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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256화 (256/488)

256. 미친 지휘

“우리는 지원이 오기 전까지 인베이더 숫자를 줄일 겁니다.”

“네?”

내 말에 문신남이 당황했다. 되물으며 나와 눈이 마주쳤다.

빗줄기 탓에 머리카락이 젖어, 빗방울이 눈두덩이에 스며들었다.

손으로 눈가를 훑으며 문신남을 바라보자, 그가 눈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웨에에엥.

타이밍 좋게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그럼 청기사가 나올 때까지 저걸 그냥 놔두게?

그냥 놔두면 이 일대를 다 채우게 생겼다.

그렇게 두면 시작부터 불리한 싸움이 될 거다.

무엇보다.

“으으, 으아아.”

비명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가 귀에 잡힌다.

불멸자의 청각이 그 소리를 잡아챘다.

인베이더라는 네 글자에 아무리 익숙해졌다곤 해도, 직접 보는 건 다른 문제다.

하물며 눈앞에서 저 커다란 쇳덩이가 위이이이잉 따위의 소리를 내며 사람을 피떡으로 만드는 걸 본 뒤에야, 오줌이나 안 지리면 다행일 것이다.

소규모 어스 블랙홀을 가정하고 주변을 통제했다.

그런데 인베이더 숫자는 계속 늘어나며, 점차 주변 일대를 잠식할 것이다.

그러니까, 미처 피하지 못하는 민간인이 다 죽게 생겼다는 거다.

조금 전에 경험하지 않았나.

일정 범위에 인기척을 감지하면 청기사가 나오기도 전에 저 무리가 먼저 반응할 것이다.

그 전에 움직이는 게 맞다.

“그래서 싸우자고?”

문신남이 되물었다.

난 불멸특수대의 행동방침을 잘 안다.

불멸특수대는 이런 일에 헛되이 목숨 던지지 말라고 한다.

안정적인 전투 상황을 조성하라 가르친다.

“생각이 있겠지. 시발, 오케이. 합류한다.”

음? 어떻게 지휘권을 가져올까 고민하는 중에 문신남이 그리 말하며 내 뒤에 붙었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보면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외침보다는 작지만, 불멸자에게는 똑똑히 들어갈 목소리로.

“지금부터 세최특 지휘하에 움직인다. 불만 있으면 나중에 말해라. 지금은 군소리 없이 간다.”

입사해서 3년, 이제 한 무리를 이끌 위치가 됐다.

우리 동기 많이 컸다는 생각과 동시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서기만 했는데, 그저 따라 준다니까.

그사이에 PWAT 두 개 팀이 합류했다.

“PWAT 김정기입니다.”

헬멧을 옆구리에 낀 대원 하나가 말한다. 눈썹이 진한 남자였다.

“대형 갖추세요. 결빙 능력자 추려서 말해 주고요.”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대뜸 명령해 봤다.

“넵!”

잘 따랐다.

무슨 말만 하면 이렇게 잘 들어주나.

“영광입니다.”

내가 구한 PWAT 팀원을 들것에 실으며 웬 초능 특수종이 말했다.

헬멧 페이스 가드까지 올리며 날 바라본다.

그 눈에 호의가 폭포수처럼 넘쳐 흘렀다.

당장 보증을 서 달라고 해도 서 줄 것 같은 그런 눈빛이다.

“인기가 흘러넘치시네요.”

옆에서 소진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러게요. 예상 못 한 상황이긴 한데.”

나쁠 건 없었다.

“결빙 능력자 총 여덟입니다.”

그 틈에 다른 초능 특수종이 다가와 말했다.

헬멧에 장비까지 대강 눈으로 훑었다.

급히 나왔다고 해도 제대로 갖추고 왔다.

“데이트합시다.”

소진에게 말했다.

그걸 들은 결빙 특수종이 고개를 내 쪽으로 꺾으며 되물었다.

“네?”

“시작하자고요.”

난 발끝으로 돌을 차올렸다.

부서진 전봇대 조각이었다. 부서진 조각을 차올리는 그 짧은 시간, 감각에 날을 세웠다.

여전히 비가 내린다. 내리는 비가 어깨와 머리 위로 떨어진다.

젖은 머리칼, 젖은 옷, 신발까지 젖어서 찝찝하다.

흐르는 빗줄기 사이로 사람들의 숨소리를 잡아챈다.

그와 동시에 조금 전 인베이더와 싸웠던 상황을 떠올렸다.

놈들의 행동 패턴, 활동 영역, 움직임 정도.

모든 걸 기억했다.

불멸자의 감각이 그걸 가능케 한다.

동시에 계산한다.

이 모든 걸 주먹만 한 시멘트 조각을 차올리는 짧은 시간 안에 해냈다.

일정 범위에 들어가도 놈들이 반응하지만, 위협해도 반응할 것이다.

마치 프로그래밍된 기계처럼.

그 예측은 정확했다.

시멘트 조각을 허공에 띄우고 공중에 몸을 띄웠다.

순간 땅과 수평이 되도록 몸을 띄운 채, 발을 휘둘렀다.

발등에 시멘트 조각을 얹으며 밀어내며 내친다.

발리슛이었다.

퉁, 쐐액! 까-앙!

발등에 차인 조각이 날아가 휠 나이트의 대가리를 때렸다.

“와우, 시발, 곧바로 시비 걸기?”

문신남이 중얼거렸다.

탁.

난 왼발로 땅에 내려서서 중심을 잡고 오른발을 든 채 말했다.

“얼려요.”

“어딜요?”

“땅.”

위이이이잉!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휠 나이트 여섯이 반응했다.

결빙 능력자 여덟은 내 말대로 했다.

바로 옆에서 냉기가 느껴진다. 느껴지기 무섭게 땅을 바싹 얼린다.

차자자자작.

기묘한 소음과 함께 비 내리는 땅 위로 빙판이 생긴다.

모든 바퀴를 가진 구동체의 약점이다.

미끄러우면 움직이기가 음경 같은 거다.

뭐, 휠 나이트가 이걸 예상하고 윈터 타이어로 교체하고 왔다면, 오케이, 내 패배를 인정한다.

위이잉! 끼기기긱!

얼린 땅 위로 놈들이 내달리다가 볼품없게 넘어진다.

끼기기기긱!

바닥에 미끄러지며 퍼버벅 하고 빙판을 깨부수며 나동그라졌다.

“구경만 할 거야? 사격.”

“쏴.”

넘어지며 등이 드러난 휠 나이트 상대로 불멸특수대가 납탄을 쏟아냈다.

“옥토퍼스로.”

문신남이 말하며 손가락을 들었다.

그가 가리킨 쪽을 향해 불특대 둘이 글록 17로 갈겼다.

타다다당!

매캐한 연기는 없다. 빗줄기가 모든 걸 씻어낸다.

옥토퍼스탄, 할로우 포인트탄의 개량판이다.

중공탄의 일종으로, 몸 안에 박히면 문어발처럼 퍼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관통이 아니라 저지력을 우선으로 삼기에 리빙 아머처럼 약점이 없는 놈들을 부수기에 좋다.

“산탄.”

이후, 불멸특수대는 맞물리는 시계태엽처럼 움직였다.

산탄총으로 갈기고 뒤를 보이는 놈을 족족 조진다.

“계속 얼려요.”

여덟 명의 결빙 능력자는 내 말에 죽을힘을 다해 초능을 썼다.

“얼려, 다 얼려!”

퍽.

코피 터지는 이들이 몇 나왔다.

“염동 능력자, 상대 눈 가려요.”

휠 나이트와 리빙 아머는 감각 기관이 다양하지 않다.

눈으로 추정되는 곳만 있을 뿐, 얼굴 부근에 두 개의 빛이 뿜어지는 곳이다.

난 바닥에 널브러진 젖은 천을 뭉쳐 던졌다.

이번에는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다.

제구 잘된 천 뭉치가 날아오던 리빙 아머의 얼굴을 때렸다.

퍽.

얼굴에 엉킨 천을 놈은 떼어내지 못했다.

양손이 창날인데 어떻게 떼겠냐고.

날아오던 리빙 아머가 허공을 빙빙 돌았다.

“피와 살, 쇠가 터지는 데이트 한 방.”

그걸 보며 중얼거렸다.

내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소진이 튀어 나갔다.

그 육중한 몸과 어울리지 않게 부드러운 움직임이다.

빗줄기를 뚫으며 내달린다.

땅을 박차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유연한 근육이 비틀어진다.

그녀는 허리를 뒤틀며 허공에 몸을 띄우더니, 위에서 밑으로 발을 내리쳤다.

데이트하는 와중에도 압축 경화 부츠를 신고 온 그녀에게 경의를.

콰-앙!

폭음에 가까운 소리가 터졌다.

우저저적.

그리고 리빙 아머 한 마리가 반으로 갈라지듯 아작 났다.

몽둥이로 수없이 내리쳐 반으로 쪼갠 듯한 형편없는 고철 덩이가 됐다.

“가려요.”

내가 말했다.

염동 능력자가 제 일을 했다.

난 그 틈에 돌멩이 따위를 던져 계속 놈들을 도발했다.

특히나 숨소리, 기척 따위가 느껴지는 곳 위주로.

나를 포함한 모두는 어느새 작은 반원을 그렸다.

포위망 형태를 만들고 그 안에 인베이더를 유인, 격살이다.

난 감각을 더 예민하게 했다.

기척, 움직임, 사람, 인베이더, 동료, 불멸특수대, PWAT, 정소진, 나.

모든 걸 머릿속에 담고 움직인다.

“여기 막아요.”

왼손 검지와 중지로 가리킨 곳.

초능 특수종이 손을 뻗어 위로 치켜올린다.

그 앞으로 암석 장벽이 생겼다.

달려오던 휠 나이트가 돌진하며 장벽을 깼다.

하지만 그만큼 속도가 줄었다.

불멸특수대가 반응해서 사냥하기 충분할 정도로.

속도가 줄은 놈의 바퀴로 와이어가 걸린다.

양쪽으로 와이어를 잡은 특수대 둘이 와이어를 돌려 당겼다.

팽팽하게 당겨진 와이어가 바퀴 사이에 걸린다.

드드드드드득!

빗줄기가 사방으로 튄다. 그 틈을 노린 육체 강화 능력자가 뒤에서 묵직한 철퇴를 휘둘렀다.

뻥!

시원한 소리가 터졌다.

머리가 터진 휠 나이트가 앞으로 고꾸라진다.

“얼리고.”

이번에는 오른쪽이다.

감각이 말한다.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한다.

지금 난 전장을 지휘하는 사람이자, 예언가였다.

내가 말하는 곳에 땅이 솟고 빙판은 만든다.

“던지고.”

젖은 천, 천막, 넓은 널빤지가 날아간다.

어떤 건 날아오는 리빙 아머의 눈을 가리고 이동을 방해한다.

“소진.”

가리킨 곳으로 변신족이 돌진한다.

어느새 전신에 검은 털이 솟은 피지컬 소진은 제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덩치가 두 배는 더 커졌다.

꽝!

그 주먹에 걸린 리빙 아머가 박살 난다.

단군 그룹의 화랑은 능히 그 혼자 어지간한 인베이더 열 마리는 상대한다고 했던가.

소진은 그 이상이었다.

그녀는 변신했다.

“우오오오오오!”

그리고 양 가슴을 두드렸다.

퍽이나 잘 어울리는 변신체다.

고릴라였다.

털북숭이가 된 체, 그녀는 쓰러지거나 뒤를 보이는 리빙 아머를 부쉈다.

그러면서 외치는데, 그게 꽤 섬뜩하기도 했다.

“데이트!”

“우오!”

“데이트!”

“피와 살! 데이트!”

변신족은 변신하면 조금 거칠어지기도 한다. 속마음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호테에에에엘!”

마지막 외침이 그녀의 욕망을 십분 반영했다는 것에 이견의 여지가 없을 터였다.

욕구불만의 변신족은 역시 무섭다.

난 계속 같은 방식을 반복했다.

예측했고 움직였다.

빗줄기가 더 거세졌다.

꽈릉!

이번에는 역뢰가 아니라 제대로 떨어진 벼락이다.

파란 나뭇가지가 허공에 수를 놓는다.

시각은 그리 필요치 않았다.

그저 느꼈다.

인베이더의 패턴과 움직임.

아군의 움직임.

“우아아아.”

고요한 기합, 불멸자 특유의 기합이다.

동기 문신남이 총알이 떨어진 기관단총을 던지며 몸을 날렸다.

휠 나이트 한 마리의 머리를 뛰어넘으며 칼을 역수로 잡고 그었다.

분투다.

그렇게 한 마리를 잡고 몸을 바로 세운다.

다음 적을 찾는다.

지친 기색이 보이지만, 괜찮다.

이미 약을 먹었는지, 눈빛이 붉다.

슬쩍 눈을 떠, 그를 일견하고 다시 다른 상황을 살폈다.

전장에 합류할 수는 없었다.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와 같았다.

예측이 조금만 벗어나도 누군가 죽을 것이다.

지금 지휘를 멈출 순 없다.

슬쩍 건드리며 숫자를 줄이려는 시도가 상대에게 큰 위협으로 느껴진 듯했다.

놈들이 반응했다.

휠 나이트와 리빙 아머, 오롯이 두 종류의 인베이더이지만,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기에 즐겼다.

계속된 예측과 싸움이 이어진다.

“코피 납니다.”

빗줄기 속에서도 선명할 정도로 피가 흘렀나 보다.

차가운 물줄기 사이로 뜨끈한 액체가 입술을 타고 흘렀다.

“그쪽도요.”

내가 말했다.

바로 옆에 붙은 결빙 능력자가 제 코를 훔친다.

그 타이밍이다.

“민간인 대피 완료.”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아는 목소리였다.

이 양반이 제일 먼저 왔네.

“왔어요?”

“뒤로 빠져요. 광익 씨, 이곳은 이제부터 특수 재난 지역이에요.”

뒤로 물러났다.

꽈르르릉.

이번 뇌전은 뭔가 달랐다.

게이트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다.

사람에게서 뿜어졌다.

초능 특수종의 소행이었다.

파란 뇌전이 채찍처럼 뻗어 나가더니 다가오던 리빙 아머 둘을 관통한다.

몸을 뚫은 뇌전 채찍이 펼쳐지자, 둥둥 떠다니는 게 장기인 유령 갑옷의 전신이 조각난다.

훌륭한 기예다.

“잘했어요.”

팀장 누나가 말했다.

어질했다.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나자, 나와 함께 했던 이들도 물러났다.

“뒈질 뻔했네.”

문신남의 목소리다. 고개를 돌리니, 한쪽 팔이 안 보였다.

“민간인 피해가 하나도 없었어요. 전부 광익 씨 덕분이에요.”

팀장 누나가 다시 말한다.

기절할 정도는 아니다. 버티면 버틸 수도 있다. 하지만 뇌를 과하게 쓴 건 분명했다.

난 주변으로 의식을 뿌렸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위기는 없다. 당장 네임드가 튀어나올 것도 아니다.

“좀 쉴게요.”

난 당장 나한테 필요한 걸 했다.

눈을 감고 잠드는 거다.

“자는 거야?”

“……그러네요.”

눈을 감고 수마에 빠져드는 내 귀로 문신남과 팀장 누나의 목소리가 남았다.

“미친 지휘력이었어요. 아무도 안 죽었습니다.”

곁에 붙어 있던 결빙 능력자의 목소리를 끝으로 난 잤다.

뇌가 찌릿찌릿 한 게 지금 안 자면 진짜 데미지가 남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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