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271화 (271/488)

271. 전장의 판도를 바꾸는 건 무엇인가? (1)

“설명.”

찌푸린 미간 그대로, 사령관이 동훈을 바라보며 물었다.

“가로지르는 선을 보시죠.”

같은 말만 세 번째다.

동훈은 말하며 홀로그램을 띄웠다.

짧은 시간 인베이더가 나온 숫자와 움직임을 기재한 전술 지도였다.

그 위를 가로는 세최특의 선.

동훈은 그걸 손으로 가리키며 그었다.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다.

상대가 누군가.

1세대의 영웅이자, 지휘력을 인정받아 이곳의 총사령관으로 온 남자다.

유일부대장은 찌푸린 미간을 풀지 않았다.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서 각개 격파하자?”

동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최특, 유광익, 제 회사의 대표가 한 일이 그거다.

가로지르고 흔든다.

고작 인베이더 수십 때려죽인다면 속이야 시원하겠지만, 그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저 묵직한 덩어리가 그대로 짓쳐 들어오면?

정면 승부 자체는 여전히 이쪽이 불리하다.

이제까지 인류가 인베이더를 상대로 이점을 취한 부분은 무엇인가.

동훈은 그 이점을 잘 알았다.

전술이다.

청기사가 줄 맞춰 달릴 수 있는 정예를 데리고 나왔고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놀라운 일이다. 인베이더가 저리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래. 놀랍긴 한데, 놀랐다고 이대로 끝낼 수는 없지 않나.

물꼬는 회사 대표가 텄다.

“끼얏호!”

미친놈처럼 환호를 내지르며 인베이더 사이를 갈랐다.

아무렇게나 가른 게 아니다.

기묘할 정도로 적절하게 헤집었다.

세최특이 가로지른 공백 사이로 아군이 끼어 들어갈 수 있다면.

만약 그게 된다면.

최소한의 피해로 저 개 같은 인베이더 대군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기가 막힌 움직임이다.

다만, 문제라면.

‘내가 못 알아보면 어쩌려고?’

저건 누군가 알아채야 의미가 있다.

알아채지 못한다면 결국, 개죽음이 될 것이다.

광익이 대단한 건 알지만, 저렇게 안쪽까지 들어서면 뭐가 있는가.

광익이 달리는 궤적의 끝은 청기사다.

‘뒤를 받쳐 주지 못하면.’

저 미친 특수종의 등을 더는 볼 수 없을지도 몰랐다.

“발 빠른 부대원을 중심으로 인베이더 사이에 벽을 만듭니다. 그러면 됩니다.”

동훈이 말을 이었다.

휠 나이트은 고속 돌진이 가능한 인베이더.

그들이 내달릴 공간을 중간중간 자르자는 거다.

거기에 이리 진형을 짜서 묶으면 상대가 진형을 유지하지 못 하게 하는 이점도 있다.

그게 무엇을 말하는가.

지금 저 인베이더 무리는 왜 위험한가.

줄 맞춰 섰기에 위험하다.

서로 손발을 맞추기에 위험하다.

그럼 그걸 못 하게 하는 게 우선순위가 된다.

할 수 있다면 이리하는 게 좋다는 거고.

이걸 실현하도록 이끄는 게 광익이 전장에 그은 선이다.

전술적 우위와 지형의 우위.

대규모 전장에서 두 가지 이점을 다 취하자는 말이기도 했다.

전면 포위 공격을 준비하던 사령관의 입이 열렸다.

“부관, 전술 대형을 바꾸자.”

“……네.”

동훈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령관과 부관이 머저리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그와 동시에 동훈은 전투 준비를 했다.

구경만 할 생각은 없었다.

지휘는 유일부대장이 알아서 하겠지.

광익을 보자니, 피가 끓어서 참기 어려웠다.

나가서 싸우고 싶었다.

동훈을 보던 사령관은 새삼, 이 특수종 변신체 하나가 이뤄 낸 일을 깨달았다.

그냥 잘 싸운 게 다가 아니라.

두근.

이곳에 모인 모두의 가슴을 뛰게 한 것이라고.

자신조차도 저리 날뛰는 세최특을 보자, 당장이라도 나가서 저 인베이더 뚝배기를 따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

“인복 있는 친구네.”

말하며 사령관은 전투 준비를 했다.

구경이 끝이 아니라 직접 나서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수십 년 만에 느껴 보는 설렘이다.

첫사랑이 떠올랐다.

동네 빵집에서 수줍게 웃으며 마주하던 그 순간.

심장이 요동쳤었다.

미친 망아지라도 된 듯, 심장 박동이 미쳐 날뛰었었다.

지금 그때의 기분을 느낀다.

“묘하군요.”

부관이 말한다.

“무엇이?”

사령관이 답한다. 그는 흥분을 감추기 위해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도 고민하는 중이다. 전장에 나설까, 말까를.

“정말 묘해요. 전장의 공기가 들끓습니다. 다들 혼혈 특수종 유광익 하나를 바라보는 기분이 듭니다.”

그건 과장이 아니었다.

그리고 사령관은 결심했다.

동훈이 막 장비를 갖추고 나서려 할 때, 유일부대장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어디 가나?”

“네?”

“어디 가냐고.”

말투가 온화하다. 동훈은 그리 느꼈다.

아까까지 미간을 찌푸리고 불쾌감을 표하지 않았었나?

착각이었다.

사령관은 자신의 표정과 감정을 감추는 데 능숙한 사람이었다.

“싸우러 갑니다. 제 회사의 주인이 저곳에 있으니까요.”

타당한 이유다. 하지만 사령관은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가지 말게.”

동훈은 눈을 끔뻑였다. 지금 이 양반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어서.

“자네는 부관과 함께 부대 지휘를 맡아 주면 좋겠군.”

사령관은 동훈의 감각과 상황 파악 능력을 높게 쳤다.

당연하다.

화림에 있던 시절에도 눈독 들인 인재다.

“네?”

황당함에 동훈이 되물으니.

“내가 나가야겠어.”

사령관은 말하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네?”

동훈이 다시 물었다.

답은 없다. 사령관은 그 말만 하고 떠났다.

황당했다.

“고집쟁이 영감탱이.”

옆에서 부관이 중얼거린다. 지금 뭐라고 하는 건가?

제 직속 상관을 몰래 까는 건가?

귀를 의심하며 부관을 보자.

“협회에서 대장님을 그리 부릅니다.”

라고 말한다.

“그럼 전장 조율에 들어가시죠.”

부관이 말한다.

꽤 바쁠 것이다.

사령관의 빈 자리를 채워야 할 테니.

본래라면 사령관이 판단하고 결정할 일이 부관과 동훈에게 주어졌다.

* * *

도안결은 화랑, 변신특수대라 불리는 요원 쉰 명과 함께였다.

써드 오더.

필요한 순간에 제 판단으로 전장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자리다.

물리적으로 도안결의 부대는 안쪽에 있었기에.

그들은 전장을 가로지르는 검은 호랑이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도안결은 그걸 보자마자 저게 누군지 알았다.

“화랑입니까?”

서포트 오더가 묻는다.

“아니.”

도안결은 숨도 안 쉬고 답했다.

변신족 쉰과 도안결은 그 선을 눈으로 따라갔다.

과격하다. 거칠다. 그러면서 유려하다.

피하고 때리고 차고 가른다.

“끼얏호!”

어흥, 크허헝, 사이에 환호를 터트린다.

저 미친 새끼.

도안결은 그리 생각했다.

그러면서 숨이 가쁘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이유를 찾는다. 평소에는 숨겨 둔 본능이 똬리를 풀고 고개를 든다.

변신족은 본능에 휘둘리기 쉽다.

그중에서 도안결은 아주 특별한 인재였다.

그는 냉정했고 차가웠다.

그런데 지금 그 차가움에 열기가 치민다.

왜?

스스로 되묻는다.

그 눈이 검은 호랑이가 가른 길을 쫓았다.

그가 가른 길 사이를 스멀스멀 채우는 인베이더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전원 변신 준비.”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다.

평소에 도안결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판단.

기분 내키는 대로 입을 열었다.

냉정한 이성이 그리하면 안 된다고 하다가 곧 이성도 포기했다.

광익이 가른 길이 이 전장을 승리로 이끄는 것처럼 보였으니.

“크릉.”

도안결의 말에 반항하는 변신족이 하나도 없다.

그럴 만도 했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전부 심장이 요동쳤으니.

이유? 모른다.

그저 저 검은 호랑이가 한 일에 피가 끓을 뿐.

눈앞의 인베이더가 다 죽이고 싶다.

한 줄의 명제가 그들을 이곳에 이끌었으니.

그 명제에 맞춰서 하면 될 일이다.

우드득.

전신에 회색 털이 솟는다. 도안결은 곧 반인반수, 회색 늑대의 머리를 가졌다.

휘하 오십의 머리도 같다.

이들은 회색 늑대 부대.

무리 지어 상대를 찢어발기는 화랑의 정예 부대다.

“아우우우!”

근 몇 년 만에 도안결은 하울링을 뱉었다.

그리 뱉으며 그는 조금이나마 흥분을 가라앉혔다.

아우우우우!

그 뒤로 쉰의 변신체가 울부짖는다.

그들은 내달렸다.

검은 호랑이가 만든 길로 들어서며 좌우로 손을 뿌렸다.

피비비비비비비비빙!

허공을 가르는 핸드 불릿이 좌우로 수십 개가 뿌려진다.

퍼버버버버벅!

당연하게도 맞은 걸 뚫진 못했다.

리빙 아머의 트라이앵글 필드가 그걸 막았다.

“붐.”

안결만큼 흥분한 서포트 오더가 입술을 달싹였다.

꽈과과과과광!

그와 동시에 그들이 달리는 좌우로 폭발이 일어난다.

접착 폭탄이다.

핸드 불릿으로 만든 신무기가 화려한 폭죽을 날린다.

도안결과 늑대 쉰 마리는 그리 내달렸다.

아우우우!

거듭 하울링을 뱉어 내며.

* * *

우미호는 눈을 깜빡였다.

전장이 돌아가는 꼴과는 별개로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미 전장 전체가 패널처럼 반듯하게 나뉘어 있었다.

혈통이 아닌, 재능의 영역이다.

그리 나뉜 전장을 쪼개고 분석한다.

모든 게 순식간에 이뤄진다.

눈빛이 검게 가라앉는다.

떠오르는 해를 등진 그녀는 상황을 인지했다.

동훈과 연락이 닿진 않지만, 하지만 그 선배라면.

‘알아서 하겠지.’

이걸 놓치는 머저리는 아닐 것이다.

우미호는 지금 전장 내에서 광익의 움직임을 제대로 인지하고 파악한 사람 중 하나였다.

“난 돌아가야겠는데.”

광익의 어머니가 말한다.

“1분만요.”

미호가 그 말에 답했다. 답하고 전력을 확인한다.

메두사의 눈.

비약 인간 저격수.

비대칭 전력의 변신족 둘.

불멸특수대 정예급의 불멸자 둘.

광변환 초능 특수종 하나.

짐 덩이 하나.

‘이거로 될까?’

안 되도 되게 해야 한다.

제 월급의 주인이 저 안에서 한 일에 반응해야 한다.

그게 월급 받는 사람의 의무 아닌가.

미호는 헬멧을 고쳐 쓰며 홀로그램을 띄웠다.

“한정직 씨.”

“네.”

“짐 덩이 안고 복귀합니다.”

거친 워딩이 튀어나왔다.

“누가, 누가, 짐 덩이냐.”

기남이 반항한다.

대답할 필요는 없다. 한가한 시간이 아니다.

“테러리스트, 한 번에 몇 잡아 둘 수 있죠?”

“전직이야. 셋. 그 이상은 무리야?”

로즈가 답했다.

“시간은?”

“1분 내외.”

대답을 들은 우미호의 말이 빨라졌다.

“정아 선배, 포지셔닝 잡아 주세요. 간격 스무 보 이상 잡아요.”

“오케이.”

김정아는 판을 짜는 것보다 제 역할에 충실할 때 더 빛을 발한다. 그녀는 그런 자신을 잘 알았다.

캐쉬 히포 탄을 수급할 순 없으니, 활로 저격수의 역할을 대신할 것이다.

이동 포대 포지션.

김정아는 한 마디로 우미호의 말을 알아들었다.

“요한, 귀태, 정아 선배 호위.”

저격수는 홀로 둘 수 없다.

“난 네 옆에서…….”

귀태가 중얼거리다가 미호의 살벌한 눈빛에 입을 다물었다.

한두 번 본 눈빛이 아니다. 저런 눈빛에 말대꾸하면 정말 사람을 이렇게 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경멸 어린 눈빛을 보낸다.

귀태는 입을 다물었다.

요한은 머리가 좋은 편이었다.

미호가 하는 말의 취지를 깨달았다.

“네가 중앙에서 기어?”

요한이 물었다.

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특수대에 있던 진형 중 하나였다.

중앙에 있는 사람이 속도를 조절한다.

돌파와 쇄도할 때 쓰는 전술 진형이다.

“두 분이 멈춘 인베이더를 부숩니다. 변신해서요.”

미호가 말한다.

그 말에 강슬혜와 마리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

“딸?”

“마리는 자신 있어요.”

대답이 됐다.

메두사의 눈은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러니 변신족 둘은 변신체로 날뛸 수 있다.

그들이 할 일은 멈춘 인베이더를 부수는 것.

“오라버니께 가는 건가요?”

마리가 손을 들었다.

말 잘 듣는 모범생 같은 태도와 순진무구한 얼굴이다.

저런 얼굴로 도끼 두 자루를 휘두른다. 그 부조화가 참으로 묘한 장면을 연출하곤 했다.

“아니요.”

미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슬혜의 왼쪽 눈썹이 꿈틀했다.

아들이 하는 짓을 보니 구하러 가야 할 것 같은데 무슨 말인가 싶었다.

“우리는 대표가 갈고 닦은 길을 넓히러 갑니다.”

우미호는 광익이 한 일의 여파를 확실히 알았다.

그걸 위해.

“신호탄 있지? 다 터트려.”

미호가 말한다.

요한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간이 떨리는 일이지만, 이상하게 웃음이 나고 광익이 지나간 궤적을 보니 가슴이 뛴다.

맹세코 머리털 나고 이리 싸우고 싶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하물며 저런 살벌한 무리를 앞두고 이런 기분이라니.

요한은 신호탄 개수를 확인했다.

돌격 신호를 표시하는 탄이 네 개였다.

“좋아요. 가죠.”

미호가 말한다.

한 걸음 뒤처져 정직의 등에 업혀 있던 짐 덩이가 그 말에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내려놔라. 나도 싸운다.”

기남이다.

뒤를 흘끗 본 미호가 말했다.

“뒤통수라도 후려쳐서 데려가요.”

“네?”

진심인가 저게?

정직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기남이 몸을 배배 꼬며 내리려 하자, 결심하고는 한 손으로 기남을 받치고 다른 손을 뒤로 뻗었다.

그 손끝에는 적당한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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