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 누구나 숨겨 둔 칼날은 있다. (1)
쏜즈 나이트의 가시는 변형한다.
그리고 놈의 모체는 휠 나이트다.
유니크 인베이더답게, 후면 약점을 그 변형 가시 갑옷으로 덮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잡을 수 있을까?
하나하나 깨부수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난 더 효율적인 방법을 택했다.
으르르르.
초저주파를 동반한 울음.
어머니와 마리가 동시에 토해 내는 소리다.
거기에 내 살기를 섞는다. 반드시 널 죽여 없애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그 의지가 곧 무형의 압력이 되어 상대를 짓누른다.
일반인이라면, 아니 기가 좀 약한 특수종이라도 오줌을 지리고 기절할 만한 압박감이었다.
말 한마디 없는 무형의 살기가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기세가 곧 상대의 심장을 압박하니, 놈의 반응은 당연했다.
쏜즈 나이트는 나를 포함한 변신족 셋을 향해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애초에 이 작전을 위해 짠 팀이었다.
미호가 날 보고 이걸 예상했냐고 물었었다.
“이거 예상하고 짠 거지?”
당연한 말이다. 시뮬레이션은 괜히 한 줄 아나.
판은 팬더 형과 미호가 깔아 줬으나, 잡는 건 내 머릿속에 나왔다.
놈이 온 신경을 나를 포함한 살기의 주체, 변신족 셋에게 집중한 사이.
쏜즈 나이트의 뒤, 번쩍하고 빛이 터진다.
놈의 몸은 단단하다. 어지간하면 부술 수 없다.
약점이 드러나도 한 방에 끝내야 했다.
그래서 뽑은 카드는 광학병기.
기남의 커스터마이징 장비, 타격 시 접촉할 때 광선을 뿜어 대는 단검.
그걸 짧게 쥔 기남이 쏜즈 나이트의 뒤에서 놈을 세로로 갈랐다.
몸을 역동적으로 비틀며 아래에서 위로 긋는다.
빛이 뒤에서 앞으로 뿜어졌다. 광학병기가 제 몫을 한다. 놈의 몸에 비뚤어진 세로 선이 그어지고, 그 안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후우.”
호흡을 뱉어 내는 기남이 그 뒤에 서 있었다.
쿠드드득.
맞물리던 가시가 허무하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끝이다. 마리가 도끼를 쥔 손에 힘을 빼고 기남이 내 쪽을 바라봤다.
봤냐? 내가 이 정도다?
우리 기남이가 몸짓으로 말한다.
자식이, 하여간 칭찬에 목말랐다.
잘했다고 말해 주려 했다. 막 입을 열려는데 기남이 먼저 입술을 달싹였다.
“시…….”
뒷말을 이을 틈이 없었다. 놈은 말하다 말고 뒤로 몸을 날렸다.
“발.”
뒷말은 내가 이었다.
투두둑.
바닥에는 놈의 몸에서 떨어진 가시 비늘이 반쯤 있었고, 나머지 반은 놈의 몸에 붙어 있었다.
반쯤 쪼개진 놈의 몸 안에서, 파란 불빛이 터진다.
난 왼손을 앞으로 뻗으며, 어머니의 오른 손목을 왼쪽 무릎을 치켜세워 툭 올려 찼다.
폭발력과 압력이 전해지고, 장갑이 내 의지를 받들어 필드를 펼친다.
곧 눈앞에 은하수 방어막, 갤럭시 필드가 펼쳐진다.
웅!
펑!
그와 동시다. 폭발음과 함께 파바박 하고 가시가 은하수 방어막 위에 박혔다. 가시 몇 개가 방어막의 반 이상을 파고들었다.
뒈지기 전 마지막 발악이었다.
“……깜짝이야.”
내가 말했다. 이거 뭐,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갤럭시 필드 없었으면 난 몰라도 어머니와 마리는 아웃될 뻔했다.
죽진 않았어도 큰 부상은 당연했을 것이다.
몸을 틀어 피해를 최소화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막는 게 더 효율적이었기에 그렇게 했다.
다시 움직이진 않는지, 유심히 쓰러진 쏜즈 나이트를 바라봤다.
미동도 없었다.
그걸 보며 한숨 돌리려는데, 마리가 물었다.
“기남이 오라버니는요?”
기남이 서 있던 곳은 폭발 근원지에 가깝다.
난 몇 번 눈을 깜빡이다가 답했다.
“괜찮아. 걔 불멸자야.”
이 정도로 죽을 애가 아니다.
뭐, 전장에서는 이제 아웃이지만, 유니크 인베이더 잡았으니, 제 할 일은 다 했다.
“기남이 수습해서 복귀합시다.”
가뿐한 일이었다.
봐라, 인베이더 새끼들아, 대비한 인류가 이렇게 무섭다.
어느새 전장에서 꽤 멀어진 상태다.
쏜즈 놈이 연신 튀어서 이렇게 됐다.
제자리에서 좀 뒈질 것이지.
“시, 이, 바아.”
기남이는 안 죽었다. 기절도 안 했다.
몸의 반쪽이 피떡이 되고 안구 두 개에 가시가 다 박히긴 했지만.
마지막에 뭘 했는지 몰라도 얘도 비상시에 쓸 보호구 하나쯤은 있었나 보다.
방검방탄복으로 막을 폭발이 아닌데, 꽤 멀쩡했다.
물론 의사가 본다면 이게 멀쩡하냐고 역정을 낼 것 같긴 하지만, 폭발에 비해 멀쩡하다.
슬쩍 보니 가슴팍 부근, 찢긴 방검방탄복 사이로 잿빛 가루가 흩어지는 게 보였다.
일회용 주문이 새겨진 방어구였다.
꽤 비싸긴 하지만, 일회용이기에 구할 만한 스펠 기어다.
스크롤 개념인지라, 암시장만 가도 구할 수 있는 물건이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눈이 없다면 사기당하기 제일 좋은 물건이기도 하고.
호남이 형이 마법 재능이 있으니, 구해 줬겠지.
정작 기남이 놈은 뭔지도 모르고 가지고 있었나 보다.
“이런 게 있으면 자기나 쓸 것이지.”
덕분에 저렇게 말할 정도로 멀쩡하잖아.
안구가 상하고 내장 일부가 상했고 왼 다리가 날아갔다.
최소 두어 달은 쉬어야 할 거다.
“괜찮냐?”
“이게 괜찮아 보이냐?”
“아프냐?”
“안 아프겠냐?”
괜찮네.
“마리야, 얘 좀 데리고…….”
말이 끝나기도 전이다.
쩡.
굉음이 울리기에 고개를 돌리니.
균열이 깨진 사이에서 기묘한 광경이 보였다.
“……음?”
홀의 안쪽, 게이트가 열리며 나오는 인베이더가 보인다.
도열 한, 정말 칼 각을 맞춰 줄을 맞춰 나오는 인베이더 무리였다.
숫자가 꽤 많다.
본래 아무렇게나 뭉쳐 있는 것보다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게 더 기세가 좋은 법.
나오는 기세도 더 좋았다. 이제까지 나온 놈들과 다른 인베이더처럼 보일 정도로.
그리고 그 뒤로 푸른 번개를 동반한 인베이더의 팔뚝이 보였다.
두툼한 푸른 갑주의 팔, 청기사의 것이었다.
생각보다 빠른 출현이다.
하지만 난 청기사보다 그 앞을 몰려나오는 인베이더를 보며 미간을 찌푸려야 했다.
예상 밖의 상황이었다.
* * *
“NS는 신생 회사다. 거기에 밀릴 수는 없잖아.”
이장모가 말했다.
그 말에 동의한 넷이 고개를 끄덕인다.
불멸자의 감각으로 스텔스 나이트를 잡을 수 있을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일부 지역을 특정할 수 있으면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그놈이 어디에 있을 줄 알고?
그래서 그들은 과학의 힘을 빌렸다.
동이 트기 직전, NS가 쏜즈 나이트를 짓누르기 전이다. 화림은 먼저 움직였다.
이장모는 지휘부의 지시를 기다렸다.
소수 정예 타격 작전이라고 하지만, 이쪽이 유리한 점이 있다면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들은 그렇게 했다.
전장을 쪼개, 적외선 탐지를 시도했다.
이 탐지를 위해 화림 분석팀이 다 달려들었다.
스텔스 나이트의 체온은 60도가 넘는다.
일반 인베이더보다도 높다.
“D 구역, 하위 3구역.”
전 지역을 알파벳 순으로 나누고 또 숫자로 나눴다.
그렇게 찾아낸 일부 구역.
불멸자 다섯이 내달렸다.
감각을 극대화한다. 이장모도 그렇게 했다.
여기서 스텔스 나이트를 찾는 것도 일이었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 이미 약점을 아는 상대이기에, 그들은 약점을 활용했다.
“정호남.”
호남이 나섰다.
황금 리볼버, 스펠 기어를 들고 겨눈다.
총구를 겨눈 호남이 방아쇠를 당겼다.
딸깍.
퉁.
총성에 어울리지 않는 소음이 났다.
날아간 총탄은 변신족의 동체 시력이 아니라도 보였다.
느렸다.
느린 탄이 허공을 날아 인베이더 몸에 닿는다. 탄이 깨진다. 모든 게 느린 영상처럼 흘러가고.
곧 탄이 닿은 자리에 비정상적인 일이 일어난다.
물리 법칙을 무시하기에 마법이라 부르는 그런 주문의 현현(顯現).
탄이 닿은 지점에 눈 폭풍이 일어났다.
후우우웅.
결빙은 휠 나이트나 리빙 아머의 약점이다.
전부 느려진다. 폭풍이 인베이더의 몸을 얼린다.
그걸 보던 김한이 손을 바삐 움직였다.
쉬지 않고 허공에 무언갈 던진다. 파편 수류탄이었다. 곧 열댓 개 되는 수류탄이 인베이더 사이에 떨어졌다.
떨어진 수류탄이 폭발을 일으켰다.
“끄억!”
당연하게도 균열 근처에 자리 잡은 아군이 피해를 입기도 했다.
파편에 얼굴에 구멍이 난 불멸특수대 하나가 뒤로 굴렀다.
“그 정도도 못 참나. 훈련이 부족하다.”
김한이 말했다.
이곳은 불멸특수대 담당.
이들은 서슴없이 공격했다. 불멸자 일부가 범위 안에 있는 건 무시했다.
그래도 됐다.
불멸자는 쉬이 죽지 않으니.
결국, 전장의 승리가 그들의 생존을 보장할 터였다.
무차별 폭격과 결빙은 그들의 뜻대로 됐다.
얼고 터진 인베이더 사이로 멀쩡한 놈이 있었다.
스텔스 나이트는 영리하다. 영리하기에 영역을 아우르는 공격에 당하지 않는다. 노린 바였다.
소수 정예 팀의 감각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도주합니다.”
스텔스 나이트였다.
그들은 쫓았다. 찾는 게 문제지, 찾기만 하면 잡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그걸 위해 1:1 전문가 박다람도 데려온 거 아닌가.
그녀가 양손에 나이프를 꼬나쥐고 뛰기 시작했다.
찾고 난 뒤에 상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이 일을 위해 화림이 준비한 무기도 있었다.
박다람은 비약을 삼켰다.
비약 불멸자.
그게 그들이 준비한 카드였다.
땅을 박차는 다람의 허벅지가 부푼다. 마약이 아니라 비약이다.
이제까지 비약 인간을 위한 실험이 빛을 발했다.
불멸자를 위한 약을 만든 거다.
단숨에 스텔스 나이트의 뒤를 잡는다.
약의 영향으로 흥분한 다람의 눈에 놈이 휘두른 칼날이 보였다.
얇은, 빛을 반사하는 칼날.
느렸다. 피하고 품으로 파고든다. 연속 동작으로 나이프를 치켜들어 꽂는다.
퍽.
꽂은 채로 그어 뺀다.
우드드득.
손아귀의 힘이 평소에 몇 배다.
비약은 그녀에게 변신족의 근력을 줬다.
스텔스 나이트가 가까스로 몸을 뺀다. 다람은 쫓으며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았고, 원심력을 담은 뒤꿈치로 놈의 어깨 어림을 찍었다.
콰직!
단련된 육신과 비약의 근력이 인베이더의 어깨를 깨부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은 몸을 비틀어 피했고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그 앞을 비약을 삼킨 이장모와 나머지 둘이 막았다.
“어딜.”
화림이 숨긴 카드는 강했고 압도적이었다.
스텔스 나이트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 * *
변신족의 단점은 합동 공격이 어렵다는 거다.
변신하면 이성을 잃기 쉽다.
아무리 정신을 차려도 본능에 더 쉽게 이끌린다.
평소에 냉정함을 무기로 삼는 변신족도 변신하고 나면 허공에 헤어진 연인 이름을 부르짖기도 한다.
술 취한 새벽 2시의 전남친 모드가 된다.
변신체의 단점이다.
단군 그룹의 화랑이라도 그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중 일부는 그 단점을 이겨 냈다.
훈련만으로 이겨 낸 건 아니다.
그들이 이용한 건 최면.
변신한 뒤, 본능을 이겨 내기 위해 초능의 힘을 빌렸다. 최면을 걸고 이겨 내는 훈련을 반복했다.
그렇게 본능을 컨트롤하는 감각을 익혀 냈으니.
우드드득.
전신이 터진다. 강호응은 변신체로 변했다.
그 뒤를 다른 변신족 넷이 뒤따른다.
스펠 나이트는 방어막을 만들며 리빙 아머를 투창으로 만들어 던졌고, 불덩이도 던져 댔다.
변신족 다섯은 전부 피했다.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총알보다는 느리다. 피하는 건 일도 아니다. 불덩이가 폭발을 일으켜도 무방했다.
애초에 폭발 범위 밖으로 뛰면 된다.
변신체의 각력은 그걸 가능케 했다.
가젤 형태로 변한 호응이 땅을 박찼다.
무서운 속도로 돌격한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다.
근접 거리에 다다른 순간, 스펠 나이트에게 승산은 없었다.
놈은 마지막 발악을 했다.
팟.
순간 이동. 주문에 의한 공간 이동이다.
먼 거리는 아니다.
강호응은 벌어진 거리와 놈이 주문을 쓰며 생기는 간극을 계산했다.
냉정함을 잊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쫓는다.”
한마디면 충분했다.
휘하 넷의 화랑은 전부 일류 그 이상의 정예다.
변신체로 변해 본능을 컨트롤하는 순간, 변신족은 특수종 최강을 논할 만했다.
단 음식에 환장하던 대원 하나는 변신만 하면 사탕을 입에 물고 다녔다.
작전 중에 편의점을 습격한 적도 있다.
그 입에 츄파춥스를 털어 내는 꼴을 보니 기도 안 찼다.
이제는 아니다.
그 변신족이 치타 머리를 한 채 내달렸다.
짓쳐 들어가 쫓는다.
변신족은 제 앞을 막는 인베이더를 부수고 깨고 피하며 스펠 나이트를 쫓았다.
숨 쉴 틈 없는 추격 전의 끝, 도안결의 손끝에 스펠 나이트의 주먹이 걸렸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그 머리를 잡아 뜯고 어깨 어림을 물고 늘어졌으며.
나머지 변신족이 전부 달려들어 스펠 나이트를 공중 분해했다.
놈의 몸 위로 빛나던 보랏빛 문자가 흐려져 간다.
사냥 성공이었다.
* * *
불멸과 변신에게 밀려난 세월이 얼마인가.
“이제는 그럴 일 없지.”
부협회장, 보라색 머리칼의 여자가 말하고 손짓했다.
축능석은 협회에 아주 큰 가능성을 제공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초능 협회가 힘을 합친 연구가 진행 중이었다.
연구의 이름은 PA.
사이오닉 아머의 약자다.
그들의 연구는 성공했다.
“가져와.”
아이언 나이트가 아무리 단단하다고 해도.
사이오닉 에너지로 구동되는 이 물건과 비교할 순 없다.
덤프트럭 차량 뒤편에 올라탄 협회의 다섯 영웅은 그렇게 캡슐에 들어갔다.
위이이잉!
기계 구동음과 함께 그들의 몸에 신소재로 점철된 아머가 달라붙는다.
“발동.”
부협회장의 말에 전원 제 몸에 있는 사이오닉 에너지를 있는 힘껏 끌어올렸다.
평소에는 염동, 화염, 결빙으로 치환되던 에너지가 축능석에 들어가고 그 기반으로 만들어진 에너지는 곧 아머에 공급된다.
푸슉. 우웅!
“와, 시발, 로봇.”
평소 로망이 있던 경찰 중 하나가 옆구리가 열린 덤프트럭에서 나온 협회의 비밀무기를 보고 감탄했다.
그 말 그대로 로봇 같았다.
그게 아니면.
“아이언 맨?”
유명 영화의 영웅처럼 보이기도 했다.
전신에 증기를 뿜어내며 사이오닉 아머로 무장한 다섯의 정예가 허공에 떠올랐다.
부우우웅.
아머의 등 뒤에서 푸른 빛이 뿜어지며 비행한다.
곧 그들은 아이언 나이트를 향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