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282화 (282/488)

282. 이전에도 이후에도.

유일.

국내에서 특수종으로 이뤄진 최초의 무력 집단.

그러하기에 이름을 ‘유일’이라 지었다.

유일여단, 또는 유일부대.

그곳의 책임자이자 사령관은 보고서의 첫 줄을 읽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특수종입니다.>

이 한마디는 자신이 직접 쓰라고 시켰다.

실제로 그러했으니까.

어떤 특수종이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사령관은 자신의 봤던 걸 되새겼다. 수없이 되새겨도 지겹지 않았다.

진열을 정비한 휠 나이트와 리빙 아머의 뚝배기를 깨며 내달리고.

네임드 청기사와 마주해 홀로 버텼으며.

결국 놈의 다리를 반쯤 부쉈다.

사령관은 안목이 남달랐다. 그러하기에 알았다.

이미 그 상태에서 세최특, 유광익은 한계였다. 할 일도 다 했고.

작전의 마지막은 불멸특수대의 팬텀이 맡았다.

준비한 폭탄이 불발됐다? 그럼 플랜 B로 넘어가면 될 일이었다.

다행히도 폭탄은 발동했다. 제대로 작동도 했다.

팬텀은 죽은 목숨이었다. 그 누구도 그 타이밍에서 팬텀을 살릴 수 없었다.

그런데, 그랬는데.

한계에 다다른 게 분명한 놈이 뛰쳐나갔다. 추호의 의심도, 주저도 없이.

그 누가 그럴 수 있을까.

돌진하며 배에 칼이 꽂혔음에도 몸을 날려 사람을 살렸다.

“염력, 그물, 다 때려 부어!”

사령관은 곧바로 외쳤다.

청기사가 움직이려 했으니까.

그 위로 염동력자와 청기사 제압용으로 가져온 그물, 빙결 능력자의 고드름 따위가 떨어졌다.

움직임을 제한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청기사는 발악했다.

놈의 전신에서 끔찍한 소리가 울리기도 했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이잉!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그런 울음이다.

사령관은 그 외침이 단말마로 들렸다.

폭탄이 터지고 58분, 청기사는 반항했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놈을 붙잡기 위해 각 특수종 무리가 진땀을 뺐다.

다 죽어 가는 놈의 발작에 특수종 두엇이 엮여 죽을 뻔하기도 했다.

그런 놈을 홀로 막아? 그것도 날개를 제압하기도 전부터?

사령관은 테이블 위로 발을 올렸다. 담배를 태우는 중이었다.

연기가 입가를 타고 위로 솟았다.

그리 담배를 꺼내 문 채로, 사령관은 생각에 잠겼다.

1세대의 영웅.

미국과 독일 등에 있는 괴물을 제외하면 그가 바로 이 판에서 제일 오래 버틴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국내에서는 단연코 그가 가장 오래된 현업 특수종이요, 가장 안목 있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령관은 이제껏 봐온 특출난 특수종을 떠올렸다.

육체 능력이 뛰어났던 놈.

전투 감각이 탁월한 놈.

재능이 우월한 놈.

혈통을 타고난 놈.

전부 봤다. 그럼 이번에 본 놈은 어디 쪽에 속할까?

피지컬? 감각? 재능? 혈통?

“허.”

사령관은 혀를 찼다. 전혀 모르겠다. 그조차도 살면서 처음 보는 타입의 특수종이다.

다만, 확실한 건 있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특수종이라는 것과.

‘그 친구 입대 생각은 없을까?’

욕심이 난다는 것.

* * *

“청기사 퇴치 제일 공로는 누구의 것인가요?”

어스 블랙홀은 습격이다. 그 습격자를 통칭 인베이더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인베이더 중에 홀로 탁월한 능력을 갖춘 놈들을 네임드라고 부른다.

인류가 이름을 붙인 강적.

악몽이라 불리는 인류의 적.

그 청기사가 죽었다.

세상이 떠들썩할 만했다.

전 세계 모든 방송사가 이 얘기를 다뤘다.

네임드 슬레이어.

청기사 슬레이어.

사람들이 예상하기로는 올드 포스와 단군 그룹, 협회가 합심했다는 거였고, 그 예상은 맞았다.

다만, 그래도 공로가 가장 큰 단체를 묻자, 정부 소속 대변인은 고민했다.

‘진짜 이렇게 말해도 되나?’

사령관이 허락했고 대통령도 수긍했으니 괜찮을 것이다.

그리 생각한 대변인이 입을 열었다.

“NS 소속 세최특 유광익입니다.”

너무도 인상적인 특수종이기에 이전에도 유명했고, 세최특이란 이름 자체를 이미 알 사람은 알았지만.

NS란 회사와 유광익이란 특수종의 이름이 전 세계 모든 사람의 귀에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 * *

시발 팀장을 놀리고 퇴원한 뒤, 나는 꽤 바빴다.

일단 아버지 어머니께 꾸중을 조금 들었다.

“무모했다.”

“아들, 죽고 싶으면 엄마한테 말하지. 어차피 엄마 가슴에 대못 박을 거, 망치질은 엄마가 직접 할게.”

뒈지고 싶지 않다면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말란 소리였다.

팀장을 구하려고 행했던 모든 게 인상적이지만, 그만큼 무모해 보이기도 했나 보다.

뭐, 난 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했다.

오차가 조금 있어서 마지막에 기절하긴 했지만, 어쨌든 잘 끝났으니 괜찮은 거…….

“어쨌든 잘됐으니 괜찮은 거로 생각한다면, 그거 아니다. 운에 기대서 일하지 마라.”

아버지가 말했다. 고저 없는 목소리 톤, 차분한 눈빛과 반듯이 선 자세.

진짜 화나셨군.

“다시는 그런 상황 안 만들겠습니다.”

진지하게 말했다.

진심이기도 했다.

그럼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단순했다.

청기사보다 강해지면 될 거 아닌가.

싸움을 복기했다.

날개, 추진기, 그 칼날.

남에게 처음 제 속살, 내장의 빛깔을 보여 준 날이다.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씹고 또 씹어도 단물이 나오는 껌처럼 배울 게 많은 전투였다.

전력으로 싸웠기에 내 부족한 점도 알 수 있었다.

생각한다.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괴력, 어머니의 피, 혈통으로 이어져 내려온 특질.

그 힘은 과격하고 거칠다. 리미트를 풀고 써 버리면 오히려 내 몸을 부순다.

어머니가 하드웨어 단련에 그렇게 충실하게 임하라고 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기술은 배우면 되지만, 몸뚱이가 받쳐 주지 못하면 뭘 해도 못 한다.

내 우선 과제 하나.

몸뚱이 훈련.

다시 기초로 돌아가는 거다.

변신족의 기초다.

무지막지하게 달려서 체력을 늘리고 몸을 혹사해 단련의 정도를 더한다. 더 단단한 몸, 더 튼튼한 몸이 필요했다.

청기사가 내 싸움의 끝은 아닐 테니까.

“삼촌, 인듀어 말고 더 신박한 거 없어요? 이거 이제 식상한데.”

“네가 쓰는 인듀어도 작년에 개발 끝난 거고, 시판에는 나오지도 않은 거다.”

긍낙이 삼촌을 갈궜다.

“병원에서 호응이 삼촌이 찾아왔더라고요.”

“응?”

“부스터뿐 아니라 그쪽은 먹는 것도 훈련이라고, 그런 거에도 신경 쓴다고…….”

“그래서? 강호응이가 뭐 준다고 했는데?”

준다고는 안 했다. 그저 날 기껍게 바라보는 눈빛만 봤을 뿐.

처음 보는 사람이 날 그리 자랑스럽게 보니 어색하긴 했으나.

호의만 가득했다. 따질 일은 아니었다.

“뭐, 필요하면 뭐…….”

말을 끝맺지 못했다.

“놔둬. 이 자식이.”

긍낙이 삼촌은 변신족, 자극에 약했다.

그날 난 새로운 훈련 도구를 약속받았다.

“한 달만 기다려 봐. 인듀어 새로운 버전이 나온단다. 지금까지 쓴 게 노멀이라면 악몽 버전을 만드는 중이다.”

아마도 그건 커스터마이징 훈련 도구가 될 거다. 날 위한 맞춘 장치다.

4번 타자가 망가졌다. 아다만티움 정글도와 나이프도.

“4번 타자는 총이다.”

푸름이 말했다. 이 자식 얼굴은 자꾸 봐도 적응이 안 된다. 비만 못난이에서 눈빛만으로 여자를 홀릴 미남이 됐다.

“알아.”

“그럼 어떻게 쓰면 총이 이렇게 망가지는데?”

“세차게 휘두르다 보니.”

그리됐다.

정글도도 마찬가지고.

이빨이 나가서 이제 이건 톱처럼 보였다.

강푸름은 무기 두 개를 물끄러미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어차피 녹이자고 할 판이었어.”

“음?”

“이 산탄총도 정글도도 고모가 재미로 만든 거였는데, 그걸 쓰는 놈이 있는 게 이상한 거였지.”

“으음?”

“고모가 그래서 너 진짜 좋아하긴 하더라. 무기는 나한테 맡겨 주라. 한 달만 줘.”

그러라고 했다.

요한 형이 말하길.

“강푸름 저거 물건이래. 불멸특수대 최고의 장인 소리를 들을 놈이었다는데 왜 여기 있는지.”

강푸름이 기어 엔지니어 세계에서는 본래 나보다 더 유명했단다.

돌아서는 강푸름의 뒤통수를 보니 마음이 든든했다.

내 몸을 단련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기어를 갖추는 거였다. 청기사와의 싸움에서 만약 수준급의 기어가 받쳐 줬다면?

시발 팀장의 시발 자살 테러가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

박병준 박사가 NS에 합류했다. 마리의 의부를 자처하지만, 대차게 까인 양반이다.

“마리를 가까이서 볼 수만 있다면 내 원이 없겠다.”

라고 말하며 들어와서는 정작 마리한테는 가까이 가지도 못하는 아재다.

“가서 말이라도 걸어 봐요. 불러 줘요?”

멀리 숨어서 마리를 지켜보는 모습이 참 안쓰러워 말하니.

“안 돼. 하지 마. 그러지 말아 줘. 난 더 거절당할 자신이 없어. 그냥 키다리 아저씨로 남을래.”

내 팔을 붙잡고 애원한다. 이 양반도 뭔가 상태가 좀 안 좋다니까.

그리고 키는 마리가 더 클 것 같은데.

어머니의 딸이자, 내 동생이 된 후로 잘 먹고 잘 큰 마리는 키가 꽤 컸다.

175cm가 넘는다.

박병준 박사는 잘해야 170cm 초반 언저리고.

어디서 키다리 아저씨를 하려고 그러나.

마리가 딱히 다른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아니고.

어쨌든 박 박사의 합류는 좋은 일이었다.

몰랐는데, 이 양반도 혼혈 실험체 관리나 연구 쪽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란다.

불멸특수대에서도 본래 정보만 빼고 교도소에 넣으려다가 그 능력을 높이 사서 데리고 있었다고 했는데.

그걸 내가 빼 왔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빼 온 건 아니고, 스티븐 최가 빼 왔다.

스티븐 최는 확실히 능력자였다.

나와 접점이 있거나, 딱 NS로 이직할 사람만 골라잡아서 픽업한다.

불협화음을 만들지도 않는다. 박병준 박사는 그러니까 능력은 있으나 데리고 있기 부담스러운 계륵이었다.

어쨌거나 범죄자니까.

하지만 NS는 그런 걸 상관하지 않는다. 전직 테러리스트도 있는 마당에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스티븐 최는 이리 일하면서 직원 면접도 보고 다른 일도 처리한단다.

별명이 스티븐 헤르미온느다.

“날 빼놓고 싸워?”

회사에 돌아와서 보니 혈기 넘치는 기남이가 날 반겼다. 아침마다 덤빈다. 눈 뜨고 나서 날 보면 스위치가 켜진 것처럼 덤빈다.

첫날은 저리 말하고 덤비기에 발을 걸고 목을 한 손으로 쥐어 뒤통수를 바닥에 꽂아 줬고.

“그 우유 내 거다. 죽어라.”

냉장고에서 딸기 우유 하나 빼먹었다고 저주를 퍼붓기에 머리통에 훅을 날려 줬다.

“재수 없는 눈빛 보내지 마라.”

매일 레퍼토리 바꾸면서 덤비는 것도 능력이다.

이 모든 게 고작 회사에 복귀한 지 사흘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뭐, 이 정도로 바쁘다고 할 순 없었다.

일상일 뿐이었다. 병원에서 푹 쉬어서 더 쉴 필요도 없었고.

내 튼튼한 몸은 진즉에 회복해서 컨디션도 멀쩡했으니까.

내가 바빴던 건,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기자가 묻는다. 회사 앞이 기자 회견장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청기사와 대치해서 동급으로 싸운 게 사실인가요?”

저거 기밀일 텐데 용케 알고 있네.

기자님 발 넓네요.

“청기사 슬레이어란 별명이 붙었습니다. 인정하시나요?”

“이번 전장에서 최고 공로가 회사가 아니라 개인이 됐습니다. 어떻게 하신 건가요?”

하나하나 답하자니, 끝도 없다. 난 모든 질문에 공통된 답을 던졌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기자 무리 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흘렀다.

“어쩌다 보니요?”

여기자 하나가 되물었다.

“네, 노오오오력도 했죠.”

미친 새낀가?

여기자가 눈빛으로 말했다.

아니, 그럼 뭘 어떻게 더 말하나.

어쨌든 그 청기사 퇴치 작전은 기밀이고.

작전 사항을 자세히 말해 줄 수 없는 건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다른 기자다.

뭐라 말하려고 하는데.

부르르.

손목에 찬 홀로그램 워치가 떨렸다.

평소라면 무시할 법도 했지만, 감이 안 좋았다. 그리고 불멸자는 제 육감을 무시하지 않는 법이다.

힐끔 시선만 내려, 메시지를 읽었다.

혜민이었다.

강혜민, 주문 쓰는 머리 나쁜 동생.

과외 수업 중에 문제가 어려우면 문제집을 찢으면 찢었지, 도와달란 말은 안 했던 아이.

문제집을 찢어서 버린 혜민이를 보며 당장 과외를 때려치워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양손에 짐을 가득 들어 손이 없으면 발로 문을 여는 아이.

바로 옆에 있는 나한테 도와달란 한마디를 안 하는 그런 아이.

말하다 보니 얘도 어지간히 또라이네.

그 또라이가 보낸 메시지다.

[강혜민] 좀 와 주라.

짧지만 강렬하다.

“대표님, 청기사 슬레이어란…….”

다른 기자가 입을 연다. 난 손을 들어 그 질문을 막고 입을 열었다.

“출장이 잡혀서요. 나중에 하죠.”

“……네?”

“좀 급해서요.”

기자가 입을 여는 사이 두 번째 메시지가 왔다.

[강혜민] 부산으로 좀 와 주라. 음, 나 잘하면 죽을 것 같아.

이 미친 동생아,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면 어쩌냐.

전용기가 없으니 부산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달리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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