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 쟤네 경력직이야
“그럼 이게 경찰과 합의된 작전이었다는 겁니까?”
홀로그램으로 투영된 사회자의 얼굴이 보였다.
그 물음에 곁에 앉은 경찰 대변인이 입을 연다.
“네, 맞습니다. 범죄자를 더는 방관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말에 사회자의 입이 몇 번 달싹였다. 극히 짧은 순간이었고 스쳐 가는 수준이었지만.
불멸자의 눈을 피할 순 없었다.
물론 네티즌의 눈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볼 때, 사회자의 저 입술은 짤이 돼서 돌 것 같았다.
난 사회자가 왜 저러는지도 십분 이해했다.
그놈의 범죄가 문제라면 왜 암시장이나 민간 기업 간판 걸고 활동하는 특수종 애들은 놔두냐는 거지.
하물며 우리나라는 예전에 프로메테우스가 만든 양지의 사업체인 머니 & 세이브를 받아 준 경력도 있다.
이런 걸 묻고 싶었을 것이다.
특수종이 섞이긴 했지만, 그 조직 폭력배 애들이 과연 옛날 그 살벌한 조폭 애들이 맞냐고.
정작 더 위험한 애들은 안 건드리냐고.
“범죄소거자가 NS 소속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NS와의 합동 작전이겠네요.”
사회자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기 빠진 그 말에 경찰 대변인은 처음과 같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네.”
단답형이다.
더 말 안 하니? 할 말 더 없니?
사회자가 눈으로 물었다.
경찰 대변인은 돌부처라도 되는 양 표정조차 짓지 않았다.
포커페이스 초능 특수종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사회자의 시선이 정면으로 향했다. 그러니까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봤다.
홀로그램 너머의 사회자와 눈을 마주쳤다.
서로 눈을 마주 본 채로 얘기하는 기분이다.
“네, 범죄와의 전쟁을 주도한 범죄 소거자는 경찰의 작전이었습니다. 이번 일로 여파로 수도권뿐 아니라, 지방 쪽까지 조직 폭력배의 이름이 싹 지워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조직 폭력배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사회자는 잠깐 숨을 삼켰다.
“불법과 범법 행위 대신 준법정신이 투철한 시민이 되었습니다. 믿을 수 없으시다고요? 김주민 기자를 만나 보겠습니다.”
일진 소탕 때 해 본 일이다.
이번 일은 그걸 그대로 카피해서 한 거고.
범죄소거자의 출현만으로 얻을 수 있는 건 많았다.
처음, 앞뒤 안 가리고 조직 폭력배 뚝배기를 깨고 다녔다.
히트맨을 보내도 깨져, 만반의 준비를 해도 박살 나.
그들로서는 손 쓸 도리가 없었을 터였다.
그 와중에 수작도 좀 부렸다.
일진 소탕 때야 이런저런 걸 할 여력도 없고 그럴 힘도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니까.
정직이가 범죄소거자로 변신! 하는 동안 단군 그룹에 지방에 있는 폭력 조직 몇 개만 지워 달라고 했다.
그들은 그렇게 했다.
간단한 부탁이었다.
큰 조직을 칠 필요도 없는 일.
우리 피지컬 소진 선에서 끝난 일이다.
“그럼 우리 데이트 한 번.”
조건이 붙긴 했지만, 밥 한번 먹는 게 뭐 어렵다고.
그러기로 했다.
경찰과 합의도 이끌어 내고.
“이거 빚진 거로 봐도 좋겠지?”
경찰청장과 직접 딜을 쳤다.
그는 오히려 이 거래를 반기는 눈치였다.
“네, 다음에 술 한 번 사 드리면 되는 거죠?”
“술 한 번으로 퉁치려면 아주 비싼 술을 먹어야 할 것 같은데.”
농담 삼아 말했지만, 실제로 그가 요구할 건 없을 것이다.
이 일로 얻을 건 나보다 저쪽이 더 많다.
시민이 경찰에게 요구하는 가장 첫 번째 조건이 무엇인가.
경찰 소리 듣는 이유 중 하나가 치안 문제 아닌가.
칼 들고 설치는 놈보고 도망 다니는 거 보라고 세금으로 월급 주는 거 아니니까.
치안 문제는 그리 민감하다.
조직 폭력배 무리는 이런 치안을 어지럽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였다.
그걸 뿌리 뽑게 해 주겠다는 걸 누가 마다하겠나.
범죄소거자의 악명, NS 소속임을 밝힌 뒤 이후로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 가겠다고 말했다.
하는 김에 그 서울 연합 아저씨의 목숨을 구해 준 건도 있다.
불멸교에서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을 거라나.
그래서 잠깐 데리고 있었는데 가만히 두더라.
오히려 나만 노리더라니까?
근데 요즘은 뜸하고.
매일 보다가 못 보니까 아쉽긴 하네.
몸 찌뿌둥하면 하나씩 때려잡는 맛이 있었는데 말이야.
하여간 이런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이유로 지금 국내 폭력 조직은 사라지는 중이다.
이걸 자정 작용이라고 해야 하나.
뉴스를 보며 그리 생각에 잠기는 사이 홀로그램 워치가 진동을 알렸다.
화면을 보니, 화림 비서실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귀에 꽂아 둔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입니다.”
“전쟁이라도 하자고?”
“네?”
“정기남, 우미호, 김요한, 방귀태, 강푸름.”
“그렇게 다섯이 모이면 뭐가 됩니까?”
어쩐지 다섯이 속성 하나씩 가지고 있어서 다 합치면 뭔가 될 것 같은데, 나 어디서 이런 애니메이션 본 것 같다.
고전 만화였는데, 제목이 뭐였더라.
캡틴 플래닛이다.
웹소설 읽다가 누가 이 드립 쳐서 검색해서 찾아봤다.
땅, 불, 바람, 물, 마음 합쳐서 캡틴 플래닛.
“자네, 정말 돌아 버렸나?”
남명진 사장이 날 걱정해 줬다.
“아니요. 멀쩡합니다.”
“그럼 시비 거는 건 맞는 거고?”
“아니요. 시비 아닙니다.”
“그럼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할 건가?”
“이직은 직원의 자유가 아닐까요?”
“재밌군.”
남 사장, 화났나 보다.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나 같아도 조금 짜증이 날 것 같긴 하다.
제 회사에 있던 놈이 나와서 작은 구멍가게 하나 차렸는데, 그 구멍가게에 세계에서 핫한 왕자가 와서 직접 물건을 팔아 줬다.
덕분에 가게를 확장하면서 전 직장 동료를 대거 데려왔다면.
“아오, 이거 나쁜 새끼네.”
절로 입이 열렸다.
“뭐?”
남 사장의 황당한 물음이 들렸다.
“아뇨. 저 정말 나쁜 놈이라고요.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진짜 나쁜 놈이네.”
“……세최특이라 부르지 않고 왜 세최또라 부르는지 오늘에야 피부로 느끼네.”
“이건 제가 나쁜 게 맞습니다.”
뚝.
남 사장이 전화를 끊었다.
진심을 담아 말했는데 사람 진심을 이리 몰라준다.
하여간 말로 마음을 전하는 일이 이렇게 어렵다.
남 사장님 전화기라도 때려 부수려나.
그래도 최근에 정부 압력도 사라져서 다시 아더 사이드에도 발을 들이고 일도 늘어나는 편이라고 들었다.
이제 전처럼 돈에 쪼들려서 괴로워하는 그런 일은 없을 거다.
주일호, 작대기 과외 선생이 남 사장이 쪼잔하다고 한 적이 있는데.
지금 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사람 몇 빼갔다고 회사가 망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내가 나쁜 놈인 것과는 별개로 이 정도는 허허 웃어넘길 수 있어야 어른이 아닌가.
물론 내 회사 사람을 누가 작정하고 빼가면 당장 머리끄덩이 잡고 콧잔등에 니킥을 먹여 줄 것이다.
하는 김에 허공에 니킥을 먹이는 연습을 하는데, 띵하고 승강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누가 왔나 본데요?”
인포 누나가 말했다.
생긋 눈웃음을 짓는 거 보면 이 누나도 애교가 몸에 붙은 타입이다.
난 인포메이션 데스크 옆에 붙어서 TV를 보는 중이었기에, 오는 사람 면면을 볼 수 있었다.
“내 자리는?”
정아 누나다.
“환영해요. 환영식을 해 주고 싶은데…….”
“자리.”
여전한 차가움이 매력이다.
“안녕하세요.”
인포 누나가 뒤에서 슬쩍 인사하자, 정아 누나는 고개만 까딱한다.
“위층이요.”
누나는 딱히 궁금한 것도 없는지 쭉쭉 걸어갔고 그 뒤를 내 개인 비서가 따라갔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사장이 정아 누나는 안 따졌네.
비약 인간, 효용 가치가 없다는 걸지도 모른다.
난 멀어지는 비서 아저씨와 정아 누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정아 누나는 안 물어보고 갈 것 같았어요. 첫 출근인데 일부터 하려나 보네요. 역시 워커 홀릭.”
“네, 뭐 그렇죠.”
인포 누나도 화림 인포메이션 데스크만 4년을 지킨 사람이다. 이 누나도 알 사람은 다 안다.
생각보다 마당발이다. 친한 사람도 꽤 많았다.
“커피 줘요?”
“녹차 스무디요.”
데스크 앞 의자에 앉아 있자니, 인포 누나가 그리 묻고는 옆에 있는 카페테리아에 가서 쿠키도 몇 개 가져왔다.
앞에서 까서 먹고 마시니 인포 누나가 묻는다.
쿠키 누가 구웠는지, 제대로다.
로즈마리 향이 풍기며 부드럽게 부서진다. 딱딱하지도 않고 촉촉하지도 않다. 느낌을 굳이 표현하자면 먹먹한 촉감이었다.
“이게 되게 맛있네요.”
“아, 그거 수녀원에서 직접 쿠키 만드는 법 배운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인상적이어서 뽑았죠.”
“전직 수녀예요?”
“남자예요.”
남자가 수녀원에서 이런 걸 배워 왔다고?
캐릭터 한번 강렬하다.
겉으로야 태연하게 있고 속으로 놀라고 있자니, 인포 누나가 물었다.
“이래서 남는 게 있어요?”
앞뒤 다 자르고 말했는데, 복지를 이렇게 해서 남는 게 있냐는 말로 이해했다.
하물며 연봉도 살벌하니까.
그 덕분인지 안에서 일하는 사람의 얼굴이 전부 밝다.
정규직이기도 하니까.
혀로 바닥을 쓸겠다고 하는 친구는 싱글벙글하고.
카페테리아에서 일하는 사람도 하나같이 웃는 낯이었다.
“돈이야 벌면 되니까요.”
돈을 버는 이유가 뭔가.
쌓아 두고 자랑할 것도 아니고 난 돈은 써야 맛이라고 생각한다.
하다 하다 안 되면 할아버지가 제 비자금을 털어 준다고 하는데, 물론 그걸 받을 생각은 없다.
그거 받는 순간, 코 꿰는 거지.
돈이야 벌면 된다.
띵.
그리 잡담을 나누는 사이 다시 승강기가 열렸다.
이번에는 단체로 왔다.
기남, 미호, 요한, 귀태다.
“땅, 불, 바람, 물. 하나가 부족하네.”
“무슨 미친 소리냐?”
귀 밝은 기남이 말하며 다가왔다.
“근데 인포메이션 데스크는 왜 2층이냐? 1층에는 무슨 주차장을 만들어 놨어.”
요한도 다가오며 말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누군가는 물어봐야지.
일부러 그랬다.
작정하고 습격하고 노리는 놈들이 많길래.
1층을 아예 터 버려서 주차장으로 개조했다.
직원 주차는 무료다.
차 댈 곳이 없길래 하는 김에 그리했다.
일전에 알이 준 수수료가 한몫했다.
인테리어비로 허리가 휘겠더라고.
“그냥.”
설명하자니 길어져 짧게 답하니, 미호가 입을 연다.
“NS를 노리는 곳이 많으니까 습격에 대비하겠다는 거겠지. 1층 주차장 천장을 보강하고 방화문 재질을 보니 수틀리면 침입한 놈을 가둬서 반쯤 패 죽이겠다는 생각인 것 같고.”
날카롭다. 우미호는 여전했다. 의도를 정확히 파악했다.
오늘 처음 온 걸 텐데 한눈에 그걸 다 알아봤다.
맞다. 그럴 생각이었다.
그래서 1층에서 2층으로만 올라오는 전용 승강기가 생겼다.
“역시 우리 미호.”
옆에서 귀태 형이 슬쩍 엄지를 들고 중얼거렸다.
이곳에 있는 불멸자 중 그걸 못 듣는 사람은 없었다.
우미호가 옆으로 한 걸음 움직였다.
귀태의 반대 방향으로.
그걸 본 귀태 형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나무를 열 번 찍는 걸 넘어 수백 번 찍는 과정에서 나무한테 하도 처맞았더니 어지간한 거로는 상처도 안 받는 거다.
저렇게 된 지 꽤 됐다고 한다.
요한 형 말로는 심장이 금강불괴가 됐다고.
“어서 와.”
난 반겼다.
기남이는 미간을 찌푸렸고 우미호는 무표정, 요한 형은 가벼운 미소 귀태형은 만면에 미소다.
미호와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어서 무척 만족하는 듯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미호가 귀태 형 입사를 반대할 법도 한데, 그러질 않는단 말이지.
그리 생각하며 미호를 바라봤다.
“능력은 괜찮으니까.”
……소름 끼친다, 자식아.
미호가 내 마음을 읽은 듯 말했다.
딱히 감출 의도는 없었지만, 이렇게 눈치가 기가 막히게 빠른 걸 보면 진짜 신기하긴 하다.
나도 하려면 할 수는 있겠지만, 나야 어디까지나 불멸자의 감각에 의존하는 편인데.
쟤는 이걸 머리로 하니까.
관찰과 통찰력의 영역이라 하겠다.
어쨌든, 환영이었다.
“비서가 사무실 안내해 줄 거고, 다들…….”
“신입입니까?”
입을 여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대뜸 말하며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정직이었다.
“제가 선배군요.”
정직이, 우리 정직이는 신입이 온다는 사실에 꽤 기뻐하는 눈치였다.
문제는.
“뭐냐, 이 반푼이 새끼는.”
“으흠, 이 친구구나.”
“저 여신에게 반하면 넌 지옥에 갈 것이다.”
기남이, 요한이 형, 귀태 형 순이다.
마지막으로 우미호는 팔짱을 낀 채, 침묵을 지켰다.
반응 한 번 화끈하지, 정직아?
“……뭡니까? 제가 선배인데.”
“이거 죽여도 되겠지?”
기남이 묻는다.
“죽이면 안 되지. 그래도 같은 식구인데, 반만 죽이는 거로 하자.”
요한 형이 그 말을 받는다.
정직이가 슬쩍 내 뒤에 붙는다.
그런 정직이를 보며 난 말했다.
“쟤네 경력직이야.”
그 말에 정직이가 울상을 지었다. 미세하게 눈썹 끝이 처진 거다.
여전히 표정을 잘 드러내진 않지만, 이 정도면 몹시 실망한 눈치라는 거야 알 수 있었다.
미안, 정직아, 너 여전히 막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