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 변신
“위험한데.”
“그러게.”
눈을 뜨니, 어머니와 통나무 선생이 말을 나누는 게 들렸다. 둘이 나란히 서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뭐가요?”
묻고 나서 보니 피부에 닿는 바람이 차다. 몸을 내려다보니 걸친 게 없다.
나 왜 알몸이냐?
통나무 선생의 눈이 내 몸을 위아래로 훑는다. 간신히 수건 한 장이 허벅지 사이를 가렸다.
“고놈 참 실하네. 화룡점정이 될지, 작고 귀여울지 궁금하네.”
선생의 눈이 하체에 머물렀다.
“성희롱이다. 이 년아.”
통나무 선생의 말에 어머니가 피식 웃으며 말하곤 한마디를 덧붙였다.
“한 번 보는 데 이백이다.”
“알몸 한 번 보는데 뭐가 그렇게 비싸니?”
“일류 스트리퍼의 자질이 있으니까.”
어머니? 아들을 왜 스트립쇼의 주연으로 만드시나요.
눈을 깜빡이다가 기억을 되돌렸다.
난 여기서 왜 알몸으로 두 여자에게 몸 평가를 받고 있는가.
인듀어 훈련이 끝나고 명상.
극기 훈련 뒤, 변신체 훈련에 돌입했다.
몸에 털이 자라고 변신 각성 때처럼 피가 뜨거워지는 듯했다.
그리고 기억이 끊겼다.
“변신체가 아닐 때는 본능 따위에 휘둘리지 않더니.”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지.”
어머니와 통나무 선생이 다시 말한다.
난 그제야 내가 변신체가 된 이후 기억이 끊겼다는 걸 깨달았다.
태어나 처음 겪는 블랙 아웃이다.
생소하다.
신기한 경험이기도 했다. 또 변신하면 또 이러려나.
“혹시 제가 실수라도?”
기억이 없는 동안 본능에 휘둘리는 변신체는 미친 짓을 하기도 한다.
설탕을 퍼먹거나 사탕을 씹어먹는 건 양반이고.
혼혈 중에는 강간범이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며.
때로는 숨겨 왔던 욕구를 터트리기도 한다.
내가 평소 욕구불만이 있던가?
딱히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런 날 보고 어머니와 통나무 선생이 웃는다.
“아들, 우리 아들.”
어머니가 날 부르며 처연한 미소를 짓고.
“풉.”
통나무 선생은 입을 가리고 웃음을 터트린다. 저건 웃음을 참는 게 아니라 들으라고 저러는 거다.
더 묻고 싶지 않았다.
“됐습니다. 네, 안 들을게요.”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 훈련 상황을 녹화해 뒀다. 녹화된 장면을 통해 내 변신체를 봤고, 내가 한 짓도 봤다.
별 건 없었다.
변신체가 좀 특이하긴 하고 내가 답지 않게 흥분해, 잡소리 좀 늘어놓은 거 빼고는.
“여자, 돈, 좋아!”
“여자, 돈, 좋아!”
이렇게 두 번 외치고.
“인베이더 죽여!”
“인베이더 죽여!”
“테러범 새끼들 덤비며 조진다!”
따위의 말을 여러 번 외쳤다.
참 다행이지.
어머니와 통나무 선생만 이걸 봤으니.
이후 변신체 훈련에 꽤 시간을 할애했다.
“변신족이 첫 변신에서 기억을 잃는 일은 원래 많아. 변신할 때, 초점을 하나에 맞추고 해 보렴. 눈앞에 생크림 케이크를 두고 변신하자마자 그걸 먹어치우겠다고 되뇌거나, 아니면 옷을 입는다거나 하는 그런 거.”
어머니의 조언을 따랐다.
변신 후, 하나의 행동에 집중했다.
조용히 숨을 고르는 것.
“……네 아들, 진짜 재수 없다.”
통나무 선생이 말했고 난 이걸 변신 후에 들었다.
기억 단절은 없었다.
블랙 아웃은 한 번이면 충분했다.
변신체 몸을 쓰는 법을 익히는 데는 30분이면 충분했고.
변신 이후 생기는 본능 절제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숨 쉬는 걸 배우듯 모든 게 수월했다.
그래서 배우고 익힌 걸 넘어서 내 것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불멸자의 전투법도 그리하지 않았나.
갖가지 격투 기술과 비전을 배웠고, 내 식대로 해석하고 소화했다.
그게 맞는 방법이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았지만, 가야 할 길이 보인다.
“내 아들이지만, 내가 봐도 재수가 없다.”
지켜본 어머니가 말했고.
“나 왜 서럽냐.”
변신체 훈련에만 3년이 걸린 긍낙이 삼촌이 날 보고 중얼거렸다.
“세상 더럽게 불공평해.”
삼촌은 그리 말하고 일주일이나 찾아오지 않았다.
뭐가 그리 충격인지.
나중에 동훈이 형도 날 보고 놀라긴 했지만, 충격을 받진 않았다.
“네가 한다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된다.”
라고 말했을 뿐.
뭔가 포기한 사람의 말투이긴 했다.
그 뒤에도 어머니, 긍낙이 삼촌, 통나무 선생이 입을 모아 말했었다.
내 변신체를 외할아버지가 보면, 당장 빌딩을 쥐여 주고서라도 데려오고 싶을 거라고.
변신체 중에서도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특질.
난 고대종의 변신 형태를 이었으니.
* * *
고대종, 원시종이라 부르기도 한다.
현시대에 존재하지 않는 개체다.
난 그중 하나의 피를 개화했다.
아주 드문 경우였다.
순혈 변신족 중에서도 쉬이 개화되지 않는 혈통이다.
그걸 혼혈인 내가 뚫었다.
마카이로두스(Machairodus).
별칭 검치호(劍齒虎).
긴 송곳니를 가진 고양잇과 맹수.
사방에서 짓쳐들어 오는 인베이더 사이에서 난 4번 타자의 방아쇠를 연신 당겼다.
트라이앵글 필드가 아무리 단단해도 근거리 아다만티움 산탄을 막을 수는 없다.
몇 마리가 산탄의 제물이 된다. 왼발을 축으로 몸을 휘돌리며 정글도를 뽑았다.
원심력을 담은 칼날이 팔 하나 거리로 다가온 휠 나이트의 머리통을 때린다.
까-앙!
금속음이 터진다. 머리가 젖혀지는 놈의 머리통에 긴 상흔이 남았다. 뻗어 내는 것과 동시 정글도를 회수.
균형감이 엉망인 칼을 완력으로 잡아채, 찔렀다.
옆에서 보면 마치 휘두르고 찌르는 동작이 하나처럼 보이는 묘기다.
깡.
묵직한 반발력이 정글도 손잡이를 통해 느껴졌다.
그래도 목에 구멍은 뚫었다. 팔에 힘을 준다. 이두와 삼두가 터질 듯이 부푼다. 철완의 완력을 담아 꽂은 칼을 옆으로 당겼다.
후칵!
정글도가 휠 나이트의 목에서 빠져나오면 목에 갈기갈기 찢긴 흉터를 남겼다.
목이 반쯤 찢긴 놈이 쓰러진다. 그 뒤로 투구의 바이저 부분이 빛나는 수십의 인베이더가 더 달려드는 게 보였다.
끊이지 않는 파도다. 웨이브 형태로 달려드는 인베이더의 파도였다.
아찔함이 머리를 뒤흔든다.
그와 동시에 심장이 평소의 몇 배로 뛰었다.
가끔 날아오는 캐쉬 히포의 탄이 상대를 제지한다. 머리통을 맞은 놈이 옆으로 기우뚱 쓰러진다. 그래도 거기까지다.
갑주와 주문.
두 개로 무장한 리빙 아머와 바퀴 셋을 달고 곡선 돌진을 하는 휠 나이트 수십을 저지하기에 저격수 하나는 부족했다.
하물며 그 탄이 일격일살이 되지도 않은 판이니.
이제 뒤로 빠져야 할 텐데.
인베이더 새끼들 하는 꼴을 보니, 계속 저격하면 위치 걸리는 것도 금방일 것이다.
하물며 연발 수준으로 쏘는 중이니, 포지션을 바꾸지도 않는다는 거니까.
금방 쫓아갈 텐데 말이야.
정아 누나의 걱정은 뒤로 접어뒀다.
픽 하고 원뿔 창 하나가 볼을 스쳤다.
쓰고 있던 페이스 가드의 볼 부분이 일그러졌다.
헬멧을 벗어 던졌다.
가까이 오던 리빙 아머가 왼팔에 달린 칼로 내 헬멧을 뀄다.
쿵. 쿵. 쿵.
두근두근 뛰던 심장 박동이 무거워진다.
쿵쿵쿵쿵쿵쿵쿵쿵!
박동이 몇 배로 빨라진다.
혈류가 돈다. 피가 끓는다. 아랫배부터 시작된 뜨거운 피가 전신을 휘돈다.
이거로 준비는 끝이었다.
끓어오르는 피가 내 몸을 변형시켰다.
쑥.
잇몸 사이로 긴 송곳니가 먼저 튀어나온다. 이어, 전신에 털이 쑥 자라 몸을 덮는다.
골격이 커지고 눈높이가 달라진다. 근육이 두꺼워지고 피부는 가죽처럼 질겨진다.
그 모든 변화가 여실히 느껴졌다.
순식간에 주변 모든 것이 느려진다.
변신체가 되면 평소의 몇 배에 달하는 동체 시력과 운동 능력을 얻는다.
완력, 순발력이 몇 배로 늘어난다.
마약도 안 먹었는데 아드레날린이 끝없이 용솟음친다.
불멸자에게 불감가학병이 있다면, 변신족에게도 비슷한 병이 있다.
단순히 본능 컨트롤 실패에 그치지 않고 변신이란 마약에 빠져 미쳐 버리는 병.
변신중독.
변신족을 싫어하는 이들은 이 중독자를 정신변자(精神變者)라고 부르기도 한다.
변신할 때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에 중독돼 버리는 거다.
보통 그런 변신중독자들은 본능에 휘둘리기 마련이다.
난 그럴 일이 없었다.
변하는 와중에 모든 걸 느낄 수 있으므로.
이 타이밍이다. 변신체 후에도 정신을 잃지 않으려면 여기서 절제다.
쾌락에 몸을 맡기지 않는다.
그래서 필요한 게 극기(克己).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내가 변신 후 정신머리를 잡는 게 재능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어머니 덕이다.
극기 훈련이라 부르는, 산행을 비롯한 갖가지 훈련을 어릴 때부터 해 온 몸 아닌가.
물론 어머니야 나중에 본능에 휘둘리지 말라고 해 주신 거지만.
난 그거면 충분했다.
느려진 시간이 조금 빨라진다. 난 눈알을 굴렸다. 몸은 멈춘 채 눈알만 굴려 주변으로 시야를 뿌린다.
원뿔 창, 칼날 따위가 날아온다.
청기사 이 음흉한 새끼.
리빙 아머의 무기가 전부 같다. 전부 팔 대신 칼을 달았다.
처음 튀어나온, 팔 대신 칼이나 방패, 망치 따위의 이것저것 단 놈들과는 달랐다.
이들이 청기사의 정예다.
그러니 음흉한 놈이다.
게이트 뒤에서 숨겨 뒀다가 꺼내 든 비장의 패 아닌가.
변신은 순식간에 끝났지만, 아드레날린이 뿜어지며 주변 모든 걸 느리게 본 내 뇌는 잡생각을 했다.
그 생각이 이제 귀결.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전장 한가운데, 내가 있던 곳으로.
팔을 들었다. 손톱이 자라난다. 내 눈에 내 팔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팔에 자란 털이 보였다.
검은 털 사이로 푸른 줄무늬.
왜 이런 색깔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변신체는 검치호의 형태였고, 검은 털에 푸른 줄무늬, 그리고 황금색 눈을 가졌다.
손톱을 곧추세운 채로 휘둘렀다.
리빙 아머가 트라이앵글 필드로 막는다. 썰었다.
두부 썰 듯 썰린다. 결 따위가 보이진 않았지만, 그냥 잘렸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놈의 머리통을 그대로 자르고 몸을 여섯 조각으로 쪼갰다.
몸을 휘돌리며 팔꿈치를 휘두른다.
거기에 걸린 원뿔 창이 중간부터 부러진다.
꽈-아앙!
소리가 뒤로 밀린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내밀며 앞차기.
펑!
땅에서 분수가 솟았다. 아스팔트 조각, 시멘트 부스러기, 휠 나이트의 조각 따위가 섞인 분수다.
솟은 분수가 내리쬐는 여명, 아침의 햇빛을 흩날린다.
몸을 돌리며 4번 타자의 손잡이를 잡은 채, 휘둘렀다.
인간형일 때는 묵직했다면 지금은 가볍다.
나이프를 휘두르는 기분이다.
물론 위력은 그렇지 않았다.
가속이 붙은 4번 타자, 아다만티움 덩어리 둔기는 걸리는 족족 다 부수며 지나갔다.
꽈가르응!
천둥 비슷한 소리가 흘렀다.
금속음이 연신 울리며 그런 기묘한 소리를 터트렸다.
4번 타자를 휘두른 자리가 시원하게 비었다.
하체만 남은 휠 나이트의 바퀴가 제멋대로 굴러오더니 내 발밑에 멈췄다.
난 변신 이전부터 참았던 호흡을 뱉으며 그걸 툭 발로 걷어찼다.
“크릉.”
숨이 짐승 울음이 되어 나온다.
아무리 본능을 절제한다고 해도 이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물며 눈앞에 인베이더가 이리 쌓여 있음에야.
흥분을 참기 어렵지 않나.
이게 당분에 미쳐 버린 변신족에게 솜사탕 밭 사이를 나뒹굴라는 것과 뭐가 다를까.
내 주변이 다 솜사탕, 아니 인베이더다.
“크허허헝!”
울음을 토해 낸다. 기쁨의 울음이었다.
다시 움직였다.
땅을 박차고 내달린다. 앞을 막기에 주먹을 휘둘렀다.
변신 후, 피부가 인간형일 때 보다 몇 배는 단단해졌지만, 그렇다고 굳이 맞아 줄 필요는 없다.
공격이 다 보인다.
피하면 그만이었다. 전부 피한다. 못 피하는 건 잡아채거나 흘린다.
그것도 안 되면 주먹을 휘둘렀다.
중간에 정글도도 뽑아서 아무렇게나 휘두르기도 했다.
무거운 칼날 덕분에 밸런스가 엉망인 정글도다. 뭐, 그게 무슨 상관이랴. 이쑤시개를 들고 휘두르는 기분인데.
“하하하하하!”
절로 웃음이 터졌다.
눈앞에 있는 인베이더가 전부 종잇장처럼 바스러지고 부서진다.
이게 어찌 기쁘지 않을까.
난 내달렸다. 눈앞을 가로막는 놈을 다 때려잡으며, 전장을 횡단했다.
딱히 생각하고 움직인 건 아니다.
그저, 인베이더가 모인 곳을 향해 내달렸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