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 회전 회오리 치기
“방향.”
뒤에서 미호가 말한다.
“따라와.”
난 짧게 말하고 몸을 틀었다.
전면에 달려드는 휠 나이트가 보인다.
그 갑주는 어지간한 총탄, 파편 수류탄, 유탄도 견딘다.
하지만 아다만티움 산탄을 견디진 못하지.
무서운 속도로 휠 나이트가 달려든다.
묵직한 갑옷을 지닌 놈의 몸이 순식간에 확대됐다.
위이잉! 바퀴가 내는 소음이 귀를 때린다.
겨누고 쐈다.
꽝!
4번 타자가 불을 뿜었다.
아다만티움 산탄이 멋모르고 돌진하던 휠 나이트 몸통에 머리통만 한 구멍을 만들었다.
화력이 만든 힘이 달려오던 몸을 그대로 뒤로 날려 버리기도 했다.
간격을 두고 뒤에 따라오는 리빙 아머의 팔 한쪽도 날아갔다.
근거리 아다만티움 산탄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그걸 보며 난 왼 주먹을 꽉 쥐고 위로 흔들었다.
웅.
갤럭시 필드.
주문 세계 중에서도 손꼽히는 방어 주문이 전면을 감싼다.
틈을 노린 리빙 아머의 무기가 방어막을 두드렸다.
두두두두둥.
전부 막힌다.
철컥.
열기를 뿜는 탄피를 토해 낸 4번 타자를 다시 겨눈다.
내 눈에 인베이더 무리가 들어왔다.
눈매가 찢어진 휠 나이트.
입이 작은 리빙 아머.
머리통이 작은 휠 나이트.
팔이 두툼한 리빙 아머.
바퀴 달린 머저리와 다리 없는 머저리 갑옷들.
전술을 쓴다면 이들에게도 개성이 있을까?
잡생각이 든다.
그 와중에도 손이 바삐 움직였다.
방아쇠를 당기고 근접한 리빙 아머를 보며 정글도를 뽑아 올려 친다.
슁.
아다만티움 칼날을 붙이는 바람에 무게감이 엉망이 된 정글도가 리빙 아머 하나를 세로로 쪼갠다.
팔 근육에 적당한 힘이 들어가고 몸에 열이 올라온다.
그대로 정글도를 위에서 밑으로 그었다.
티잉, 트드드드드등!
칼날이 갑옷을 가르며 소음을 퍼트린다.
펑!
그 틈에 다시 4번 타자를 쏜다.
꽝.
아다만티움 산탄이 상대의 몸에 송송 구멍을 뚫었다.
그 여파로 머리통이 큰 리빙 아머의 머리통이 사라졌다.
그런데도 움직인다. 팔을 움찔하더니, 손 대신 달린 날카로운 칼날 끝을 날린다.
리빙 아머는 쉬이 죽지 않는다.
몸을 이루는 갑옷의 반은 부숴야 한다.
난 몸을 옆으로 꺾어 피했다.
꽝.
옆에서 삐죽 총구가 나오더니 놈의 몸통을 갈겼다.
철판이 우드득 찢기며 깨졌다.
마치 묵직한 주먹에 맞은 것 같다.
변신족의 펀치로 제대로 후린 것 같은 파괴력이다.
“엄마 무기 좋지?”
엄마가 물었다.
“좋네요.”
난전이다. 주변에는 인베이더만 가득한 것 같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여전히 이건 위기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손에 든 총을 아래에서 위로 털었다.
그리 털자, 총신만 위로 빠져서 한 바퀴 돌아 철컥하고 다시 합쳐졌다.
총신은 길고 손잡이는 짧은 소드 오프 형태의 산탄총이었다.
장전 형태를 보니 그냥 총은 아니다.
어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전 방식이다.
“네 삼촌이 엄마 입사 선물이라고 줬다.”
엄마가 선물 받은 무기를 자랑하며 양손에 한 자루씩 든 총을 갈겼다.
펑!
불멸자의 감각이 반사적으로 그 총의 구조를 읽어 냈다.
화력, 압력, 탄피가 없다.
총신 옆에 파란 불빛 게이지가 차오른다.
그렇다고 주문의 힘이 개입된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공기 압력탄?”
“비슷한 거지.”
말하며 어머니가 싱긋 웃었다.
“대표, 방향.”
미호의 목소리다. 이전보다 더 힘 있는 어조였다.
그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뒤로 시선을 던졌다.
다들 놀랄 틈도 없이 거칠게 싸운 티가 났다.
기남은 소총을 갈기다가 수류탄을 던졌다.
신소재로 만든 무기를 잔뜩 가져올 순 없어서 급히 들고 온 파편 수류탄이다.
불멸자의 조준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중에서도 기남은 순혈정가의 엘리트다.
기남의 조준은 훌륭했다.
휠 나이트 하나가 날아온 수류탄을 쳐 내려는데 수류탄이 곡선으로 휘어지며 놈의 뒤쪽으로 감겨 들어갔다.
커브다. 메이저 리그급 마구였다.
꽝!
수류탄이 터져 인베이더 서넛이 휘말렸다.
소진은 더 단순하게 싸웠다.
그녀는 총기 대신 양손에 작은 방패가 달린 장갑을 꼈다.
그리고 막고 때리기를 반복했다.
아군이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지는 사이 달려드는 모든 인베이더의 공격을 비껴 내며 후렸다.
훌륭한 방패였다.
반쯤 날아오는 휠 나이트의 랜스를 왼손등에 달린 방패를 흘려 내는 걸 볼 때는 절로 감탄이 나왔다.
“오.”
저건 이중봉 팀장 특긴데.
하긴 변신족이다. 그중에서도 엘리트, 이 정도는 해 줘야지.
고릴라로 변신할 수 없어서 더 답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서 변신할 순 없지.
지금 핵심은 대형이다.
여기서 우미호의 능력이 새삼 돋보였다.
그녀는 순식간에 아군의 싸움 방식을 구분하고 대형을 만들었다.
따로 훈련한 방식이 아니다.
하물며 여기에는 변신특수대라는 화랑과 불멸특수대가 함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협화음이 없다.
이건 전부 우미호의 덕이었다.
그녀는 반 발자국 뒤에서 모든 전황을 조종했다.
순간의 판단력.
그것만은 나보다도 뛰어나다.
인정할 만했다.
“방향.”
거듭 나한테 방향을 틀라고 요구하는 것만 빼면 완벽하다.
내 생각에 우미호의 약점은 이기심이다.
그녀의 선택은 옳다.
우리만 살아남는 길은 그게 맞다.
하지만 여력이 있다면 지나가는 사람 몇 구할 수도 있잖아?
난 순식간에 전장을 머릿속에 그렸고.
그 안을 지그재그로 가로지르는 선을 인지했다.
“아들?”
어머니가 날 불렀다.
“이쪽이 맞아요.”
확신을 담아 답했다.
어머니는 날 믿었다. 일말의 의심도 없이 옆에서 손을 더했다.
우미호의 뜨거운 시선이 뒤통수에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제 의무를 배신한 건 아니다.
할 일은 했다.
가령 휠 나이트가 돌진하기 쉽지 않도록 순간순간 적절한 지시를 내린다든지 하는 일들을.
“세 번째.”
우미호가 말하면 로즈가 그쪽을 바라본다.
초능 중에서도 특이 능력으로 손꼽히는 초능이 빛을 발한다.
메두사의 눈이 상대 하나를 덜컥 멈추게 만든다.
한 놈이 멈춰 쓰러지자, 거기에 맞춰 걸려 넘어지는 놈이 바리케이드가 된다.
넘어지는 놈 뒤로 총탄이 박힌다.
요한과 귀태의 조준 사격이다.
이쪽도 불멸특수대에서 손꼽히는 제원이란 말이지.
마리는 팬더 형 옆에 붙여 놨다고 했던가.
그리 돌진이다. 우리는 인베이더의 파도를 타는 서빙 팀이었다.
대형은 무너지지 않았다.
“후욱, 후욱.”
정직이의 거친 호흡이 들렸다.
얘도 지칠 만하지.
우미호는 한정직을 조커로 썼다.
좋게 말하면 조커고, 솔직히 있는 그대로 말하면 미끼였다.
틈이 생길 것 같으며 정직을 집어 던졌다.
“우앗!”
“광변환.”
놀란 정직에게 말하고 돌아선다. 그쪽으로는 시선도 안 준다.
짧은 시간 인베이더의 시선을 끄는 미끼가 된 정직은 필사적으로 능력을 발동했다.
능력 발동 중에는 어떤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초능, 광변환이다.
몸을 빛으로 변하게 정직이가 돌아온다.
“후아, 흡. 미쳤습니까?”
돌아와 따지지만, 씨도 안 먹혔다.
미호는 무시하고 달린다.
그녀는 제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불길한 쪽으로 계속 간다.”
기남이 경고했다.
응, 알아.
말하며 난 그 불길함을 손수 제거했다.
앞으로 한 걸음.
“엄호해 줄게, 아들.”
뒤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순간, 어머니에게 선두를 맡기고 난 인베이더 사이로 파고들었다.
“미친.”
뒤에서 정직이가 중얼거린다.
자신이야 광변환이 있으니, 잠깐 버티고 튄 건데, 난 그냥 들어갔으니까.
사방에서 인베이더의 악의가 몸을 짓누른다.
난 개성 넘치는 이 개자식들 사이에서 힘껏 숨을 들이켰다.
강각과 철완의 기예를 십분 발휘한다.
발에 힘을 주고 땅을 찍는다.
꽝.
아스팔트가 깨지며 부서진다. 발을 박은 채로 왼손에 4번 타자를 오른손에 정글도의 손잡이를 쥔다.
사방에서 짓쳐 들어오는 칼날이 감각 안에 스며든다.
무시했다.
그 상태 그대로 좌우로 손에 들린 무기를 휘둘렀다.
후앙!
고속으로 회전하는 4번 타자와 정글도가 회오리를 만들었다.
꽝, 꽈앙, 쩡, 크거거거겅!
쇳덩이의 마찰 소리, 타격음이 섞인다.
난 내 주변에 덮쳤던 여덟 마리의 인베이더를 격살했다.
그 상태 그대로 2차로 들어오는 놈들을 향해 다시 무기를 휘두른다.
그래, 유니크 인베이더가 전술을 쓴다고 치자고.
하지만 이 인베이더 개개인이 생각하고 싸우는 건 아니다.
반전에 놀라긴 했지만, 변하는 건 없다.
농담 삼아 머리 큰 리빙 아머 따위로 놈들을 분류했지만, 사실은 아니다.
이들은 같다.
전부 맹목적으로 달려들 뿐이다.
생각 따윈 하지 않는다.
몸에 익은 동작을 반복할 뿐이다.
고로 패턴이 눈에 익는다.
그걸 눈에 담고 두 번의 공격으로 난 내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무지막지한 괴력을 타고난 변신족과.
“아들?”
“괜찮아요.”
전신에 여기저기 찔린 상처가 많다. 허벅지가 터지듯 찢겼고 안구 한쪽도 터졌다.
어쩌겠나.
모든 공격을 다 피할 순 없는 노릇이다.
괜찮았다.
불멸자의 재생력이 내 몸을 돌본다. 체력이 재생을 북돋는다.
전신을 개미가 물어뜯는 듯한 고통이 따라왔지만, 이 정도야 과외 수업받을 때도 참았다.
“엿차.”
내가 만든 인베이더 공백 옆이다.
우미호가 급조한 삼각 대형이 밀어쳐 왔다.
그 틈에 목숨을 구한 사람이 여럿 보였다.
“아, 시발, 죽을 뻔했다.”
화랑 소속은 아닌 것 같은 변신족 하나가 중얼거렸다.
“JC 출신 불멸잡니다.”
“저 알죠? 따라와요.”
난 그 둘을 향해 말했다.
우미호가 말없이 날 바라봤다. 아니 노려봤다.
미리 말해 주면 어디 덧나냐는 그 눈빛에 난 어깨를 으쓱했다.
“대형 넓혀요.”
그녀가 말한다. 곧 생존자가 대형 안으로 합류했다.
“정직 씨 앞으로 몇 번 가능해요?”
“뭘요?”
“미, 광변환.”
미끼라고 말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우미호답지 않은 말실수다.
그만큼 내가 한 일이 충격적인 건가.
“미끼, 네, 세 번이요.”
정직이 신중히 답했다.
그걸 보며 난 다시 앞장섰다.
“그 엉성한 기술은 뭐니?”
어머니가 이 상황에서도 위트를 잃지 않고 물었다.
“회전 회오리 치기요.”
아무 드립이나 날렸다.
“나중에 엄마가 제대로 알려 줄게, 회전 회오리 치기.”
진짜 그런 기술이 있다고?
“갑니다.”
다시 돌격이다.
이후 같은 방식을 반복했다. 체력이 문제지, 싸움 형태는 쉬운 편이다.
그저 언제 끝이 날지 모를 뿐.
중간중간 우미호가 내 뜻을 알아채고 방향을 조정했다.
난 그 말을 따랐다.
그리 내달리는 중이다.
“갈겨.”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다.
쿠쿠쿠쿠쿠쿠!
폭포수가 쏟아지는 듯한 묵직한 소음이 대기를 울린다.
절로 감각이 그 소음과 결과물을 읽어 냈다.
시선이 돌아갔다.
장갑차 위로 삐죽 솟은 대구경 기관총이 보였다.
대구경 기관총이 불벼락을 뿜어낸다.
탄피가 허공을 난다. 방탄을 무시하는 대구경 탄환이 휠 나이트와 리빙 아머를 고물상 쇳조각으로 만든다.
그걸 보며 난 뒤를 돌아봤다.
우리가 지나온 길이 보였다.
그 뒤를 졸졸 따라온 살아남은 사람들도.
우리만 빠져나간다고 다가 아니니까.
난 일부러 크게 휘돌며 인베이더 진형을 무너뜨렸다.
그 생존자를 보는 사이다.
“앞!”
기남이 외쳤다.
그리고 기남이 외치기 전, 나도 느꼈다.
저 멀리 날아오는 악의의 덩어리를.
훙.
파공음이 뒤따른다. 눈앞에 보랏빛 점이 보였다.
반사적으로 몸을 뒤틀었다. 반응했으니, 막으면 그만이다.
다만, 내 반응 속도가 조금 늦었다.
아무리 체력이 남아돌아도 광변환 정직이처럼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회전 회오리 치기를 다섯 번은 했다.
흘린 피가 너무 많았다.
발이 무거웠다. 반응이 조금 늦었다.
“칫.”
기남이는 불멸자, 나만큼 예민한 불멸자다. 자식이 답지 않게 내 앞을 막으려 했다.
나 대신 저거 막으려고? 제대로 맞으면 몇 달은 요양 상태일 것 같은데.
훅.
그 순간 그림자 하나가 내 앞을 막았다.
검고 노란 털이 솟은 등이 보인다.
등은 몸을 웅크리는 듯하다가 양손을 위로 올려 치며 회전했다.
발을 중심으로 허리가 돌고 회전한다. 발끝부터 무릎, 허리, 팔꿈치, 주먹, 모든 것이 회전하며 회오리를 만든다.
난 위로 솟는 용의 형상을 보았다.
그 용의 목을 물어뜯는 호랑이를 보았다.
꽈-앙!
날아오는 보랏빛 점은 투창이었다. 저 머릴 스펠 나이트가 날린 리빙 아머 투창.
그걸 쳐 낸 등, 어머니가 어느새 변신체가 되어 읊조렸다.
“어딜.”
내 앞을 막으려던 기남이 엉거주춤 섰다.
“그게 회전 회오리 치기인가요?”
어머니를 향해 물었다.
“정답.”
어머니가 긍정했다. 그걸 마지막으로 우리는 아군이 만든 진형으로 넘어왔다.
스펠 나이트를 향해 폭격 비슷한 게 시작되는 것도 보였다.
놈은 주문을 발동하며 막으며 나한테 리빙 아머 투창을 던진 거였다.
날 경계했나 본데.
이거 뭐 관심 가져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지.
그리 서 있는 순간이다.
“고맙습니다.”
뒤에서 누군가 말한다.
처음 보는 사람이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가 말한다. 지금 보니 우미호를 비롯한 모두가 그런 공치사를 받는 중인데.
다들 입을 모아 몰았다.
“세최특 알죠? 저 친구가 한 겁니다.”
요한 형이 말하고.
“사랑의 힘으로 내달렸을 뿐.”
귀태 형은 무시하고.
“저쪽이 한 거고 난 모르는 일이니, 놔두십시오.”
기남이 말한다.
“대표님의 뜻이었어요.”
미호도 마찬가지다.
생존자의 시선이 나한테 모인다.
“신세 졌군.”
꽤 늙어 보이는 초능 특수종이 말했다.
그 말이 다였다.
그냥 신세 한번 진 거지.
여력이 돼서 사람 좀 살린 것뿐이다.
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뭐 구하다가 투창에 꿰일 뻔하긴 했지만, 그것도 어머니가 막았다.
“세최특.”
“유광익.”
“유광익!”
“NS!”
누군가 내 별명을 읊조린다. 입술을 달싹이는 작은 속삭임이 폭격 소리를 뚫고 커지기 시작했다.
곧 내 이름과 회사 이름을 연호했다.
전장 한가운데에서 퍼진 외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