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 머리를 사냥해 내 회사로
아니, 기남이 새끼는 역시 놀리는 맛이 있다.
난 그대로 1층으로 내려왔다.
본래 외부인이 사내를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게 말이 되나.
기남이 새끼가 하도 안 내려온다고 해서 내가 직접 올라온 거다.
그렇게 1층, 카페테리아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날 안내한 신입 불멸자가 사인을 요청하기도 했다.
“팬입니다.”
이리 말하며 얼굴을 붉혔다.
사람 보는 눈이 있는 친구였다.
그를 보내고 카페에 앉았다.
깨끗한 테이블과 잘 생기고 예쁜 바리스타가 보였다.
일전 습격 이후, 1층에도 어지간하면 대원을 배치하기로 했다고 들었다.
신입이나 인턴을 우선 배치하지만, 인원이 부족하면 위층 인원이 이쪽에 별도 근무를 서기도 한다고 들었다.
하여간 주변을 슬쩍 돌아보니, 이제는 프로메테우스가 습격한 흔적 따윈 보이지 않았다.
정면, 전면 유리로 된 바깥을 보자 구름이 뭉게뭉게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오늘은 꽤 따뜻한 날이었다.
그걸 증명하는 게, 사람들 옷차림이 가볍다.
롱패딩 대신 코트와 짧은 외투 따위가 보였다.
웃는 얼굴로 걷는 직장인과 대낮에 여의도에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도 있다.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있다고.
아직 꽃은 피지 않았지만, 날씨가 그랬다.
참 따뜻한 날이다.
그리 창 밖의 날씨를 감상하는 와중에 뒤에서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다.
가벼운 발걸음, 균형 잡힌 육체다.
요즘 걸음과 기척만으로 상대 능력을 파악하는 걸 즐기곤 했다.
뒤에서 다가온 이가 말했다.
“쓸데없는 일이라면 상담료를 청구하겠어.”
“그럴 일 없을걸.”
말하며 시켜둔 녹차 스무디를 한 모금 쭉 빨았다.
시원했다.
내 앞으로 목소리의 주인이 앉았다. 한 손에 믹스커피를 담은 종이컵을 든 채다.
뒤로 땋은 머리가 시그니쳐인 혼혈 불멸자다.
팬더 형이 내 동기 중에 가장 눈여겨본 불멸자라고 했던 친구이기도 했다.
얼마 전에 기남이랑 같이 초능국에서 일도 같이했고.
“미호야, 넌 왜 날이 갈수록 예뻐지냐.”
칭찬으로 시작했다.
미호가 날 빤히 보더니, 진지하게 물었다.
“약 했어?”
“너라는 마약을 머금었지.”
장난삼아 말하니, 미호가 일어나려 했다.
“귀태 형 따라 해본 건데.”
그리 말하자, 경멸과 한심함을 곱한 눈빛이 날 향했다.
따라 할 게 없어서 그런 놈을 따라 해?
이리 말하는 눈이다.
“연봉 2억.”
성격이 유별나다. 그건 익히 알고 있다.
기남이 저리 가라니까.
다만, 그 능력은 탁월하다. 그래서 화림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적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사회생활이나 융통성이랑은 담을 쌓고 실적과 보너스에 목숨 거는 타입이니.
그 덕분에 최근 생활이 많이 안 좋아졌다고도 들었다.
화림 자체에 일이 줄어든 판이니.
이제 회복 중이지만, 이 와중에 좋은 기회가 우미호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주변에서 좀 챙겨줘야 하는데 그럴 사람이 없다는 거다.
본래 독불장군으로 살아왔으니까.
“……2억?”
“이직하자.”
우미호의 동공이 흔들렸다. 내가 여기 온 이유를 모르지 않을 테니, 이걸 예상하고 내려왔을 거다.
팬더 형은 말했다.
만약 자신이 화림에서 세 명만 빼 온다면 그중 하나는 우미호를 픽하고 싶다고.
그 말에 ‘기남이 서운할 것 같은데요’라고 답하니.
“아니, 기남이도 포함이지.”
“설마 정아 사수를 빼고?”
“아니, 팀장님 뺄 건데.”
팀장이야, 회사를 나올 일이 없다고 하니까.
근데 그건 팬더 형 생각이긴 하다.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오면, 해주 전문 마법사도 수배해주고.”
우직.
“안 뜨겁냐?”
내 말에 한 손에 든 종이컵을 구겨버렸다. 덕분에 뜨끈한 커피가 미호의 손을 타고 흘렀다.
“어떻게 알았지? 방귀태 그 스토커가?”
“너 우리 귀태 형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냐?”
불멸특수대 요원의 인사 정보는 기밀이다.
일개 요원이 알 수 없다.
물론 난 별개고.
팬더 형이 알려줬다. 재직 당시 우연히 들은 이야기로 했다.
그리 큰 비밀도 아니다.
우미호에게는 아픈 동생이 있다.
정확히는 원인 불명의 저주를 몸에 담고 태어난 동생이.
부모는 일찍이 이 남매를 버렸고.
남은 둘은 꿋꿋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대충 이런 신파다.
“……계약서에 명시할 수 있어?”
준비해둔 계약서를 꺼냈다.
스티븐 최는 말했다. 계약서에 서명은 빠를수록 좋다고.
그래서 미리 준비했다.
미호가 계약서를 꼼꼼히 읽었다.
“당장 다음 달부터.”
“그래, 다음 달.”
우미호가 제 이름을 꾹꾹 눌러쓴다.
“약속은 지켜.”
“위약금 조항 못 봤어?”
내가 약속을 못 지켜주면 얘 평생을 책임질 수준의 위약금을 지불해야 한다.
당연히 열심히 하지.
해주야, 뭐 혜민이를 믿는다.
드륵.
우미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
“네, 대표님.”
그리 말하고 훌쩍 돌아서 올라간다.
돈 주는 사람이 최고라 이건가.
태도 전환이 플래시 급이다.
뭐, 나쁘진 않았다.
이렇게 둘이고.
세 번째는…….
“너 이 새끼, 내 미호를……, 널 친구라고 생각했다아아!”
불멸자답지 않게 고함을 내지르며 1층을 내달리는 요원이다.
탁탁 뛰어오는데 난 뜀박질해서 전보다 더 육체 능력이 늘었음을 알았다.
그동안 훈련 진짜 열심히 했구나.
“너어, 너어.”
씩씩거리며 내달린다. 놔두면 그대로 주먹을 내지를 것 같다.
방귀태다.
사람들이 우리를 주목했다. 좀 시끄러워야지.
난 귀태 형이 얼굴이 가까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읊조렸다.
딱 귀태 형이 들을 만치 작은 목소리다.
“넘어와. 미호랑 한 팀.”
짧은 말이었지만, 귀태 형은 기가 막히게 알아들었다.
내달리던 속도 그대로 오더니, 그 손이 내 어깨에 올라간다.
“네, 언제부터 출근할까요?”
자, 셋이다.
미호를 데리고 오면 귀태 형이 따라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 형은 진짜 사랑에 미친 놈이라니까.
근데 이 정도로 과하면 스토커 아닌가.
“접근 금지 명령 같은 거 받은 적 없지?”
“아, 없어. 안 그래도 신경 쓰일까 봐, 요새는 가까이 안 가.”
“좋아.”
말하며 어깨를 두드려줬다.
“고맙다. 친구야.”
원한 가득 담아 달려오던 귀태 형은 고마움을 남긴 채 떠났다.
자, 대충 볼 일은 다 끝난 것 같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니, 김정아, 얼음덩이 사수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왜 안 들어오고요?”
“삼각관계 되는 줄 알아서.”
나랑 귀태, 미호가?
설마.
“올래요?”
대뜸 물었다. 사수의 목적은 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기에 NS만큼 좋은 곳도 없을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랑 철천지원수나 다름없으니.
그녀에게 이만큼 좋은 조건도 없다.
“조건이 있어.”
“네.”
답하며 앞으로 걸었다. 정아 누나가 자연스레 옆에 붙어 걸었다.
“그 전향자를 버려. 테러범이 개과천선했다고 받아준 거라면, 그동안 지은 죄는?”
로즈를 말하는 거다.
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건 곤란한데요. 그리고 죄를 뉘우쳐서 회사에 받은 것도 아니고요.”
그럼?
눈으로 물으며 사수가 발을 멈췄다.
뚜르르.
신호등이 녹색 불로 바뀌며 음악과 음성이 흘러나왔다.
난 사수를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유용해서요.”
쓸 만하다. 정보도 그 능력도.
여전히 쓰다가 버릴 수도 있다고도 생각한다.
내가 무슨 성인군자도 아니고 테러범을 받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깊게 생각하고 한 짓이 아니긴 하다. 뭐, 다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한 짓이긴 하지만.
조건을 안 받아주면 사수는 안 오려나?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좋아.”
사수는 쿨했다. 그리 말하고 훌쩍 길을 건넜다.
“그냥 가요?”
“일 있어.”
그리 말하고 떠났다.
이렇게 넷이다.
그나저나, 날씨가 따뜻해지니 혜민이 생각이 났다.
얘는 잘하고 있나.
마법 세계에 일이 있어서 잠깐 일 좀 본다고 영국에 가더니 가끔 문자 오는 거 말고는 돌아올 생각이 없다.
부르.
마침 연락이 왔다.
[돌혜민] 딴 여자 만나면 죽는다.
여전했다.
연락 온 걸 보니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보자니, 시간이 좀 떴다.
그래서 뭘 할까 하다가 주일호, 작대기 선생 병문안이나 가기로 했다.
병원이 여기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화림 건물이 아니라 옆에 있는 유료 주차장에 차를 대놔 그 안으로 들어선 참이다.
묵직한 쇠문을 여는 순간, 아래에서 위로 뭔가 번쩍였다.
난 고개를 뒤로 젖혀 피하며 발끝으로 그 빛의 근원지를 찼다.
텅.
애꿎은 바닥이 발끝에 차였다.
압축 경화 부츠의 끝이 바닥에 작은 구멍을 만들었다.
난 바닥을 발끝으로 차는 손을 허공에 휘둘렀다.
다른 사람이 보면 무슨 짓인가 할 정도로 허무한 손짓.
그 손짓에 그림자 하나가 도망가다가 잡혔다.
딱.
“끕.”
억눌린 신음을 삼키는 상대가 보였다.
머리통에 피를 줄줄 흘리기에 내가 손에 든 동그란 구슬을 굴리며 말했다.
“핸드 불릿인데 이번에는 구멍을 낼 거다.”
“어떻게 알았지? 은신은 완벽했다.”
상대가 물었다.
눈짓, 태도, 냄새, 모든 걸 종합해서 상대의 정체를 추측했다.
깊게 생각할 것도 아니었다.
“똑똑해서.”
내 답에 상대 불멸자의 홀로그램 가면이 일그러졌다.
저건 어디서 구했데, 그때 화림에서 듣자니, 구하기 쉬운 물건도 아니라고 하던데.
홀로그램 마스크의 가면, 일그러진 괴물의 얼굴을 보니 꽤 기분이 나빠 보이긴 하는데.
난 진실을 말했다.
애초에 차를 왜 여기에 대고 이 루트로 움직였겠나.
불멸교는 지독한 스토커 집단이란 걸 안다.
거기에 전 세계 제일가는 암살 집단이란 것도.
날 노릴 건 당연했다.
그 빌미를 마련해준 거다. 작정하고 덤비라고.
그리고 난 여기서 생각했다.
특수종 세계의 암살자란 놈들은 다 이렇게 멍청할까 하는.
제 능력, 그러니까 기척 죽이기를 너무 맹신한다. 그 능력을 맹신하기에 머리를 안 쓴다.
난 그걸 역으로 이용했을 뿐이다.
팬더 형의 조언도 있었고.
상대가 자세를 잡는다. 당장이라도 덤빌 것 같았다.
그리고 난 그리 자세를 잡았기에 상대가 달아나리라 생각했고.
곧바로 살기의 그물을 펼쳤다.
쓰면 쓸수록 유용한 기술이다.
놈의 마스크가 굳는다. 그걸 보며 걸었다.
툭툭 걸어 다가가 주먹을 가슴팍에 대고 눌렀다.
촌경을 흉내 낸 주먹질 한 방이다.
왼발부터 시작해 몸의 관절을 최소한으로 비틀어 힘을 담는다.
그 안에 변신족의 괴력을 담으면 고작 2~3센티 공간만 있어도 이런 걸 할 수 있었다.
우직, 우득, 펑.
주먹이 맞닿으며 가슴뼈가 부러지고 갈비뼈가 작살나며 함몰된다.
주먹을 내지르며 밑으로 내린 덕이다.
쓰러진 놈이 피거품을 꾸역꾸역 뱉었다.
난 손수 놈의 얼굴에 쓴 마스크를 벗겼다.
이거 화림에서 개발한 거라고 하던데.
벌써 이리 퍼졌나?
일개 암살자가 지니고 다닐 만큼?
주머니 따위를 뒤졌다. 연막탄이나 기타 몇 개 물건을 제하고는 쓸 만한 게 없었다.
기어도 없이 덤볐다는 거다.
이 암살자를 보며 난 불멸교가 날 만만히 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건 광신도 집단의 문제고.
손을 탁 털고 차를 몰았다.
그리 차를 몰며 나와 서울의 꽉 막힌 도로를 지났다.
지나는 데 내 차를 보고 휘파람을 부는 여자가 있었다.
“여자친구 있어요.”
이놈의 인기란.
말하니.
“차보고 한 건데요.”
그리 답하고 여자가 풋 하고 웃으며 지나간다. 지나가며 귀엽네, 어쩌네 하는 걸 보니, 내 마성의 매력에 매서움을 느꼈다.
저렇게 지나가는 불멸자가 한눈에 보고 반하는 지경이라니.
무엇보다 슬쩍 보긴 했는데,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았는데 말이야.
다만, 적의는 없었다.
다시 운전에 몰두했다. 병원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다.
전화가 울렸다.
받으니, 또 반가운 목소리다.
“야아아아, 너어어어언 지이이이인짜아아, 나쁜 새끼야.”
특별히 강조하며 말한 요한이 형이다.
“형 여자친구가 나보고 반했데?”
그럴 수도 있었다. 가능성이 있지 않나.
“약 먹었어?”
“인기라는 마약을 마셨지.”
“……먹어야 할 약을 안 먹어서 문제구나.”
우리 떠벌이 요한이 형 입심이 늘었다.
“내가 뭐가 진짜 나쁜 새끼야.”
“난 두고 가게?”
“음?”
“나도 데려가라. 연봉 많이 안 바란다. 딱 1.5배만. 나만 여기 남겨두는 게 말이 되냐고.”
난 이 말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솔직히 화림과 NS를 비교하면 화림이 백 배 낫다.
안정감이 다르다. 복지도 다르고.
아무리 한물갔다고 해도 화림은 다시 그 힘을 찾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자회사니까.
거기에 반하면 NS는 뭔가.
일개 민간 기업 주제에 타협조차 하지 않으며 테러범이었던 이를 직원으로도 받는다.그런데 온단다. 안 받아주면 섭섭하단다.
이건 의리다.
요한 형이 보기보다 의리파니까.
귀태 형이 간다는 얘기를 듣고 고민하기도 했겠지.
무엇보다 이런 다재다능한 인재는 구하기도 어렵다. 다른 사람 뒤에 가려졌지만, 회사 처지에서 보자면 놓치기 싫은 인재다.
“고마워.”
그 모든 걸 종합해 말했다.
“좋아. 이직이다. 아, 그리고 너 조심해. 이중봉 팀장이 네 이름을 읊조리면서 어금니를 가는 걸 봤다.”
음. 그렇군.
“오케이.”
말하고 병원에 들어섰다.
오후 일정에 앞서 병문안이나 할 생각이었다.
병실 문 앞에 당도해서야, 내가 딱히 음료수 따위도 안 사 온 걸 깨달았다.
처음 온 병문안인데 말이야.
내 손에 들린 물건이 있긴 했다.
병문안 선물로 홀로그램 마스크랑 연막탄 따위를 주면 우리 선생님이 좋아하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