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278화 (278/488)

278. 복수를 연료로 삼아 (1)

초능 특수종은 오라라는 특수한 에너지를 뿜어내고.

마법사는 제 주문을 발동하는 구성 원리 중 핵심이 마나라고 한다.

대기 중에 마나라는 게 떠 있다고 하는데, 처음 그런 얘기가 나왔을 때 과학 집단은 마법사를 비웃었다.

마나라는 게 무슨 미친 종교 집단의 구호 같았으니까.

하지만 마법사는 주문으로 그걸 증명했다.

그럼 변신족과 불멸자에게는 그런 게 없을까?

그럼 변신족이 가진 완력의 근원은 무엇인가.

불멸자의 재생에 관여하는 건 무엇인가.

에너지, 생체 에너지다.

기력, 활력이라고도 부른다.

체력과 정신력, 모든 것이 극점에 다다른 특수종은 그 힘을 경험한다.

미친 자들의 세계에서 V 에너지라 부르는 것.

나 또한 그걸 수차례 느꼈다.

변신했을 때, 그게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도 느꼈고.

그리고 지금 내가 먹은 건, 무지막지한 V 에너지 덩어리였다.

그게 아랫배에 뭉쳐 있었다. 곧 부러진 주먹이 재생한다. 초고속 재생에 가깝다.

에너지 덩어리가 상처를 치유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아, 짧은 깨달음이 머리를 때렸다.

에너지 바는 아직도 소화 중이었다.

그만큼 커다란 덩어리였다.

곧 소화를 끝낸 에너지 덩어리가 몸의 변화를 촉진했다.

피가 돈다.

내 몸의 피가 미친 말처럼 뛰기 시작했다. 혈관이 부풀며 피가 내달린다.

동맹과 정맥, 모세혈관, 몸 안에 있는 모든 혈관이 반응했다.

손등을 들었다.

검은 털 사이, 푸른 무늬가 전구처럼 빛났다.

혈관의 피가 가속하며 생기는 기묘한 현상이었다.

그리 내 몸을 감상하듯 보고 있자.

“저걸 완전히 소화하는 친구는 또 처음 보는군요.”

호응 삼촌이 입을 연다.

나한테 한 말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입을 열려다가 몸을 틀었다.

청기사가 한가히 말을 나누는 우리를 두고 보지 않았다.

펑.

발에 달린 추진기가 불꽃을 뿜어 놈의 몸을 푸른 선으로 만든다.

난 짧은 순간, 내가 변신한 뒤 했던 일을 곱씹었다.

싸웠다.

싸우고 또 싸웠다.

휠 나이트를 부수고 리빙 아머를 조졌다.

놈의 병력 사이를 갈랐다.

자잘한 상처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내가 무슨 강체가 깃든 악어가죽을 두른 것도 아니고.

변신하며 입고 있던 옷도 전부 터져서 없다.

싸우고 또 싸우다, 청기사에게 얻어맞았다.

한 방에 코피가 터졌다.

조금 전에도 놈의 에너지 블레이드 찌르기를 맞받아쳐서 주먹이 반쯤 쪼개졌다.

재생은 체력을 깎아 먹는다. 근육도 꽤 혹사했고.

그런데 오늘 내가 뭘 먹었더라?

삼촌이 에너지바를 주기 전까지 먹은 게 없다.

전투는 피로도가 쌓이기 마련이고.

내 몸은 좋게 말하면 혼혈의 장점을 취한 몸이고, 나쁘게 말하면 연비가 엉망인 몸이다.

시간 대비 소모하는 에너지가 너무 크다.

힘을 쓰면 쓸수록 에너지가 담긴 병이 왈칵 넘어지는 꼴이다.

그리 싸우니, 효율성이 개판인 셈이었다.

청기사의 에너지 블레이드가 어머니의 머리를 노리고 떨어진다.

삼촌이 한 걸음 나서며 방패를 든다. 느리다. 막기야 하겠지만, 어머니가 피하지 않으면 왼쪽 어깨 어림이 잘려 나갈 듯했다.

어머니가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청기사도 빠르지만, 이쪽도 변신족 정예이자 화랑의 엘리트와 갱생 마녀란 이름의 전설의 변신족이다.

칼날이 아다만티움 방패 끝을 할퀸다. 카각! 방패 끝 조각이 깨지며 떨어졌다.

그걸 보면서도 내 머리는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뇌까지 피가 팔팔하게 도니, 생각이 재차 이어졌다.

난 근육을 혹사했었고 체력이 꽤 빠졌었다.

그럼 지금은?

전신에, 아랫배 깊은 곳에서부터, 호랑이 기운이 솟아났다.

고로 100%다.

“어흥!”

기합을 내지른다.

앞으로 두 걸음, 칼을 내리친 청기사가 반대쪽 블레이드를 찔렀다. 내 미간을 향한 찌르기다.

고개를 까닥여 피하는 대신 집중하고, 양 손바닥을 좌우로 마주쳤다.

짝! 딱!

내 손바닥 사이에 청기사의 블레이드가 꼈다.

* * *

강슬혜는 짓쳐들어 오는 청기사를 보며 이건 안 좋다고 생각했다.

저 에너지 블레이드도 문제지만, 상대가 너무 빠른 것도 문제다.

내리치는 칼날을 흘려내자니, 손가락 몇 개쯤은 헌납할 것 같았다.

카각.

아다만티움 방패 끝이 잘린다.

저게 얼마나 버틸까?

‘적어도 힘을 모을 시간만 있다면.’

그럼 한 방쯤은 제대로 먹여 줄 자신이 있었다.

갱생 마녀라 불린 시절, 강슬혜의 주먹은 포탄이랑 비교할 수 있었다.

무지막지한 완력과 완벽에 가까운 바디 컨트롤에 이른 주먹은 그렇게 말할 만했다.

그 한 방으로 가진 에너지를 몽땅 쏟아붓긴 하겠지만, 그래도 한 방은 먹일 수 있었다.

다만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 시간을 벌 틈이 안 보였기에, 강슬혜는 이 전투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뒤에서 아들이 튀어나왔고.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청기사가 뻗은 칼을 손바닥을 마주해 잡았다.

“어흥.”

아들이 읊조렸다. 기합치고는 작디작은 목소리지만, 그 울림이 너무도 깊다. 에너지, 그러니까 살기를 가득 담은 목소리다.

양팔을 비튼다. 청기사가 급히 칼을 뒤로 뺀다.

아들의 눈이 빛난다. 붉은빛이 아우르더니 그대로 허공에 두 줄의 붉은 긴 선을 만들었다.

빠르다. 적어도 청기사와 동급으로.

퉁.

올려친 발끝에서 시작해서 발목, 무릎, 허리까지 몸을 회전한다. 회전한 뒤, 뻗는 건 주먹.

꽝!

청기사의 배에 아들의 주먹이 꽂혔다.

강슬혜는 태어나 처음 보는 광경에 넋을 잃어야 했다.

위잉.

에너지 블레이드를 휘두르고, 주먹을 뻗고 발을 휘젓는다.

경험이 말한다. 지금 청기사는 발악하고 있었다.

* * *

유연호는 백린검을 쥐었다.

아내와 아들을 앞으로 내민 참이다.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지 않나.

틈만 나면 저 안에 끼어들 참이었다.

그랬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 음, 팀장님 아들 맞죠?”

팀원이 친자가 맞나 물었다.

“맞아.”

유연호는 답하며 백린검을 쥐었던 손을 폈다.

아들이 미쳐 날뛰고 있었다.

청기사가 뒤로 밀린다. 추진기의 불꽃이 앞이 아닌 뒤를 향해 물러나게 한다.

“그저 물러나게만 한다면 누가 나설 것까지도 없었을 것 같네만, 처음부터 쓰지 그랬나?”

뒤다. 유일부대장이 다가와 묻는다.

청기사 관련은 유연호의 책임이었다.

저런 칼을 숨겨 두고 어째 지금에서야 꺼내냐 이거다.

“저도 이제 알았습니다.”

“뭘?”

“아들이 저 정도인 거.”

유연호는 반사적으로 불멸자의 감각으로 아들을 바라봤다.

그러면서도 든 생각 하나.

‘좀 과하다.’

아들의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묻어난다. 그런데도 청기사를 압도하니, 놀라울 정도이긴 했다.

덕분에 상황이 묘하게 변하기 시작했고.

다들 환호조차 내뱉지 못한다. 침을 꼴깍 삼키며 한 명의 특수종이 인류의 악몽을 압도하는 걸 바라볼 뿐.

* * *

“까먹은 거 아니면 한 방 먹이시죠.”

강호응은 방패를 옆으로 던져 두고 말했다.

에너지 블레이드를 막는 건 좋지만, 너무 무겁다.

자신의 최대 장점을 묶어 놓고 싸우는 격이었다.

방패를 버린 채, 변신한다.

우두둑.

가슴 근육이 자라나며 허벅지 근육이 몇 배로 두꺼워진다. 두 다리가 길어지고 뿔이 자란다.

호응의 변신체는 가젤이었다.

“응?”

“누님, 광익이 오래 못 갑니다.”

호응은 자기도 모르게 친근하게 조카의 이름을 불렀다.

“뭐?”

누님이 고개를 돌린다.

“제가 준 건 부스터 효과입니다. 저걸 저렇게 소화하는 건 대단하긴 하지만, 시간제한이 있다는 겁니다.”

“얼마나?”

“길어야 3분.”

이 상황을 명확히 파악하는 자의 말이었다.

강슬혜도 곧 그걸 깨달았다.

손, 발, 팔꿈치, 무릎, 전신의 모든 걸 무기로 쓸 수 있게 훈련한 아들이다.

허나 지금은 주먹 두 개로 밀어붙일 뿐이다.

“누님, 예전 가락 다 잊으셨으면 제가 합니다.”

말하며 호응이 발로 땅을 몇 번 찼다.

가젤의 각력.

그의 발차기는 국내 변신족 중에서 첫손에 꼽힌다.

전력으로 날린 발차기가 강체의 변신족을 으깬 적도 있으며.

아다만티움에 족적을 남긴 적도 있었다.

그에 맞는 커스터마이징 부츠도 신고 있다. 끝에 징이 박힌 부츠다.

화랑에서 자랑하는 연구팀이 최근 개발한 신소재로 만든 징이다.

청기사를 무너뜨리기 위해 준비한 사람이 하나만은 아니었다.

강호응도 준비했다. 화랑도 대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잊었어.”

중요한 순간의 한 방을 제 누이에게 맡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호응은 제 누이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을 안다. 그 시절의 갱생 마녀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벽이었다.

우득.

누이가 주먹을 쥔다.

그럼 호응이 할 일은 분명했다.

‘부스터가 끝난 조카를.’

제 생각을 곱씹은 호응은 자기가 광익을 조카라 부른 걸 깨달았다.

다 긍낙이 놈 때문이다.

어찌나 광익이 자랑을 하던지.

그런 조카를 여기서 죽게 놔둘 수는 없다.

저 부스터가 끝났을 때, 그때가 틈이었다.

* * *

“야!”

절로 외침이 나온다. 숨이 가쁘지 않다.

100%라 생각했는데 120%, 아니 그 이상이다.

호랑이 기운이 솟아난다. 마구 솟아난다. 팔에서 다리에서 배에서 머리에서.

청기사가 에너지 블레이드를 휘두른다. 그걸 보며 손바닥으로 쳐 냈다.

딱.

손바닥이 베인다. 베인 것보다 빠르게 낫는다.

“아파, 새캬.”

말할 여유도 있다.

말하며 때릴 여유도 있었다. 앞으로 두 걸음, 거리를 좁히며 원투.

청기사가 옆으로 빠진다. 그걸 예상한 원투 이후 왼손 훅 콤비네이션.

웅!

추진기의 불꽃이 확 일어나더니 시야를 가렸다. 앞쪽에 불꽃을 뿌린 놈이 뒤로 물러난 거다.

무시했다. 눈을 감고 불꽃을 뚫었다.

털이 그슬린다. 무시했다.

주먹을 뻗는다. 놈의 어깨 어림이 걸렸다.

꽝!

한 방에 어깻죽지에 움푹 내 주먹의 흔적이 남았다.

다시 돌진.

청기사가 에너지 블레이드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어찌나 빠른지, 놈이 휘두른 블레이드의 잔상이 커다란 구처럼 보였다.

그걸 본 난 왼발을 땅에 박았다. 왼발, 발목, 무릎, 허리 회전을 이끌어 내며 주먹에 싣는다. 뻗는 주먹에 힘을 담는다. 변신족, 에너지가 끓어 넘치는 걸 전부 완력으로 삼아 때렸다.

꽝!

폭음이 터졌다.

뒤로 몸이 밀렸다. 폭발의 후폭풍이다. 주먹으로 만들어 낸 신비였다.

“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침은 안 흘렸다.

그저 기뻤을 뿐이다.

저놈의 이름은 청기사.

네임드.

인류의 악몽.

그리고 인베이더.

내가 때려잡아 죽일 놈이니.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휠 나이트나 리빙 아머과는 비교도 안 될 놈이다.

쩌저저정.

청기사의 블레이드 하나에 자잘한 금이 생겼다.

왼손에 든 칼이었다. 자잘한 금 사이로 빛이 흘러나오더니, 파사삭 하고 날이 깨졌다.

놈의 칼이 하나만 남았다.

청기사가 다시 달려든다.

그래, 와라.

오늘, 네 머리끄덩이 잡아서 한번 메다꽂아 보자.

물론 청기사에게 머리카락은 없다. 고로 머리카락을 대신해 투구를 잡아 뜯으려 하니, 놈이 사납게 칼을 휘두른다.

피했다. 피하고 주먹을 뻗었다.

꽝.

왼 주먹을 들어 막는다.

깨진 블레이드 대신 꽉 쥔 주먹의 손등을 방패로 삼는다. 때리고 또 때렸다.

그러자, 손등에도 금이 간다.

그대로 재차 때리니, 놈이 뒤로 물러난다. 도망간다. 추진기를 발동한다.

후.

속으로 호흡을 뱉으며 어깨를 움직였다. 이건 속임수.

이 한 방을 위해 만든 속임수다.

수없이 주먹으로만 때렸다. 아무리 머저리 같은 놈이라도 이 정도로 처맞으면 내 주먹을 경계하기 마련이었다.

고로, 아주 잠깐 내 발이 휘어지며 나가는 걸 놓치는 거다.

추진기를 발동하기 직전, 뻗으려던 왼팔을 들어 얼굴 위 가드로 삼고, 오른발 끝이 바깥을 향하게 땅을 지르밟는다. 곧 내 왼발이 휘어지며 놈의 정강이를 찼다.

꽝!

놈의 오른발 밑, 추진기가 반쯤 부서졌다.

꽝!

그와 동시에 놈의 블레이드도 내 왼손 위를 때렸다.

맞았다. 팔에 반쯤 칼날이 박혔다. 난 오른쪽으로 쓰러지듯 비켰고, 놈은 반만 남은 추진기 덕에 후앙 하고 몸이 뜨더니 옆으로 콰당하고 넘어졌다.

청기사가 넘어졌다.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런 장면을.

희열이 차오른다. 기쁨이 파도가 되어 가슴을 후린다. 심장이 요동친다.

“킬 더 블루 나이트!”

기쁨에 외치니.

“와아아아아아아!”

환호가 터졌다. 그리 놈과 다시 대치하는 순간.

어라?

갑자기 사지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라톤을 막 끝낸 사람처럼 호흡도 가빠진다.

어라라라?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날 감싸 안았다.

“이제 맡겨라. 됐다.”

감싸 안은 사람이 재차 말한다.

“잘했다. 조카.”

인사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해 어색한 삼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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