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 열립니다.
이지혜는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꼼꼼히 살폈고 보고했다.
네임드 게이트는 흔히 열리지 않는다.
전 세계를 무대로 봐도 그렇다.
이렇게 균열만 일으키다가 멈추는 때도 있다.
그럼 남는 건 인베이더 무리뿐이다. 소탕하면 끝인 일이다.
반만 열리다가 닫히는 때도 있다.
일전에 동대문에서 슬라임계 네임드가 고개를 들이밀다가 돌아간 일도 있었다.
그 네임드 이름을 불가사리로 지었다고 했던가.
물론 그대로 열리는 때도 있다. 그럼 뭐, 난리 나는 거지.
어떤 것도 속단할 순 없다.
“불멸특수대가 몇이었다고? 아니, 전체 인원이?”
수화기 너머 질문에 짧은 상념이 끊겼다.
“불멸특수대 열둘, PWAT C팀 여덟, B팀 여섯, 총 스물여섯이었습니다.”
보고 들은 대로 곧바로 답했다.
“지원은?”
“제가 제일 빨랐습니다.”
이지혜는 상대의 질문을 기다렸다.
자기도 황당할 따름이다.
수화기 너머, 자연스레 청장의 꾹 닫은 입술 표정이 떠올랐다.
직접 눈으로 보고도 쉬이 믿지 못 할 일이었다.
“불특대 애들은 무슨 에이스만 모아왔어?”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작 그 인원으로 고위 넘버 인베이더를 이백을 잡아? 세최특이 변신이라도 했나?”
“아니요. 다른 변신족이 하나 있었습니다. 화랑의 정소진이라고.”
“세최특은?”
“지휘했답니다.”
“기가 막힌 친구야, 진짜.”
청장의 진심 어린 감탄이 들렸다.
“좋아. 상황은?”
청장이 말을 이었다.
이지혜의 눈이 홀로그램 화면으로 향했다.
지금 머리 위로 열두 대의 드론이 떠서 주변 상황을 실시간으로 송신 중이었다.
상황은 좋았다.
나빠야 할 상황이 너무도 좋았다.
고작 스물여섯으로 이백의 인베이더를 죽인 게 문제가 아니다.
과일 껍질 깎고 썩은 부위를 칼끝으로 도려내듯, 필요한 부분을 잘라내고 파냈다.
인베이더 진형을 인위적으로 바꿨다.
그래, 놀랄 건 스물여섯으로 인베이더 이백몇십 마리를 죽인 게 아니다.
“민간인 피해 전무, 인베이더는 균열 앞에 묶였습니다.”
“진형 유지해.”
“네.”
전화를 끊은 이지혜는 몇 가지 지시를 내린 후, 속속들이 도착하는 특수종 부대를 봤다.
눈으로는 그들을 보지만, 그녀의 귀에는 PWAT 팀원의 증언이 떠돌았다.
뭐라고 했던가.
‘그가 말하는 곳에 초능을 쏟아내면 알아서 인베이더가 달려들어 죽었다고?’
염동력으로 만든 콘크리트 창을 비스듬히 세우니 딱 좋게 리빙 아머가 달려들어 찔렸고.
빙판을 만들면 그쪽으로 휠 나이트가 내달리며 자빠졌단다.
인베이더의 약점을 십분 활용한 전략이다.
자신도 할 수 있다.
다만, 이렇게 할 순 없다.
‘예측.’
미래를 본 듯한 전술이다.
모인 전력이 소수 정예 전력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그저 그들이 가진 능력을 전부 발휘하게 했을 뿐.
그 증거로 자신이 도착했을 때 남은 PWAT 팀원은 전부 탈진 상태였단다.
그들은 입을 모아 말하기도 했다.
“몽롱했습니다. 힘을 모아서 쏟아내면 낼수록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더 했습니다.”
그리 힘을 쏟아냈단다.
전심전력으로.
그야말로 쌀 한 톨 들 힘까지 전부 소진했다.
사이오닉 하이라고 부르는 상태다.
가끔 훈련할 때나 느낄 수 있는 고양감.
모든 사이오닉 에너지를 쏟아붓고 나서야 느껴지는 나른함까지.
자신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다만, 실전에서 ‘하이’가 되는 건 처음 봤다.
“이런 경험 처음입니다.”
PWAT B팀장 김정기가 말했다.
상기된 얼굴과 흥분한 어조였다.
지쳐서 다리를 후들거리면서도 만족했다고 한다.
‘무슨 짓을 한 걸까.’
이지혜는 그제야 광익이 한 일이 궁금했다.
그리고 이건 자신만 궁금하지 않을 터였다.
* * *
불멸특수대 열둘은 지금껏 이런 경험을 처음 했다.
냉정과 이성적인 판단은 잊은 채, 그저 몸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그들은 같은 경험을 했고 같은 생각을 했다.
고양감.
그게 그들을 한계 너머로 밀어냈다.
그렇게 싸웠다.
전신 근육이 떨린다. 당분간 회복이 되지 않을 정도로 몸을 혹사했다.
방아쇠를 당기고 칼을 휘두르고 나이프를 던졌다.
와이어를 칭칭 감아 리빙 아머의 움직임을 멈추고 투구를 미친 듯이 쑤시기도 했다.
광익의 동기인 문신남은 이 내용을 짧고 간결하게 보고했고 이 내용은 곧 화림의 사장실로 직행했다.
남명진은 고개를 삐딱하게 꺾고 다리를 꼰 채, 생각에 잠겼다.
1세대의 영웅이라 불리는 그다.
별의별 특수종을 다 봐왔다.
‘설마.’
그래서 알 수 있었다. 광익이 한 짓이 뭔지.
하지만 알기에 더 믿을 수 없었다.
서른도 되지 않은 특수종이다.
‘천재는 있다, 이건가.’
평생 천재를 질시하며 살아왔기에 남명진의 가슴에는 질투심이란 불꽃이 피어올랐다.
피어오른 불꽃은 그대로 꺼트렸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니까.
놔두면 북한 꼴이 날 게이트가 한국 한복판에 터졌다.
“불멸특수대 네 개 팀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중봉 팀장이 개별 활동을 요청했습니다.”
비서가 말했다.
긴급회의였다. 모인 사내 간부 중 하나가 입을 연다.
“개별 활동? 이런 상황에서?”
머저리였다.
또라이 보존 법칙이라고 했던가.
회사에 꼭 한 명은 미친놈이 있다고.
이직해도 그건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리고 또라이가 없다면 자신을 의심해보라고 했던가.
그런 놈이다.
군인이라도 된 듯 짧게 자른 머리칼의 남자다. 키는 170cm가 좀 안 되지만, 반곱슬에 머리숱이 많았고 눈매가 얇았다.
불멸자 특유의 흰 피부와 잘생긴 얼굴에 얇은 눈매가 섞이며 기묘하게 야비해 보이는 외모였다.
박영돈 이사다.
세상에는 자기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않고 제 눈으로 봐도 믿지 않는 고집과 아집, 독선으로 삶을 가득 채우는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박영돈이 딱 그랬다.
제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세최특이 한 일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그 불똥이 이중봉에게 튄 거고.
“이중봉 팀장은 놔두지.”
남명진 사장은 괜한 소리를 하기 전 그를 제지했다.
이중봉이 불멸특수대에 남아 있는 이유가 청기사 때문이다. 그 청기사 게이트가 열린 마당에야 누가 그를 말릴까.
“이거 책임을 물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왜 정부 요원이 일개 민간 기업의 지시를 받은 겁니까?”
박영돈이 말했다. 그가 눈을 부릅떴다.
부리부리한 눈으로 사장과 비서를 노려보듯이 바라봤다.
저 말이 틀린 건 없다.
다만, 그 상대가 세최특 유광익이다.
남명진도 그 유광익에게 마냥 감정이 좋진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세를 거스를 순 없는 법이다.
“결과가 이렇게 좋은데 뭐라고 합니까?”
김동철 이사다. 예전에 라인 한 번 잘못 타서 지금까지도 고생하는 총괄 본부장.
요새 꽤 수척해져서 볼이 쏙 들어갔다.
아랍 왕자로 보이던 외모가 두바이 거지처럼 보였다.
“결과? 결과만 좋으면 뭐, 아무나 그렇게 나서도 됩니까? 그럴 거면 규범은 왜 만들고 법은 왜 지킵니까?”
“그럴 상황이 아니었잖습…….”
“아, 상황에 맞춰 범법을 저질러도 된다? 김동철 총괄 님, 무서운 분이셨네.”
이 새끼가?
김동철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둘의 시선이 마주친다.
“내가 뭐 틀린 말 했습니까?”
박영돈이 굳이 말을 덧붙였다.
김동철은 그를 노려보던 시선을 떼고 사장을 바라보고 말했다.
“지원 보내야 하지 않습니까?”
당연한 말이다.
지금 중요한 건 네임드 게이트 지원이지, 세최특의 지휘 논란이 아니니까.
하물며 그 결과가 미쳤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스물여섯으로 이백의 인베이더를 죽이고 균열 너머의 상대 진형을 뭉치게 만들었다.
철저하게 아군에게 유리하게 만든 거다.
김동철은 짧은 순간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
“현장에 제가 가겠습니다.”
최소 이사급은 나가서 지휘를 해야 한다.
남명진이 뭐라 말하기도 전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박영돈이 딴지를 걸었다.
그가 테이블 위로 주먹을 올린 채로 말했다.
강경한 태도였다.
“김동철 이사는 그 세최특 친구에게 호감 있는 거 아니요?”
“있습니다.”
없어도 생길 판이다. 눈앞에 저 재수 없는 작자를 보자니 그렇다.
저 작자가 차라리 어디 뒷돈이라도 받고 덤비는 놈이라면 속이라도 편할 텐데.
뒤가 깨끗한 놈이다. 그저 제 고집에 갇혀 사는 놈일 뿐.
1세대의 영웅 여럿이 와도 하지 못 할 일을 어린 특수종이 할 순 없다.
그런 아집에 갇혀 있다.
그럼 그동안 한 일은?
우연과 운이 겹쳤다.
아버지가 사우전드 페이스라고 하지 않았나.
적아를 가리지 않고 사람 속이는 거에 닳디 닳은 위인이 바로 그 유연호다.
아버지가 아들을 돕지 않았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그 모든 공적에 아버지가 배후에 있을 거란다.
어미도 단군 그룹의 딸이라 하지 않았나.
그쪽 지원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분명 도왔을 것이다.
음모론이다. 문제는 이 이야기가 그럴듯했다는 거다.
흘려들으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현장에서 세최특에게 전권을 위임하겠다고 하는 거 아니요?”
이 말에 김동철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그래도 그는 말을 아꼈다. 꾹 참았다.
그 인내는 보상을 받았다.
“내가 가겠습니다. 나 삼성 장군 출신인 거 아시지요?”
전략 전술,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은 나쁘지 않다는 거다.
남명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는 가야 한다.
어차피 네임드가 튀어나오면 전술 따위 먹힐 틈도 없을 터였다.
누가 가도 상관없었다.
김동철은 속으로 상대를 비웃었다.
‘유광익 상대 안 해봤지?’
세최특이란 별명을 떠나서 유광익은 정상인의 범주 밖의 특수종이다.
사람은 당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법이었다.
보지 않으면 안 믿고 보고도 믿지 못한다면 당해보면 그만이었다.
“할 말이라도 있소?”
박영돈이 자신을 바라보며 입술을 말아 올릴 듯 떠는 김동철을 보며 물었다.
김동철은 웃는 대신 낭패한 표정을 연기하고 말했다.
“없습니다.”
불멸특수대의 회의가 끝났다.
* * *
“올드 포스의 도움을 받기는 어렵겠습니다. 중국, 미국, 프랑스, 독일에도 네임드 게이트 균열이 시작됐습니다.”
단군 그룹에서도 회의는 시작됐다.
“내 손자지만 참 대단해.”
그 회의 중심에 선 강노석 회장의 말이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특수대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이쪽은 일인에게 권력이 모였다.
내부에서 아무리 소란스러워도 대외적으로 회장에게 덤빌 자는 없었다.
“화랑 팀하고 지원 팀 보내.”
“네임드 게이트 대비 전력을 보냅니까?”
인류는 당해봤고 당해봤다면 준비하는 게 당연했다.
“보내.”
회장의 허락이 떨어졌다.
네임드 사냥팀, 화랑에서도 에이스로 구성한 변신족 팀이었다.
* * *
푹 젖은 채 자면 감기에 걸리기 쉽다.
물론 튼튼한 변신족의 육체를 가졌다면 그럴 일은 없다.
그렇다고 젖은 채로 자는 게 즐겁진 않은 법이다.
난 졸린 눈을 비비며 근처 아무 집이나 들어가 보일러를 틀고 뜨끈한 물로 씻고 옷을 홀라당 벗고 침대에 들어가 눈을 붙였다.
그리 잠들었다.
꿈에서 난 내가 한 일을 객관화에서 볼 수 있었다.
이게 되네.
처음에 든 생각이다.
감각을 열었다. 열린 감각은 주변 모든 정보를 빨아들였다.
난 그걸 토대로 상황을 예측했다.
한 치 앞의 예언가라 불리는 순혈 정가 정수라의 특기를 확대하여 해석한 셈이다.
앞날을 보고 읽는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군의 힘을 파악해야 했다.
내 주먹은 콘크리트 따위는 그냥 부수지만, 불멸자 전부가 그럴 순 없다.
휠 나이트의 후면은 약점이지만, 그래도 충격을 줄 근력은 받쳐줘야 했다.
인베이더의 움직임을 예측하면서 아군을 분류했다.
타격팀과 견제팀으로.
순간의 판단에 의지한 일이다.
딱히 생각하고 한 일이 아니다.
그러니 이렇게 꿈을 꾸며 생각을 정리하는 거겠지.
싸우면서 계속 생각했다.
어떻게 싸워야 이득일까.
이기기 위한 싸움과 더불어 이후의 그림도 그렸다.
그렇게 했다.
휠 나이트와 리빙 아머가 아무리 고위 넘버의 인베이더라고 해도 미사일 폭격을 이겨낼 순 없다.
그걸 위한 대형이다.
그린 그림이 형상화된다.
옆에서 깎고 앞에서 쑤신다.
흔들고 때린다. 그렇게 만든 인베이더 무리는 균열 앞에 원형을 이루며 섰다.
밀집 대형이다. 내가 그리 만들었다.
“자요?”
그 목소리에 눈을 떴다.
밖을 보니 아직도 비가 왔다. 어둑하지만, 저녁은 아니었다.
정직이의 얼굴이 보였다.
날 깨운 게 정직이의 목소리였다.
“이런 상황에서 잠이나 자다니.”
기남이다.
옆으로 시선을 돌리자, 미호가 보였다.
눈을 마주치자마자, 미호가 말했다.
“10분 뒤, 폭격 시작.”
눈치가 기가 막힌다.
“무슨 폭격?”
그 옆에서 귀태 형이 묻고 요한 형이 그 옆구리를 툭 쳤다.
“조용히 있어.”
김근육과 로즈도 왔다.
“동훈이 형은?”
“지휘부로 갔습니다. 폭격 지점 잡는다고.”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짧지만 굵게 잘 잤다.
“가져왔지?”
“넵.”
물음에 정직이가 답했다.
4번 타자와 내 장비를 말함이다.
“아들, 저거 아직 열릴 기미도 없는데.”
어머니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깨진 조각, 허공에 열린 균열의 흔적이 보였다.
“열려요.”
답하며 일어났다.
그 말에 모두 날 바라본다.
난 예언가라도 된 기분을 느끼며 다시 말했다.
“열립니다. 네임드 게이트.”
이유? 모른다. 하지만 그 앞에서 싸우며 확실히 느꼈다.
저 문은 열린다. 몸 안에 잠든 변신족의 야성과 본능이 그리 말하고 불멸자의 직감도 경고한다.
수틀리면 이곳에 공동묘지가 될 거라고.
“정기남.”
기남이를 불렀다. 내가 느끼면 얘도 느낀다.
기남과 눈을 마주했다.
느낀 걸 말해라, 정기남.
넌 순혈정가에서 가장 예민한 남자다.
기대감을 담아 그를 보았다. 기남의 눈이 빛났다. 그의 시선이 바깥을 훑는다.
짧게 몸을 부르르 떤다. 불멸자의 감각이 그가 느낀 불쾌감을 잡아냈다.
불쾌감, 그래, 나도 저 균열을 보며 그런 걸 느꼈다.
창밖과 날 번갈아 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친한 척 이름 부르지 마라. 흥.”
……우리 기남이, 눈치 더럽게 없구나.
“아들, 잠 덜 깼니?”
어머니가 걱정스레 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