런 점괘는 처음 본다고 했다.
세상 어디 없는 안전한 곳.
점괘가 말한 곳이다.
혜민은 여전히 비행 소녀로 살며 그냥저냥 학교에 다니다 과외를 받았고, 유광익을 알게 됐다.
혜민은 광익이 특수종인 걸 눈치챘고, 어머니는 이곳에 왜 길한 곳인지를 알게 됐다.
강력한 기운이 모여 있어서 자신과 딸의 기운이 감춰졌다.
광익의 옆은 안락한 보금자리였다.
이후 광익이 특수종 세상에 발을 들였고, 혜민도 스펠 유저로서 뒷세계에서의 일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이때도 혜민을 말리지 않았다.
다만, 이름과 얼굴을 철저히 숨기라고 했을 뿐이다.
험한 일을 겪어야 앞으로 있을 일에 대비하는 법이니, 실전 경험은 중요했다.
그리 살았던 혜민이었지만, 광익이 위험하다는 말에 비밀 따윈 내팽개쳐 버렸다.
“딸, 숨어 살기 싫니?”
“어릴 때부터 싫었어.”
광익이 회사를 차릴 때쯤 어머니가 물었고, 혜민이는 답했다.
어머니는 결단했다. 더 도망치기 싫다면 싸워야 했다.
다행히 딸은 잘 컸다. 주먹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한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그리 컸다.
“이 세계에 있는 연맹 중에는 주문 사냥꾼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곳도 있단다.”
“미친놈들.”
혜민은 거침없이 욕설을 뱉었다.
일인 전승 학파는 주문 사냥꾼의 사냥감이다.
주문 사냥꾼 주축의 연맹이라면 곧 어머니와 같은 마법사를 노리기 위해 작정한 집단이란 소리 아닌가.
“그 사냥꾼 집단에 타격을 주면 조용해질 거다.”
엄마가 말했고 혜민은 결심했다.
“그렇게 할래요.”
마침 부산에 그들의 리더가 들어와 있다고 했다.
혜민과 어머니는 작전을 짰다.
주문 사냥꾼 연맹의 대가리를 암살.
이후 광익의 회사에 입사.
지금 그냥 회사에 입사한다면 평생 사냥꾼과 연맹의 적이 될 것이다.
혜민은 그걸 피하고 싶었다.
부산에 와서 작전을 짜고 주문 사냥꾼 무리 중 하위 사냥꾼 몇을 잡았다.
정보를 얻고 조합해 그들만의 싸움을 시작했다.
특수종 세상 속의 또 다른 세상인, 마법사의 세상에서.
그리 싸우다가 어머니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정보를 듣고 움직였는데, 상대가 기다렸다는 듯 습격했다.
‘함정이었어.’
제대로 당했다. 그래도 아등바등 해결해 보려 했다. 홀로 되었다고 해도 제 능력을 믿었으니까.
이미 꼬이기 시작한 일은 쉬이 풀리지 않는 법이었다.
혜민은 역으로 함정에 수차례 빠졌다가 헤쳐 나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를 구하는 일이 요원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내빼면?’
상대가 노리는 건 스펠 크리에이터, 엄마다.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좀 무리했는데 이번에는 자신이 꼼짝없이 잡힌 셈이었다.
“잠깐.”
전투 마법사 다섯을 앞에 두고, 혜민은 이마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입을 열었다.
항구 구석에 있는 작은 창고다.
사람이 오가지 않으니, 이보다 싸우기 좋은 장소는 없었다.
“우리 엄마 안전하지?”
“더없이.”
다섯 중 하나가 말했는데 입을 열지도 않고 말한다.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나온 것처럼 울렸다.
“후, 시발 새끼들, 내가 이 말을 믿어야 하나.”
“포기해라. 반항해도 소용없으니.”
“문자 하나만 보내고 잡아가면 안 되니?”
“경찰이라도 부르고 싶나? 여길 찾지도 못할 거다.”
스피커 목소리 남자가 말하며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장막의 주문.
일반인, 또는 특수종이라고 해도 불멸자의 감각이 없다면 위화감조차 느끼지 못할 곳이다.
“경찰은 무슨, 남편한테 미처 연락을 못 했거든.”
“아직 미혼 아닌가?”
“아, 미래의 남편.”
“뺏어.”
스피커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가 끼어든다. 새되고 어린 목소리다.
그 목소리가 울리자마자 혜민의 등 뒤, 벽에서 우두둑하고 식물 뿌리가 자라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
말하며 손 하나를 뒤로 돌려 메시지를 보낸 참이었다.
그렇게 보낸 메시지가 두 개다.
“걸렸네.”
혜민이 뻔뻔히 말했다. 식물 뿌리에 휘감긴 혜민은 더 반항할 수 없었다.
그 앞을 가로막은 다섯 중 하나가 쯧 하고 혀를 차더니 말했다.
“누가 온다고 해도 변하는 건 없다.”
우드득.
주문 사용자에게 혀는 또 하나의 무기다.
식물 뿌리가 혜민의 입을 억지로 벌리더니 혀를 얇은 뿌리로 감싸 봉했다.
고로 혜민은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속으로만 말했다.
‘그건 네 생각이고.’
* * *
가는 길에 달려가는 것보다 KTX를 타는 게 더 빠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했다.
표를 사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빠른 방법을 택했다. 변신해서 달려가 기차 위로 무임승차하는 거다.
가면서 연락 몇 번, 도착해서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니.
“기자 회견 때려치우고 부산? 무슨 일인데?”
팬더 형이다.
“혜민이가 도와 달래요.”
“그런다고 쌩하니 가.”
“위험하다고 하니까요.”
혜민의 어머니는 암시장의 큰 손이다. 이것저것 팔아서 큰 부를 축적했다.
그리고 둘은 일인 전승 학파를 이었기에 주문 사냥꾼이 언제나 어머니를 노린다고 했었고.
그럼 상대는 누굴까.
혜민이가 부산을 온 건 매듭지을 일이 있다고 했었다.
결론은 바닥부터 파 볼 일이었다.
“중고 형이 아는 사람 몇 있다고 하니까 물어보고 혜민이 찾아서 데려갈게요.”
“혼자?”
“그럼요?”
“한 회사의 대표가 혼자 다니면 되겠냐. 너 가자마자 사람 하나 붙였다. 그쪽 방면 전문가로.”
그 말만 하고 팬더 형이 전화를 뚝 끊었다.
지나가며 보니, 광고 형태로 제작된 대형 TV에 내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온 게 보였다.
출장 잡혀서 바쁘다고 떠나는 모습이다. 어지간히 버릇없어 보일 테니, 사람들이 욕을 할 만도 했다.
마침 그 앞을 지나가는 커플 중 여자가 인상을 팍 쓰더니 말한다.
“기자 새끼들 엿 먹은 표정 보소.”
음? 남자가 그 말에 동조하고 둘은 웃으며 지나쳤다.
“막 전투 끝내고 돌아온 네임드 슬레이어 회사 앞에서 무슨 진을 치냐고, 좀 쉬게 둬야지.”
지나치는 다른 중년 남자가 대형 화면 속 기자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말하자, 주변 사람이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암, 쉬게 좀 둬야지.”
“하여간 기레기.”
음, 기자 회견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닌데 이 사람들 반응 왜 이러나.
이걸 보니 새삼 내가 한 일의 여파를 느낀다. 다들 내 편이었다.
내 팬으로 보이는 꼬마도 있었다.
“멋있어.”
그렇지. 내가 좀 멋있지. 그건 인정.
지나치며 본 사람을 뒤로하고 걸었다.
부산 한복판에 내가 왔다고 소문낼 일도 없으니, 기척을 죽였기에 날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면서 계속 혜민이 전화로 통화를 시도했는데 통 받질 않았다.
열두 번째 시도에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통화음 대신 옅은 숨소리가 들렸다.
귀를 기울였다.
때론 숨소리만으로 꽤 많은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규칙적이지만 고른 숨.
변신족은 아니다. 특수종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혜민이도 아니었다.
“전화를 받았으면 말을 해야지?”
빵!
크락션 소리가 울린다.
“마, 미칫나? 안 비키나?”
운전자의 정중한 요청도 들렸다. 난 도로 옆을 지나 작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누구?”
상대가 물었다. 둔탁한 남자 목소리였는데 웅웅 하는 울림이 있었다.
이 새끼 뭐지? 목소리 변조라도 했나? 그럼 납치? 혜민이는 이미 잡힌 건가?
“혜민이 아는 오빤데, 혜민이 좀 바꿔 줄래?”
“미친놈이군.”
상대가 전화를 끊었다.
정중하게 물었는데 답이 왜 이 모양이지.
다시 걸었다.
안 받을 줄 알았는데 전화를 받는다. 골목길 벽에 등을 기대며 구석에 있는 호프집 간판으로 눈을 돌렸다.
엘레강스 호프.
한국말로 또박또박 잘도 쓰여 있다.
이름 참 고상하네.
“나 유광익이라고 하는데 나 알지?”
대한민국, 아니 이제 전 세계에서 내 이름을 다 안다고 한다. 이 작자도 모를 리 없었다.
“세최특?”
상대가 되물었다.
“맞아.”
아주 잠깐, 말이 없더니 상대는 생각보다 신선한 반응을 보였다.
“선 넘지 말고 돌아가라.”
오랜만에 이마에 핏대가 서게 하는 친굴세.
“무슨 선?”
“경고했다.”
뚝.
전화를 또 끊네.
곧바로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추적돼?”
“안 돼. 통화 시간도 너무 짧았고, 상대도 무슨 대비를 했는지 재밍도 있고.”
요한 형이 고개를 젓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전화로 추적해서 위치를 알 수 있으면 편했을 텐데.
그럼 뭐 플랜 B로 가야지.
내가 바보도 아니고, 부산 방송국에 쳐들어가서 혜민이를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머리 좀 썼다.
일단 전화를 받으면 추적해 보고 실패한다면.
두 번째는 중고 형의 인맥 활용이다.
프리랜서 세계라고 부르는 일명 뒷골목에서 마당발인 양반이다.
부산에도 아는 사람은 있었다.
정확히는 정보를 다루는 곳을 알았다.
그게 여기다. 고상한 티가 팍팍 나는 낡은 호프집.
덜컥.
호프집 문을 열려고 하니 잠겨 있었다.
문을 따는 건 기술이 필요하다. 난 기술을 사용했다.
우득. 꾸드득.
문고리가 뒤틀린다. 힘으로 비트니 오래된 철문 손잡이가 찌그러졌다.
그걸 빼내고 손가락을 넣어 잠금장치 부분을 긁어내 문을 열었다.
끼이익.
오래된 경첩이 비명을 질렀다.
안으로 한 걸음.
대낮인데도 사람이 셋 있었다.
셋 다 테이블에서 고스톱을 치는 중이었는지, 돈과 화투가 보였다.
“뭐고?”
그중 헤어스타일이 특이한 친구가 입을 열었다.
머리카락 대신 이상한 돌기 같은 게 돋아난, 짧은 선인장 같은 걸 머리카락 대신 키우는 친구였다.
“뭐 좀 물어보고 싶은데, 시간 되나요?”
난 정중하게 물었고.
“이거 미친놈 아이가?”
상대는 무례했다.
정중함을 무례함으로 대하면 싸우자는 거다.
난 그리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