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 사냥
폭발력을 보이며 터진 게이트.
그 안쪽 검은 구멍 안에서 튀어나온 유니크 인베이더 쏜즈 나이트다.
갑자기 벌어진 일이지만, 우리 중 누구도 당황하지 않았다.
어느새 동이 튼다.
햇빛이 엉망진창이 된 땅을 비췄다.
부서진 아스팔트와 부러진 전봇대,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 사이로 거꾸로 꽂힌 스쿠터 한 대가 무덤에 꽂힌 묘비처럼 보였다.
드르륵.
쏜즈가 몸을 일으킨다. 그 육중한 동체가 아찔한 무게감으로 느껴졌다.
불멸자의 오감과 육감이 상대의 몸을 스캔했다.
납탄이 전부 빗나가진 않았다. 일부 탄은 가시 비늘 몸뚱이에 박히긴 했다.
촤르륵.
전신에 박힌 가시 비늘이 일어났다가 눕는다. 그러자, 가시 비늘 사이에 박혀 있던 탄알이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다.
햇볕이 놈의 몸을 스치며 빛을 반사했다. 눈이 부셨다.
순간 눈을 깜빡이게 할 정도로 밝은 빛이 눈가를 스쳤다.
아주 짧은 순간, 난 다시 움직이려 했다.
겨누고 쏜다.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려 했을 때다.
우직.
놈의 발밑이 우그러진다. 조각나 깨진 아스팔트 바닥이 더 밑으로 꺼졌다.
놈이 뭐가 하려 했다.
감각을 집중했다. 그와 동시에 방아쇠에 올려둔 손가락은 자연스레 당긴다.
뭘 하든 공격은 최선의 방어…….
어? 음?
우드득.
가시 비늘이 밑으로 뭉쳐 빙글빙글 돌더니 발 비슷한 형태로 변한다. 가시 비늘로 만들어진 발이 중세 시대 갑옷의 일부처럼 보였다.
놈의 발이 바퀴 위를 덮어 발처럼 변했다.
바퀴 대신 발?
꽝!
폭음이 터진다. 그와 동시에 놈의 몸이 뒤로 훅 날아갔다.
공중으로 튀어 올라 전장을 훌쩍 벗어난다.
“……튀는데?”
어머니가 중얼거렸다.
쏜즈 나이트 새끼는 나오자마자 주저 없이 튀었다.
와, 진짜 튀네.
황당하다. 인베이더가 어떤 놈들인가.
인류를 죽이기 위해 태어난 내츄럴 본 휴먼 킬러 아닌가.
그야말로 인간을 보는 족족 죽이려고 덤빈다. 빨간 깃을 보고 달려드는 투우와 같다.
무엇보다 저건 유니크 인베이더다. 일반 인베이더보다 더한 놈들이다.
그런데 튄다.
파지지직! 꾸릉!
타이밍 좋게 게이트에서 푸른 번개가 쳤다.
하늘이 몹시 맑아 맑은 하늘에 날벼락 같은 느낌이었다.
“플랜 A 그대로 갑니다.”
난 튀는 놈을 보며 총구를 내렸다.
놀랐지만, 놀란 이유가 튀는 인베이더 때문은 아니었다.
팬더 형이랑 미호 때문이지.
그 둘, 정말 대단하잖아.
그들은 이걸 예상했다.
* * *
“인베이더가 전술을 구사했다는 건, 이걸 굴린다는 이야기다.”
팬더 형이 제 머리를 톡톡 치며 말했다.
“그렇다는 건, 특이 행동을 보일 확률이 높다는 거네요.”
미호가 눈을 깔며 그 말에 동의한다.
“인간이랑 동급의 지능을 가졌다고 가정하는 게 좋겠다.”
“플랜을 나눠 보죠. 세 개면 될 것 같은데?”
“충분하지.”
둘은 대화가 잘 통했다.
바로 곁에 있는데 날 투명인간 취급하며 말을 나눴다.
“전장에 들어가자마자 적군이 자신을 압박하면 어떻게 할까요? 그것도 다수가.”
“전술이란 무엇일까?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거지.”
“쏜즈가 얌전히 싸워 주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맞다.”
뭐가 맞는데, 뭐가 둘만 말이 통하는데?
“저기, 정작 작전에 나가야 할 나한테 설명해야 하지 않겠어?”
둘 사이에 껴서 물으니.
“못 알아들었어?”
“지금은 바보 상태다. 놔둬.”
둘이 합심한다. 둘이 이대로 하이파이브라도 하면 완벽할 것 같은데.
그럴 일은 없었다.
대신 눈을 마주치더니 서로 고개를 끄덕일 뿐.
그게 은근히 불쾌했다.
“머리 쓰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라.”
팬더 형이 말했고 난 가만히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지금 인베이더 죽이는 일로만 가득 차 있다고.
그렇다고 들은 내용을 잊을 정도는 아니다.
이 둘은 천재였고, 천재 둘의 만남은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였다.
* * *
정확한 예상과 예측은 대비할 힘을 준다.
바닥을 박차고 옆으로 뛰는 쏜즈 나이트, 놈이 향하는 곳은 지휘부가 임의로 정해 둔 전장 외곽이다.
애초에 놈이 튀어나온 곳도 전장 외곽인데, 더 바깥으로 빠진다.
칙.
귀에 꽂아 둔 인이어로 통신이 들어온다.
“트레이싱.”
쫓으라는 말이다.
“진형 갖춰서 추격합니다.”
내가 말했다. 어머니가 선두, 좌우로 마리와 기남이, 뒤는 내가 맡는다.
쏜즈 나이트가 깨고 나온 균열 사이로 인베이더가 몰려나왔다.
서로 엉키며 넘어지면서도 밖으로 꾸역꾸역 흘러나왔다.
그중 몇 놈이 제 몸의 균형을 잡고 내달리려 했다.
휠 나이트의 기동 속도보다 우리 발이 더 빠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잡힐 일은 없지만.
“조져!”
경쾌한 목소리가 울린다. 여자고 아는 목소리다.
팬더 형과 미호의 안배였다.
뒤쪽으로 화랑 변신특수대가 달려왔다.
정예다.
움직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대략 스물이 우리 뒤를 막으며 전부 와인드업을 했다.
불멸자는 손에 뭘 쥐고 있던 목표물을 맞히는 일에 타고난 재능을 가졌다.
하지만 변신족은 아니다.
그들은 그 빈틈을 메꿨다.
투구 훈련을 통해 공을 던지는 연습을 반복, 제구력을 길렀다.
정예 변신족 스물이 뒤로 젖힌 팔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제구력에 중심을 뒀다고 해도 가진바 힘이 다른 특수종이 변신족이다.
쐐-액!
그들의 손에 들린 핸드 불릿이 날아갔다.
퍽, 철퍽, 팍!
그들이 던진 핸드 불릿은 애들 장난감처럼 인베이더 몸체에 철썩 달라붙었다.
눈으로도 진득한 질감이 느껴졌다.
곧 달라붙은 둥근 반액체 형태의 핸드 불릿이 밝은 빛을 뿌리며 터졌다.
꽈-앙!
신형 무기다.
던지는 접착 폭탄이었다.
“여긴 우리가 막아요.”
피지컬 소진의 목소리다.
난 손을 흔들어 주고 달렸다. 어머니가 이미 앞서서 길을 트는 중이었다.
고생할 일은 없다.
투두두두두!
우리가 가는 길이 미리 열린다.
작전명 모세의 기적.
경찰특공대가 그 길을 튼다. 진압 방패와 총기를 들고 인베이더 중심에 쐐기 돌진이다.
훌륭하다.
쏜즈 나이트는 두어 번 더 뛰긴 했지만, 제 발에 무슨 스프링이 달린 것도 아니고 기동성의 한계는 분명하다.
놈은 외곽으로 몸을 뺀 뒤, 일반 인베이더와 뭉쳐서 공격하려 했다.
그게 놈의 전술.
그리고 우리는 그걸 전부 예측했다.
“어디 가냐.”
내 중얼거림이 채 끝나기도 전이다.
퉁.
저 멀리서 하마의 이빨이 날아온다.
캐쉬 히포, 대구경 저격총이 불을 뿜어 상대를 할퀸다.
까-앙!
경쾌한 소음이 울렸다.
맞은 쏜즈 나이의 얼굴이 움푹 찌그러졌다.
곧바로 펴지긴 했지만, 놈의 발을 묶긴 충분했다.
기남이 총을 쏜다.
퉁퉁퉁.
세 발 연속, 제 형의 무기에 착안해 만든 커스터 마이징 기어다.
기관총 모양에 둥글게 유탄 부착기를 감아 놓고 쏜다.
개조한 대형 리볼버 같은 거다.
퉁, 첫 번째 탄이 바닥을 때렸다. 깨진 탄이 곧 주변을 얼렸다. 결빙탄이었다.
두 번째 탄은 놈의 몸 위에서 터졌다. 터진 탄에서 진득한 거미줄 따위를 쏟아 냈다.
가시 비늘은 각각 움직이며 방패도 되고 창도 된다.
그 변형을 가만히 놔두고 볼 이유가 없기에 그 움직임을 방해하기 위한 접착제다.
마지막 세 번째 탄은 특수 제작된 그물이다.
아다만티움 합금 추가 달린 그물이 놈의 바퀴 어림에 엉켰다.
부우우웅!
놈의 바퀴가 빛을 발하며 추진력을 얻으려 했다.
콰드득.
그물이 바퀴에 엉킨다. 그물이 끊기며 찢어지지만, 그대로 바퀴에 엉킨 것도 있다.
고로 발은 묶었다.
난 4번 타자를 어깨 위로 올리고 걸으며 입을 열었다.
“자식아, 형을 보자마자 튀면 어떻게 하냐, 나 할 말 많은데.”
체크 메이트다, 이 새끼야.
인류는 경험한 걸 연구하고 파악하려 애썼다.
아예 인베이더 연구만 따로 하는 기업이 있는 판이다.
정부는 그 연구자료를 산다.
가끔 매드 사이언티스트, 미친 과학자 집단과도 거래한다. 위험을 감수하고 실험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모은 정보다.
휴즈 게이트를 경험했고 네임드를 경험했으며 유니크 인베이더와 싸워 봤다.
이 새끼들을 죽일 방법은 수십 개가 넘었다.
위잉.
리빙 아머 몇 마리가 우측에서 짓쳐들어온다.
마리가 등 뒤에 걸어 둔 도끼를 꺼냈다. 꺼내며 그대로 좌우, 상하로 휘두른다.
손이 어찌나 빠른지 허공에 도끼날의 잔상이 남았다.
콰득, 우직, 쩡!
마리가 휘두른 도끼에 리빙 아머의 몸이 여섯 개로 쪼개졌다.
훌륭한 참 격이다.
힘의 분배도, 휘두른 기술도.
어머니가 앞으로 달린다. 그 앞을 막는 건 없다.
쏜즈 나이트가 어머니의 진격에 제 몸을 뭉쳐 방패를 만든다.
촤라락.
그냥 방패가 아니었다. 가시가 송송 돋아난 방패.
어머니가 왼발로 땅을 찍는다.
쿵, 묵직한 충격과 함께 발이 땅에 몇 센티 박힌다. 그와 동시에 오른 주먹을 당겼다가 뻗는다.
훌륭한 정권이었다.
다만, 눈앞을 막은 건 압착 경화 장갑을 끼고 있어도 주먹이 갈라지고 찢길 가시 방패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주저하지 않았다.
주먹과 가시 방패가 만난다.
꽈-앙.
폭음이 울리며 허공에 팡 하고 별의 세계가 터졌다.
갤럭시 필드다. 어머니께 내 장갑을 빌려드렸다.
굳건한 방패는 그 자체로 훌륭한 무기가 됐다.
어머니가 그걸 증명했다.
무지막지한 힘이 놈의 가시 방패를 반으로 우그러뜨렸다. 놈의 바퀴가 붕 뜨더니 뒤로 날아간다.
날아가는 놈의 머리통에 팽하고 화살 하나가 날아왔다. 저건 정아 누나의 솜씨다.
캐쉬 히포에 이은 무음 화살 저격이다.
퍽, 피잉, 팅!
놈은 가까스로 머리를 덮은 가시 비늘을 움직여 화살을 튕겨 냈다.
유니크 인베이더는 강하다.
하지만 아무리 거친 침략자 새끼라도 충분히 대비한 인류에게는 사냥감일 뿐이었다.
땅을 박차며 달렸다. 상대와 거리를 좁힌다. 주변 공기가 나한테 빨려 들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공감각 강화와 함께 기척을 죽이고 다가선다.
총구를 들이민다.
왼손 검지를 4번 타자의 방아쇠에 올린 채, 오른손에 쥔 정글도를 먼저 뽑았다.
뽑으며 방아쇠를 당긴다.
카-아아아아아가가가각! 꽝!
정글도가 놈의 가시 갑옷과 만나며 푸른 불꽃이 튀었다. 가르지 못했다. 아다만티움 산탄이 놈의 가슴팍을 때린다.
제로 거리 사격이다.
움푹 가슴이 파인다. 뚫어내지 못했다.
그래도 그 충격량 덕분에 놈의 몸이 뒤로 날아가 볼품없게 바닥에 굴렀다.
퉁, 무너진 콘크리트에 몸이 부딪히며 위로 튕겼다.
놈은 그러면서도 양팔을 바퀴 비슷하게 만들며 뒤로 굴렀다.
피하려고 한 건가?
저건 인베이더의 반사적 행동일까?
알 바 아니었다.
툭.
바닥을 지르밟으며 난 입을 열었다.
“아프냐? 난 안 아프다.”
“뭔 소리냐?”
뒤에서 기남이 말하며 다가온다.
“흠, 아들, 이 장갑 좋다.”
어머니가 주먹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저거 계속 움직이는데요? 마리가 도끼로 쪼갤까요?”
난 앞으로 걸었다.
걸으며 주변 상황을 인지했다.
인베이더와 싸우며 달궈진 감각이 알아서 주변 상황을 받아들였다.
다들 잘 싸우고 있다.
유니크 인베이더 네 마리 사냥은 성공일 터였다.
다들 준비한 한 방이 있었다.
쏜즈 나이트는 발악했다. 몸을 튕기며 옆으로 날아갔다.
어느새 바닥에 엉킨 그물을 다 끊어냈는지 바퀴를 굴린다.
충격은 받았지만, 아직은 멀쩡해 보인다.
그래, 이렇게 쉽게 가면 아쉽지.
두근.
심장이 뛴다.
인베이더를 죽이는 이 순간, 난 살아 있음을 느낀다.
“기남아, 가자.”
“친한 척 부르지 마라.”
다시 달린다. 어머니가 때리고 마리가 도끼를 휘두른다.
흥분한 나도 거리를 좁혀 왼 주먹으로 바퀴 부근을 후려쳤다.
갤럭시 필드가 터지면 방어막이 곧 주먹을 감싸는 묵직한 장갑이 되어 준다.
놈은 연신 가시 갑옷을 변형했다.
때로는 창이 되고 방패가 되기도 했으며 양팔을 칼처럼 만들어 휘두르기도 했다.
어머니가 그 칼을 받아서 옆으로 흘려냈다.
덕분에 생긴 틈에 마리가 도끼를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대충 쏜즈 새끼의 턱쯤이 쪼개졌다가 다시 합쳐졌다.
가시 갑옷이 모든 공격을 다 막아 내는 것 같았다.
더 몰아친다. 쉼 없이 때린다.
어느새 중앙 전장에서는 한참 멀어졌다.
퉁.
놈의 몸이 뒤로 다시 구르는 타이밍이다.
내가 신호를 보냈다.
널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살의를 끄집어내 상대를 노린다. 야생의 살기로 상대를 짓누른다.
어머니와 마리도 뒤따라 살기를 뿌렸다.
수없이 몰아치고 때린 뒤, 기세로 압박이다.
드드드드!
쏜즈 나이트가 반응했다. 전면에 가시를 모아 창과 칼을 만든다.
그리고 불멸자 하나가 기척을 숨겨 그 뒤를 잡는다.
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걸 경험했다.
생각이 이어지고 여기까지의 과정을 되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