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 청기사 (2)
과학자 무리가 모이면, 완전히 미치진 않았어도 반쯤 미친놈은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반쯤 미친놈은 완전히 미치지 않았기에 양지에 살기도 했다.
단군 그룹 내에도 그런 집단이 있었다.
정확히는 그룹의 지원을 받는 연구팀이다.
어느 날 연구소장이 명제를 던졌다.
“인베이더와 말을 나눌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인간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지 않을까?”
과학 집단이자, 연구팀 ‘이심전심 Scientific telepathy’에는 야생 동물의 몸짓이나 울음을 통해 그들의 의도나 감정을 읽는 전문가가 포함되었고.
소장은 본격적으로 연구에 매진했다.
성공한 적은 없다. 인베이더와 대화를 나눌 시도를 하다가 미친놈 소리만 거듭 들었을 뿐이다.
그런 와중이다.
인베이더가 전략 전술을 활용했다는 정보를 접했다.
올드 포스 휘하 불멸특수대가 소유한 아더 사이드, 진흙 사막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특이종 한 마리가 벌인 일.
단군 그룹은 거금을 주고 정보를 샀다.
그 정보는 연구팀의 큰 자산이 됐다.
“전술을 쓴다는 건,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거잖아. 인간 수준의 대화까진 아니더라도? 맞지?”
소장의 말이다.
“오크는 말도 하잖아. 그게 고함질이긴 해도.”
소장은 또 말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소장의 인성은 훌륭했다.
가끔 이런 미친 연구에 눈깔이 돌아가긴 해도 사람은 참 좋았다.
덕분에 주변에 사람이 떠나지 않았다.
그걸 높게 산, 단군 그룹도 연구비를 아끼지 않았다.
모든 연구팀이 성과를 내는 건 아니다.
이런 일에는 매몰 비용은 발생하는 법이다.
이 연구팀은 단군 그룹 내에서 매몰 비용 쪽에 속했다.
다만, 마케팅 쪽으로는 꽤 쏠쏠한 성과가 되기도 했다.
이런 연구도 지원해 준다고 하니, 이런저런 연구팀이 단군 그룹과 손을 잡기를 바랐으니까.
밖에서 뭐라고 생각하든 이심전심 팀은 연구에 매진했다.
시간을 소모하고 자원을 소모했다.
실패의 연속이다.
계속된 실패는 권태를 불러오기 마련이었다.
그들은 실망했고, 매너리즘에 빠졌다.
그때, 말단 연구원 하나가 발상을 전환했다.
“이게 성공할 수 있는 건지 아닌지 미리 확인하면 어떨까요?”
소장은 그 말에 귀를 기울였다.
소장은 인성이 훌륭한 사람이었다.
신선한 의견을 수용할 줄 알았다.
꼰대가 아니었다.
“어떻게?”
“결론을 확인하는 거라면 꼭 과학으로 풀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말단 연구원의 의견이 이들의 방향성을 조금 틀었다.
덕분에 소소한 성공을 거뒀다.
초능 특수종 중에는 동물의 감정이나 생각을 읽어 내는 이들도 있었다.
마인드 리딩이란 초능이다.
복잡한 인간의 생각을 전부 읽어 내는 건 불가능하다.
정신적으로 단단한 사람의 생각을 읽어 내는 건 어떤 초능 특수종도 성공하지 못했다.
가끔 편법으로 약을 먹인 뒤, 독심술로 기밀을 빼내기도 하지만, 이게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었다.
마인드 리딩은 흔한 능력은 아니지만, 소장은 거듭 요청해 지원을 받았다.
마스터 급은 아니지만, 적당한 수준의 마인드 리더가 연구팀에 합류했다.
“인베이더 생각을 읽어 내라고요? 능력 발동이 쉬워 보이나 본데요. 원숭이 머릿속도 잘못 들여다보면 반대로 이쪽이 미치는 일이 다분합니다. 쉬운 게 아니에요. 그게.”
능력자가 제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의 말은 타당했다.
그래도 이심전심 팀은 포기하지 않았다.
“생각의 겉면만 읽는 건 어떻습니까? 감정의 표출 같은 거나, 강렬한 의식 겉면 정도만?”
또 말단 연구원이 나섰다.
소장은 이 친구가 나중에 크게 되리라 생각했다.
생각하는 바가 남달랐다.
그 말이 돌파구가 됐고, 성과로 이어졌다.
그가 한 말은 마인드 리딩의 기초였다.
감정을 읽고 생각의 겉면, 그러니까 목표가 연상하는 단순한 단어를 읽는 건.
마인드 리더는 꽤 노력했다.
연구팀은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결론을 내렸다.
“허접한 놈으로는 안 되겠어. 고위 인베이더가 유리해.”
저급한 놈일수록 마인드 리딩이 더 어려웠다. 이유는 모른다. 추측하기로 너무 단순하기에 생각 따위를 하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이들의 연구가 시작부터 잘못된 걸지도 모르고.
사실 인베이더는 생각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한 종일지도 모르니까.
이들은 특이종을 노렸다. 고위급 인베이더가 나타나는 곳으로 출장을 일삼았다.
소장은 그보다 더 나아갔다.
‘네임드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모든 네임드는 특유의 주파수를 뿜는다. 그 주파수는 통신 마비를 불러오지만.
역으로 그 말은 놈들의 주파수에서 뭘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단 연구원이 던진 한마디로 시작된 일이 여기까지 닿았다.
그들은 청기사가 한국에 튀어나온다는 소식에 여기까지 왔다.
“됩니다.”
그리고 들었으니.
“느껴집니다.”
초능 특수종, 마인드 리더의 말이다.
그동안 함께 먹고 자고 하는 사이에 연구원 하나와 연애까지 하는 사이가 됐다.
가족이라고 해도 좋았다.
연구원은 아니지만, 이 연구를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사람이 됐다.
“분노, 화, 짜증.”
마인드 리더는 열중했다. 그의 이마에 핏대가 솟았다.
그는 감정을 분류했다.
분노라고 해도 다 같은 분노가 아니다.
화도 종류가 있는 법이다.
어떤 화는 슬픔을 동반하고.
어떤 화는 짜증을 동반한다.
지금 청기사는 짜증을 내고 있었다.
마치 밤중에 웽 소리에 깬 뒤, 불을 켰더니 모기가 보이지 않아 화가 잔뜩 난 것처럼 그런 짜증을.
또는 제 소중한 것을 누가 부수는 걸 본 것처럼.
그러면서도 차가운 불꽃이 보인다.
이건 뭐라고 해야 하나.
화는 나지만, 또 차갑다.
인간의 감정과는 다르니, 이리 읽는 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청기사의 생각이 읽히긴 했다. 강렬한 단어가 머릿속으로 전해진다.
“단어 연상, 읽어 냅니다.”
능력자가 말했다.
이마의 핏대가 하도 굵어져 곧 터질 듯하면서도 그는 능력 발동을 멈추지 않았다.
저 멀리서 오만하게 떠 있는 청기사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렸다.
전투 능력이 없는 그에게 네임드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 공포를 이겨 내며 능력을 발동한다.
연구에 소명을 걸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곧 청기사의 생각이 읽혔다.
죽인다. 저걸.
죽인다. 저걸.
죽인다. 저걸.
빙글.
두통이 일며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누군가 머리통 안에 손가락을 쑤셔서 헤집는 기분이 들었다.
능력을 발동하기 위해 그는 망원경을 통해 청기사를 보는 중이었다.
오면서 대강 전장 상황은 들었다.
그 청기사가 벼락이 되어 땅에 창을 내리꽂는 것도 보았다.
그 창의 끝.
그 분노의 대상이 된 자.
살의의 끝은 그곳을 향할 터였다.
“뭐라고 하는가?”
소장이 다급히 묻는다. 그 목소리에 걱정과 더불어 제 연구의 결과를 알고 싶어 하는 광기가 보였다.
마인드 리더는 그걸 순수한 열정이라고 봤다.
“세최특을 향한 살의, 살의가 가득합니다.”
생각 일부를 읽는 것만으로 근 한 달은 편두통으로 고생할 듯했다.
그럼에도 마인드 리더는 더 나아갔다.
그동안 수년 동안 인베이더의 정신을 헤집는 걸 업으로 삼았다.
덕분에 그의 능력은 그쪽으로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그 비약적인 리딩 능력은 청기사 생각의 편린 몇 개를 더 건져 냈다.
“부대, 계획, 전부 너, 이유, 원인, 죽인다.”
생각의 편린을 말로 바꾸니, 이런 형태다.
“뭐라고?”
소장이 되물었지만, 그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픽 하고 쓰러지는 걸 연구원 몇이 받아 냈다.
소장은 기쁘면서도 난감했다.
일단 생각을 읽었다는 건, 인베이더도 사고를 하고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말이니까.
그게 기뻤고.
반대로, 놈이 떠오른 단어의 연관성과 의미를 쉬이 이해하기 어려웠기에 난감했다.
그저 하나만 명확했을 뿐이다.
청기사의 살의가 분명하다는 것.
그는 세최특을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난 거였다.
* * *
이상한데.
저 새끼 눈빛이 너무 살벌한 것 같은데.
어머니와 통나무 선생이 합쳐서 야생의 살기를 쏘아 내는 걸 마주하는 기분이다.
그 앞에서 맨몸으로 나선 기분도 들고.
변신체로 변했고, 내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올곧고 튼튼했지만.
그래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치사하게 하늘에서 지랄하지 말고 좀 내려올래?”
아무 말이나 지껄여 봤다.
의미 없는 말이다. 인베이더와 인간은 대화하지 않는다. 우리 사이에 커뮤니케이션 통로 따윈 없다.
그런데도 난 청기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내뿜는 기묘한 주파수가 오감 너머의 감각을 건드렸다.
우연에 우연이 겹친 일일지도 몰랐다.
청기사가 하늘에 우뚝 서서 재차 내리꽂히기 전, 난 놈이 말을 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내 계획을 네가 망쳤다.”
내가?
“너 하나 때문에 엉망이다. 하등 종들.”
이게 맞아? 내가 듣는 게 맞나?
아니 들었다기보다는 느낀 것 같은데.
“다 죽이겠다.”
이건 명확했다. 야생의 살기로 단련된 나에게 놈의 살의는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선명했으니.
짧은 순간이었다. 누군가 본다면 그저 찰나에 불과할 1초 이내의 시간.
난 짧은 시간 놈과 정신이 통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곧 무시했다.
“누가 쉽게 가 준 대냐?”
내가 입을 열었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청기사가 다시 고속으로 돌진했다.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하지만 아까보다는 나았다.
내 눈이 놈의 움직임에 조금 익숙해졌다.
피했다. 땅을 차고 옆으로 뛰었다.
꽝.
땅을 때리기 무섭게 위로 훙 하고 날아간다.
아까와 다르게 흐릿하지만, 땅을 차고 날아오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난 솜털도 다치지 않았다.
발로 땅을 디디고, 하늘로 고개를 든다.
부유하는 청기사의 투구 바이저 사이로 보이던 빛이 날 향한다.
아까와 다르게 놈의 내뿜는 주파수 따위에 의미 따윈 들리지 않았다.
착각이었을까?
모른다.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저 새끼는 인베이더고 네임드고 인류의, 특히 한국의 악몽이라 불리는 놈이라는 게 확실할 뿐이다.
“퉤.”
침을 뱉었다.
윙.
청기사가 다시 시동을 건다.
이번에는 아까와는 또 달랐다.
이제는 놈이 고속 돌진을 하기 전 준비 동작도 보였다.
추진기의 불빛이 타닥타닥 타오르고, 날갯짓이 더 빨라지며 몸은 앞으로 쏠린다.
푸른 창끝이 목표를 향하면 그때 순간 이동하듯 놈은 사라진다.
예민한 감각이 놈의 사전 동작을 읽어 냈기에.
이번에는 아까보다 수월하게 피했다.
놈이 내리꽂히기 전, 미리 땅을 찼다.
세게 찰 필요도 없었다. 톡 하고 땅을 차고 피하는 김에 주변에 굴러다니는 건물 덩어리 하나를 부드럽게 발등에 올려 밀어 찼다.
훙. 쌕! 꽝!
내리꽂히는 타이밍을 읽어 찬 머리통만 한 시멘트 덩어리가 놈의 어깨 어림에 맞으며 조각이 되어 흩어졌다.
놈은 이번에 하늘로 도로 날아가지 않았다. 대신 추진기에 불꽃을 뿜더니, 저공 수평 비행으로 날았다.
내가 피한 곳을 향해 직진이다.
창끝이 점이 되어 날아온다.
보이지 않았다면 또 당했을 건데.
이상하게 놈이 공격을 반복할 때마다 더 잘 보였다.
흐릿하게 보이던 놈의 몸이 프레임 단위로 쪼개지듯 다가오는 게 보였다.
손톱을 뽑았다.
옆으로 피하며 그었다.
드드드드드드득! 티딩!
놈이 든 창이 내가 있던 자리를 스치고 내 손톱은 놈의 팔뚝을 그었다.
허공에 파란 불똥이 튀며 잔영을 남긴다.
손톱 두 개의 날이 나갔다.
자식 피부 가죽 되게 두껍네.
저건 금속 생명체라고 봐야 하니까, 저 갑옷을 피부라고 해야겠지?
저 안에 내장 따윈 없겠지만 말이다.
끝이 갈린 손톱을 뽑았다.
쑥, 쑥.
아팠다. 재생될 때의 고통이 뒤따른다. 재차 손톱이 자란다.
네임드는 인류의 악몽인데.
근데 어째, 해볼 만한 것 같기도 하고.
땅을 내리찍었다가 저공 수평 비행으로 날 후린 놈은 다시 하늘 위다.
놈을 보며 목을 좌우로 꺾었다.
해볼 만한 것 같다. 그런 생각이 거듭 들었다.
“내가 뭘 본 건지.”
예민한 청각에 저 뒤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나라도 이 순간에 감각을 다른 곳에 돌릴 틈은 없었다.
저 파란 또라이에게 오감과 육감을 집중해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