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 끼얏호
난 변신하며 하나의 생각에 집중했다.
인베이더를 죽이자.
난 그렇게 했다.
그보다 즐거운 일이 없을 것이므로.
피가 끓고 심장이 널뛴다.
주변에 인베이더가 널렸다.
이 모든 것이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날 위한 만찬이 사방에 널렸다.
바퀴가 하나 늘어난 휠 나이트의 움직임은 역동적이었다.
끼리리릭!
바닥을 긁으며 바퀴에 추진력을 더한다.
카가가각.
반쯤 깨진 아스팔트 도로 위를 묵직한 바퀴가 밟으며 속도를 냈다.
부아아아앙!
고속으로 달리는 묵직한 오토바이가 내달려오는 것 같았다.
원뿔 창이 달린 두 놈이 정면에 있다.
와아아앙!
그에 맞춰, 좌우 한 놈씩 곡선 주행을 하는 게 둘.
웅.
머리 위에도 있다.
리빙 아머, 보랏빛 장막을 두른 놈이 칼을 치켜든다. 뒤에서도 두 놈의 리빙 아머가 찌르기를 시도한다.
이 새끼들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합이 잘 맞는다.
이들이 진짜 군대였다면 정예 중의 정예라 할 만했다.
청기사 새끼가 얘들을 훈련시켰다면, 그 새끼야말로 올해의 교관상을 받아야 하리라.
그만큼 짜임새 맞는 공격 패턴이었고.
난 그게 더없이 기뻐, 기쁨의 환호를 내질렀다.
“크헝!”
변신체 덕분에 그 환호는 초저주파 하울링이 됐다.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왼발로 땅을 찍는다.
쿵.
땅이 파인다. 그대로 땅을 박찼다.
앞으로 내달리며 4번 타자를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꽝!
아다만티움 쇳덩이에 맞은 창이 위로 치솟았다.
치솟은 창은 위에서 내려오던 리빙 아머의 칼날과 만났다.
까-앙.
경쾌한 쇳소리가 터진다.
그 쇳소리가 터지기도 전, 오른쪽에서 짓쳐 들어오는 원뿔 창끝을 손톱으로 찍었다.
푹.
푸딩이라도 된 듯 원뿔 창대가 푹 파인다.
찍은 채로 휘둘렀다. 무기와 몸이 하나이기에 휠 나이트의 몸뚱이가 그대로 끌려왔다.
4번 타자만큼 단단하진 않으니, 휠 나이트 몽둥이는 6번 타자쯤으로 치면 됐다.
넌 이제부터 내 6번 타자다.
손톱에 찍힌 휠 나이트를 몽둥이 삼아 휘두른다.
깡! 꽝!
뒤에서 꽂히는 칼날이 등에 닿을 듯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몸을 틀자, 칼날이 옆구리를 스친다.
몸을 트는 힘 그대로 원심력을 이용해 6번 타자와 4번 타자를 양손에 쥐고 팽이처럼 돌았다.
꽈가가가아아앙!
말로 표현하기 힘든 굉음이 연신 울렸다.
달려드는 모든 공격을 파훼하고 부순 뒤, 숨이라도 고르는 듯 주춤 물러난 리빙 아머 하나를 노리고 부드럽게 허리를 접었다 펴면서 몸을 휘돌리며 발바닥으로 찼다.
동작은 한없이 부드럽지만, 그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꽈-앙!
덤프트럭에 충돌한 듯, 발바닥에 맞고 날아간 놈은 볼링핀 쓰러지듯 후두둑 몇 놈을 쓰러뜨렸다.
쓰러진 놈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삐죽 솟은 발톱으로 걷어차니, 종잇장 찢어지듯 휠 나이트 하나가 쫙 하고 세 갈래로 갈라졌다.
양손에 쥔 4번 타자와 6번 타자도 쉴 틈이 없다. 때리고 또 때린다.
막는 거로 시간을 낭비할 순 없다.
그러니 공격은 피한다.
휭, 훙.
원뿔 창, 칼날, 악의가 가득한 공격이 귓가와 볼, 허벅지 옆구리를 스치며 지나쳤다.
서커스 단장이 보면 거금을 주고 모셔 갈 묘기의 연속이다.
허리를 젖혀 피하고 발등으로 바퀴를 걷어차고.
옆으로 구르는 척하다가 4번 타자 총구 끝으로 땅을 짚어 그걸 지지대 삼아 가위 차기를 한다.
발에 맞은 놈은 고무공이라도 된 듯 튕겨 나간다.
몸을 휘돌리며 너덜너덜해진 6번 타자를 버리고 손톱을 치켜세운다.
쭉, 찍, 퍽.
찌르고 찢고 때린다. 신이 난다. 너무도 신이 나.
“크힛.”
나도 모르게 침을 흘렸다.
불멸특수대 시절의 블런트를 비롯한 어떤 마약보다 강렬한 아드레날린이 내 뇌를 가득 채웠다.
“크허허엉!”
그 모든 감정을 담아 하울링을 뱉어 냈다.
죽인다. 전부 죽인다.
이 즐거움을 누구에게 양보하지 않으리.
눈앞의 모든 건 내 사냥감이다.
의지를 담은 살기가 퍼진다.
의미 없는 살기다.
인베이더는 공포를 모른다.
비명도 없고 신음도 없다.
하울링에 실린 초저주파를 무시한 채, 무생물인 듯 다시 다가온다.
아, 그래서 너무 좋아.
겁먹고 도망갔으면 얼마나 곤란하겠나.
눈먼 개나 오크 같은, 생물에 가까운 인베이더는 가끔 도주해서 골치를 썩이곤 하는데, 이 새끼들은 그럴 일이 없잖아.
다시 달려드는 놈을 향해 무릎을 치켜세웠다.
타이밍 좋게 팔뚝이 무릎에 걸렸다.
떵.
맞은 놈의 바퀴가 위로 뜬다. 그놈을 허리를 휘돌리며 어깨와 등으로 이어지는 면으로 때렸다.
고법(靠法)이다.
꽝.
맞은 놈이 날아간다. 그걸 보며 뒤에서 날아오는 칼날을 피하며 백핸드 블로를 날렸다.
손등에 리빙 아머의 머리통이 걸렸다.
펑!
놈의 머리가 가죽 공처럼 터졌다.
철판 조각이 사방으로 튄다. 내 몸에도 튀긴 했지만, 생채기 따위는 무시했다.
자잘한 상처는 생기기 무섭게 바로 나았다.
변신했다고 내 불멸의 피가 어디 가진 않는다.
그리 움직이며 연속 동작인 듯 품에서 나이프를 꺼냈다.
땅을 차고 허공에 몸을 띄우자, 땅과 수평이 된다.
휘리릭 하고 허공에 회전하자, 내가 있던 자리로 휠 나이트의 창 두 자루가 교차했다.
놈들이 교차하며 빠져나가기 직전에 한 놈은 발끝으로 차고 다른 한 놈은 이마로 들이받았다.
머리가 부서진 휠 나이트 둘이 바닥에 퍽- 하고 꼬꾸라졌다.
그리 묘기를 부리면서도 손은 쉼 없이 움직였다.
팅.
나이프 꼭지를 비틀어 빼 아다만티움 와이어를 꺼냈다.
와이어 끝을 잡아 4번 타자 손잡이에 걸고 매듭을 만들었다.
이 모든 게 공중에 뜬 채로 한 짓이다.
탁.
외발로 바닥에 서서 마저 와이어를 뽑아내, 나이프 밑동으로 와이어를 잘랐다.
두둑 하고 잘린 와이어 길이를 가늠하고는 흡족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위이잉.
그 말에 반응이라도 하는 듯 휠 나이트의 투구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진다.
“꼬우면 덤비든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를 향한 도발은 얼마나 의미 없는 짓인가.
그러니 우리 사이에 무슨 말이 필요하다고.
인베이더와 내 사이에 필요한 건 폭력뿐이니.
4번 타자를 바닥에 떨궜다.
쿵 하고 바닥이 푹 꺼진다. 와이어 끝을 잡아 손에 몇 번 감았다.
탄성은 없지만, 단단한 거로 치자면 아다만티움이 최고다.
고로 쉬이 끊어질 일이 없다는 거다.
인베이더와 내 머리 위로 완전히 동이 터 밝은 햇볕이 내리쬔다.
맑은 날이다.
난 햇볕이 인도하는 길을 봤다.
착각일지도 모르나, 나한테는 길로 보였다.
그 빛의 길로 내달리는 게 내가 할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손에 감은 와이어를 당기며 위로 손을 치켜들었다.
윙.
와이어 끝에 감긴 건, 4번 타자.
퉁 하고 허공에 아다만티움 쇳덩이가 치솟는다.
난 와이어를 쥔 손을 저으며 원을 그렸다.
와아아아아앙!
대형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내 머리 위에서 나기 시작했다.
주춤.
이 새끼들 봐라?
이제까지 주저 없이 달려들던 인베이더가 주춤하는 듯했다.
공포를 모르는 게 자랑인 쇳덩이 인베이더가 주춤해?
빠져 가지고.
“튀면 진짜 뒈진다.”
진심을 담아 말하고, 와이어에 달린 4번 타자를 휘둘렀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가강!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묵직한 폭력이 땅 위에 내려앉는다.
양팔의 근육에 불끈불끈 힘이 들어갔다.
거침없이 휘둘렀다. 창을 들어서 막으면 부러뜨리고 트라이앵글 필드를 발동하면 그것도 부쉈다.
원심력을 한껏 받아 돌아가는 4번 타자는 그야말로 최고의 흉기다.
“이얏호!”
더없이 신났기에 절로 환호가 터졌다.
이번에는 변신체의 울음소리가 아닌 진정 어린 환호가 튀어나왔다.
그만큼 즐거웠다.
* * *
청기사는 주변 모든 통신을 먹통으로 만든다.
그걸 알면서도 대비를 하지 않는다면 머저리나 다름없었다.
지휘부 계통은 주문 계열 통신 부적 따위를 가졌고.
그 외에는 갖가지 방법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했다.
그래서 멈출 수 있었다.
“야, 시발, 저거 뭐냐?”
협회 소속 텔레파시 초능 특수종.
즉, 현재 각 부대의 전달책이었다.
“뭐?”
막 인베이더 무리 진형 전체를 아우르는 포위망을 형성하며 좁히려는 중이다.
정신없이 상황을 전달하고 전황을 전달하기 바쁜 상황이다.
검은 호랑이 하나가 만들어 둔 돌파구를 이용해 이 전장을 승리로 만들어야…….
“와, 시발.”
절로 욕이 나왔다.
생각이 끊긴다. 상상의 범주를 벗어나는 일을 보고, 인간의 뇌는 잠시 제 의무를 버렸다.
꿈뻑.
“보고, 보고해.”
먼저 정신 차린 쪽이 말했다.
전황을 보는 천리안 계통의 능력자였다.
그가 본 걸 전하는 게 바로 옆 능력자의 일이었다.
“뭐라고?”
“본 대로 전해.”
그 말에 텔레파시 능력자는 먼 곳에 있는 자신의 페어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그 메시지를 받은 건 협회 지휘부의 능력자였다.
그는 받은 내용을 허공에 이미지로 띄울 수 있었다.
즉, 지금 텔레파시 능력자가 보는 걸 타인에게 전할 수 있다는 거였다.
지휘부에 있던 페어의 뇌리에 이미지가 전해진다.
그와 동시 황당함을 느꼈다.
‘뭐냐, 이건?’
한참 이미지를 되새기던 페어는 신중하게 말을 골라 텔레파시를 보냈다.
‘너 뭐 하냐? 꿈꾸냐? 꿈꾸는 장면 보내면 어쩌라고, 병신아. 똑바로 안 해? 상황 심각한 거 몰라?’
생각을 송신하는 건, 감정이 섞이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말투에 제 감정을 담아야 했다.
짜증을 평소의 2배로 담아 보냈다.
그럴 만도 했다.
포위망을 형성하고 어떻게 진입해서 저것들과 싸울지 정리하는 중이다.
즉, 전황 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전황을 전하라고 하는 거고.
근데 이 새끼가 제 망상을 보내고 있지 않나.
가끔 텔레파시가 오가다 보면 흔히 있는 일이었다.
하필 지금이라 그런 거지.
‘진짜다. 미친년아.’
상대가 다시 제 생각을 던졌다.
일란성 오누이는 평소와 같이 다정한 대화를 나눈 끝에 망상 따위가 아님을 알았다.
곧 영상 출력 준비를 마친 특수종이 제가 본 걸 허공에 띄웠다.
“전황입니다.”
한마디 말과 함께 허공에 이미지가 그려진다. 파란 선이 이어지며 그림처럼 환상이 일어난다.
홀로그램보다 더 현실적인 이미지가 지휘부의 머리 위로 생겼다.
“……뭐야, 저거, 음, 음?”
누군가 중얼거렸다.
다들 침을 삼킬 생각도 못 했다.
검은 그림자 변신체 하나가 적군 인베이더 사이를 돌파하는 건 그들도 안다.
그게 반전의 계기가 돼서 여기에 있는 거고.
“볼 꼬집지 마라. 꿈 아니니까.”
착용형 사이오닉 기어, SA의 충전을 위해 돌아온 부협회장이 말한다.
그녀는 땀에 젖은 머리칼을 뒤로 당겨 묶었다.
“저건 괴물이야.”
화면에는 홀로 인베이더 무리를 쓸어버리는 괴수가 있었다.
한 손에 와이어 따위를 감더니, 그걸 휘돌리며 적을 분쇄한다. 그러면서 끼얏호 따위의 환호를 내뱉는다.
누가 봐도 정상으로 볼 수는 없었다.
* * *
협회가 보는 장면을 불멸특수대와 단군 그룹 수뇌를 포함, 유일부대 사령관도 봤다.
혼자 보기 아까운 장면이라 보여 주는 게 아니라, 다들 알아야 그에 맞춰 움직일 거 아닌가.
그들의 판단은 탁월했다.
그 지휘부 사이에는 이동훈도 있었으니까.
“포위로 끝내면 안 됩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을 감수하며 동훈이 말했다.
“그럼?”
불멸특수대의 박영돈이다. 그가 퀭한 눈으로 되물었다.
유일부대장인 사령관의 시선도 꽂힌다.
포위에서 야금야금 주변을 깎아 먹는 작전이 최선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그랬으나, 상황이 변했다.
고로, 지금 동훈은 그 말에 정면으로 반박해야 했다.
‘미친 자식.’
속으로는 광익을 욕하고.
눈으로는 전황을 읽고.
귀로는 상황을 들으며.
머리는 생각하기 바빴으니.
그의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돌아갔다.
동훈의 눈이 빛난다.
그와 동시에 입이 열렸다.
“전력을 동원해 안쪽을 파고들어야 합니다.”
“인베이더 사이로 돌격하잔 겁니까?”
단군 그룹 소속의 지휘관이다.
변신족답지 않은 말쑥한 인상이다.
“네.”
“미친 겁니까?”
동훈의 대답에 숨도 안 쉬는 답이 돌아왔다.
미친 건 유광익 새끼지.
동훈은 속으로 읊조리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미치긴 했지만, 정말 환상적으로 미쳤기에 욕할 수 없다.
감옥에서 나오면 봤던 광익에게 느꼈던 후광은 거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저 안, 검은 호랑이는 세최특입니다. 그 세최특이 긋는 선을 보시죠.”
유일부대 중 몇몇이 미간을 찌푸렸다.
개소리 지껄이지 말라고 하고 싶은 얼굴이다.
동훈은 사방에서 꽂히는 시선을 의연히 받아넘긴 뒤, 한 명만 눈에 담았다.
어차피 설득해야 할 사람은 한 명뿐이지 않나.
이 작전의 총책임자인 유일부대의 대장이자, 사령관.
“가로지르는 선을 자세히 보면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하기에 그와 눈을 맞춘 뒤, 말했다.
사령관이 미간을 찌푸렸다.
불쾌감이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동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려는 때.
이미지 너머, 미쳐 날뛰는 검은 호랑이가 뭐라 외친다.
그 소리가 닿을 순 없다.
하지만 이곳에는 저 흐릿한 영상의 입 모양만으로 대화 내용을 읽을 독순술의 대가도 있었다.
사령관의 부관 중 하나가 그 입술을 읽었다.
“뭐라고 하는 건가?”
사령관이 손바닥을 펼쳐 동훈에게 잠깐 기다리라 표시하고 물었다.
“끼얏호라고.”
부관이 조심히 중얼거렸으나, 여기서 그걸 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저기서 신나서 날뛰는 거라고?”
경찰 특공대장이 말한다.
참으로 황당했기에.
그건 모두 마찬가지였다.
동훈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다만, 여기서 멈출 수 없을 뿐.
“진입해야 합니다.”
동훈은 한 번 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