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 킬 더 블루 나이트
유일부대장은 양손에 든 리빙 아머의 잔해를 던졌다.
리빙 아머의 칼날 하나가 어깨에 떨어지지만, 무시한다.
웅.
몸에 걸친 건 사이오닉 기어.
여섯 겹의 염력 방패를 겹친 기어가 발동, 칼날이 허공을 뚫지 못한다.
그는 그대로 앞으로 손을 뻗어, 바퀴가 묶인 인베이더의 뒤통수에 얹었다가 뗐다.
휠 나이트의 후면은 약점이고 뒤통수는 후면이니 약점이었다.
그가 손을 닿았다가 뗀 자리가 붉게 물들더니, 곧 빛이 터지며 폭음이 일었다.
꽝!
머리통이 터진 휠 나이트가 잔해 조각이 되어 쓰러진다. 그리 쓰러뜨린 놈이 이미 십수 마리가 훌쩍 넘었다.
유일부대장은 끓어오른 피를 주체하지 못하고 전장에 뛰어들어 톡톡히 전과를 올렸다.
그러면서도 주변을 살피길 게을리하지 않았다.
오래된 버릇이다. 지는 전장에 발을 끌며 남았다가는 뒈지기 십상이니까.
반대로 말하면, 이긴다는 확신이 들었기에 이 자리에 있는 것이기도 했다.
눈과 귀가 병력의 움직임을 확인하지 않아도 피부에 와 닿는 변화가 있었다.
병력의 움직임이 유동적인 걸 넘어 환상적으로 적을 분쇄하고 갈라 놨다.
눈과 귀로 전황을 확인한 사령관은 혀를 차며 생각했다.
‘이러니 탐이 안 나나.’
제 부관 혼자 한 일은 아니다.
이동훈, 이제는 불멸특수대가 아닌 다른 곳에 자리를 잡았고, 혼혈임이 밝혀진 작자가 한 일이다.
병력의 움직임이 유기적이다.
경찰 기동대가 선을 긋고 그사이를 불멸특수대가 채운다. 그들은 짓쳐 들어오는 리빙 아머의 필드를 깨기 위해 힘을 합쳤다.
염력으로 후려치고 빈틈을 칼이나 창 따위를 쑤셔 넣었다.
트라이앵글 필드는 화기로 뚫는 것보다는 부피가 큰 무기를 힘있게 내리치는 게 유리할 것이다.
그 유리함을 갖기 위해 때아닌 냉병기가 곳곳에서 튀어나오고.
전장 사이사이에 영웅이라 불리기 부족함이 없을 특수종이 활약을 펼쳐졌다.
휠 나이트는 달릴 곳을 잃고 리빙 아머는 앞뒤로 포위당했다.
이게 광익이 시작한 전술의 완성이었다.
그가 그은 선이 만든 결과다.
그리 나아간 유일부대장은 청기사와 대치하는 광익을 봤다.
“내가 뭘 본 건지.”
그는 1세대의 영웅이다.
이제까지 수없이 많은 특수종을 만났고 싸웠고 친구가 됐으며, 잃었고 키웠다.
단언컨대 국내에 그보다 경험이 농후한 특수종은 없을 터였다.
그런 그도 이런 광경은 처음이다.
‘안 밀려?’
인류의 악몽 네임드.
청기사와 마주하는 한 명의 특수종이 보인다.
검은 털에 푸른 줄무늬.
변신체이자, 불멸 혼혈.
세최특이란 별명을 가졌고 미친놈이 분명하다는 말도 들리는 특수종.
유광익, 그는 홀로 청기사와 대치했고.
“야, 그게 전부냐? 그게 네가 가진 전부냐고.”
입도 털었다.
“허.”
절로 혀를 차게 만드는 광경이다. 유일부대장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게 그의 발을 붙들었다.
그는 멈춰서 광익과 청기사를 바라봤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등해 보였다.
광익은 잘 피했고, 청기사가 돌진하는 타이밍에 때리기도 했다.
손톱을 휘두른다. 그 모든 동작이 일 합에 이뤄져 보는 사람에게 아찔함을 느끼게 한다.
한 번이면 운이 좋다고 느낄 법한 묘기가 연속으로 계속되니, 비등해 보였다.
“미친.”
바로 곁에 누군가 다가왔다.
이미 근처 인베이더는 전부 소거했다. 각개격파 전술은 성공했고, 그 전술의 성공은 이곳으로 무리를 이끌었다.
병력을 이끈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중 하나였다. 변신체였던 친구가 변신을 푼다.
전신 타이즈 형태의 달라붙는 전투복 차림이 된 변신족의 얼굴에는 흉터가 진했다.
“미친.”
그는 같은 말을 반복함으로 자신이 저 광경을 보고 매우 놀랐다는 걸 표시했다.
“언젠가 반드시 저 남자의 아이를 낳을 겁니다.”
바로 곁에 선 고릴라 형태의 변신체가 말했다.
정작 본인이 들었다면 뒷골이 서늘할 말이다. 고릴라 여성이 그의 남성을 노리고 있다는 말이니.
부앙.
그 뒤는 경찰의 특수 제작 바이크 부대였다.
“언제나 기대 이상이네요.”
경찰 기동대를 이끈 여자가 헬멧의 페이스 가드를 올리며 말했다.
이지혜다.
“일국의 부마로 부족함이 없네요.”
그 옆에 근육질의 여자가 섰다.
어찌어찌 이곳까지 온 이들이니, 하나같이 실력자들일 것이다.
그리고, 청기사를 보고 어떻게든 저걸 되돌려 보내겠다고 생각한 이들일 테고.
작전이 그랬다. 청기사 되돌려 보내기, 그게 핵심이었다.
뒤쪽으로 불멸특수대의 전력도 합류했다.
대머리 불멸자, 이장모다.
유일부대장과도 안면이 있는 사이다.
“…….”
그는 말이 없었다. 여기까지 숨을 헐떡이며 와놓고 멈춘 채, 바라만 봤다.
유일부대장은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걸 보고 말이 나오는 게 이상한 거다.
그리 멈춘 그들의 뒤로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간신히 숨을 돌린 무리다.
잘 짜진 진형을 갖추고 싸운다 해도 본래 총성이 울리면 전술의 반은 사라지는 법이다.
전장 어느 곳에서는 난전이 벌어진 곳도 있었고 그 사이에서 살아남은 이들이었다.
불멸과 변신, 초능이 섞인 무리였다.
“시발, 헛 게 다 보이네.”
꽤 나이를 먹은 변신족이다.
그는 제 눈을 비비려다가 헬멧 페이스 가드를 닦았다.
“내가 피를 너무 흘렸나?”
그 뒤는 협회 소속 특수종.
각개격파 전술이 통했다고 하더라도 꽤 험난한 전투의 연속이었다.
그는 헬멧을 잃고 머리 한쪽을 손으로 누른 채 말했다.
그쪽으로 굳은 피가 보였다. 머리가 터지자마자 지혈제를 갖다 부었으리라.
“꿈이든 뭐든, 염병. 저거 콱 죽여 버렸으면 좋겠네.”
또 누군가 중얼거리고.
눈앞의 장면을 본 누군가는 흥분해 외쳤다.
“가라, 세최특!”
그걸 들은 옆의 누군가는 또 바람을 담아 말하고.
“죽여 버려!”
다리 하나를 잃은 혼혈 변신족이 고통을 씹어 삼키며 외치기도 했다.
“가라아! 가라아아아아아! 세최트으으으윽!”
뜨거운 외침이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솟은 그런 외침.
청기사와 홀로 마주한 특수종을 본 이들의 가슴에 불꽃이 타오른다.
작전은 청기사를 쫓아내는 것.
하지만 지금 이들의 눈에 보이는 광경은 다르다.
유일부대장 본인조차도 작전을 무시하게 되고 싶을 정도로.
모인 모든 이들, 지금 광익과 청기사의 대치를 본 모든 이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하나다.
네임드를 죽일 수 있을까?
현재까지 인류 중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일.
그 소망을, 누군가가 말로 바꿔 외쳤다.
“킬 더 블루 나이트.”
불멸자였다. 그 속삭임은 작았지만, 곁에 선 이들의 귀에는 들렸다.
읊조림은 불멸자 사이에서 시작됐다.
읊조림이 말이 되고 그 말이 환호가 되기까지는 금방이었다.
“킬 더 블루 나이트!”
변신족이 외치면.
“킬 더 블루 나이트!”
초능 특수종이 그 말을 받는다.
킬 더 블루 나이트.
청기사를 죽여라.
소망이 뜻이 되어 전장을 짓누른다.
그 뜻이 구현이라도 된 듯, 허공을 가르는 선이 보였다.
“……청기사는 날아다니죠. 그 날개를 제압하기 데 필요한 건, 같은 자유 비행이 가능한 개체였습니다.”
협회 소속이 중얼중얼 말한다. 그의 손가락이 하늘로 향했다.
“협회의 사이오닉 아머입니다.”
회색 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전신 아머형 기어를 입은 초능 특수종이 다섯이다.
곧 그들은 허공에 뜬 청기사를 두고 빙글빙글 돌며 제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그게 끝도 아니다.
광익의 좌측에도 소리 없이 한 무리가 나타났다. 갑자기 바닥에서 쑥 솟은 듯이 모습을 드러낸다. 보고 있으면서도 언제 왔는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은밀한 움직임이었다.
피닉스 팀장이었다.
광익의 우측에도 사람이 모였다.
그쪽에는 변신체 둘과 변신족 무리다.
광익의 뒤로는 조금 전까지 곁에 있던 이장모와 불멸특수대 엘리트가 섰다.
유일부대장은 그걸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작전 변경.’
바뀐 작전명은 킬 더 블루 나이트라고 부르면 좋으리라.
* * *
아니, 저 미친 양반들이?
“킬 더 블루 나이트!”
“청기사를 죽여라!”
“죽여 버려!”
단체로 약을 쳐 드셨나.
구경만 할 게 아니지 않지 않나?
당장 튀어와서 한 손 거들어야지, 이 양반들아.
청기사의 창이 떨어진다. 피한다. 피하며 손을 뻗으려다가 회수했다.
놈의 날개가 앞쪽으로 튕기며 고속으로 떨렸다.
그대로 후려쳤으면 날개에 손목 어림이 걸렸을 거다.
저것 자체가 분쇄기다.
저 안에 손이 들어가면 다짐육이 된다.
땅을 부드럽게 발로 밀며 뒤로 뛰었다.
그러자 놈이 날 찼다. 추진기의 가속을 이용한 발차기다.
파란 불꽃 잔영이 일어나며 발끝이 날 향해 날아왔다.
인사로 한 번 당했을 때는 안 보였지만, 지금은 보인다. 손바닥을 펼쳐 뻗었다.
힘을 빼고 손날을 옆으로.
다가오는 금속 워커 같은 발에 손바닥을 맞춰 대고 옆으로 밀었다.
불멸특수대 시절 이중봉한테 배운 흘리기다.
기술이 제대로 들어갔다.
청기사의 몸이 균형을 잃는다. 그걸 보며 난 짓쳐들어 가는 대신 뒤로 두 번 뛰었다.
이 음흉한 새끼.
청기사 새끼가 균형을 잃은 척을 했다. 애초에 추진기 발길질을 할 때부터 놈의 발은 땅에 떨어져 있었다.
날개로 균형을 잡았으면서 은근히 빈틈을 보인 거다.
들어갔으면 모르긴 몰라도 저 창질에 몸에 구멍 몇 개쯤은 났을 거다.
“킬 더 블루 나이트!”
뒤에서 환호가 이어진다.
아니, 나 환호 받는 거 좋아하긴 하는데.
지금 그럴 때냐고.
다 같이 싸울 생각 안 하고 다들 응원단에 빙의했네?
청기사를 마주했음에도 뒤로 슬쩍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환호다.
잠깐이지만, 누가 서 있는지는 봤다.
사령관으로 보이는 작자도 있었다.
저 양반은 응원단장쯤 되는 건가.
구호 만드세요?
여기까지 왔으면 같이 싸워야지.
뭐 하시나.
“킬 더 블루 나이트!”
또 저러네.
이해는 한다. 어중이떠중이 따위가 끼어들면 청기사의 창에 갈려서 육편 덩어리가 되어 버릴 거다.
그리 터지고 찢긴 시신은 수습도 어려울 거고.
청기사란 놈이 나만 노려서 다행이긴 했다.
저놈이 작정하고 전장 헤집었으면 저걸 누가 쫓아서 잡냐고.
뭐, 기분은 괜찮았다. 좋았다.
사람들의 환호가 등을 떠민다. 이기라고 한다. 죽이라고 한다.
“그래도 좀.”
일부는 도와야지.
이러다가 나 지면, 그때 가선 어쩌려고.
그 바람이 끝나기 무섭게.
부우우웅.
하늘로 떠오른 청기사 주변을 에워싸는 이들이 있었다.
등 뒤로 빨간 불꽃 추진기를 단 부착형 아머가 눈에 들어왔다.
“오, 아이언 맨.”
내가 중얼거렸다.
같은 타이밍에 왼쪽에서 익숙한 기척이 다가왔다.
“아들.”
아버지였다. 피닉스 팀 반수 이상을 데려왔다.
“늦으셨네요.”
“오다가 차가 막혀서.”
대답은 우측이었다. 시베리안 호랑이 변신체가 된 어머니다.
위트를 잃지 않은 답이다.
“변신해도 네 엄마 미모는 어디 가지 않는구나.”
어머니만 만나면 안목이 형편없어지는 아버지가 말했다.
“고마워요.”
말하며 호랑이 얼굴이 웃는다. 송곳니가 삐죽 솟은 게 보였다.
지금 당장 저 송곳니로 가젤의 목줄기쯤을 뜯어 버릴 것 같았다.
둘의 눈이 마주친다.
이 순간에도 염장질이라니, 대단하지 않은가.
어머니 바로 뒤로 화랑의 엘리트가 다가왔다.
“변했군요. 슬혜 누님.”
“난 원래 이랬다.”
그 말에 어머니가 돌아보지도 않고 답했다.
삼촌이다. 화랑에서 뽑은 엘리트 변신족을 이끄는 지휘관이기도 하고.
잡담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청기사의 날개가 윙 하고 떨리는 소리가 이어졌으므로.
저 새끼는 가족이 회포를 풀고 있는데 눈치 없이 날갯짓이다.
짧은 시간 너무 에너지를 소모했을까, 잠깐 멈춘 사이 난 팔다리가 무겁다는 느낌을 받았다.
느낌만은 아니었다.
과도한 칼로리 소비.
몸에 비축한 에너지를 과하게 썼다.
“누구 먹을 거 없어요?”
말하고 뒤를 돌아보니.
“먹어라.”
삼촌이 뭘 던졌다. 손바닥보다 조금 길고 두꺼운 에너지 바였다.
“고효율 에너지바다.”
불멸자는 마약으로 에너지를 충당하기도 한다.
흰 나비라는 이명을 가진 마약이 그렇다.
변신족은 좀 다른 방식을 택했다.
그들은 먹었다.
고로 이 에너지 바는 단군 그룹 연구의 집대성, 변신족 에너지 보충의 혁명이었다.
우걱우걱.
비닐을 뜯고 다 씹어 삼키는 데 3초면 충분했다.
먹는 사이.
“킬 더 블루 나이트!”
다시 울리는 목소리.
킬 더 블루 나이트.
그래, 처음부터 저 새끼를 곱게 돌려보낼 생각은 없었다.
죽인다. 반드시.
먹으며 각오를 불태우자.
“아들, 잠깐 빠져라. 작전이 있으니.”
그런 날 향해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는 다 계획이 있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