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 아버지는 다 계획이 있으셨다.
청기사가 허공에 떠 있었다. 주변에 늘어난 위협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전신에 두른 금속의 갑주는 무엇 하나 통과시키지 않는 천혜의 요새이자, 성벽이다.
네임드는 인베이더의 진화판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모체는 인베이더에게 있다.
청기사는 넘버링 65 휠 나이트와 넘버링 49의 리빙 아머가 섞인 진화판이었다.
그들의 약점을 보완한 완성형 인베이더, 그게 네임드였다.
“제이, 저격.”
아버지의 입이 열린다.
“맞출 수는 있지만, 뚫지는 못할 겁니다.”
피닉스 팀원 중 하나가 답했다. 헬멧 때문에 얼굴이 보이진 않지만, 목소리만 들어서는 꽤 젊은 쪽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시도는 해 봐야지.”
저격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게 베스트다.
아버지는 그리 명령했다.
피닉스 팀원 하나가 등 뒤로 비껴 맨 라이플을 앞으로 당겨 겨눴다.
위이이이잉!
허공에서는 청기사의 날개가 더 고속으로 떨리기 시작했고.
주변에 있던 사이오닉 아머를 입은 초능 특수종도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포인트 날개.”
아버지가 말한다.
그것과 동시에 청기사의 창이 흔들렸다. 내 눈에는 궤적이 정확히 보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도 저게 뚜렷하게 보일까? 보인다고 해도 피할 수는 있을까?
훙.
휘두른 창끝이 사이오닉 아머의 가슴팍을 노린다. 궤적의 끝에서 창끝이 휘리릭 돈다. 회전력을 가미한다. 닿기만 하면 그대로 꼬치구이를 만들어 버릴 것 같았다.
협회 능력자는 피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어 보였다.
두두두두둥!
“훌륭하군.”
삼촌이 읊조렸다. 말이 많은 타입은 아닌 것 같으니, 저 말은 진짜 감탄했다는 의미였다.
허공에 염력 방패가 창날을 막았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창이 사이오닉 아머의 가슴팍 때렸지만, 관통할 정도로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퉁.
그저 움푹 파인 흔적만 남겼다.
우우웅.
놈의 날개가 떨린다. 그 순간, 제이라 불린 남자의 라이플이 불을 뿜었다.
타고난 저격수.
불멸자는 타고난 저격수다. 그중 순혈의 피를 이었다면 그 누구보다 훌륭한 재능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순혈 불멸자 저격수라도 지금 저 청기사 새끼의 날개를 맞추는 건 어려울 거다.
나만 해도 총구 방향만 보고 총알을 피할 수 있다.
청기사가 그걸 못 할까.
저 새끼가 괜히 인류의 악몽이 아니니.
웅.
날개가 떨린다. 총알이 허공을 가른다.
“안 맞는데요.”
“맞혀 봐. 좀.”
아버지와 제이의 대화다.
세계 최고 중 하나라는 불멸자 팀의 대화치고는 소탈하다.
제이는 다시 쐈다.
사이오닉 아머가 청기사 하나를 두고 빙글빙글 도는 사이다.
타당.
총격음이 조금 독특했다.
윙.
청기사는 또 탄을 피했다.
보지도 않고 잘도 피한다. 저 쇳덩이에게도 감각 기관이 있으려나.
그리고 퉁.
놈의 허벅지에서 불똥이 튀었다.
맞았다.
저게 맞네? 저거 왜 맞냐?
“봐요, 안 뚫리지 않습니까.”
“차징 샷도?”
“그건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차징 샷은 못 맞춥니다.”
방금 뭘 어떻게 한 거야.
전투 감각이 뇌를 달군다. 잠깐이지만, 조금 전 상황을 리와인드한다.
곧 나는 알 수 있었다.
커스터 마이징 기어.
제이란 남자의 손에 들린 라이플이 그렇다.
독특한 형태의 총구다.
라이플의 총신에 긴 게이지 표시가 보인다. 저 총은 필요하다면 동시에 두 발을 쏠 수 있다.
한 발은 평범하게 다른 한 발은 총구 방향을 바꿔서, 연속으로 쏜다.
기어가 있다고 그냥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저건 재능 외의 영역, 그러니까 노력으로 이뤄 낸 기술이다.
나라고 해도 한 번 보고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그런 기술.
물론 몇 번 더 보고 저 기어를 가져와 연구하고 쏴 보면 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나도 보자마자 따라 할 수는 없다.
아버지의 팀, 피닉스 팀.
괜히 피닉스, 피닉스 하는 게 아니었다.
“오.”
깨달은 난 짧은 감탄사를 뱉었다. 아버지와 제이의 대화를 들은 2초 내외의 시간이었다.
제이가 슬쩍 날 돌아봤다.
헬멧의 불투명한 페이스 가드 덕분에 눈빛은 안 보였지만, 뭘 알고 그러냐는 느낌을 받았다.
난 어깨를 으쓱했다.
청기사는 총알 한 발 맞은 것 따위는 무시했다.
놈은 창을 휘둘렀다.
좌에서 우로, 창대가 휘어질 정도로 빠르게.
우우우웅-꽝!
사이오닉 전대(戰隊) 중 하나가 뒤로 밀린다. 장갑이 깨지진 않았다.
청기사의 창이 계속 움직였다. 올곧은 직선, 강격이다.
훙, 꽝! 훙, 꽝!
파괴적인 창대와 창날에 사이오닉 전대 다섯 모두 부나방이 되는 것 같았다.
저거 저대로 놔둬도 되나.
튕겨 나가고 다시 달려든다. 의미 없는 공격의 연속 같다.
아까 삼촌이 준 게 뭔지는 몰라도, 아까부터 아랫배에서 무슨 열기가 끓어오르는 중이었다.
그냥 두고 보기 어려워 손을 쥐었다 펴니.
“기다려라.”
아버지가 말한다.
뭘 더? 여기서 뭘 더 기다려?
구경하다가 저 전대 모기 다섯이 팍 찍혀 죽는 걸 보기라도 하라는 건가요? 아버지?
전 그거 안 보고 싶은데요.
무시하려 하니.
“아들이 머리가 크니까 말을 안 듣네. 어릴 때는 아빠, 아빠하고 잘도 따랐는데.”
아버지의 말이 다시 날 붙든다.
“애가 다 그렇죠.”
제이가 답한다. 다 안다는 투다.
“너 애 있냐?”
“아직 없죠.”
“결혼은?”
“아직요.”
“애인은?”
“아직요.”
“근데 뭘 안다고 그러냐?”
제이의 입이 닫혔다.
“기다려라. 아들.”
아버지가 다시 말하고 공중에서는 변화가 일어난다.
콰직.
결국, 놈의 창이 사이오닉 아머의 가슴을 꿰뚫는다. 그 안에서 핏물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런 일은 없었다. 창에 가슴에 구멍이 난 초능 능력자 따윈 없다.
염동력 방패가 막고 착용형 아머의 갑옷이 버티는 사이, 능력자가 뒤로 빠져나왔다.
사이오닉 아머에는 뒷문이 있었다.
빠져나온 능력자의 머리가 붉다.
“염병할 새끼.”
그가 중얼거리며 뒤로 떨어졌다.
그 밑으로 누군가 달려왔다.
적어도 10m 이상의 높이다. 그 누군가가 손을 위로 뻗자, 염동력이 발동, 떨어지는 사람을 붙든다.
사이오닉 아머 하나가 창에 꿰뚫리자마자 일어난 일이다.
모든 것이 실시간, 정보가 머릿속에 흘러들어오며 하나의 결론을 만들었다.
청기사의 창이 붙들렸다. 짧은 순간이지만, 무기가 없다.
그와 동시다. 남은 넷이 전부 달려들었다.
퉁.
아머의 손목이 터지며 팔 안쪽에서 굵은 와이어가 튕겨 나왔다. 속도가 빠르다. 총알처럼 날아간다. 청기사의 반응이 느렸다. 창을 끄집어내는 중이었다. 와이어 끝에 달린 무게추가 놈의 팔에 감겼다.
“가!”
와이어를 쏘아 낸 아머가 외쳤다.
우드득.
창이 뽑힌다. 남은 세 아머 중 둘이 놈의 머리 위로 날았다.
하나는 우측으로 돌아가 어느새 꺼낸 길쭉한 칼을 찔렀다.
우우웅!
저것 봐라.
광학 병기다. 저만한 크기의 광학 병기라면 엄청나게 돈을 쏟아부었을 거다.
협회가 제대로 칼을 뽑았고.
청기사는 당했다.
붙들린 팔, 잠시 멈춘 창.
사이오닉 전대는 큰 욕심을 내지 않았다.
양쪽 날개 위, 아머 둘이 몸째로 떨어진다. 노린 건 날개다. 뒷문으로 나온 초능 능력자 둘이 공중에서 제 껍질, 사이오닉 아머를 발로 차고 양옆으로 멀어져 떨어졌다.
청기사의 눈, 투구 바이저에서 빛이 뿜어진다.
늦었다. 한 치 앞이 보인다. 전투 감각이 청기사의 앞날을 예지한다.
보였다. 이건 먹힌다.
놈의 날개 위에서 빛이 터진다. 자폭 장치라도 담겨 있었나 보다.
아머가 폭발을 일으켰다.
청기사는 그 순간 선택했다. 놈은 날개를 포기했고, 제 가슴팍을 노린 광선검을 창날로 때렸다.
꽈-앙!
대형 폭죽이라도 터진 듯, 폭발이 있었다.
허공에서 터진 폭발이 전신을 찌르르 울렸다. 진동이 대기를 후려쳤고.
허공에 폭연이 가득하다. 누가 구름이라도 뭉쳐 놓은 것 같았다.
짧은 침묵이 있었다.
“와 씨.”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침묵을 깬다.
“킬 더 블루 나이트!”
외침이 침묵을 깬다.
“죽어라, 씹 청기사!”
욕설이 섞인 외침도 날아왔다.
화끈하네.
펑.
구름처럼 펼쳐진 폭연 사이에서 반파된 아머 하나가 튕겨 나왔다.
“끅. 끅.”
오감이 그 튕겨 낸 아머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리가 뜯겼고, 팔이 뜯겼다. 몸 왼쪽이 잘려 나간 것처럼 보였다. 들고 있던 광학 병기 장치는 너덜너덜하게 깨졌다. 그 파편이 비처럼 후두둑 떨어졌다.
“씹.”
부서진 아머 사이로 보랏빛 머리칼이 보인다. 부협회장이라던 그 아줌마다.
발이 움직였다. 튕겨 나가듯 달려 나가 아머를 받았다.
왼손으로 떠받치고 흘리듯 당겼다.
그대로 땅으로 사뿐히 내려놓는다. 묘기에 가까운 움직임이지만, 쉽다.
어려운 건 지금이다.
“받아.”
아버지가 블러드 젝을 던졌다.
보지도 않고 잡아챈 뒤, 상태를 확인했다.
힘으로 아머를 적당히 뜯어내고 일단 수혈팩을 꽂고.
“지져요. 지혈제 없으니까.”
아무한테나 말했다. 주변에 있던 열화 계열 능력자가 다가왔다.
“끄으.”
보라색 머리 아줌마가 신음을 흘린다. 난 그녀의 목을 한 손으로 쥐었다.
누가 보면 목을 쥐어뜯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 정도 상처, 불멸자도 아니고 그냥 지지면 쇼크로 죽는다.
불멸자라도 쇼크를 먹을 판이다.
“기절하는 게 나을 겁니다.”
내가 한때 넥광익이라 불리며 사람 재우는 기술로 이름 날렸다.
“잠깐.”
부협회장 아줌마가 말한다.
할 말이라도?
지금 당장 지져야 한다. 블러드 젝을 꽂았다곤 해도, 지금 바로 후송 가야 하고.
“살, 았다.”
아줌마가 중얼거렸고 더 늦출 수 없어서 목을 쥐고 숨을 막았다. 기절은 금방이다.
열화 능력자가 다가와 상처를 지졌다.
치이익.
살 타는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능력자의 이마에 땀이 흘러 바닥에 뚝 하고 떨어졌다.
내장은 상하지 않았다. 그럼 죽진 않을 거다. 후송만 빨리하면.
“데려갈 수 있죠?”
“네?”
“데리고 뒤로 빠져요. 살 수 있으면 살아야죠.”
말하고 몸을 돌린다. 찌릿.
전신 솜털이 선다. 압력이 어깨를 짓누른다.
훙.
폭연 사이로 묵직한 덩어리가 밑으로 떨어졌다.
꽝!
떨어진 덩어리 주위로 땅에 크레이터가 생겼다.
널찍하고 얕은 구멍 위, 덩어리가 무릎을 꿇은 자세로 고개를 든다.
그대로 몸을 일으키는 놈이 보였다.
날개는 없다. 포기는 빨랐다. 놈은 폭발이 일어나는 시점에서 날개를 위로 분리했고, 그건 곧 고속으로 회전하는 프로펠러처럼 폭발 덩어리를 막았다.
결과를 보니, 인과 관계가 보였다.
내 전투 감각은 더없이 예민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치이이이익.
투구 사이로 푸른 연기가 뿜어져 위로 솟았다.
증기가 놈의 화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아찔하다. 놈이 쏟아 내는 위압감이 이곳을 제 혼자 다 쓸어버릴 수 있는 자신감으로 보였다.
킬 더 블루 나이트.
청기사를 죽여라.
환호가 사라진다. 신음도 없다. 사이오닉 아머의 공격은 유효했다.
더 없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저리 멀쩡하며 오히려 더 압도적인 기세를 뿜어내니, 입이 다물어지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 침묵 속, 내가 중얼거렸다.
적당히 큰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초저주파를 담아, 변신족의 특유의 그르렁거림이 섞인 그런 한마디.
“지가 무슨 터미네이터인가.”
전투 감각이 말한다. 협회의 공격은 더없이 유효했다고.
증거 하나.
웅 하고 떨리는 놈의 날개가 사라졌다.
발에 붙은 추진기는 그대로지만, 저건 고속 이동에 유용한 거지, 날아다니는 용도가 아니다.
그리고 증거 둘.
놈의 손에 창이 없다.
지이이이잉.
대신 푸른 빛을 뿜어내는 에너지 블레이드 두 자루가 남았다.
저게 본래 저 새끼 무기다.
근데 창으로 싸운 거다. 급하니까 꺼낸 거고.
그건 저 새끼도 어느 정도 코너에 몰렸다는 말과 같지 않나.
“아직이다.”
싸우자. 피가 끓는다. 삼촌이 준 에너지 바의 소화가 끝나지 않았다.
어찌나 격하게 몸을 썼는지 몸 여기저기서 아직 재생과 회복 중이라는 신호도 있다.
그래도 싸우고 싶었다. 그랬는데, 아버지가 또 날 붙들었다.
“네?”
“아직이라고 했다. 아들.”
아버지의 계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