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279화 (279/488)

279. 복수를 연료로 삼아 (2)

강슬혜는 아들을 걱정할 틈이 없었다.

어쨌든 간에 저 인베이더에게 한 방 먹여 상황을 바꾸는 게,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들의 몸이 잔상을 남긴다. 청기사의 몸도 같다.

추진기의 불꽃이 허공에 선을 그린다. 청기사가 허공 몸을 띄우더니 에너지 블레이드를 겹치듯 밑으로 내리꽂았다.

아들이 피하고 때린다.

강슬혜는 조용히 숨을 골랐다.

숨을 참고 주먹을 그러쥔다.

근육 한 올 한 올 전신에 자리 잡은, 흔히 V 에너지라 불리는 기력을 모았다.

이건 자신의 오리지널 기술이었다.

아들이 보던 만화책을 보고 감명 깊어 만든 기술.

원펀치라고 이름 지으려 하자, 친구가 끝내 말렸다.

차라리 이름을 짓지 말라고 하던가.

이름이 뭐가 중요한가.

그저 진심, 전력을 담은 주먹이라는 게 중요하지.

청기사는 더 빨라졌다. 에너지 블레이드 두 자루가 난잡한 선을 그리고 아들은 그걸 전부 피했다.

그 틈에 청기사의 발끝이 아들의 옆구리를 찍었다.

“아파. 새끼야.”

아들은 버텼다. 막고 왼팔로 청기사의 무릎쯤을 팔로 감싸려 하자, 추진기가 발동한다.

맞은 아들의 옆구리에서 피가 터졌다.

청기사는 물러난 것보다 빠르게 돌진했다. 추진기의 힘이다. 그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양옆에서 교수형에 처하듯 블레이드가 교차한다. 아들은 몸을 밑으로 숙이더니 뒤로 뛰었다.

청기사는 그 짧은 틈에 블레이드를 쭉 뻗었다.

추진기가 문제다.

저걸 잡지 못하면 맞출 자신이 없다.

이리 집중하면 다리에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는다.

그리 생각하는 와중이다.

‘역시 우리 광익이.’

절로 그런 생각이 들 일이 생긴다. 아들이 주먹질로 칼날을 깨고, 속임수를 섞어 로우킥을 뻗는다.

이성을 잃어서 주먹질만 하나 했더니, 그게 아니라 속임수를 썼다.

엄마도 깜빡 속았다.

“호응아.”

‘호’에서 시작된 말이 ‘아’로 끝나기도 전이다.

호응이 잔상만 남기며 뛰쳐나가더니, 아들을 안았다.

강슬혜는 인정했다.

광익이는 제 할 일을 다 했다.

청기사를 코너로 몰아넣었고, 놈에게 한 방 먹였다. 추진기로 놈을 반병신으로 만들었으니.

남은 건 어미의 몫이다.

뛴다. 거리를 좁힌다. 이상한 일이다.

청기사의 눈은 아들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반드시 죽이겠다는 살의도 엿보인다. 변신족이기에 느껴지는 그런 살기.

무시했다. 잡생각을 할 틈이 뭐가 있나.

청기사는 시선을 광익에게 둔 채, 블레이드를 그었다. 자신의 머리를 향해서.

또 무시했다.

자기가 할 일은 명확하다. 놈에게 주먹을 꽂는 것.

티리리리링.

어디선가 백색 끈 따위가 날아와 블레이드를 감았다.

백린검.

남편의 무기다.

청기사 든 블레이드 옆이다.

기척 죽이기로 다가온 유연호가 양손에 힘을 잔뜩 주며 블레이드를 끌어당겼다. 칼날이 어깨 어림을 스치며 입은 방검방탄복과 살점을 단숨에 잘라 냈다.

통증을 잊는다. 극기, 변신족의 정신력을 드높인다.

백린검이 끝이 아니다. 놈의 머리 위로 누군가 칼을 내리꽂았다.

아주 용기 있는 친구였다.

늑대 변신체다. 회색 털이 나부낀다. 머리 위에서 떨어지며 검을 꽂았는데, 청기사는 그걸 투구를 비틀어 튕겨 냈다.

제 갑주의 단단함을 믿는 놈이다.

그리 거리를 좁혀 잡는다.

주먹이 닿을 거리.

추진기가 망가진 덕에 회피 기동을 못 하는 놈의 옆구리가 보였다.

기합은 없다. 기합을 내지를 기운도 아껴 모았으므로.

강슬혜는 주먹을 뻗었다.

훙.

주먹을 내지르는 소리가 묵직하다. 청기사의 옆구리, 얇은 막이 보인다.

강슬혜의 주먹이 맞닿는 순간, 그녀가 끼고 있던 스펠 기어가 발동했다.

갤럭시 필드.

단단한 방패는 그 자체로 흉기다.

그녀는 그 필드 주문을 너클로 삼았다.

꽈-아아아아아아앙!

굉음이 터진다.

청기사가 고철덩이처럼 날아갔다.

“후.”

강슬혜는 전신이 떨리는 걸 느꼈다.

가진 에너지를 다 때려 부었다. 변신체가 풀린다.

“……여보, 화나도 우린 말로 합시다.”

뒤에서 남편이 농담을 건넸다.

강슬혜는 웃었다.

* * *

전투 감각이 뇌를 짜릿하게 달군다.

전신에 힘이 빠지든 말든 감각은 전에 없이 예민했다.

불멸자의 감각이 깨어난다.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며, 옅어지던 감각의 칼날이 더없이 날카롭게 사방을 겨눴다.

폭음과 굉음.

날아가는 청기사.

어머니와 아버지의 뒷모습.

날 안아 든 삼촌의 턱.

이 전투의 목표가 놈의 몸뚱이에 구멍을 내는 거라고 했던가?

부서진 갑옷 조각이 허공을 유영한다. 청기사의 옆구리, 어머니가 때린 곳, 놈의 옆구리 사이로 푸른 빛줄기가 줄줄 흘렀다.

난 그게 청기사의 피로 보였다.

구멍이 생겼다.

아버지가 짠 계획, 듣지 않았지만 엿봤고, 엿봤기에 따랐다.

그 목표가 이뤄진다. 구멍을 냈다.

그럼, 여기서 질문, 이제 어쩌죠?

“아까 그 에너지 바 또 없어요? 삼촌?”

청기사가 날아간 곳을 보며 내가 입을 놀리니.

“용케 기절하지 않는구나.”

날 안은 채로 삼촌이 말했다.

“하나 더 먹는다고 지금 몸이 회복되진 않을 거다. 그런 용도다.”

“어머니한테도 하나 주시지 그랬어요.”

“줬다. 딱 소화할 만큼만.”

브이 바.

나한테 준 에너지 바의 이름이다.

변신족의 소화력은 특수종 최강이다. 거기에 맞춰 한순간 전력을 끌어올리는 부스터이자, 에너지 축적용으로 만든 전투 부식인데.

난 그걸 100%, 아니 120% 소화해서 써 버렸단다.

그러면서, 기력의 끝자락까지 써서 지친 상태라고. 지금 내가 그렇다고 삼촌이 말했다.

말투는 딱딱한데, 어째 날 꽤 걱정하는 투로 들렸다.

그나저나 이거 어쩌나.

먼지 연기가 걷힌다. 그 연기 사이로 푸른 빛이 보였다. 연기 사이로 청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청기사는 고철덩이가 되지 않았다. 다시 일어났다.

구멍을 냈다고 해서 죽지는 않는다. 괜히 인류의 악몽 네임드가 아니었다.

아버지 뒤로 피닉스 팀원 몇이 서고.

어머니 뒤로는 화랑 팀 몇이 선다.

저대로 싸운다고?

아무리 옆구리에 구멍이 나고 추진기가 작살 났다고 해도 안 될 것 같은데.

그럼 이대로 물러나길 바라나.

그게 희망 사항이라면 그리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일전에 청기사가 어떻게 도망갔다고 했던가.

누구도 보진 못했다. 그저 추측하기를, 화이트홀을 통해서 들어갔을 거라고 했다.

블레이드는 하나가 남았고, 옆구리에는 구멍이 났고, 추진기 하나는 먹통.

그나마 놈에게 다행인 건 자가 수복 능력이 있다는 거다.

옆구리 구멍이 느리지만 수복되는 게 보였다.

저걸 그냥 두고 봐야 하나?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청기사와의 기묘한 대치가 이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아무도 생각지 못한 순간.

청기사의 그림자에서 누군가가 몸을 일으켰다.

그림자는 청기사의 구멍에 손을 쑤셔 넣었다. 손 수준이 아니라 팔꿈치 어림까지 넣는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기에 저게 가능했다.

완벽한 기척 죽이기다.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며,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예민해진 전투 감각이 이 상황을 멋대로 해석하고 결론을 만들어 알려 준다.

나조차도 기척을 쉬이 잡아채지 못할 실력자.

내가 아는 바로 그런 사람은 둘뿐이다.

아버지와 시발 팀장.

고로 저건 이중봉 팀장이다. 그 작자가 청기사의 뒤에서 놈의 구멍에 손을 집어넣은 거다.

저건 뭐야?

팀장은 어깨까지 뭘 칭칭 감고 있었다.

두꺼운 전선 따위로 보였다.

청기사의 시선이 떨어진다. 그 짧은 사이, 난 시발 팀장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읊조린다.

‘킬 더 블루 나이트.’

그는 웃었다. 만족, 그 얼굴에 떠오른 감정이 읽힌다.

청기사의 칼이 움직였다.

블레이드가 날아간다. 팀장의 두 다리를 자른다. 팀장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 사람처럼 여전한 미소를 보였다.

* * *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있습니까?”

중봉이 물었다.

눈은 퀭하고 피골은 상접하다. 순혈의 불멸자지만, 지금은 볼품없어 보였다. 말라도 너무 말랐다.

모든 걸 잃은 남자의 몰골이었다.

“이론만 있어.”

하얀 가운의 여자가 답했다.

“말해 주십시오.”

중봉은 물었고, 대답을 들었다.

말 그대로 이론이었다.

이게 먹힐지 안 먹힐지 모를 그런 이론.

그 이론은 수 차례 바뀌었고, 진화했다.

네임드 청기사를 죽이는 가장 합당한 이론.

이쪽 세계의 무기는 유효하지 않다.

그럼 저쪽 세계의 무기로.

몸을 감싸는 갑주 위를 때리는 건 의미가 없다.

그럼 그 갑주 안을.

필요한 건 두 손이 들어갈 구멍.

그리고 그 구멍 안에 들어갈 손에 쥔 건, 세계 정부 연합이 발명한 청기사를 노린 폭발물이다.

단순히 폭탄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아더 사이드의 발열석과 폭발석의 원리에 화약을 섞고, 그 안에 다시 부식을 촉진하는 화학탄을 담았다.

이 화학 무기도 단순한 구조가 아니다.

아더 사이드 지역 중에는 한 발만 잘못 디뎌도 목숨이 간당간당하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채취한 식물의 씨앗을 정제한 무기다.

청기사의 몸은 쇳덩이.

그 몸을 없애 버릴 유일한 이론.

그 이론의 결과가 이거였다.

중봉은 폭발에 휘말렸다. 당연했다.

최소한도로 폭발 범위를 줄였지만, 이걸 실행한 사람은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게 불멸자라 할지라도.

전신이 조각나면 죽는다.

그래도 좋았다. 중봉은 죽음을 각오했다.

이중봉은 이 한순간을 위해 전장에서 숨을 죽이며 버텼기에, 더없는 기쁨을 느꼈다.

휴즈 게이트가 터졌을 때.

기쁨과 함께 중봉은 과거의 기억에 침잠했다.

‘보고 싶다.’

아내와 아이가 보고 싶다.

네임드 청기사가 나왔고, 준비가 미흡한 인류는 당했고.

그 청기사의 출현으로 민간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그중 하나였다.

중봉은 아내와 아이를 잃었다.

두 돌이 지난 아이였고.

평생 함께하자고 약속한 아내였다.

복수란 무엇인가. 그게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까.

중봉은 그걸 제 삶의 연료로 삼기로 했다.

청기사가 나타나는 날, 그 연료를 전부 불태우기로 했고.

그는 그리했다.

* * *

완전 또라이다.

난 시발 팀장의 의도 따위는 모른다.

하지만 이 작전의 시발점과 끝은 알 수 있었다.

폭발물, 무려 저 청기사를 죽일 수 있는 물건.

다만 터트릴 곳은 몸 밖이 아니라 안이어야 했다.

그래야 유효하다.

구멍을 내는 것조차 힘든 상대.

그럼 누가 저 안에 폭탄을 집어넣을 수 있을까.

던져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작동은 어떻게 시키고?

청기사는 주변 모든 통신 장치를 무력화시키므로 무선 장치는 의미가 없다.

누군가 직접 들고 놈의 몸 안에 폭탄을 쑤셔 넣고 발동해야 했다.

그것도 기척을 죽여 청기사가 눈치채지 못할 틈을 노려서.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중봉 팀장이 그렇게 했다.

저 미친 양반이 그렇게 했다.

폭발이 일어난다. 청기사의 옆구리에서 빛이 터진다.

난 계산했다.

이대로 두면 순혈이든, 혼혈이든 불멸자든 변신족이든, 죽는다.

저 폭발에 휘말리면 반드시 죽는다.

그리 두고 보기 싫었다.

마음이 움직이니 몸이 따른다.

삼촌의 손을 쳐 내듯 뿌리친다.

“……!”

예상치 못했기에 삼촌은 날 붙들지 못했다.

땅에 발을 딛는 순간, 나도 달렸다. 변신체는 아직 안 풀렸다. 고로 난 빠르다.

뛴다.

허벅지 근육이 찢어진다. 그래도 움직인다. 단숨에 거리를 좁힌다. 청기사의 칼날이 날아왔다.

팀장의 허벅지를 가른 칼날이다. 에너지 블레이드가 지직하고 피를 태우는 소리가 아련히 귓가를 스쳤다.

이걸 피하면 기회가 없기에 피하지 않는다.

서걱.

칼날이 어깨 위를 잘랐다. 왼팔은 포기한다.

“안 돼!”

어머니의 외침.

“광익아!”

아버지의 외침.

두 분 다 찰나의 틈을 두고 날 부를 능력자다.

하지만 붙잡을 틈은 없었기에, 난 왼팔 하나를 헌납하고 팀장 곁에 붙을 수 있었다.

빛이 폭발하기 직전에 말이다.

“어딜 혼자 폼을 잡고.”

말하며, 뒤에서 청기사가 재차 휘두르는 블레이드를 이마로 쳐 냈다.

반쯤은 운으로 한 일이 통한다. 이마로 블레이드 날을 비껴냈다.

중봉 팀장에게 처음 배운 기술이다.

흘리기.

검날이 흘렀고 난 과감하게 판단했다.

오른손을 들어 내리쳤다.

손날이 밑으로 향한다. 과격한 속도와 힘의 합산은 내 손을 도끼처럼 만들었다.

싹! 우둑, 뜨득.

팀장의 양팔을 자르고 물러나려 했다.

쑥.

방심은 아니다. 막을 여력이 없었을 뿐, 청기사 새끼의 칼날이 내 몸을 쑤셨다.

미친 청기사 새끼가 끝까지 날 붙든다.

“징그럽다. 자식아.”

그 말을 끝으로. 팀장과 나, 청기사 사이에서 빛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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