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273화 (273/488)

273. 청기사 (1)

휴즈 게이트 당시, 인류는 네임드의 위력을 실감했다.

“시발, 저걸 어떻게 잡아?”

“핵을 쏴야지, 이건 총질이나 칼질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잖아.”

청기사는 한국의 악몽이었다.

러시아에서 내려온 놈이 북한에 다다랐을 때, 세계 정부 연합은 결정을 내렸다.

소규모지만, 그 일대 지역을 죽음의 땅으로 만드는 폭탄을 쏜 거다.

그 결과 북한은 MZ, 무장지대가 됐고.

한국은 그곳을 잃어버린 북쪽, 로스트 노쓰라 불렀다.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지가 됐으니까.

인류는 청기사를 쫓아냈다.

작은 승리다.

그 청기사가 돌아왔을 때, 그러니까 현재.

세계 정부 연합 올드 포스의 목표는 명확했다.

“죽여? 죽이다가 생기는 피해는? 쫓아냅시다. 쫓아내면 또 한 십 년은 안 올 것 같은데.”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럼 죽이자고? 죽일 수는 있고?”

이게 답이었다.

청기사를 어떻게 죽일 것인가.

그에 대한 답이 필요했다.

물론 답은 있었다.

정확히는 이론이 있었다.

문제는 그게 가능하냐는 거였지.

그래서 내린 결론이 쫓아내자는 거다.

작전명 ‘우리 집에 왜 왔니’.

소위 ‘그만 꺼져 줄래?’ 작전이었다.

* * *

우미호는 급조한 팀의 저력을 얕봤다. 과소평가였다.

“가요.”

다른 사람한테는 싸가지 없게 굴면서도 광익의 어머니에게는 공손하다. 전직 테러리스트는 그렇게 말하며 앞을 바라봤다.

초능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특수 능력, 메두사의 눈이 발동했다.

까무잡잡한 피부의 동남아 미녀의 눈이 빛난다. 그리 다가오는 세 마리의 인베이더를 붙들고.

그걸 확인한 광익의 여동생이 달렸다.

탁탁, 땅을 두 번 박차니 몸이 둥실 뜬다. 허공에서 등에 멘 도끼를 뽑아 힘차게 휘두른다.

훙!

까-앙, 까가가가가강!

도끼가 트라이앵글 필드를 때리며 사방에 불똥을 튀겼다.

쩍쩍- 하고 필드에 금이 갔지만, 깨지진 않았다.

광익의 어머니가 한마디 조언을 건네며 나섰다.

“마리야, 팔에 힘 들어갔다.”

강슬혜가 부드럽게 손바닥을 앞으로 민다.

별거 아닌 그 동작에 리빙 아머의 트라이앵글 필드가 바람 빠진 풍선이 늘어나듯, 안으로 쭉 늘어나더니 팡 터진다.

“마법사의 주문은 지속적인 힘에 약하단다.”

그리 말하며 깬 필드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선, 리빙 아머의 가슴에 손가락을 박고 찢는다.

뜨드드득.

갑주가 뜯어진다.

그리 힘으로 리빙 아머를 좌우로 찢었다.

놈의 투구에서 뿜어내는 빛이 사라지고.

마리는 그걸 보고 깨달았다는 듯, 도끼를 신중하게 휘둘렀다.

전보다는 느리다.

조금 전에 휘두른 도끼는 형체가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빨랐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적당한 속도다.

멈춘 리빙 아머의 머리 위로 도끼날이 떨어진다.

발동한 필드 위에서 만난 도끼날이 이번에는 천천히 찢고 들어가, 리빙 아머의 머리통에 닿았다.

마리는 힘차게 손을 뒤로 당겼다.

쩡.

리빙 아머의 머리통이 쪼개졌다.

두 마리를 처리하고 남은 한 마리는 둘이 힘을 합쳤다.

어머니가 머리통을 때리고, 그 딸이 몸통을 찢었다.

이걸 보고서로 쓰면 뭔가 모녀 살인마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았다.

“다음.”

로즈가 다시 읊조리며 재차 다른 사냥감의 몸을 굳게 하고.

변신족 둘이 그런 인베이더를 쪼개고 찢었다.

붙들린 세 마리의 뒤, 휠 나이트 한 마리가 달려든다. 윙- 하고 바닥을 바퀴로 찍듯 박찼다.

핑.

한 자루 화살이 휠 나이트의 바퀴에 박혔다.

끼이잉!

그거로 놈의 돌격을 완전히 저지할 수는 없지만, 속도를 늦출 수는 있었다.

그 늦어진 놈의 바퀴 위로 펑하고 유탄 따위가 날아왔다.

요한이 쏜 탄이다.

바퀴에 유탄이 맞았지만, 폭발은 없다.

급속 경화탄이다.

특수 제작된 경화 시멘트가 회색의 액체를 터트린다. 곧 그 액체는 실시간으로 단단히 굳어 휠 나이트 한 마리를 멈춰 세웠다.

그리 붙들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20초 내외.

경화된 급속 시멘트가 뿌드득 소리를 내며 금세 금이 간다. 휠 나이트가 억지로 그걸 깨부수려 했다.

요한이 탄을 쏘자마자 귀태가 달렸다.

“흡, 내가 바로.”

읊조리며 산탄총을 든다.

휠 나이트를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며 달렸다. 귀태는 그렇게 휠 나이트의 뒤를 잡은 뒤, 마저 외쳤다.

“방귀태!”

꽝!

폭발과 함께 휠 나이트의 등이 터졌다.

우미호는 이 전투가 생각보다 너무 수월하다고 생각했다.

그건 자기가 상정한 것보다 이들의 전투력이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전투의 중간, 사람들의 외침이 들린다.

그건 유광익을 위한, 그를 기리는 환호였고.

“엄마도 있다!”

“마리도 왔어요!”

변신족답게 그 둘도 외치고.

방귀태도 덩달아 흥분해 외쳤다.

“나도 같이 싸운다! 미호도!”

저건 불멸자인데 왜 저러는지.

거기에 자신의 이름은 또 왜 넣는지.

그걸 들은 요한이 키득거리며 말한다.

“데이트 한 번은 해 줘라.”

“헛소리.”

일축한 뒤, 다시 전장을 머리에 담는다. 그림을 그린다. 이기는 길을 찾는다.

자신들이 뚫은 길을 아군이 채워야 했다.

그럼 이 전장은 승리한다.

지휘부에는 이동훈이 있다. 우미호는 그것도 계산에 넣었다.

사령관의 머리에 뇌 대신 면 사리가 든 게 아니라면 동훈의 말을 들어줄 것이다.

아군은 그렇게 했다.

“우오오오!”

“내가 왔다!”

흥분한 이들의 외침이 적다.

뒤에서 짓쳐들어 오는 이들의 주력은 불멸특수대다.

그들은 저런 외침을 쉬이 하지…….

“유후! 불특대 출신 세최특을 응원합니다!”

불멸자답지 않은 외침이다.

새되지만, 낭랑한 목소리에.

“유광익! 불특대! 세최특!”

따위의 외침이 섞인다. 우미호는 발을 헛디딜 뻔하다가 균형을 잡으며 정신도 다잡았다.

‘요즘 신입은.’

자기 때와는 달랐다.

오리엔테이션 때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던 이장모 교관님이 떠올랐다.

어쨌든 상황은 좋다.

우미호의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돌아간다. 전장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고 결론을 내린다.

이긴다. 이길 수 있다.

그리 생각을 마무리할 때다.

쩡.

균열이 깨지고.

그 앞까지 도달한 검은 호랑이 한 마리가 튕겨 나오는 게 보였다.

청기사가 발을 들었다가 내린다.

머릿속에 담은 계산이 흐트러진다.

청기사의 출현이다.

날아간 건 광익이다. 한 번도 저지받지 못했던 광익의 발이 멈췄다.

윙.

청기사의 날갯짓 소리가 전장을 울린다.

그걸 본 우미호는 한순간 전장의 분위기가 또 변하는 걸 느꼈다.

아슬아슬한 그 순간.

“저 새끼가?”

음?

앞쪽이다. 막 로즈가 멈춰 세운 휠 나이트의 등판을 십자로 쪼개 놓은 마리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평소에 욕설 따윈 한마디도 하지 않던 아이다.

바로 곁에 있던 강슬혜는 말은 없지만, 눈빛이 변했다.

아찔할 정도의 살기가 풍겼다.

강슬혜의 입이 열렸다.

“미호야, 엄마 먼저 간다.”

누가 엄마야.

미호는 자기도 모르게 그리 생각했지만, 따질 틈은 없다.

강슬혜도 큰 의미를 두고 한 말은 아니다. 아들 친구니까 툭 뱉은 말이지.

그 말과 함께 강슬혜의 몸이 변한다.

우두두둑.

전신이 커지며 시베리아 호랑이의 변신체가 남는다.

마리도 그걸 보며 도끼를 쥔 채 변한다. 얼룩덜룩한 무늬의 표범 인간이 된다.

“먼저 가요. 크릉.”

마리가 달리고, 강슬혜가 뒤따랐다.

* * *

핏.

“킁!”

막힌 코에 힘을 주자, 핏덩이가 튀어나왔다.

내장이 울렁거린다. 누가 내장을 잡고 흔드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장이 망가진 건 아니다. 이 정도는 괜찮다. 인듀어 최고 단계로 훈련할 때도 종종 겪은 일이다.

“퉤.”

침을 뱉으니까 피가 섞였다.

맞을 때 나도 모르게 너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잇몸에서 나온 피다. 그조차도 금세 나았다.

괜히 불멸자의 피를 이은 게 아니다.

바닥에 몸이 박힌 채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보였다.

인베이더를 때려죽이기에 참 좋은 날이었다.

웅.

시선을 돌리지 않아도 소리만으로 상황이 머릿속에 들어온다.

한 대 맞으며 달궈질 대로 달궈진 전투 감각이 주변 상황을 그림처럼 머릿속에 쑤셔 넣었다.

리빙 아머다.

공중에 떠올라 밑으로 칼을 내리찍는다. 그 뒤를 따르는 놈이 또 서넛이다.

“흡.”

호흡 한 번.

손을 뒤로 꺾어 머리 옆을 짚고, 다리를 들었다가 튕겼다.

퉁.

스프링처럼 몸이 튀어 오르며 칼날을 피하고 일어섰다.

“뚝배기.”

말하며 딱밤 때리듯 리빙 아머의 머리를 후려쳤다.

꽝.

일정한 수준의 물리력을 동반하면 트라이앵글 필드도 무용지물이다.

본래 ‘마법사를 잡는 건 변신족’이란 말이 여기서 나오기도 했다.

그들이 자랑하는 방호 주문은 근접 공격에 너무 허무하게 부서지므로.

중지 끝을 세운 한 방에 리빙 아머의 머리가 푹 찌그러졌다.

찌그러진 놈의 양팔을 잡고 좌우로 뽑았다.

우드득.

리빙 아머의 팔은 칼이다. 난 팔을 칼 삼아 뒤에서 달려드는 리빙 아머 두 마리의 몸에 던졌다.

투창처럼 날아간 칼이 인베이더 몸통에 꼬치를 꿰어 뒤로 훙 하고 날아갔다.

난 머리를 으스러뜨리고 팔을 뽑은 놈의 몸뚱이를 발로 찍었다.

꽝, 꽝!

수 차례 찍자, 울퉁불퉁하지만 적당한 두께의 창이 됐다.

청기사 부하였던 유니크 인베이더 스펠 나이트의 주력 주문을 훔쳐봤다.

리빙 아머 투창이다.

좋아.

그걸 들어 청기사를 바라봤다.

깨진 균열 너머.

인류의 악몽이 하늘에 떠 있다.

두 장의 금속 날개가 고속으로 떨리며 그의 몸을 띄운다.

양발에 달린 추진기는 놈의 순간 가속을 돕고.

손에 쥔 건 푸른 빛의 긴 창.

그걸 양손에 쥐고 오만하게 주위를 내려다본다.

투구 사이, 바이저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빛이 날 바라본다.

느낄 수 있었다. 놈이 날 보고 있음을.

나도 놈을 똑바로 마주 보고 살기를 가득 담은 채, 중얼거렸다.

“뭘 봐, 새끼야.”

호흡 몇 번 고른 거로 회복은 끝이다.

변신체로 변하면 재생 능력이 더 올라간다.

우드드드드득.

왼발에 무게를 싣자, 바닥이 발에 시린 힘을 이기지 못하고 깨진다.

왼발을 축으로 오른발을 뒤로 뻗고 몸을 비튼다. 오른팔을 뒤로 힘껏 당기고 조준했다.

투창 형태는 스펠 나이트가 만든 것보다 형편없지만, 던져서 맞추는 거야 자신 있다.

밸런스 엉망 리빙 아머 투창이라도 맞출 자신은 차고 넘친다.

힘껏 당긴 오른팔을 앞으로 뻗는다. 손가락 끝에 힘을 끝까지 빼지 않고 버티다가 놨다. 곧 내 귓가를 스치며 떠난 리빙 아머 투창이 빛살이 되어 날았고.

윙.

청기사는 피했다.

“아, 치사한 새끼.”

절로 그런 말이 나왔다.

맞출 자신이야 차고도 넘치지만, 저 새끼는 날개가 있다.

발에 추진기도 달고 있고.

허공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놈을 맞추는 건 또 다른 문제 아닌가.

생각해 보니, 저거 완전 사기다.

자유로운 비행은 물론 전신을 두른 갑옷은 전후좌우를 막론하고, 작정하고 때려도 부술까 말까다.

아니, 저거 코앞에서 어지간한 폭발이 터져도 다 막는다. 생채기 하나 내기 어렵다.

불로 지져도 멀쩡하고 잘 얼지도 않는다.

염력으로 잡아 붙들려고 해도 청기사의 완력을 제압할 초능 특수종은 없다.

최고 수준의 능력자 수십이 달려들어야 간신히 속도를 늦춘다고 들었다.

청기사는 괴물이다.

뭐, 그렇다고 난 괴물 아닌가.

전투 감각이 그림을 그린다. 청기사와 마주한 전투의 향방을 스케치한다.

짧은 순간이지만, 전투 예지다.

날개, 완력, 디딜 땅.

세 가지가 이 전투의 핵심이다.

청기사의 날개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할 것이다.

그럼 저 날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제압을…….

윙.

놈은 여전히 허공에 떠 있다.

그리 날 보던 놈의 창이 날 겨눈다.

생각을 이어 갈 틈이 없다.

온다고 느끼는 순간, 나도 땅을 찼다.

꽈광! 윙!

우드드득.

폭음과 함께 고통이 뒤따랐다.

전부 못 피했다.

벼락이다. 그만큼 빨랐다. 변신체의 동체 시력으로도 점으로 보일 만큼.

왼팔이 부러졌다. 아니, 뒤틀어졌다.

가까스로 피한 결과가 이거다.

그리고 놈은 땅을 창으로 후리자마자 위로 다시 날았다.

다시 하늘 위다.

윙.

놈이 날 바라본다.

“야, 이건 너무 하는데.”

한 방에 코피 터진 것도 억울한데.

하늘에서 밑으로 떨어지기만 하려고?

이건 너무 치사하잖아.

뒤틀린 팔을 억지로 바로 잡았다.

우득.

뼈가 맞물리는 고통이 문제가 아니다.

다시 놈이 날개를 떨고.

나도 다리에 힘을 줬다. 괜히 인류의 악몽이 아니다.

근데 저 새끼가 날 작정하고 노리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 * *

사이오닉 아머 충전이 끝난 협회 주력은 청기사를 바라봤다.

아찔했다.

그렇다고 겁을 먹은 티를 낼 수는 없다. 부협회장은 그런 위치였다.

부협회장, 정수희는 머리를 쓸어올리려다가 말았다.

사이오닉 아머에 탄 채로 머리를 쓸어올릴 순 없다.

어설프게 올라온 손을 주먹으로 바꾸고 쿵 하고 이마를 쳤다.

그 소리에 모두가 그녀를 주목했다.

“애 혼자 싸우는 거 구경만 할래?”

부협회장이 말했다.

“애라뇨. 세최특입니다.”

부하 하나가 말한다.

“애는 애지. 가자고. 인류의 악몽을 한 명한테만 맡겨 둘 거 아니면.”

저걸 쫓아내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는 없다.

아니, 인류에게 미래는 있을지 몰라도 한국은 끝이다.

그리 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사이오닉 아머의 모티브는 청기사였다.

이제 그 동기를 준 모체를 때려잡을 시간이므로, 그들은 허공을 날았다.

위잉.

등에 단 추진기를 통해 하늘을 난다.

협회 전력이 하늘에 뜬 청기사를 향해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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