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252화 (252/488)

252. 면접의 날

“제가 첫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연봉이 이천이백이었거든요.

요즘 그런 연봉이 어디 있냐고요? 최저 임금은 맞냐고요?

이게 기가 막히게 맞던데요.

식대랑 뭐 이것저것 해서 연봉 맞추던데요?

그렇게 딱 3년 일하니까 연봉이 이천오백이 되긴 하더라고요.

그럼 월급이 얼만 줄 아세요?

이백이십입니다. 이백이십.

근데 제가 엊그제 코트 하나를 사려고 백화점에 갔는데, 코트가 얼마였는 줄 아십니까?

이십오만 원이더라고요.

그게 또 비싼 건 아니라고 하는데.

살까 말까 오백 번 고민했습니다.

저한테는 그게 너무 비쌌거든요.

제 꿈이 결혼해서 애 둘 낳는 건데.

하, 솔직히 그렇잖습니까.

이게 불가능이라니까.

지방에 가서 살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닌데, 거기 취업은 또 쉽답니까?

그리고 지방도 만만치 않아요. 정말입니다.

모집 요강 봤습니다.

저 청소 잘합니다.”

적당한 테이블을 1층 인포메이션 데스크 앞에 둔 상태였다.

의자도 필요 없이 멀뚱히 선 채로 면접을 시작했는데 열변을 토한다.

적당히 생긴 얼굴에 키는 한 175cm 정도.

옷 위로 드러나진 않지만, 꽤 다부진 몸이다.

들고 온 이력서에 보니, 취미가 운동이다.

긴 연설의 끝, 마무리는 내가 했다.

“합격.”

“……네?”

“합격이요. 내일부터 출근하세요.”

남자가 눈을 끔뻑이다가 고개를 숙이고 외쳤다.

“바닥을 혀로 쓸고 다니게 만들겠습니다!”

아니, 바닥을 왜 혀로 쓸어, 청소기를 써야지.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에 박력이 넘친다. 그걸 끝으로 돌아서 나갔다.

나가면서도 또 꾸벅!

인사에 느낌표가 붙은 느낌으로 허리를 숙이는 남자다.

“저 사람은 왜 합격이에요?”

옆에 앉은 인포 누나가 물었다.

처음에 줄은 이 누나가 세웠지만, 특수종이 여럿 섞인 무리다.

어찌 그냥 놔두겠나, 그래서 정직이 불렀다.

지금 밖은 정직이가 정리 중이다.

혹시 범죄 소거자 아니냐고 기자 무리가 묻기에 맞다고 답하니, 더 난리고.

회사 공채에 기자 무리가 잔뜩 몰려왔다.

뭐, 이걸 나쁘다고 할 순 없다.

“손톱이 깨끗하고 좋은 냄새가 나서요.”

“그게 전부예요?”

합격 여부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손끝, 옷차림, 눈썹, 냄새, 태도 모든 걸 종합해서 한 말이다.

거기에 불멸자의 직감이 깃든다.

미래 예지 수준은 아니지만, 직감과 육감의 영역과 변신족의 후각 모든 감각이 한 사람을 비춘다.

덕분에 알 수 있는 것.

저 사람은 청소를 잘할 것이다. 그것도 아주 잘.

내가 보기에 약간의 결벽증도 있다.

거기에 제 신세 한탄을 하기는 하지만, 그 한탄이 끝이 아니라는 것도 느껴진다.

대부분 사람이 이럴지도 모른다.

적어도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는 가장 나은 타입이었다.

자기가 무슨 증권사에 근무했다는 인간은 보니까, 고객 돈 갖고 장난질하다가 잘린 놈이었다.

그 행동이 그 사람의 모든 걸 말해 주지 않지만, 내가 보기에도 정상적인 놈처럼 보이진 않았다.

틈만 보이면 뒤를 칠 것 같은 놈이다.

면접을 본다는 건 기준이 있다는 거다.

팬더 형은 그 기준 중 하나만 충족하면 충분하다고 했다.

로열티, 의리다.

적어도 목숨의 위협을 받지 않는 이상 회사를 배신하지 않아야 한다는 거다.

“이제 한 명이라니.”

사람 보는 눈이 훌륭한 재원이 있기에 불러다 놓은 스티븐 최다.

그가 중얼거렸다.

“텐트라도 가져와서 밤샘으로 면접 봐야 할까요?”

인포 누나가 말을 잇는다.

전에는 몰랐는데 이 누나도 꽤 열정 넘치는 타입이다.

외모도 훌륭하고.

들어 보니 불멸자의 피가 조금은 섞인 것 같다.

쿼터 이하로, 쿼터 이하는 보통 일반인 취급이었다.

난 조금 전 청소를 잘할 것 같은 남자를 보내며 깨달은 걸 써먹을 수 있을 듯했다.

“그럴 필요는 없겠어요.”

“어쩌게?”

중고 형이 물었다.

밖에 몰린 사람이 꽤 되니, 일단 그 숫자를 줄여야겠다.

지금까지 본 사람이 대강 스물이다.

이러면 정말 며칠 밤을 새워도 부족하다.

난 밖으로 나갔다.

문을 여니, 싸늘한 공기가 들어왔다.

오늘은 또 날씨가 춥다.

봄이 오다가 뒷걸음질 치는 그런 날씨다.

비라도 내리면 꽤 우중충할 것 같은 구름 낀 하늘이고.

밖으로 나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꽂혔다.

난 감각을 개방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맡는다.

촉각이 공기의 흐름을 읽고, 육감으로 상대를 훑는다. 본래는 한 명을 향해 집중해 위화감 따위를 느끼는 걸 범위를 넓게 해서 했다.

지끈.

주변에 떠다니는 정보를 머리에 쑤셔 넣자니, 두통이 일어났다.

이대로 하면 골통이 터질 것 같았다.

눈을 감았다 뜨며 스위치를 바꾼다.

그냥 감으로 때려 넣자.

그동안 참 많은 일을 겪었다.

그리고 그 일들을 겪으면 많은 특수종을 마주했다.

일반인이 변장하고 오는 건 무시하자.

이곳에 모인 사람 중 음흉한 마음을 품었을 게 분명한 특수종만 엮어서 내보내면 되는 거다.

그게 가능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조금 전까지는 모르겠다고 답했을 테지만, 지금은 할 수 있었다.

어떻게?

경계심을 북돋는다. 보는 순간, 곧바로 경계심이 생기는 특수종만 눈에 담고 찍었다.

“셋째 줄 네 번째 아가씨, 집 가요.”

“둘째 줄 여덟 번째 아줌마도.”

“열여섯 번째 줄 아홉 번째 아저씨도요.”

손을 휘휘 저으며 줄줄이 입을 열었다. 눈을 반개한 채, 직감에 의존해서.

“아니, 왜요? 저는 면접 볼 기회도 없습니까?”

그중 젊은 남자 하나가 되물었다. 억울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형태변환 내가 풀어 드려? 초능은 머리 흔들리면 풀릴 텐데?”

“……아니요.”

남자는 조용히 귀환을 준비했다.

협회에서 보낸 첩자이려나?

알 바 아니었다. 그저 경계심을 북돋게 하는 이들을 골라낼 뿐.

몰래 숨으려는 시도 자체가 의미 없었다.

그리 계속하자.

“사람 차별하냐!”

외치며 내가 집기도 전에 빠지는 사람이 생겼다.

“돈 주고 자살하는 것도 아니고!”

불만을 토한다.

“에라이, 억만금을 줘도 안 하지.”

그 외침이 기다리는 사람들의 무언가를 자극했는지.

“너희 회사 안 다녀 봤지, 저 조건이면 난 삼도천도 건넌다.”

후줄근한 정장 차림의 중년 남성이었다.

“아니, 아저씨는 뭐로 지원할 건데요?”

“개인 비서.”

“……와, 씨, 나 웃을 뻔했네. 개그맨이세요?”

비웃는 놈은 껄렁껄렁한 태도를 고수했다.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깜짝이야. 뭡니까.”

우두커니 서서, 개인 비서 지망 아저씨를 비웃던 놈을 빤히 바라봤다.

냄새, 태도, 몸짓, 모든 걸 눈에 담는다.

“……왜요?”

눈치 보는 놈에게 시선을 둔 채, 난 입을 열었다.

“합격.”

“네?”

“너 님 말고, 이쪽이요.”

말하며 내 어깨너머를 엄지로 가리켰다.

“……네?”

이번에는 비서 지망 아저씨가 놀랐다.

“저요?”

아저씨가 되물었다.

뒤로 몸을 돌렸다.

탈모가 진행되는 중인지, 두피가 훤하다.

이 아저씨는 요즘 세상에 대머리가 될 셈인가.

탈모 따위 약만 먹으면 해결되는 세상에 살면서 말이야.

“개인 비서를 꼭 예쁜 여자로 뽑아야 한다는 편견은 없으니까요.”

“그럼 제가 합격인 겁니까?”

“네, 특기가 뭡니까?”

즉석 면접이다.

“에, 뭐, 이것저것 했습니다.”

“좋네요. 다재다능하고.”

“그게 어떻게 다재다능한 거지?”

옆에서 딴지 걸던 놈이 중얼거렸다.

“협회에서 나왔지?”

“…….”

말 안 하면 모를까.

초능 특수종이며, 풍기는 냄새, 기세.

하물며 지금 질문에 보이는 태도까지.

딱 걸렸다.

나라고 보자마자 소속을 알 순 없다.

물론 암살자나, 테러범은 그나마 알아채기 쉽지만.

그쪽이야 하도 작정하고 오니까 그런 거고.

“어떻게?”

“찍었는데 맞았네요. 탈락.”

말하고 돌려보낸다.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순식간에 숫자가 줄었다.

내 회사가 잘되는 게 눈꼴신 사람이 이리 많았다.

그중 일부는 첩자를 대놓고 심은 수준이고.

그중 일부는 또 루머 따위를 퍼트리는 데 진심이다.

문제는 그게 다 무용했다는 거다.

아까 개인 비서로 합격한 아저씨의 말이 맞았다.

이 정도 연봉과 복지, 이 조건은 사람들의 열정을 불태웠다.

반드시 합격하고 말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전부 목숨의 위협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위험수당을 이렇게 주는 회사가 또 어디 있다고?”

누군가의 말이 정답이 됐다.

생명수당, 위험수당이라고 생각하면 좋다는 거다.

그리 사람을 뽑았다.

이날 난 비서로 한 명을.

건물 청소로 열 명을.

이 외 중고 형에게 붙일 사무 담당과 통역, 무역 관련 업무 담당이 오십.

스티븐 최는 제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골라잡더니, 인사팀을 만들었다.

회사 총괄 구조는 팬더 형이 조정했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모든 일이 이뤄졌다.

사무용품을 사는 것부터 할 일이 산더민데, 그걸 정말 뚝딱뚝딱해 내더라.

이래서 유비가 제갈량을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데려왔을까?

좋은 책사는 준비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팬더 형이 그리했다.

물론 중고 형과 스티븐 최도 힘을 썼다.

인포 누나도 한몫했다.

사내 식당과 카페에서 일할 사람을 추려 주길래.

“오늘부터 누나는 대리 하세요. 1층 관리팀 신설하고요.”

“나 입사하자마자 대리야?”

누나가 웃으며 그리 말하다가 다시 날 보고 읊조렸다.

“고마워요. 대표님.”

볼을 살짝 붉히며 말을 하는 바람에 잠깐 심장이 쿵 할 뻔했지만, 곧 다잡았다.

이상형과 거리가 멀지 않나.

무엇보다, 우리는 좋은 친구일 뿐이다.

근데 1층 이대로 두면 좀 위험하긴 하겠네.

일전에도 자꾸 누가 쳐들어오고 그랬고, 당장 이쪽 인포메이션 데스크부터 공격했으니까.

머릿속으로 회사 층별 구조를 바꿔야 하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일이 좀 정리된 뒤의 일이 될 것이다.

이제 기남이, 미호, 요한, 귀태만 오면 대강 사이즈는 나오는 셈인가.

아, 거기에 혜민이랑 내 과외 선생 둘도 돌아와야 하고.

이 양반들 어디 가서 또 처맞고 다니지는 않겠지?

가끔 연락은 한다.

브라질로 갔다던 통나무 선생에게는 힘들면 돌아오라고 다독여 줬더니.

“많이 컸네, 광익이.”

라고 답변이 왔고.

작대기 선생한테는 누가 괴롭히면 말하라고 했더니.

“그래. 반드시 말하마.”

어금니를 꽉 깨물고 답하더라.

반 농담에 반 걱정을 담아 말한 건데 말이야.

사람들이 위트가 없다.

예능을 다큐로 받는다.

“엄마, 엄마 친구는 본래 센스가 없나요?”

“진지충이야. 걔.”

어머니는 이리 말을 잘 받아 준다.

역시 최고다.

어쨌든 면접의 날에 사람을 솎아내는 것만으로 보름이 걸렸다.

이후, 특파라치 신주호가 무척 바빴다고는 했다.

뽑는다고 끝이 아니라 뽑은 사람 하나하나 뒤에서 조사한다고.

혹시 구내식당으로 취업한 사람이 독이라도 타면 어쩌겠나.

뒷조사는 필수였다.

면접의 날.

기자와 뉴스는 이날을 그리 이름 붙였다.

NS 면접의 날에 몰린 숫자는 총 만육천팔백 명이었고.

기실 면접은 거의 보름이 소요되긴 했다.

그 보름 동안 난 미친 듯이 사람을 솎아 낸 거고.

그리해서 뽑은 개인 비서다.

학력은 고졸.

하지만 일머리는 무시무시한 아저씨.

“커피라도 타올까요? 대표님?”

“아니요. 동훈이 형 좀 보고 올게요.”

“이동훈 이사님이요.”

무시무시한 아저씨는 일단 내 호칭을 문제 삼았다.

외부에서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말이다.

그래서 팬더 형은 이사가 됐다.

어머니도 이사고.

“네, 이사님.”

개인 사무실에서 나오니, 눈 밑이 두 배는 더 검게 된 팬더 형이 날 맞았다.

“하도 안 와서 내가 오는 길이었다. 대표님.”

이쪽도 비서를 붙여 줘야 할 판인데 말이야.

“할 말이 뭔데요. 전화로 하지, 뭘 굳이 만나러.”

일을 마무리하면 좀 쉬라고 했더니, 그럴 시간이 없단다.

열심히 하는 걸 보고 뭐라고 할 순 없지 않나.

“그 기왕 뽑는 거, 내 개인 정보팀으로 사람을 모았으면 하는데.”

난 고개를 모로 꺾었다.

하고 싶으면 하면 되지. 형이 한다고 하면 나 고개를 끄덕이는 나다.

그런데 왜 조심스럽냐, 이거다.

“그 애들을 다 모으려고 하는데.”

“그 애들요?”

“내가 지원한 애들.”

팬더 형이 말한 건, 자신이 지원해서 버젓이 범죄자로 살아가는 애들을 말한 거다.

실험체로 사는 애들.

보육원을 지어서 애들을 돌보느라 모은 돈을 다 갖다 부은 양반이니까.

이건 무슨 의무감에서 한 걸까?

모른다. 속내를 알아서 뭐 하겠나.

난 대신 대안을 내놨다.

“옆에 짓는 건물 옆에 보육원이자, 훈련소를 하나 지어서 애들을 그곳에서 케어하시죠. 그동안 실험체 애들 일일이 어떻게 찾았어요? 조사팀에게 맡겨요.”

정보팀 휘하 조사팀을 신설했다.

팀장은 물론 특파라치 신주호고.

그 아저씨는 제 가족을 다 입사시키더라.

아니, 말이 연봉 1억 5천이지, 모집 요강에 확실히 적어 뒀는데 말이야.

지원하는 일마다 연봉 다르다고.

물론 복지는 동일하다.

NS는 청소부도 정직원이다.

이러니까 다들 입사할 수 있다면 요단강에서 서핑이라도 즐길 기세지.

“그렇게 해도 되냐?”

“대신.”

조건이 없는 대가는 재미가 없지 않나.

하물며 이미 불법과 범법 세계에 사는 애들을 쉽게 받을 순 없는 거고.

“대신?”

“훈련 담당 이사님에게 한 달 훈련 받기.”

그 말에 팬더 형이 내 멱살을 잡았다.

“야, 너.”

말하며 아랫입술을 깨문다.

훈련 담당 이사는 내 어머니다.

잠시 말없이 날 바라보던 팬더 형은 동공을 파르르 떨며 눈을 깔고 고개를 숙였다.

멱살을 잡은 손을 놓고서 형이 말했다.

“알았다.”

힘이 쭉 빠진 목소리다.

어쩌겠나. 전부 특수종이고 본능 컨트롤이 어려운 변신족 실험체라니, 일단 사람은 만들어 놔야지.

이런 분야에서 어머니는 독보적이다.

갱생 마녀라 불린 몸이니.

“하.”

팬더 형이 한숨을 내쉬었다.

난 웃었다.

“아, 그리고 우리 층 구조 좀 바꾸죠.”

만난 김이다. 난 다른 이야기도 꺼냈다.

“무슨 구조?”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설명하자, 형이 곧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

호응도 해 줬다.

내가 생각해도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