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255화 (255/488)

255. 전투 데이트 (2)

비가 오네.

아침부터 꾸물꾸물 하늘이 흐리더니 비가 내렸다.

“비 오니까, 운치 있네요.”

갈비 여덟 대를 씹어 삼키며 하는 말인지라, 그리 운치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넓은 갈빗집.

난 약속대로 피지컬 소진과 데이트를 했다.

일단 밥부터 먹는 참인데, 먹다 말고 소진이 말했다.

물론 음식을 앞에 두고 구경하는 건 훌륭한 특수종이라 할 수 없기에 나도 부지런히 먹었다.

특수종을 위한 식당이 아닌지라.

“……먹방인가?”

“정말 잘 먹는다.”

다른 테이블에 있던 커플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말이 맞았다.

우리는 정말 먹었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음식이 더 쑥쑥 들어갔고, 그건 정소진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주문할 때까지는 사장님도 헤벌쭉 웃더니, 지금은 질린 표정이 됐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나서니.

“특수종이시죠?”

카운터 맞은편, 사장이 물었다.

“네.”

“아휴, 진짜 잘 드시는구나. 우수리 떼고 결제하겠습니다.”

꽤 융통성도 있는 양반이었다.

사이다랑 공기밥 같은 거는 서비스로 쳐 주기도 했고.

“오늘 장사 다 했네요.”

큰 손님을 치른 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수고하세요. 잘 먹었습니다.”

동방예의지국의 아들답게 난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왔다.

그걸 옆에서 보던 소진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말했다.

“보기 좋네요. 사람이 타인을 대할 때 보면 그 인성이 나온다고 하던데, 광익 씨는 예의가 참 발라요.

제 어머니께서 말씀이 떠오르네요. 남자를 고를 땐, 그 남자가 다른 사람 대하는 걸 보고 만나라고. 바로 갈까요?”

“어딜 가?”

평소와 같은 수다의 끝에 붙인 말에 나도 모르게 반말이 튀어 나왔다.

“어디긴요. 호텔 예약해 뒀는데.”

화끈하다. 화끈하다 못해 폭발적이라고 해야 맞겠다.

“남녀 간의 데이트라고 하면 당연히 기승전호텔 아닌가요?”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 말에 진심이 느껴졌다.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는 거다.

이 여자 너무 위험하다.

“호텔은 안 갑니다.”

왜요?

소진이 눈으로 물었다.

이 여자가 진짜.

그리 말하며 난 나온 가게를 돌아봤다.

“왜요?”

소진이 물었다.

발을 멈춘 채, 난 코를 한 번 훔쳤다.

뭘까.

이상하게 불길하네.

방금 먹은 고기가 상했나? 아니, 그럴 리는 없다.

변신족의 후각은 매섭다. 특히나 음식에 관해서는 더없이 민감하다.

그런데 생기는 불안감.

“근데 왜 자꾸 존댓말 하는데요? 원래 말 놨잖아요.”

“일할 때는 그게 편했는데, 지금은 거리감 좀 두려고요.”

평소에 가졌던 생각을 아낌없이 말하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왜 불길할까?

혹시 불멸교 암살자 친구들이 또 놀러 왔나?

그럼 반갑게 인사해 줄 용의가 가득했다.

육감의 칼날을 세운다. 불멸자는 특유의 주파수를 다룬다. 그건 오감을 넘어선 육감을 통해 만들어지는 특유의 인간 전파다.

그걸 통해 주변을 탐색한다.

아무것도 없었다.

고로 암살자는 없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내 감각을 속이는 놈이라면 한 방은 당해 줘야 한다.

그게 예의지.

“거리감 두는 거 서운해요. 밀당 좋아하는 거면, 네 좋아요. 제가 당기도록 하죠. 잠깐 기절할래요? 그럼 제가 알아서 들고 갈 테니까?”

그건 밀당이 아니라, 납치 아닌가?

헛소리하는 소진과 눈을 마주하며 내가 말했다.

“잠깐 좀 갑시다.”

“네?”

“가자고요.”

그냥 육감과 직감이었다. 따로 일이 있어서 움직인 게 아니다.

“일부러 여기서 밥 먹자고 한 건데, 저기 호텔 있어서.”

이 여자는 아직도 호텔 드립이다.

그리 움직인 곳.

지하철역 뒤편, 서울에 이런 동네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오래된 골목길이 보였다.

전깃줄이 머리를 수놓는 곳이다.

쿵.

골목길에 발을 디디는 순간 큰 소리가 들렸다.

그대로 땅을 박찼다.

툭툭 내달리니, 소진이 옆에 붙었다.

투둑투둑.

내리는 빗줄기가 얼굴을 때리지만, 난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도착하자마자 본 건, 게이트였다.

순경을 막 덮치는 휠 나이트도 보였고.

뛰면 늦는다.

반사적으로 기어를 발동한다.

단 몇 초 만에 내 왼손 검지와 중지 위로 기생 라이플의 총구가 생긴다.

피 한 방울을 머금은 탄이 허공을 가르는 것도 순간이다.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기생 라이플을 만들고 쏘는 과정을 전부 압축해서 행했다.

그리 날아간 탄이다.

휠나이트는 38구경을 쏘아대던 순경을 노렸지만, 머리가 퍽하고 터지며 구멍이 뚫렸다.

기생 라이플은 저격 총이다.

거리가 꽤 가까웠기에 그 일격이 휠 나이트의 장갑을 뚫을 수 있었다.

머리가 관통당한 놈이 뒤로 물러난 사이, 두 순경의 앞으로 가로막았다.

소진이 옆으로 붙는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꽈릉- 하더니 역뢰, 게이트에서 위로 파란 번개가 친다.

그걸 보는 순간, 몇 가지 기억과 정보가 머릿속에 스쳤다.

불멸특수대에서 배운 것과 경험한 내용이 혼합되어 결론을 내린다.

“네임드 게이트.”

지원을 요청하라 말하고 소진과 농담 한마디를 나누는 사이, 게이트의 균열이 더 커진다.

“진짜 이걸 데이트로 칠 거예요?”

소진이 물었다.

바닥에 피와 살점이 빗줄기를 맞는 게 보였다.

“이런 데이트는 처음이죠?”

“말이라고 해요?”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전투 데이트라니, 평생 못 잊을 겁니다.”

“……음, 나름대로 재미는 있겠네요.”

농담으로 한 말인데, 이걸 또 이렇게 받네.

이 여자도 정신 상태가 정상은 아니다.

품에서 장갑을 꺼내 꼈다.

균열의 틈에서 휠 나이트와 리빙 아머가 섞여 나온다.

그 외 인베이더는 보이지 않았다.

네임드 게이트의 특징이다.

그 네임드와 관련된 인베이더만 나온다.

마치 장군을 따르는 병사 무리와 같고 나오는 방식은 웨이브다.

“후우. 후우.”

소진이 호흡을 고르는 소리가 들리며 내 눈에 환영이 겹쳐진다.

커다란 등.

그때의 등이 시작이었다. 인베이더와 싸우는 사람이 되고자 했던 시작이 그때였으니.

꽈릉.

다시 역뢰가 친다. 아래에서 위로 치는 푸른 번개다.

불길함의 대명사.

휠 나이트와 리빙 아머에서 탄생한 악몽.

시속 200km가 넘는 속도로 움직이는 미친 네임드.

양손에 달린 푸른 에너지 블레이드는 아다만티움도 가른다.

“블루 나이트 게이트로 추정되는 게이트 발생, 현재 위치 좌표 추적 요망, 사상자 발생, 세최특과 화랑 정소진, 전장 위치합니다.”

뒤에서 소진이 전화로 연락하고.

나도 전화를 들었다.

휠 나이트와 리빙 아머는 도열이라도 하듯, 균열 앞으로 나와서 줄을 섰다.

“형, 전데요. 네임드 게이트 열린 듯.”

“뭐가 열려?”

“전사 직원 전부 출동시켜 주시고 제 무기 좀요.”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당장 할 일부터 해야겠다.

“순경 아저씨들, 빠져요. 뒤로 물러나서 주변 통제 부탁합니다.”

“네?”

“빨리요.”

“넵!”

PWAT로 보이는 인원이 다섯.

넷은 죽었다.

하나는 도열한 놈들 곁에 붙어 있었다.

기생 라이플로 하나하나 잡으려면 반평생쯤 걸리겠네.

인베이더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하나에서 열, 열에서 백.

순식간에 백 단위가 넘는다.

균열이 다 터지지도 않았는데 이런다.

일전에 터진 특이종 게이트와 비교할 정도로 빠르다.

“대기.”

소진에게 말하고 달렸다.

내가 움직이자, 내 쪽에 서 있던 리빙 아머 셋과 휠 나이트 넷이 반응했다.

리빙 아머의 팔, 창 모양의 팔이 날아온다.

그 틈으로 휠 나이트의 돌진이 짓쳐들어 온다.

그 모든 공격은 몇 초안에 내 몸에 닿을 것이다. 이대로 돌격한다면 내 몸을 찢어발긴다.

전투 예지가 절로 발동했기에 그에 맞춰 행동했다.

일부러 그런 것이다.

움직이면 날 향해 다가올 걸 알았기에 한 행동.

난 왼발로 땅을 찍으며 몸을 멈췄다.

고속 이동 중에 단숨에 속도를 제로로 만든다.

우드득.

왼 허벅지 근육부터 허리까지 비명을 지른다.

우우우웅.

휠 나이트의 랜스 하나가 얼굴 앞을 지나갔다.

리빙 아머의 공격도 허무하게 허공을 가른다.

난 몸을 반쯤 수그렸다. 수그리며 장갑에 깃든 주문을 발동했다.

갤럭시 필드, 허공에 은하수를 닮은 방어막이 생기고.

따다다당!

그 위로 양팔에 창이 아닌 칼날을 단 리빙 아머의 공격이 막혔다.

잠깐이면 충분했다.

그 틈에 난 바닥에 쓰러졌던 사람의 뒷덜미를 잡고 뒤로 뛰었다.

앞을 보며 뒤로 쭉쭉 몸을 날렸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낚이듯 일곱의 인베이더가 여전히 날 쫓았다.

특히나 두 마리의 휠 나이트가 무서운 속도로 짓쳐들어 왔다.

랜스가 점처럼 보인다. 점이 곧 선이 되고 그 선은 묵직한 질량을 갖춰 내 몸통을 꿰뚫는다.

랜스가 몸에 닿기 전, 뒤로 주운 사람을 던지며 몸을 숙였다.

뿌드드드.

난 후드티 차림이었다. 그 후드 끝에 랜스가 걸리며 상의 반을 찢어 발겼다.

대신 난 공격을 피했고, 앞으로 굴렀다.

휠 나이트가 몸을 돌리기 전에 그 뒤를 잡아채면서, 나는 팔꿈치를 아래에서 위로 그었다.

아래에서 위로, 근육의 폭발력을 가득 담은 엘보다.

콰드득. 우적, 쩡.

마지막 팔꿈치에 걸린 투구가 우그러지며 깨졌다.

힘을 너무 준 탓에 발이 붕 떴다.

그 뜨는 힘 그대로 내가 죽인 휠 나이트의 어깨를 짚고 위로 공중제비를 돌았다.

발이 하늘로 머리가 땅으로 향한다.

그 자세 그대로 허공에서 기생 라이플을 발동했다.

날 보고 반응한 휠 나이트의 머리와 리빙 아머를 눈에 담고 한 발.

꽝, 터더덩.

갑옷이 관통당하는 소리가 경쾌하다.

반동으로 몸이 밀린다. 그 힘 또한 이용해서 밸런스를 잡고 바닥에 내려섰다.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순간이다.

근접한 리빙 아머의 머리에 묵직한 돌이 떨어진다.

뻥.

돌이 아니라 전봇대였다. 반쯤 부러진 전봇대를 누가 휘둘렀다.

누구겠나.

“갑자기 무슨 미친 짓이에요?”

정소진이다. 리빙 아머는 구멍 한두 개 뚫린다고 죽지 않는다.

소진은 화끈하게 리빙 아머를 조각냈다.

훌륭했다.

나한테 반응한 몇 마리도 둘이서 제거했다.

이 정도야 문제도 아니다.

나머지 인베이더는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반응 안 한다는 건가.

네임드 게이트는 나도 처음이다.

“말도 없이 그러면 곤란하다고요.”

소진이 말했다.

“대신 구했잖아.”

나도 모르게 또 반말이 나왔다.

난 말하며 뒤쪽을 가리켰다.

“끅, 누구?”

던진 김에 깨어났는지, 신음과 함께 PWAT 팀원이 입을 연다.

“NS 유광익.”

말하며 다가갔다.

“화랑 정소진이요.”

“이게 무슨?”

상체를 반쯤 일으킨 그가 우리 뒤로 보이는 광경에 눈이 동그래졌다.

놀랄 만도 하지.

그 짧은 틈, 인베이더 숫자가 이제는 이백은 훌쩍 넘어 보였으니까.

그리고 균열도 더 깨졌다.

우지직.

지금도 깨지는 중이고.

“PWAT 팀 지원 요청하면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설명할 시간 따윈 없었다.

“그, 적어도 이십 분 이내는…….”

“그럼 통신 때려요. 한가하게 구경할 시간 따윈 없을 것 같으니까.”

말하고 다시 몸을 돌렸다.

“청기사가 나오기 전까지 저놈들은 잠든 강아지 같을 거예요.”

소진이 옆에 바짝 붙어 섰다.

“그리고 깨어나면 미친 사냥개가 되겠지.”

“이런 순간에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광익 씨 반말할 때 조금 섹시한 것 같아요.”

이 여자 정말 상태가.

“단군에서는 지원 얼마나 걸려요?”

꼭 존댓말 써야지.

“화랑, 제대로 된 병력이 오려면 최소 30분이요.”

위치가 안 좋다고 했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건 PWAT랑 불특대 비상팀 정도가 될 것 같았다.

눈을 두어 번 깜빡이며 생각했다.

이대로 놔두면 청기사가 나올 거다.

네임드가 괜히 인류의 악몽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청기사와 함께 저 인베이더 무리가 하나가 되면 불리한 싸움의 시작이다.

당장 근처에 기웃거리는 민간인 피해도 꽤 될 것이다.

지금 해야 할 일은 하나다.

숫자를 줄인다.

제대로 된 기어나 무기도 없이 짓쳐들어 가서 숫자를 줄이는 건 무리다.

그래서 줄일 수 있는 숫자는 한계가 있다.

필요한 건 병력.

“근처에 PWAT 팀이 두 개 있었습니다. 지금 옵니다.”

내가 살린 남자가 말한다.

“시발, 이게 뭐야?”

그리고 들린 목소리.

반가운 얼굴이었다.

동기, 용 문신 동기의 목소리다.

함께 온 불멸특수대가 열둘이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다만 지휘 문제가 남는다.

내 말을 들을 것인가.

뭐, 안 들으면 듣게 하면 그만이긴 하다.

“NS 유광익입니다. 지금부터 이곳을 통제합니다. 상부와 얘기 끝났습니다. 대형 갖추세요. 우리는 지금부터 인베이더 숫자를 줄입니다.”

그 말에 불멸자 몇의 안색이 질린 게 보였다.

나 같아도 그러겠다.

지금도 균열에서 인베이더가 쑥쑥 쑴풍쑴풍 나오는 중이다.

끔찍한 숫자가 채워진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숫자는 오십도 되지 않는다.

“괜찮아요. 일정 범위에 안 들어가면 반응 안 합니다.”

조금 전 일로 증명되지 않았나.

저놈들은 블루 나이트가 나오기 전까지는 인형이다.

제 주인을 기다리는 멍청한 인형.

“데이트 한번 진짜 다이내믹하네요.”

옆에서 소진이 중얼거렸다.

나도 그 말에 십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말입니다.”

전투 데이트다. 다이내믹이 생명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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