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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254화 (254/488)

254. 전투 데이트 (1)

신주호는 죽을 것 같았다.

일에 치인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사람의 뒤를 캔다.

특기를 십분 발휘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혼자서는 도저히 답도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가족을 불렀다.

본래 특파라치 회사를 운영했을 때도 패밀리 비즈니스였다.

자기 대신 손발이 되어 줄 이들이다.

물론 이것도 일손이 부족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당장 사람을 뽑을 수도 없다.

대표라는 양반이야 사람을 충원하라고 하지만, 이런 일에 익숙한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당장은 무리 좀 해도.’

뚝.

그러던 중이다. 코안에서 뭔가 뭉클하고 흐르는 느낌이 나더니, 뜨끈한 액체가 코에서 흘러나왔다.

콧물인 줄 알았다.

일교차가 심한 날씨에 너무 열심히 일한 탓이라고.

안 그래도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았다.

“여보.”

아내가 자신을 부른다.

“코피 나.”

콧물이 아니라 코피였다.

손으로 틀어막았다. 빨간 액체가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보고 있던 문서 따위에 묻지 않게 하려고 의자를 뒤로 밀었다.

“왜 그렇게 열심인데?”

그걸 보며 동갑내기 아내가 휴지를 건네며 묻는다.

코를 막으며 아내와 눈을 마주쳤다.

“좀 적당히 하면 되잖아. 목숨 걸고 일하는 사람 같아.”

아내는 걱정 반, 의구심 반을 담아 물었고.

신주호는 자신이 워커홀릭 수준의 인간이 아니라는 걸 떠올렸다.

‘그 정도는 아니지.’

그렇다고 열심히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코피 터지면서까지 일하진 않았다.

일은 돈을 벌기 위해서 한 거다.

돈이 안 되면 적당히 쳐 낸 일도 많다.

가끔은 동정심이 일어 수당은 적지만 제대로 한 일도 많고.

결론만 말하면, 적당한 수준으로 적당히 일했다는 거다.

근데 갑자기 이러는 이유는 뭐냐 이거다.

신주호는 생각했다.

‘내가 왜 그럴까?’

이리 열심히 하는 이유?

몇 가지로 추려볼 수 있었다.

그중 하나는.

“진짜 대단한데.”

“이제까지 대기업에서 스카우트 안 당했어요?”

“외국계 기업이 눈독 들이고 그랬죠?”

전부 유광익이 한 말이다.

고로, 대표 때문이다.

그 누가 이제까지 제 능력을 이렇게 인정해 줬는가.

불륜 사냥개, 쓰레기 수집가 따위로 자신을 부르던 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자신을 대표는 십분 존중한다.

그 시작은 꽤 껄끄러웠지만, 이후의 그는…….

“그냥.”

신주호로서는 그걸 일일이 말하기도 뭐 했다.

설명하자니 낯간지럽기도 하고.

“속을 모르겠네.”

아내는 그리 말했고.

먹고 자다시피 하는 사무실에 손님이 찾아왔다.

똑똑.

노크 두 번 하고 문을 슬며시 연다.

“바쁘시죠? 네, 압니다. 바쁘신 거. 그래도 이거 드시라고.”

최근에 입사한 대표의 개인 비서다.

제일 먼저 뒷조사를 한 사람이다.

이력이 꽤 특이한 사람이었다.

이 회사, 저 회사 메뚜기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일한 사람이다.

그 와중에 무슨 생각인지, 중간에 전부 때려치우고 세계 일주도 하고.

그래서 뒤를 캐기가 어려웠다.

난잡한 이력이라고 봐도 좋았으니까.

덕분에 돈도 쓰고 사람도 썼다.

대표 곁에 있어야 하는 사람 아닌가, 위험인물을 가만히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가 다녔던 회사의 동료를 찾아 물었다.

대답은 대부분 비슷했다.

“아, 그분이요. 특이했지. 그분 고졸인 거 알아요? 처음에 우리 회사 어떻게 입사했나 했다니까, 근데 그럴 만했더라고요. 대표님이 사람 보는 눈이 기가 막히셨죠. 이런 걸 중고 신입이라고 해야 하나? 신입인데, 어지간한 경력직보다 일을 잘하시더라고요.”

중소기업 대표에게도 물어보니, 비슷한 말이 나왔다.

“강단 있어 보였어요. 일단 3개월 수습 때 아니다 싶으면 내보내도 된다고 하기도 했고.”

대표가 알고 뽑은 건 아니다. 이런 정보를 전부 알 수는 없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 잘 뽑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잡무, 사소한 일 처리를 하는 수준이 어지간한 사람 열 명 몫을 한다.

“이거 드시랍니다.”

그 개인 비서가 말하며 작은 나무 상자를 건넸다.

그리 크진 않은 세로 30cm 가로 15cm 정도의 직사각형의 나무 상자다.

어쩐지 풀 내음이 물씬 풍길 것 같은 외형이다.

“네?”

아내가 감사하다며 먼저 받았다.

상자를 여니 짧은 편지가 들어 있었다.

<몸 좀 사려가면서 해요. - 광익>

대표였다.

그 안에 든 건, 아더 사이드 그중에서도 칼날 바위삼이다.

단군 그룹이 관리하는 아더 사이드에 들어가야 구한다는 귀한 물건이 들어 있었다.

“이거 바위삼 같은데요?”

“그러게.”

바위삼, 산삼보다 몇 배는 뛰어난 효능의 보양제이자, 정력제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생으로 씹어먹으면 곧바로 피로가 회복되는 천혜의 피로 회복제이기도 하다.

귀한 물건이었다.

“이런 걸 일개 사원을 먹으라고 주기도 해요?”

“그러게.”

두 번 읊조리자, 아내가 먼저 한 뿌리를 꺼냈다.

회색빛의 잔뿌리가 숭숭 돋아난 바위삼이 눈앞에 드러났다.

둘은 한 뿌리씩 씹어 먹었다.

총 세 뿌리가 들어 있었다.

먹자마자 뱃속에서 열기가 훅 올라왔다.

기분이겠지만, 눈앞에 인베이더가 튀어나와도 때려잡을 수 있을 것처럼 기운이 솟았다.

“늦둥이, 하나 가질까?”

신주호가 말하자, 아내가 픽 웃으며 말했다.

“미친 소리 하지 말고.”

아내는 그 뒤 말없이 일에 매진했다.

십 년 넘게 같은 침대를 써 온 사이다. 대강 남편의 변화가 이해되는 눈치다.

이 바위삼만으로 증명되지 않나.

이 대표라는 양반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그리 둘이 다시 일에 집중할 때다.

웨에에엥! 웨에에엥! 웨에에엥!

홀로그램 폰에서 사이렌에 울렸다.

둘 다 동시에.

진동으로 바꾼 폰에서 벨이 울렸다는 건, 안전 관련 문자다.

지진이나 해일, 자연재해나 나야 들을 소리다.

물론 특수종의 세상에서는 이 경보가 좀 자주 울리긴 했다.

가령 근처에 게이트가 열렸다든가 하는.

신주호는 폰을 열어, 안전 안내 소식을 봤다.

다행히도 근처에 게이트가 열렸다는 소식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나쁜 소식이었다.

* * *

서울, 예전에는 성매매가 유행했던 곳이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와 새로이 개발되는 곳이다.

그곳에서 아직 흔적이 남은 골목이다.

차가 들어오긴 무리인 좁은 골목.

전봇대가 곳곳에 세워지고 전깃줄이 아직 머리 위를 지나는 곳이다.

그런 곳에 덩그러니 블랙홀이 생겼다.

그리 크진 않았다.

적당히 작고 적당히 만만해 보이는 구멍이다.

이런 구멍이 생기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흔한 일이었다.

자정 무렵에 언택트 경보가 울렸고, 이걸 처리하기 위해 근처에 있던 경찰 둘이 출동했다.

둘은 그걸 확인하고 지원 요청을 했다.

곧 PWAT가 왔다.

초능 특수종 셋이 측정기를 돌렸다.

“눈먼 개, 라인이요.”

초능 특공대 팀원 하나가 말했다.

그 말에 선배 순경이 물었다.

“지원 더 부를까요?”

“우리 쪽에서 팀 불러서 처리하겠습니다. 놔두세요.”

“네, 수고하십시오.”

순경은 말하고 돌아섰다.

그들은 말한 대로 했다.

곧 PWAT 팀 하나가 더 왔다.

그렇게 모인 사람이 다섯이다.

눈먼 개의 라인이다.

대강 도탄을 막을 펜스를 세운 뒤, 사격으로 조지면 될 일이었다.

순경도 그 정도는 알았다.

그들은 그렇게 했다.

펜스를 세우고 홀 주변을 막았다.

근처에 폴리스 라인을 치는 건 순경의 몫이었다.

그리 움직이는 사이, 주변 주민에게 대피하란 말도 전했다.

“내 가게를 놔두고 자꾸 어딜 가라는 거야.”

화가 잔뜩 나 있는 서른 초반의 여자가 투덜거렸다.

동네 미용실 사장이었다.

“네, 그래도 인베이더가 튀어나오면 위험합니다. 들어오시면 안 되고요. 이 라인 넘어오시면 공무집행방해로 잡혀가요. 아줌마.”

“누가 아줌마야!”

꽥 소리를 지른다.

“아이고, 여기서 소리 지른다고 일이 빨리 끝납니까? 아시잖아요. 홀 열리기 전에는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요. 가게 별일 없을 겁니다. 그리 위험한 홀이 아니에요.”

이런 일이 익숙한 선배 경찰은 잘 달래 돌려보냈다.

“내 가게 잘 지켜 줘요.”

아줌마라 불렸던 여자가 속삭였다.

“네네, 걱정 마시고요.”

제 삶의 터전을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야, 말 좀.”

그녀를 돌려보낸 선배가 후배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진 없고.”

“별일 없겠죠?”

“뭔 일이야 있겠냐?”

홀이 열리는 걸 기다리는 사이, 순찰차 몇 대가 더 와서 라인을 지켰다.

반쯤은 구경꾼의 심정으로 순경 둘은 홀을 바라봤다.

초능 특공대 다섯이 자동 소총을 들고 섰다.

나오면 바로 갈겨 버릴 심산으로 보였다.

“총소리에 오줌 지리지 말고.”

선배가 농담을 건넸다.

“저, 훈련소 만발 사격자입니다.”

“아이고, 그러셨어요.”

“네, 언제 한번 사격 내기 한 판 하시죠?”

“좋다. 소개팅 걸고?”

“접수.”

자동 소총이 문을 겨눈다.

눈먼 개가 튀어나오면 전신에 구멍을 박아 주면 끝날 일이다.

그걸 반복하면 끝이다.

순경 둘은 그 광경을 기다렸다.

그들의 예상은 시작부터 망가졌다.

찌지직. 쩌적.

“음?”

선배가 외마디 물음을 내뱉는 사이다.

깨진 균열, 그 안에서 원뿔 형태의 창이 불쑥 나온다.

눈먼 개에게 저런 게 달렸던가?

그런 적은 없다.

쩌저저적.

균열이 유리 조각처럼 흩어지며 깨진다. 그 안에서 인베이더가 모습을 드러냈다.

“……갈겨!”

한 타이밍 늦게, 초능 특공대 중 누군가가 외쳤다.

두두두두두.

총성, 높은 데시벨의 골목길을 울렸다.

순식간에 납탄 수십 개가 나온 인베이더를 때렸고.

투두두두두둥.

전부 튕겨 나갔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 나온 인베이더 전신에 불똥이 튀었다.

어지간한 화력으로는 제압하기 어려운 놈.

위이잉.

넘버링 65 휠 나이트.

위이이이잉.

발 대신 달린 바퀴가 바닥에 닿으며 소음을 터트린다.

가볍게 생각한 일의 끝이 암울해지는 순간이다.

휠 나이트가 돌진한다.

체중 120kg을 훌쩍 넘는 육중한 몸이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달려온다.

퍽.

손에 들린 원뿔이 특공대 하나를 꿰었다. 퍽하고 터지며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돌진하는 힘 그대로 휠 나이트의 원뿔에 전봇대가 스치기도 했다.

퍼버벅.

콘크리트가 사방으로 퍼졌다.

전봇대 하나가 옆으로 기운다. 전깃줄이 엉키며 파지직- 소리와 함께 스파크가 튀었다.

게이트에서는 총 셋의 인베이더가 나왔다.

시간차 없이 단숨에.

그리 나온 놈들은 내달렸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세워둔 펜스가 오히려 도주로를 막은 셈이 됐다.

특공대 다섯이 죽는 건 금방이었다.

그중 하나가 가까스로 반항했다.

몸을 허공에 띄우며 도주를 시도했다.

비행 능력자다.

휠 나이트 중 하나의 몸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바닥에 비스듬히 놓인 전봇대 조각을 발사대로 삼아 날았다.

‘……시발.’

육중한 몸, 무게가 실린 일격이 허공을 날던 특수대 몸을 때린다.

꽝.

맞은 몸에 구멍이 나고 반작용으로 날아간다. 훙 하고 날아온 몸뚱이가 순경 둘이 세워 둔 순찰차에 처박혔다.

삐요삐요삐요.

차량 사이렌이 울린다.

쏴아아아.

그 타이밍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봄을 알리는 봄비가.

선배 순경은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파지직.

전봇대가 무너지는 바람에 주변에 정전이 일어났다.

빛이 흐릿해진다.

낮이었던 하늘에 먹구름이 낀다. 비가 내린다.

순식간에 주변이 어두워지는 사이, 전깃불 스파크가 튄다.

파직.

그 사이로 파란 불빛을 뿜어내는 휠 나이트가 보였다.

죽는다. 반드시 죽는다.

저 휠 나이트가 돌진하면 순식간에 피떡이 될 것이다.

특수종도 어찌하지 못할 것이니까.

“으아아아아!”

후배가 패닉에 빠져 38구경 권총을 뽑아 갈겼다.

탕탕! 공포탄 두 발 뒤로 실탄을 쏴 댔다.

탕, 탕, 탕!

당연히 무용했다. 의미 없는 총질이었다. 아니, 그래야 했는데.

펑!

마지막 한 발이 휠 나이트의 머리를 깼다.

“……어?”

선배 순경은 눈을 깜빡였다.

“데이트 좀 하자, 좀. 이거 너무 안 도와주네요. 속상하네.”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여자다.

“전투 데이트라고 칩시다.”

“이런 걸 데이트로 치자고요? 양심 없네요.”

“네, 집에다 놓고 왔어요. 양심.”

남자의 목소리도 끼어든다.

툭 하고 날아든 것처럼 둘의 앞을 막는다.

큰 등이 보였다.

‘어?’

“괜찮죠?”

큰 등, 여자가 돌아서서 묻는다.

선배 순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 저기, 저기요.”

후배가 손가락을 들어 앞을 가리킨다.

쩌저저저적.

허공에 균열이 늘어난다.

게이트가 요란스럽게 커지는 모습이다.

그걸 본 남자가 이마를 쓸어내며 물었다.

“저 이거 어디서 들어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네, 그거 맞네요.”

꽈릉.

곧 게이트에서부터 위로 뇌전이 치솟았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역뢰?

하늘에서 밑으로 치는 게 아니라 바닥에서 위로 치는 번개다.

“지원 요청해요.”

남자가 말한다.

“네?”

“지원 요청, 당장요. 비상이라고 해요. 네임드 게이트라고.”

남자가 다시 말했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둘은 미친 듯이 통신기에 대고 외쳤다.

“비상, 지원 요청합니다. 현재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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