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 고생했다.
“잠들기 전에는 인베이더를 때려잡고 잠들고 나서는 사람을 구하네요. 사람 놀라게 해 주는 재주가 있네요. 광익 씨.”
지혜 팀장 누나다.
그녀가 방탄 헬멧을 옆구리에 끼고 앞을 막아섰다.
환호가 잦아든다. 다들 생명을 구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그 안도감을 느끼는 모습이 나에게 색다른 기쁨을 느끼게 했다.
“고마워요.”
마지막까지 감사 인사를 건네는 여자 불멸자다.
불멸자는 쉽게 죽지 않는다. 정신이 마모되지 않는 이상, 어떻게든 살 수 있다.
휠 나이트와 리빙 아머가 광란의 파티를 벌이는 파티장 한복판에서 제정신을 계속 유지할 불멸자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뭐, 전신이 갈기갈기 조각나도 불멸자는 죽는다.
운이 나쁘다면 정신이 마모되기 전, 살점 단위로 분해되어 조각난 불멸자가 되어서 죽었을 수도 있다.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네요.”
내가 답했다.
전부 의도한 건 아니었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고 난 그 자리에 맞는 일을 했을 뿐이다.
눈앞을 막는 인베이더를 죽였고 나한테 등을 보여 줬던 그 사람처럼 사람을 향해 도움의 손길을 조금 내밀었다.
그나저나 상황은? 내가 아는 걸 이 누나도 알긴 하겠지?
유니크 인베이더, 중간 보스가 나타나서 깽판을 쳤다.
특수종 지휘부가 머저리 집합소가 아니라면 당연히 알 터였다.
유니크 인베이더가 전술 비슷한 걸 썼다.
휴즈 게이트 사건 때는 이런 일이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없다.
우연이 겹쳐 안 좋은 상황이 발생하긴 했어도 작정하고 이리 속여 먹는 인베이더가 있진 않았다.
역사에서 그걸 배웠고 불멸특수대에서 과거 사료로 다시 또 배웠다.
휴즈 게이트 이후, 아니 특수종이 나온 이후 인류는 꾸준히 진화했다.
그리고 인베이더도 놀고먹진 않았다.
지금 상황이 그걸 증명했다.
“상황 안 좋죠?”
어깨를 털며 말했다. 몸 상태가 나쁘진 않다. 그저 배가 몹시 고팠다.
어른들이 말하길 뱃가죽과 등가죽이 만나서 악수하는 수준이다.
에너지를 너무 과하게 썼다.
어느새 비가 투둑투둑 떨어지는 수준으로 변했다. 곧 그칠 것 같았다.
구름 사이, 서쪽으로 넘어가는 노을이 슬그머니 머리 위를 지나쳤다.
“기가 막힌 수준이죠.”
팀장 누나는 저 멀리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나도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인베이더가 휩쓸고 간 폐허가 그곳에 있었다.
부러진 전봇대, 부서진 건물, 도시 인프라 붕괴의 참상과 그 사이사이 보이는 피와 뼛조각, 깨진 아스팔트 사이로 빗물과 핏물이 섞여 내려간다.
이 전투로 죽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게 궁금해졌다.
“몇 명이에요?”
살아남은 사람을 묻지 않았다는 건 눈치로 금세 알 터였다.
팀장 누나는 아주 잠깐 주춤하는 기색을 보였다. 불멸자, 그것도 순혈에 가까운 예민한 감각이 아니라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짧은 주저함이다.
그녀는 곧 입을 열었다.
“최소 이백.”
달려든 휠 나이트와 리빙 아머의 숫자는 최소 오백.
“경미했어요.”
숫자로 보면 가벼운 피해.
“안타깝긴 하지만요.”
눈앞에서 보면 처절한 참극이다.
“아는 사람 있었어요?”
“동기가 셋이요.”
아마도, 혹시 모르지만 내가 아는 사람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화림에서 생활하며 그냥 스쳐 지나가며 얼굴만 아는 사람일지라도.
입 안이 쓰다.
그렇다고 우울함이 마음에 깃들진 않았다.
내가 뭐, 만화책에 나오는 주인공도 아니고 보이는 사람을 어떻게 전부 살리겠나.
“미친 유광익.”
뒤에서 기남이 말하며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다.
입술을 꽉 깨물고 지나가는 걸 보니 삐진 것 같은데, 쟤는 왜 삐졌어, 또.
자기가 구해 주고 싶었는데 우리 엄마가 새치기해서?
그게 이유라면 저건 확실히 미친놈이다.
“상대적 박탈감.”
미호가 중얼거렸다.
“응? 미호야, 뭐라고?”
귀태 형이 그걸 듣고 귀를 씰룩였다.
“너한테 한 말 아니야.”
매몰차다. 귀태 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응. 나한테 한 말 아니구나. 그랬구나.”
그리 말하며 웃는다.
죽다 살아난 사람치고는 소탈하다.
“후, 너 매일 이렇게 화끈하게 노는 건 아니지? 난 사무직이 더 몸에 맞는 것 같은데.”
요한 형이 옆에서 거들었다.
“아니고.”
“우리 자주 이러지 않니, 아들?”
막, 말을 이으려는데 어머니가 초를 쳤다. 생각해 보면 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이직을 잘못한 것 같다. 나.”
“퇴사할 때는 사지 전부 자르고 가는 거 알지?”
“손가락 하나 아니고?”
“불멸자한테 손가락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피도 눈물도 없는 대표님일세.”
요한 형이 말하며 움직였다. 다들 꽤 지쳐 보였다. 쓰러질 정도는 아니지만, 짧고 굵게 아수라장을 헤치고 나오긴 했지.
고생했다. 다들.
앞으로 툭툭 걸으며 요한 형이 귀태 형을 데려갔다.
정직이가 그 뒤를 쫄쫄 따라가고.
그 어깨 위로 그쳐 가는 비가 떨어진다.
“상대적 박탈감은 뭐냐?”
말만 던지고 가려는 미호의 뒤통수에 물으니.
“경쟁심은 솟구쳐 오르는데 쫓기가 어려운 상대를 만나서 생기는 감정이지.”
말 어렵게 하는 학원 나왔니?
좀 쉽게 말해 봐.
“어떨 때 보면 천재 같지만, 평소에는 바보 같다고 하더니.”
미호가 날 빤히 보고 말했다.
그래도 내가 회사 대푠데.
“나, 얘 엄마예요.”
옆에서 엄마가 한마디 했다.
“네.”
미호가 다소곳이 답한다.
너, 이 자식아. 모친이 보는 앞에서 아들 욕하고 그러면 안 되지.
“통찰력이 남다르네, 남친은?”
엄마?
“없지만, 아드님보다는 방귀태가 낫습니다.”
……이건 결투 신청이다.
그 외에 달리 붙일 말이 없다.
싸우자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방귀태가 나보다 나아?
“아쉽네.”
엄마가 말했고.
미호를 잡아다 메칠까 고민하는데 우미호 개나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지. 3시가 아니라 6시로 가는 거.”
“응.”
고개를 끄덕이자, 우미호는 날 노려보듯 바라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생각이 짧았다. 다음에는 미리 말해 줘. 대표는 너야, 시키는 대로 할 거다.”
그리 말하고 휙 돌아선다.
하여간 다들 제멋대로네.
“……광익 씨, 회사 대표라고 하지 않았어요?”
옆에서 이 막장 회사 구조를 본 팀장 누나가 물었다.
“네. 제가 수평적 구조를 좋아해서요.”
어쩌겠냐고.
굳이 따지자면 NS는 중소기업 쪽에 가깝다. 대기업처럼 엄마 아들 사이에서 이사님, 대표님 이럴 순 없잖아.
그러다 보니 다들 말이 편히 하고 있다.
또 난 이게 편하기도 하다.
“수평이 아니라 역피라미드 같은데.”
팀장 누나가 중얼거렸다.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이제 다들 들어가서 쉴 타임이다. 나도 뭘 좀 먹고 쉬고 싶고.
배가 진짜 미친 듯이 고팠다.
뒤에서 균열이 우직우직 깨지고 난리 블루스를 추고 있지만, 당장 청기사가 튀어나온다고 해도 난 칼로리를 보충해야 했다.
크림빵 먹고 싶다.
약도 안 먹고 좀 무리했다 이거다.
특수종의 싸움은 준비가 중요하다.
준비됐을 때와 그러지 않을 때의 전력 차가 크다.
장비, 약, 컨디션 모든 걸 조절해서 싸우는 게 맞다.
인베이더는 기본적으로 특수종을 포함 인류보다 신체 능력이 높다.
그들을 상대함에 준비가 빠지면 지는 건 인류고.
그러니 먹어야 할 시간…….
생각과 동시에 오른발을 반쯤 바닥에서 뗐을 때다.
오감은 그대론데, 육감이 발동한다. 앞쪽 바닥, 뭔가 있다.
불멸 암살자?
이 정도로 완벽하게 몸을 숨긴다고?
비가 오는 바람에 냄새도 없으니 좋은 조건이긴 했다.
다만, 인류와 인베이더와의 싸움에 끼어들어 내 뒤통수를 칠 정도면 이 새끼들은 얼마나 개자식들인가.
그 개자식의 기척을 유전자에 내재한 불멸자의 피가 느꼈다.
육감과 직감.
오감을 넘어선 감각이 말한다.
이 자리에 무언가 있다고.
그리 느꼈다.
생각하며 몸을 움직이거나 입을 열기도 전이다.
뭔가가 내 목을 뒤에서 잡았다.
솔직히 말해서 미친 자들의 세상이라는 특수종 세상에 들어와 처음 당해 본 뒤치기였다.
이렇게까지 기척을 완벽하게 숨기고 들어와?
불멸암살자 새끼가 아주 제대로였다.
목은 내준다.
대신 상대의 내장에 묵직한 팔꿈치를 선물해 주면 된다.
목이 잘리더라도 팔꿈치를 내지르는 동작은 운동 에너지로 그대로 도달할 것이다.
“아들.”
뻗은 팔꿈치는 허공을 쳤다.
마지막에 목소리를 들은 내가 힘을 빼기도 했고 상대가 손바닥으로 밀치기도 했다.
“아빠?”
“엄마 데리고 어디 갔다 왔니?”
아. 아빠네.
엄마 바라기 아빠.
엄마가 칼질하다 손가락 끝이라도 베이면 그날부터 일주일은 칼을 손에도 못 잡게 하는 아빠.
그런 적이 있었다.
훈련하다가 베여 놓고 칼질하다 다쳤다고 어머니가 그리 핑계를 댄 적이.
그런 어머니를 난 지금 인베이더가 휘몰아치는 한복판에 데리고 들어갔다가 나왔다.
아버지의 눈빛이 따사롭다 못해 따갑다.
아니, 그래도 아버지 이게 또 회사 일이고.
어머니가 변신족이고 작정하고 치시면 저보다 잘 치시기도 하고.
지금 허리춤에 꽂아 둔 저 쌍 산탄총이 긍낙이 삼촌이 선물한 신무기이기도 하고.
자잘한 변명을 내뱉기도 전이다.
“넌 조금 이따가 얘기하고.”
아버지가 내 머리를 툭 치며 말했다.
그리고 몸을 돌리며 어머니와 마주 섰다.
“위험했어?”
“조금요.”
“괜찮아?”
“네.”
저게 아까 인베이더를 사납게 때려 부수던 그 여자가 맞는지.
웃으며 아버지를 맞이하는 어머니다.
아버지가 생긋 웃는다. 화 안 나셨나?
날 향해 다시 눈을 돌릴 때는 저승사자가 강림한 줄 알았다.
요단강 사공의 눈빛이 딱 저런 눈빛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시구나. 좀 쉬어요. 인베이더 습격은 더 없을 것 같으니까. 한번 몰아치고 스펠 나이트가 다시 제 주변으로 인베이더를 뭉쳤어요. 광익 씨 나오는 거 보고 폭격을 그 주변까지 확대했거든요. 당분간은 소강상태일 거예요. 놈이 마치 병력을 아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슬쩍 옆에서 눈치를 보던 지혜 누나가 말했다.
“네, 그래야죠.”
아버지는 어머니와 담담하게 대화를 나누시더니, 어머니 이마에 쪽 하고 돌아서 내 옆에 섰다.
보는 눈도 많은데 거침이 없다.
“가자.”
“저 쉬러 갈 건데요.”
“나도 쉴 거다.”
말하며 아버지가 지혜 누나를 슬쩍 본다.
“사람을 구한 영웅한테 어느 누가 뭐라 할까요, 경계 근무라도 시킬까요? 쉬러 가요. 광익 씨.”
다 맞는 말인지,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내 옆에서 걸었다. 다들 알아서 우리와 멀어졌다.
아버지의 담담한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뒤쪽에 보급 기지 만드는 중이다. 정부, 단군, 협회 세 군데가 작정하고 뒤를 받쳐 준단다.”
당연한 말이기도 했다.
무려 네임드 게이트다. 대형 사고다.
일전에 내가 혼자 때려잡다시피 한 특이종 게이트와는 차원이 다른 사고다.
그때야 급조된 특이종이 분명한 놈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게이트는 아니다.
숙적.
인류의 오래된 원수가 문 너머에서 다가오는 중이었다.
그 증거로 이미 스펠 나이트가 행차하셨고.
터벅터벅 걸으며 아버지께 물었다.
“국내 말고 다른 쪽 지원은 없어요?”
알한테 말하면 당장 초능국 특전대를 보내 줄 것 같은데.
“없다.”
“왜요?”
“다른 나라에도 터졌거든.”
“그럼 휴즈 게이트 때랑 똑같은 건가요?”
휴즈 게이트 당시, 문제가 되는 대형 게이트가 열리기도 했지만, 곳곳에 네임드 게이트도 터졌다.
대형 참사의 시작이었다.
“그 정도는 아니지. 네임드 게이트만 네다섯 개 열렸다고 하더라. 게이트가 더 열릴 기미는 없고.”
매캐한 화약 냄새, 타는 냄새, 피비린내가 지워지고.
노을보다 몇 배는 환한 빛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류가 그동안 얼마나 발전했는지, 그 광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쟁은 인류 역사상 가장 소모적인 행위지만, 그 행위에 투입되는 건 인류가 만들어 낸 최신식의 문물이다.
급조된 건물이 보였다.
건물 옆으로 솟은 탑과 낮과 같이 주변을 비추는 조명 덕분에 아버지와 내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아예 널찍한 댐과 같은 벽을 세우는 작업도 한창이었다.
저건 방화벽이 될 터였다.
당연하다. 일이 틀어지면 이 지역 일대를 전부 틀어 막아 버리고 핵이라도 떨어뜨릴 셈일 거다.
그럴 만도 했다.
최초 청기사가 나타난 곳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이었다.
그때 러시아가 입은 타격이 세계 대전 때보다 심했다고 하던가?
이후 나타난 곳은 북한이었고.
청기사는 그때 제 능력을 십분 증명했다.
그 결과, 현재 북한이라는 나라는 지도에서 지워졌다.
대한민국은 통일을 꿈도 못 꾸게 됐다.
그 주체는 사라졌고 그 땅은 버려졌으므로.
그곳은 이제 DMZ(DeMilitarized Zone)가 아니라 MZ(Militarized Zone)라고 불린다.
청기사가 휩쓸고 지나간 곳에 잔뜩 모인 인베이더.
이후, 그곳은 버려진 땅, 잃어버린 북, 로스트 노스 따위로도 불리게 됐다.
“세계 곳곳에 아주 밸런스 있게도 열려 주셨지. 예언가 몇이 모든 문이 열릴 거라 예언도 했고.”
아버지가 말하며 건물 문 앞을 지키는 경계병에게 신분증을 보였다.
“충.”
경계병이 손을 올린다. 대외적인 아버지 지위는 5급 공무원인데, 전시 때의 지위는 조금 달라진다고 한다.
이때는 성급 군인과도 같다고 그랬다.
“예언이요?”
아버지가 한 말을 되물었다.
“응.”
미래는 가변성이다.
그건 변하지 않는 진리다. 다만 짧은 미래는 예측할 수 있다. 하루 이내라면 예지와 예측의 그 중간쯤으로 미래를 확정할 수도 있다.
물론 이것도 틀릴 때가 수없이 많긴 하다. 미래는 실시간으로 변하니까.
하여간 예언가가 입을 털었다면.
“길어야 24시간이겠네요?”
24시간 이내 네임드 게이트의 문이 열린다.
“그렇지.”
난 식당에 앉았다.
아버지가 날 지긋이 바라봤다. 나도 그 눈을 마주했다. 차갑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어머니를 위험에 빠뜨리게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으신 걸까.
“할 말 있으면 하시지요.”
내가 말했다.
짧은 침묵이 둘 사이를 채웠다.
젖은 옷이 불쾌감을 줬다. 일부러 감각을 죽였다.
아버지는 무표정하게 날 바라봤다.
그러더니 툭 하고 내 머리 위로 손이 얹어졌다.
“많이 컸구나. 아들.”
놀라며 눈만 끔뻑거리는 사이, 아버지가 이어서 말씀하셨다.
“어느새 다 컸어.”
그 손길에서 난 아버지의 걱정과 사랑을 동시에 느꼈다.
“고생했다.”
그 한 마디가 심장 어림을 찌른다. 칭찬받고자 하는 일은 아니지만.
아버지의 한 마디는 꽤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는 날 나무라지 않았다. 그럴 생각도 없어 보였다.
“네.”
난 담담하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