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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281화 (281/488)

281. 남는 장사

허벅지 근육이 터졌다. 급해서 힘 조절을 못 했다. 찢어진 정도로 알았는데.

물론 허벅지 근육이 터진 건 지금 중요하지 않다.

공간을 좁히고 시간을 쪼갠다.

나한테는 아주 짧은 틈만 있었다.

시발 팀장의 팔을 자르고 몸을 감싼다. 폭발의 여파가 빛의 형태로 다가오며 압력이 등을 때렸다.

그 와중에 청기사 새끼가 칼로 쑤시기도 했다.

계산할 시간은 없다.

내 전투 감각을 믿는다. 판단은 생각하기 전에 한다.

팀장이 터트린 폭탄이 미치는 범위, 위력, 효과, 형태.

그 모든 걸 감각으로 때려 맞춘다. 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는 대신, 움직였다.

폭발은 파편을 터트리는 종류가 아닌 화학 무기의 일종.

빛이 닿는 곳부터 살이 삭는다.

처음 느껴 보는 통증이 머리를 때렸다.

무시.

빛의 여파가 전장 전부를 뒤덮지는 않는다. 위력을 더하기 위해 범위를 축소했다.

청기사와 반경 1m 내외, 빛이 형체를 이뤄 살과 뼈를 갉아 먹는 범위다.

범위가 좁아서 다행이었다.

왼 다리 허벅지는 터진 김에 살이 삭도록 놔두고, 깽깽이 발로 땅을 찼다.

부우욱.

가죽 찢기는 소리와 함께 배에서 화끈한 통증이 뒤따라온다. 에너지 블레이드를 꽂힌 채 뛴 탓이다.

억지로 꽂힌 블레이드를 벗어나니.

배가 반으로 쪼개져 쩍하고 입을 벌린다. 그 와중에 재생력이 발동하긴 하지만, 이건 상처가 커도 너무 컸다.

덕분에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았던 속살을 보여 줘야 했다. 내장 일부가 잘려, 조각 몇 개가 바닥에 떨어졌다. 핏덩이처럼 보이는 게 땅에 떨어지자마자 빛에 닿아 썩어 문드러졌다. 거품이 일더니 살점이 사라졌다.

더럽게 아프네.

아무리 고통 감내 훈련을 하고 감각을 끊어 내도 아픈 건 아프다.

무엇보다 지금은 통각을 조절할 수도 없었고.

몸을 날리며 팀장을 품에 안았다.

“미친 양반.”

팀장의 눈이 감기다 말고 버티는 것처럼 보이기에 귓가에 속삭여 줬다.

그 말을 듣자마자 팀장이 눈을 감았다. 팀장은 몸 반이 순식간에 썩었다.

폭발의 여파다.

그리고 내 몸도 썩어간다. 살이 젖은 신문지처럼 찢어지고 떨어졌다.

눈앞이 흐릿했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숨이 턱 막히고 손가락이 달달 떨렸다.

심장 박동이 느려지는 기분까지 들었다.

이러다 정말 죽나 싶었다.

“광익아!”

어머니의 외침이 들렸다.

그 외침에 힘입어 혀를 깨물었다.

우득.

아찔하고 새로운 통증이 정신을 마저 일깨운다. 덕분에 기절하진 않았다.

눈을 깜빡거렸다. 눈물이 찔끔 나며 흐릿한 무언가를 눈에서 걷어 냈다.

그런데도 왼쪽 눈은 안 보이고 오른쪽 눈만 보였다.

그래도 볼 건 다 봤다.

드드드드.

청기사의 전신이 떨리며 몸이 분해되는 과정이 보인다.

갑옷이 조각나고 떨어진다. 내가 젖은 신문지라면, 청기사는 녹은 아이스크림 같았다.

녹고 뭉그러지고 조각나며 떨어진다.

“가까이 가면 안 돼요. 빛이 닿으면 발동하는 형태입니다.”

냉정한 미호의 목소리가 들린다.

폭발의 여파에 가까이 오면 다 죽는다는 소리다.

이 폭탄은 효과가 있었나?

그 말은, 청기사가 죽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인류의 공포라는 네임드가 죽는다.

아프지만, 기쁘다.

“내가 저 애 아비다.”

“나와. 막으면 죽인다.”

아버지, 어머니의 살벌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이 오래된 전구처럼 깜빡거린다.

불멸의 힘이 내 몸을 재생한다. 그리고 그것보다 빠르게 썩는 중이니.

과일의 한쪽이 썩으면 어떻게 할까?

과일 전부를 버려야 하나?

아니, 도려내면 된다.

“칼.”

소리칠 힘이 없어 더없이 침착하게 말하자, 누가 막든 말든 달려오던 부모님의 발이 멈춘다.

“칼 주세요.”

팔에 힘이 많이 안 들어간다. 손날로 사람 몸을 쪼개는 묘기는 지금 무리다.

“칼.”

세 번째로 말하고 나서야.

“여기.”

누군가가 칼을 던졌다.

붕붕붕.

허공에서 붕붕붕 돌며 발 옆에 푹 하고 꽂힌다. 정글도다.

아다만티움 정글도는 아니지만, 형태는 비슷하다. 크롬이나 기타 단단한 합금으로 만든 무기다.

던진 건 불멸자다.

예민한 전투 감각이 자연스레 정보를 전한다.

참 쓸데없는 정보다.

이 전투 감각도 단련할 필요가 있다.

모든 순간에 감각의 레이더를 곤두세우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칼을 뽑아 팀장의 몸 일부를 제하고 자른다.

서걱, 쩍, 까득.

피부를 쑤기고 근육을 자르고 뼈를 갈랐다.

사과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자, 팀장의 몸뚱이가 4할쯤 남았다.

밖으로 던졌다.

폭발의 빛은 여전하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일단 닿는 모든 걸 썩게 만드는 건 아닌 듯하다.

생명체 한정인가?

이게 청기사한테 먹혀서 다행이지.

안 먹혔으면 개죽음이잖아.

뭐, 과학자 나으리들께서 보시기에 이게 가능하니까 했겠지만.

도박은 도박이다.

탁. 쩍, 쭉.

내 몸을 자르는 건 팀장의 몸을 자르는 것보다 수월하다.

감각으로 내 몸을 관조하기 쉬우니까.

칼질을 한다. 눈앞에 붕 하며 구름이 떴다. 구름 사이에서 양 떼가 나오기 시작했다.

음? 양이 왜 나오냐?

“정신! 극기!”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귀를 때렸다.

또 기절할 뻔했다.

가르고 자른다. 반복한다. 그러다가 눈을 감았다. 팔에 힘이 빠졌다.

마지막 순간, 내가 궁금한 건 두 개였다.

하나는 청기사 새끼가 확실히 죽었는지와.

둘은 내 몸에 붙은 폭탄의 빛을 다 도려냈느냐다.

둘 다 확신할 수 없었다.

* * *

반신이 날아간 상태에서 평소와 같은 감각을 보이는 건 불가능하다.

중봉은 자신이 얼마 동안 정신을 잃었는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멍청이가 되진 않았다.

“팀장님을 살린 뒤, 광익이는.”

동훈이 미처 말을 끝맺지 못한다.

‘놔두면 될 걸, 왜.’

죽었을 것이다. 자신을 살리고 대신 죽은 거다.

상황은 단순하다.

자신은 자살 테러를 했고, 성공했다. 마지막을 보진 못했지만, 성공했을 것이다.

그 폭탄은 청기사 맞춤이다.

다만 완벽한 맞춤은 아니었다.

청기사에게만 영향을 준다면 완벽했을 거다.

“쓴 본인도 살기 어려울 겁니다.”

개발한 작자가 그리 말했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끝, 이게 자신의 끝이었다.

그걸 누군가가 우악스러운 손길로 뜯어냈다.

“왜.”

중봉이 중얼거렸다.

동훈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숨도 크게 쉬지 않았다. 그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릴 뿐.

시선을 돌리고 몸마저 돌려 등을 보였다.

곧 중봉의 눈에 뒤돌아선 동훈의 뒤통수만 보였다.

“왜.”

중봉이 다시 중얼거린다.

암울하다.

동훈이 서 있는 쪽, 창밖에서 햇볕이 내리쬔다. 하늘은 맑기만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이었다.

어디선가 꽃향기도 났다.

들썩.

동훈의 어깨가 떨렸다.

실험실에서 구한 뒤, 자신의 품에 있다가 다른 둥지로 떠난 친구다.

떠날 때 중봉은 물었었다.

“왜 거기냐?”

“후광을 봤어요.”

판타지 소설에 미쳐 살더니, 진짜 미쳐 버렸나 싶었다.

동훈은 웃더니 말을 이었다.

“팍팍한 세상에서 우리 애들을 범죄자로 안 키워도 될 것 같았거든요. 딱히 내가 실험체 고아 애들을 기른다고 말하지도 않았고, 뭘 약속한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될 것 같았습니다.”

동훈은 실험체 고아를 기른다. 버는 돈 대부분을 그들을 위해 쏟아부었다.

불법 연구소에서 진행되던 실험체의 말로는 어둡다.

동훈은 그들의 어둠을 감싸 안으려 했다. 자신도 그걸 도왔기에 안다.

그리고 동훈은 광익이 그 어둠을 찢어발길 빛으로 보인다고 했다.

‘왜?’

그런 놈이 왜 끼어든단 말인가.

중봉은 입을 열지 못한 채, 들썩이는 동훈의 어깨에서 시선을 뗐다.

머리가 멍했다. 그 타이밍이다.

딸깍.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스르르.

문이 열린다. 곧 문틈 사이로 누군가가 발을 집어넣고 들어섰다.

중봉은 그 들어선 작자의 얼굴을 봤다.

“오, 일어났네요? 아이스크림? 광익이가 랩을 한다. 꽝꽝꽝, 예아.”

끔뻑.

눈을 깜빡인 중봉은 멍하니 시선을 던졌다.

“음?”

중봉이 신음과도 같은 물음을 던지며 고개를 모로 꺾었다.

“흐흐큭그. 왜?”

동훈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깨 들썩이는 걸 보고 우는 줄 알았는데.

웃는다. 아니, 울긴 운다. 다만, 웃음을 참느라 눈꼬리에 눈물이 맺혔다.

‘감각이 정상이 아니었다.’

평소와 같지 않았다. 중봉의 몸은 회복 중이었다.

지금 일어난 것도 대단한 정신력 덕분이었다. 그래서 동훈의 감정 상태를 알아보지 못했다.

“흐그르극.”

동훈이 웃는다.

“봐요. 내가 먹힐 거라고 했죠? 막 깨어나면 몸도 정상이 아니니까, 어설픈 연기력으로도 된다니까.”

천국의 문에 노크해 들어간 줄 알았던 놈이 멀쩡히 말하며 아이스크림콘을 입으로 가져가 핥는다. 콧노래도 흥얼거린다.

혀를 잘라 버리고 싶었다. 코를 틀어막고 싶었다.

“푸하하하하.”

웃음을 참다가 포기하고 대차게 웃는 동훈을 죽여 버리고 싶었다.

“흠, 끄흠, 푸, 후.”

광익의 뒤다. 김정아의 상기된 얼굴이 보였다.

평소에 웃음기가 하도 없고 비약을 먹고 싸워 인조인간이란 별명이 붙은 정아다.

그런 애가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웃음을 참다못해, 실실거리며 웃음이 입가로 샌다.

“풉, 죄송, 큼. 합니다.”

김정아가 말했다.

중봉의 이마에 땀이 흘렀다. 그는 상황을 파악했다.

광익은 죽지 않았다.

사지 멀쩡하게 살아 있다.

환장할 정도로 멀쩡했다.

전보다 더 튼튼해 보일 정도다. 실제로 불멸특수대 시절보다 몸이 더 커진 것 같기도 하다.

말똥말똥 눈도 멀쩡, 아이스크림을 처먹고 있는 걸 보니 입도 멀쩡, 콧대도 잘 서서 제 역할을 했다.

“몰카였습니다.”

피식 웃으며 광익이 말한다. 아주 신이 나 보였다.

“속았죠?”

광익이 재차 말한다. 상황 파악은 끝났다.

중봉은 손을 더듬었다. 여기 어디 권총 한 자루쯤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없다면 어디 칼이나, 수류탄 같은 거라도.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던질 게 없다. 누가 의도하기라도 한 듯 싹 치워 놨다.

“죽인다.”

그래서 입으로 말했다.

“네. 건투를 빕니다.”

광익이 웃음기를 싹 지운 채,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그게 더 화딱지가 났다.

“이 개자식들.”

까득.

절로 어금니가 갈린다. 세상에 할 일이 없어서 이런 거로 사람을 놀려?

세상 미친 놈들 아닌가.

“그러니까 자살 테러는 왜 합니까?”

동훈이 말하며 툭 어깨를 쳤다.

중봉은 이대로 이 자식들 페이스에 끌려다닐 수는 없었다.

그는 화를 삭이고 말했다.

“청기사를 죽일 수 있다면 남는 장사니까.”

꽤, 아니 상당히 잘 싸워서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래도 불멸자 하나.

그런 불멸자 하나와 네임드의 맞교환이라면 남는 장사가 맞긴 했다.

“남는 장사라.”

광익이 중얼거린다.

그러며 드르륵 의자를 끌고 와선, 등받이를 앞으로 두고 거꾸로 앉아 중봉 앞에 앉았다.

햇볕이 광익의 얼굴 반을 비춘다. 나머지 반은 그림자가 져, 얼굴에 음영이 생겼다.

“청기사를 죽이려는 게 맞았습니까?”

“뭐?”

중봉이 되물었다.

“청기사 새끼가 어떻게 됐는지는 왜 안 물어보시나 해서요.”

중봉은 머릿속에 벼락이 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는 천재지변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인류의 악몽이라고 부르는.

그 개자식에게 한 방 먹이는 걸 목표로 살아왔다.

그게 맞나?

청기사를 죽이는 게 목표였나? 아니면.

청기사에게 죽는 게 목표였나?

네임드, 죽일 수 없는 상대.

죽이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마지막에 준비한 한 수는 과연 청기사를 확실히 죽일 수 있었나.

병실로 들어온 광익의 얼굴을 보며 내심 안도했다.

자신 때문에 죽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왜 청기사가 어떻게 됐는지는 묻지 않았나.

신입으로 들어와 미친놈 소리를 듣던 어린 혼혈의 한마디에 중봉은 깨달았다.

‘죽일 수 없으니까.’

다들 그리 말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아내와 아이의 원수이자, 동료 수십을 죽인 원수.

살기 위해 복수를 연료로 삼았기에 그 대상을 포기할 수 없다.

아내와 아이, 동료를 위한 위령.

그게 청기사의 죽음이라 믿었다.

그리 자신을 속였다.

중봉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깨달은 사실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죽었습니다.”

광익이 말했다. 뜬금없는 한마디지만, 그게 뭘 말하는지는 알았다.

“기쁘세요?”

광익이 재차 묻는다. 그는 물으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생각 정리하고 연락 주세요.”

말하며 몸을 돌린다. 광익을 따라 동훈과 정아도 발을 뗐다.

그들의 등을 보며 중봉은 힘겹게, 정말 힘겹게 입술을 뗐다.

“무슨 생각?”

고개를 반쯤 돌린 광익이 놀란 눈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사람이 양심이 없네요. 목숨을 구해 줬으면 응당 오가는 게 있어야지. 제가 살려 줬으니까, 뭐 평생 날 위해 목숨 바쳐 일하겠다든지, 이제부터 나이를 떠나 형님으로 모신다든지, 응?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안 그렇습니까?”

마지막은 동훈에게 묻는 말이다. 여전히 눈 밑이 검은 동훈은 고개를 저으며 고개를 숙였다.

“하겠냐?”

동훈이 속삭였다. 물론 다 들렸다.

“안 하면 말고요.”

광익은 웃으며 답하고 나섰다.

홀로 남은 중봉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다만, 한 가지 사실은 남았으니.

그의 목적이 불순했든 아니든.

청기사는 죽었다. 천천히 마음을 다잡은 중봉은 속으로 말했다.

‘오래 걸렸지?’

중봉은 일단 아내와 아이를 위한 말부터 시작했다.

그는 눈을 감으며 정리를 시작했다.

제 목적, 생각, 과거, 미래.

모든 걸 다시 정립하고 생각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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