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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272화 (272/488)

272. 전장의 판도를 바꾸는 건 무엇인가? (2)

피닉스 팀이 대기한 이유는 하나였다.

새로운 유니크 인베이더가 나왔을 때의 대처.

즉, 예상외 전력이 나타나면 대응하는 게 주 임무였다.

그런데.

“대장?”

팀원이 묻는다.

상황 파악을 하는 눈이 밝은 건 유연호도 만만치 않았다.

이 미친 아들 새끼.

유연호는 참으로 오랜만에 상스러운 말을 속으로 읊조렸다.

저 아들의 모습을 보니 반쯤 돌아 버릴 것 같았으므로.

위험하고 아찔하다.

인베이더 무리 사이를 저리 돌진하다니.

그 아찔함이 뿌듯함으로 바뀌는 건 금방이었다.

아들이 인베이더를 색종이 오리듯 잘게 찢고 오린다.

‘슬혜야, 우리 아들.’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진 않겠어.

제 아들인데도 절로 괴물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절로 그런 말이 나올 법했다.

그래도 괜찮다. 아들 아닌가.

진짜 괴물처럼 보이진 않았다.

다만, 적당히 치고 나왔어야 할 아들이 미쳐 날뛰었다.

끼얏호.

환호는 그렇다고 치고.

너무 깊게 들어간다.

그리고는 곧 그 움직임의 의미를 알았다.

“아드님이 혹 어릴 때부터 영재나, 천재였어?”

전술 분석에 일가견이 있는 팀원이 물었다.

지긋한 나이의 팀원이다.

“아니, 그건 아니었죠.”

유연호가 답했다.

어릴 때는 얘가 커서 뭐가 될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딱히 운동이고 공부고 취미가 없어 보였다. 악기도 쥐여 줘 봤는데 그쪽에도 재미도 없어 보였다.

뭐든 잘하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뭐든지 적당히 하는 게 눈에 보였으니까.

열정을 쉬이 보이지 않던 아들이었다.

언제였던가.

대한민국에서 일진을 다 소탕하겠다고 할 때, 처음 아들의 열정을 봤다.

“어쩔까? 대장?”

나이 지긋한 팀원이 묻는다.

“가릅시다.”

유연호는 시원하게 답했다.

“오케이.”

팀원이 답한다.

피가 끓었다. 아들이 저리 날뛰는 걸 보니, 아비 된 도리로 그냥 지켜보기 어렵다.

인베이더 무리를 조지겠다고 저리 혼자 날뛰는데, 도와줘야 하지 않겠나.

검은 호랑이, 아들의 변신체가 전장을 가르며 분위기를 휘어잡는다.

전장의 판도가 변한다.

유연호의 머릿속에도 전술 지도가 떠올랐다.

피닉스 팀은 소수다.

기동력이 좋은 군대가 필요했다.

유일부대는 멀다.

가까운 곳에 있는 대규모 부대.

경찰 기동대가 좋겠어.

유연호의 머릿속에도 짧은 시간 몇 가지 가정이 스치고.

피닉스 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연호는 통신이 먹통이 된 시점부터 곳곳에 팀원을 뿌렸다.

그 팀원들은 전부 품에 통신이 가능하도록 주문 처리된 부적을 품고 있었고.

“갑시다.”

유연호는 말하며 웃었다. 이유를 따질 것 없이 웃음이 나왔다.

그건 일종의 흥분이었다.

그냥 두고 보기 어려운, 직접 날뛰고 싶은 그런 마음.

“통신 담당 제외한 팀원 전원 집합.”

유연호가 팀원을 모았다.

그는 전장의 흐름을 보고 우측 측면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검은 호랑이로 변신한 아들이 슬쩍 치고 빠진 곳이다.

무슨 공터라도 만든 것 같다.

와이어에 제 산탄총을 엮고 휘저으니 그렇게 된다.

무지막지한 파괴력이다. 뛰어다니는 폭탄 같았다.

아들이 만든 곳, 길은 아니다. 인베이더 놈들 사이에 동떨어진 섬과 같다.

아들은 딱 저기서 휘어져 꺾어 방향을 틀었다.

“돌격.”

유연호가 읊조렸다.

그들의 돌격은 변신족의 돌격과 달랐다.

피닉스 팀 전원이 기척을 죽인다.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흐릿해 보인다.

모습은 그대로지만, 공기에 녹아든 듯했다.

달린다. 소리도 없고 기척도 없다.

인베이더의 감각 기관은 그들을 알아채지 못한다.

불멸교가 자랑하는 무음의 암살자보다 한 단계 높은 실력을 갖췄기에 이들이 세계 최고를 논하는 팀이다.

휠 나이트 목 위로 부드럽게 휘어진 칼날이 감싼다.

곧 칼날이 빛나며 갑옷을 태운다. 태우고 찢으며 가른다.

백린 검이다.

목이 탄 채 잘린 휠 나이트 하나가 뒤로 엎어졌다.

거기에 반응한 휠 나이트 둘이 뒤로 돌며 원뿔 창을 크게 휘둘렀다.

붕!

그들의 창은 허공만 갈렸다.

정해진 간격을 두고 나란히 선 휠 나이트 무리가 사방을 향해 투구 눈구멍 사이로 빛을 뿜는다.

그러는 사이다.

푹. 펑.

이번에는 왼쪽이다.

그곳에 목 부위가 터진 휠 나이트가 쓰러지는 게 보였다.

위이잉!

휠 나이트 무리가 기동을 시작한다.

그 틈에 이번엔 우측이다.

바로 곁에 있던 리빙 아머 하나가 여섯 조각이 났다.

이번에는 소리도 없었다.

휠 나이트나 리빙 아머 둘 다 예민함과는 거리가 먼 놈들이었다.

그들은 피닉스 팀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유연호는 그런 놈들 사이에서 사냥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시작해 길을 틀 생각이었다.

‘아들이 한 일에 숟가락만 얹을 수 있나.’

유연호는 거기서 한 발 더 나갔다.

광익이 만든 길에 더해서 새로운 길을 열 생각이다.

더 효율적으로 인베이더를 각개격파하는 라인이다.

그걸 위한 지시가 통신 담당 팀원을 통해 전부 전해졌을 것이다.

시작은 광익이.

중간은 동훈이 받아서 사령관이 진형을 변경하게 했다면.

그 끝은 피닉스 팀이 나섰다.

곳곳에서 시작된 소규모 전투의 결과가 전황을 또 엎는다.

판도가 변한다.

전장에 참여한 대부분은 자신이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싸우는지도 몰랐지만, 이기고 있다는 건 알았다.

그리고 그 승리의 이유가 누구에게 있는지도 알았다.

모를 수가 없었다.

멀리서 봐도 그 압도적 무용은 모두의 가슴을 들끓게 하기 충분했기에.

모두가 검은 호랑이를 보고 열의를 불태웠기에.

그러했기에 전장 한가운데, 흥분한 특수종의 외침이 어색하지 않았다.

“으아아! 나도 같이 싸운다! 유광익!”

광익과 일면식도 없는 변신족이 외치니.

“나도 같이 싸운다!”

협회의 누군가가 외친다.

“나도 싸운다 같이!”

한국말이 어색한 교포가 외친다.

“아우우! 도안결이 여기 같이 싸운다!”

흥분한 도안결의 외침이 섞이고.

“유광익, 나도 여기 있다!”

다들 그리 외친다.

그 과격한 외침이.

무형의 열정이.

무언가가 된다. 허공을 가득 채우는 열기가 되어 사방을 내리누른다.

전장의 판도를 바꾸는 건 무엇인가.

때로는 그건 한 명의 손끝과 발끝에서 시작되기도 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이 외침은 그 시작이 누구였는지 정확히 안다는 방증이었다.

* * *

흥분한 이들의 외침을 듣는 이중봉은 뛰는 심장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하여간 제대로 미친 새끼.’

광익이 활약이 전장을 깨부순다. 청기사가 짜 놓은 판을 훌륭하게 작살 냈다.

훌륭했다.

한때 저 친구의 상사였다는 게 자랑스러울 정도로.

밖에서 보면 그리 돈독한 관계라고 보기 어려울진 몰라도, 나름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유광익.’

그 이름을 되뇐 중봉의 눈에 균열의 틈에서 청기사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전장이 변했기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반쯤 튀어나온 놈의 손끝이 떨리는 게 보였다.

예민한 감각의 순혈 불멸자가 근거리에서 보지 않았다면 보이지 않을 그런 미세한 떨림.

중봉은 그 떨림을 포착했다.

죽어 있던 몸을 깨울 차례였다.

감각만으로 주변을 관조하던 중봉은 눈을 떴다.

* * *

빛이 갈 길을 알려 준다.

그래서 그 빛을 따라갔다.

카가강.

4번 타자를 휘두르다 뒤로 빼자, 그 틈을 노리고 휠 나이트가 달려들었다.

난 놈의 원뿔 창이 다가오는 타이밍을 재고 정글도를 뽑았다.

깡!

쳐내고.

가슴팍이 열린 틈으로 왼발을 쑥 집어 넣는다.

쾅!

차인 휠 나이트가 날아온 것보다 배는 빠르게 뒤로 날아가선, 제 동료 몇과 엉켜 쓰러졌다.

그걸 보며 회수했던 와이어 4번 타자를 위로 튕겼다가 쓰러진 놈들을 향해 내리찍었다.

꽝!

폭음이 터지고 땅이 터진다. 도시를 이루던 건물 조각이 분수처럼 솟았다.

위잉!

4번 타자를 크게 휘두르자, 놈들이 거리를 벌린다.

정글도를 슬쩍 뽑아 봤다.

칼날 이가 전부 나갔다. 아무리 아다만티움 칼날이라도 이렇게 쓰면 망가진다. 어쩔 수 없는 거다.

훅.

뒤에서 리빙 아머가 훅 날아온다.

난 반쯤 뽑은 정글도를 마저 뽑아 횡으로 벴다.

무게, 내 힘, 모든 걸 합쳐 가른다.

이가 다 빠져 톱날이 된 칼날이 리빙 아머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었다.

찢은 놈의 몸 위로 회수한 칼을 다시 세로로 갈랐다.

이 기술을 톱날 십자 베기라 하겠다.

짐승이 뜯어 발긴 듯, 잘린 부위가 울퉁불퉁하다. 성의 없이 손으로 뜯어낸 빵 덩어리 같았다.

그놈을 발로 찼다. 조각난 리빙 아머가 바닥을 구른다.

내 눈은 여전히 빛을 따라갔다.

빛의 길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래서 가다가 뒤로 돌아 나온 곳도 있다.

그러다 보니 내 움직임은 직선적이라 보기 어려웠다.

불규칙적이라고 봐야 옳지.

위이잉.

사방에서 짓쳐들어 오는 인베이더 숫자가 줄지 않고 점점 늘어난다.

당연했다.

불규칙적이라고 해도 내 발은 청기사가 나오는 곳을 향하는 중이었으니.

자잘한 실금이 간 게이트 균열이 어느새 코앞이었다.

난 그 앞에서 콧김을 훅 뿜고 4번 타자를 회수했다.

너덜너덜했다.

방아쇠 부분은 아예 부러졌다.

통짜 아다만티움이라도 얇은 부분은 있기 마련이다.

너무 험하게 썼다.

와이어를 튕겨 양손에 감았다.

처음 달려드는 휠 나이트의 팔, 두 번째 리빙 아머의 어깨, 세 번째 휠 나이트의 머리, 네 번째 휠 나이트의 허벅지 따위에 와이어를 걸었다.

불멸특수대 시절 와이어 전투술도 배웠단 말이다.

그걸 응용했다.

건 채로 당겼다.

우직, 콰직, 우드드득.

쉬이 잘리지 않는 놈들이다.

리빙 아머의 전신에 보랏빛 문자가 빛을 내며 트라이앵글 필드가 빛을 발했다.

무시하고 와이어를 당기자, 네 놈이 한 덩어리가 됐다.

4번 타자 대신 네 놈을 한데 묶어 양손으로 와이어를 잡고 힘차게 돌렸다.

후와아아아아앙!

무게감은 4번 타자보다 이게 더 낫다.

적당히 묵직하다.

변신하고 나니 4번 타자가 너무 가벼워 손맛이 안 났다.

위이이이이잉!

힘차게 돌리니, 바람 가르는 소리가 기계음처럼 들렸다.

한순간 그걸 놨다.

불멸자의 놀라운 감각은 표적에 무언갈 맞추는 특별한 재능을 준다.

그걸 십분 활용했다.

원심력을 오롯이 받은 인베이더 덩어리 투포환이 허공을 날았다.

정확하게는 청기사의 투구를 향해 쏘아졌다.

받아라, 인베이더 포탄이다.

균열에 반쯤 몸을 걸친 청기사가 보인다.

웅.

반쯤 튀어나온 놈의 등에서 벌의 날갯짓과 같은 소음이 들리고.

곧 금속 날개가 앞으로 접히며 놈의 머리를 감싼다.

까-앙.

놈의 날개가 내가 던진 인베이더 투포환을 막았다.

“깼니?”

정면에 서서 놈을 바라봤다.

거리는 고작 오십 보 내외.

가깝다.

코앞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진, 놈이 쏘아 내는 방해 전파가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들리진 않지만, 오감과 육감이 놈이 뭔가를 계속해서 뿜어낸다는 걸 말한다.

일종의 주파수 같았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중얼거리며 거리를 좁힌다. 사십 보.

가까이 갈수록 많아지던 인베이더 숫자가 줄었다. 삼십 보.

윙.

그리 균열의 코앞까지 다가간 순간, 거미줄처럼 실금이 간 균열이 바사삭 하고 깨지는 게 보였다.

한순간이었다.

깨진 균열 사이로 청기사가 발을 내민다.

놈의 발목을 감싼 추진기 따위가 보였다.

이름은 청기사지만, 실제로 보면 놈의 모습은 현대가 아닌 미래의 갑옷을 걸친 것 같다.

금속 날개와 발에 달린 추진기.

전신 갑주의 강도는 아다만티움 이상.

윙.

소리는 뒤늦게 따라왔다.

그보다 빨리 난 눈앞에 확대되는 파란 덩어리를 봤고.

양팔을 들어 십자로 교차했다.

변신하고 나서 처음 한 방어 자세다.

우직.

묵직한 충격이 몸을 뒤흔든다. 내 몸이 그대로 뒤로 밀려 나갔다.

밀려 나가며 날 때린 게 놈의 발임을 알았다.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난 뒤로 날아가는 중이었고.

전투 감각이 놀랍게 예민해져 있던 난, 놈이 한 발길질의 원리를 파악했다.

다른 발로 중심을 잡고 추진기를 이용한 가속 발차기.

추진기 뒤로 파란 불꽃 잔상이 망막에 남았다.

그 파란 잔영 뒤로 깨진 블랙홀 균열 조각이 허공에 흩어진다. 그 모든 게 느린 화면처럼 보였다.

그리고 난 그대로 몸이 뒤로 쭉 날아갔다.

내장이 훅 떨어지는 기분이 들며 청기사가 한순간에 멀어지고.

꽝.

등에 묵직한 충격을 받는 것과 동시에 코피가 터졌다.

인사치고는 꽤 강렬한 한 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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