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 친구네 집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물었다.”
화가 잔뜩 나 보이네.
왜 화가 났을까.
난 순혈 정가의 호위인지, 아니면 정가의 핏줄인지 하는 친구의 표정을 보며 생각했다.
왜 화가 났을까.
외할아버지와의 거래 때문일까?
난 압박을 원했다.
정확히는 순혈 정가의 본가에 관한 압박이다.
정치적, 심리적 압박 따위가 아니었다.
“그거면 되나? 손자?”
“네, 충분해요.”
묻고 답했다.
그거로 끝이었다.
불멸교 십이사도라는 작자의 시신을 수습한 화랑이 움직였다.
곧바로 헬기와 기타 이동 수단을 이용해 나보다 빨리 순혈 정가에 와서 이곳을 틀어막았다.
“얘기 좀 하려고요.”
허벅지에 묻은 먼지를 털며 답했다.
바지를 탁탁 터니, 허공에 먼지가 나풀거리면 날린다.
“누구랑?”
“가주랑.”
“가주가 일개 불멸자를 만나 줄 이유는 없다.”
“……일개 불멸자라니, 세최특인데.”
오는 길에 눈에 보이길래 별 생각 없이 데려온 주둥이, 아니 건동이 아저씨가 말했다.
일반인치고는 간 두께가 상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화에 끼어든 걸 보면.
“별 쓰레기까지 다 데려왔군.”
정가의 불멸자가 말했다.
순혈이다. 얼굴 생김새가 그리 말한다. 완벽에 가까운 비율과 이목구비의 조화.
얼굴만으로 삼대가 먹고 살 돈을 벌 수 있을 듯했다.
저리 잘생긴 얼굴 참 오랜만이다.
능히 기남이와 비교할 만했다.
하지만 실력은 아니다.
내가 아는 정기남을 떠올렸다.
아까 상대한 십이사도의 실력은 기남이 실력을 1로 봤을 때, 1.5 기남 정도다.
그리고 지금 상대는 약 0.8 기남이 수준.
그런데도 상대가 저리 날 대하는 이유를 짐작하긴 어렵지 않았다.
수없이 당해온 대우라서 그렇다.
이름 좀 날리니, 흔히 날 저리 보는 이들이 꽤 있다.
제 실력이라면 날 상대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는 거다.
싸우자고 덤비는 데 주저할 게 뭐 있나.
툭 땅을 박찼다.
공기를 찢어발기며 달려들 필요조차 없었다.
십이사도에게 썼던 그 기술을 그대로 썼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살기 그물?
전후좌우, 사방팔방에 기척과 살기를 섞어서 뿌린다.
예민한 감각을 지닌 상대일수록 효율이 높을 터였다.
거리를 좁히고 왼발을 축으로 몸을 틀며 주먹을 내질렀다.
적당히 힘을 준 오른 주먹이 상대의 복부와 만났다.
펑. 훙, 쿵!
음, 이건 좀 너무 허무한데.
대쉬를 쓴 것도 아니고 말이야.
강각을 발동하지도 않았는데.
주먹 한 방에 날아가 피떡이 되다니.
슉.
날 막은 건 둘이었다. 입을 털던 하나가 날아가자 바로 곁에 있던 불멸자가 반응했다.
허리춤에 손을 훑더니 휘두른다. 그 손에 들린 건 얇은 칼이었다.
만들 때 절삭력에 혼신의 힘을 기울인 도구로 보였다.
좋은 칼이다.
팔을 뒤로 빼며 왼발을 축으로 몸을 돌린다. 그 간단한 동작에 칼날이 허공을 그었다.
근접전에서 변신족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는 불멸자는 정말 흔하지 않다.
난 상대를 마주 보며 다시 살기 그물을 발동했다.
상대의 표정이 굳었다. 동시에 팔과 다리가 굳는 게 눈에 보였다.
불멸자의 예민한 감각이 상대의 상태를 직시한다.
그물에 꽁꽁 엉킨 물고기가 된 듯, 꿈틀거리지도 못한다.
주먹을 다시 뻗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힘을 조절해, 턱을 때렸다.
쩡. 우직.
힘을 조절해서 때렸기에 아까처럼 날아가 피떡이 되진 않았다.
처음 날아간 순혈 친구는 벽에서 피를 질질 흘린 고깃덩어리가 된 판이니까.
이쪽은 그나마 나았다.
발만 살짝 허공에 떴고 턱이 쪼개지며 빨간 살덩이와 치아 몇 개만 튕겨 나왔으니까.
두 방에 상대를 정리하자, 눈앞에서 끔찍한 살기가 날 짓눌렀다.
작정하고 덤비는 불멸자가 여럿이다.
순식간에 감각으로 상대의 숫자를 파악했다.
여덟.
호흡을 고를 틈도 없는 짧은 순간이지만, 기예를 발전시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생각과 동시에 어찌하는지 알 수 있었다.
살기의 그물을 퍼트린다.
달려드는 상대는 전부 0.8 기남이 수준.
전부 몸이 덜컥 멈춘다. 그나마 달려드는 운동 에너지가 있기에 한 명의 칼날이 어깨 어림에 닿았다.
난 앞으로 몸을 숙였다.
더킹이다.
허리를 뒤틀고 피하고 몸을 바로 세우며 어퍼컷, 이후 좌우로 열심히 뛰었다.
사방으로 달리며 주먹과 발을 날린다.
달려드는 순혈 불멸자 무리가 차례로 벽에 처박혔다.
그중 하나는 운이 나빠, 정원 한쪽에 있던 무슨 돌기둥에 부딪히는 바람에 머리가 깨졌다.
뇌수가 바닥에 흐른다. 그걸 보며 손을 탁하고 털었다.
절로 혼잣말이 나왔다.
“이게 되네.”
아니, 십이사도 잡을 때 써 보니까 꽤 괜찮은 기술이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말이야.
이건 좀 너무 괜찮다.
내가 개발했지만, 아주 훌륭하다.
실전에서 써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앞으로 걸었다.
정원을 가로질러 나아간다. 여전히 기척이 느껴진다. 불멸자 여럿이 틈만 보이면 노릴 것이다. 난 틈을 주지 않았다.
그대로 문을 열었다.
응접실로 보이는 공간이 보였다.
그 가운데 정가의 가주가 보였다.
“이게 무슨 짓인가.”
조금 짜증이 난 것처럼 보인다.
“적반하장이네요.”
“뭐라?”
주변에 서성거리는 불멸자가 여럿이다.
순혈 정가의 자랑이라는 가주 호위대의 수준이 피닉스 팀이나 불멸특수대의 핵심 인력과 비교한다고 했던가.
그리 보였다.
1 기남, 또는 1.2 기남이 정도 되는 이들이 여럿이다.
“아니, 그렇잖아요. 작정하시고 제 회사 후려칠 때는 언제고.”
“증거 있나?”
어금니 꽉 깨물고 가주가 말했다.
증거는 무슨.
“안 했다고 우기시려고요?”
“했다고 치세, 그래서 자네가 택한 방법이 이건가? 무력 시위?”
오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정가의 가주가 이런 일에 끼어든 이유.
내 입으로 말하기 뭐하지만, 내 하룻밤을 사기 위해서 아니겠나 싶었다.
그래서 물어봤다.
“혹시 자금 압박하고 회사 어렵게 한 뒤에 몸 팔라고 하려고 그랬습니까?”
“몸을 팔아?”
“여자랑 응응하고 돈 받는 게 몸 파는 게 아니고 뭡니까.”
“그보다는 더 고귀한 이유지, 차세대에 그 특질이 이어질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나?”
슬쩍 떠봤는데 덥석 문다.
“안 궁금한데요.”
칼답이다.
“왜?”
“애를 혼자 만듭니까? 이상형과 결혼하면 그때 고민해 볼 문제를 왜 지금부터 합니까? 그거 망상이에요.”
망상이지.
미래의 내 아이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하기에 난 아직 여자친구도 없다.
어디서 말하기 뭐하지만, 나 모태 솔로에 가까운 삶이 아니었나.
“망상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지 않나. 자네가 원한다면 가문은 자네의 힘이 되어 줄…….”
“됐어요.”
이미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
배경은 단군 그룹 하나로도 차고 넘친다.
거기에 정가까지 끼워 줄 틈은 없다.
“순혈 정가를 무시하나?”
가주와 눈이 마주쳤다.
더 얘기해서 뭐 하나, 난 본론을 꺼냈다.
“불멸교랑 연 끊고, 저랑 제 회사 사람들에게 수작 부리지 마세요.”
순혈 정가와 불멸교가 밀접한 관계라는 얘기를 들었다.
뭐, 기득권 중 아는 사람은 아는 오래된 협력 관계란다.
순혈 정가는 아주 독특한 집단이다.
외국이라고 해서 순혈 집단이 없을까?
있다.
다만, 가문의 형태로 자리 잡은 건 흔치 않을 뿐.
보통은 가문의 이름을 내세워도 이 정도로 순혈을 유지하는 거에 혈안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피가 희석돼도 더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지.
불멸교는 미친 집단이다.
세상의 유일한 신이 바로 불멸자 중에 있다고 한다.
교주를 신처럼 받들기도 한다.
사이비 종교다.
그게 발전해 테러 단체가 됐고.
세계에 해를 끼치는 테러 집단 중 가장 껄끄럽다.
그리고 순혈정가와 불멸교, 두 집단은 공통점이 있다.
불멸자가 모든 특수종 중 가장 우수하다고 생각한다는 것.
틱.
가주가 담배를 물었다.
아날로그를 좋아하는지 성냥을 긋고 담배 끝에 불을 붙인다.
크게 한 모금 빨아들인 가주가 지긋이 날 바라본다.
난 머릿속으로 가주 호위대의 숫자를 세는 중이었다.
괜찮은 기어까지 가지고 있는 무리라면 꽤 험난한 싸움이 되려나?
그렇다고 나 하나 빠져나가는 게 어렵진 않을 것 같긴 한데.
그제야 난 내가 데려온 사람에 생각이 미쳤다.
뒤에서 오줌이라도 지린 표정으로 문에 몸을 발쯤 걸치고 문에 붙은 채로 이쪽을 바라보는 건동이 아저씨가 보였다.
저 아재, 괜찮으려나?
설마 죽이기야 하겠나.
모든 가능성을 머릿속에 열어두고 가주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연기를 머금은 가주가 입을 연다.
“그러지.”
……이게 이렇게 되니까 허무하네.
사실 작정하고 온 참이었다.
가주가 아니라고 하면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할 작정으로.
그래서 오자마자 주먹질부터 시작한 건데 말이야.
“정자라도 내어줄 생각이 아니면 그만 돌아가게.”
가주가 말했다.
난 가주를 빤히 보며 생각했다.
괜히 정가를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고.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날 따라 건동이 아재도 바짝 붙었다.
뒤통수가 따끔따끔했다.
시선이 레이저처럼 내 머리통을 후볐다. 깔끔하게 무시한 난 나가며 건동이 아재에게 물었다.
“뭐, 볼 일 있어서 온 거 아니었어요?”
“지금 제 볼 일 꺼내면 내일 아침 해를 못 볼 것 같아서…….”
까맣게 얼굴이 죽은 채로 아재가 말했다.
세상 걱정 고민이 한가득한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더니, 아재는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 * *
“왜 그냥 보내셨습니까?”
장로가 묻는다. 가주는 담배를 테이블 위에 비벼껐다.
불쾌한 향을 피운 연기가 허공에 흩어진다. 소파에 등을 기대며 가주는 되물었다.
“그냥 안 보내면?”
“오만한 콧대를 눌러 줘야 했습니다. 이 일 때문에 가문의 위신이 떨어질 걸 생각은 해 보셨습니까?”
‘머저리 같은 새끼.’
툭하면 제 자리를 노리는 놈들은 많다. 장로 서넛이 연합한 것도 알았다.
가주는 눈앞에서 입을 터는 놈의 주둥이에 칼을 꽂아 넣고 싶었다.
한 치 앞도 돌볼 줄 모르는 머저리다.
이놈을 장로에 두느니, 그 정수라를 데려오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광익과 인연이 있다는 이유로 몇 번 얼굴을 보다가 그 능력을 눈여겨본 가문의 일원이다.
그 정수라의 말이 떠올랐다.
“품을 수 없다면 방해하지 않는 게 나을 겁니다. 괴물이에요. 유광익은.”
정수라의 말대로 하려 했다.
하지만 이 장로라는 작자들이 하는 짓이 우습지 않나.
이대로 저 피를 놔둘 것이냐는 압박이다.
가주의 자리 또한 정치의 결과물이다.
정가 가주는 뭐든 제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특히나 불멸교를 등에 업은 장로 무리의 말은 더 무시할 수 없었고.
그래서 광익을 노렸다.
정확히는 곤란하게 한 뒤, 원하는 걸 얻고자 했다.
책략은 실패했다.
그 압도적 무위.
‘공간 장악.’
특수종 중 몇은 제 주변을 온전히 제 뜻대로 둔다. 그 압도적인 강함을 경험해 보면 자신의 우물이 얼마나 좁은지 알 수 있다.
서른도 안 된 나이로 전 세계 실력자가 겨룰 만한 능력이라니.
오한이 돋는다.
생각할수록 무섭다. 세최특, 유광익은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그걸 눈치챈 사람은 자신뿐이라니.
“어찌할 겁니까, 가주.”
목소리 큰 장로 몇이 나선다. 보고 있자니 정말 끔찍했다.
조금 전, 장로들의 뜻대로 덤볐다면 적어도 여기에서 반 이상은 죽었다.
그런데도 저러니.
가주는 웃음이 터져 버렸다.
“왜 웃는 거요?”
왜 웃긴, 제 우물의 크기를 잴 줄도 모르는 머저리를 상대하느라 어이가 없어서 그렇지.
가주는 몸을 일으켰다.
당분간 봉문에 가까운 상태로 지내야 했다.
그게 자신의 권력을 깎아 먹더라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덤비면 가문이 망할 것이므로.
* * *
“알고 한 거지? 정부와도 깊은 관계니까? 아버지도 곤란할 테고, 싸우기보다는 물러나게 하는 게 백배 이득이니까?”
“네?”
돌아가는 길에 대뜸 팬더 형이 전화해서 이리 말하기에 되물었다.
“가끔 널 보면 진짜 무섭다.”
그리 말하고 팬더 형이 전화를 끊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부르르.
전화 진동이 울렸다. 메시지였다. 이지혜 팀장이 ‘고마워요’ 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뭐가?
경찰 쪽에서 부탁하긴 했다. 정가는 놔둬 달라고.
아니, 뭐 경찰이 부탁해서 그런 건 아닌데.
거참.
난 전화를 든 김에 버튼을 눌렀다.
“휴우.”
옆에서 한숨을 푹 내쉬는 건동이 아재는 졸졸 날 계속 쫓았다.
굳이 멀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데리고 다녔다.
몇 번 신호 끝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난 대뜸 말했다.
“야, 이직 안 할래?”
“미친놈.”
기남이가 전화를 곧바로 끊었다.
전화 예절이 엉망이네.
아버지가 저 모양이라 그런가.
난 나온 순혈 정가 본가를 힐끗 보며 생각했다.
패드립이니, 기남이한테 이런 말까지 할 수는 없겠지?
그리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처음부터 가문을 반파시킬 생각 따윈 없었다.
그래서 단군 그룹도 동원한 거고.
아니었으면 그냥 회사 전력 동원해서 공격했지.
이유? 하나다.
친구네 집이니까. 저긴 기남이네 집이다. 친구 집을 대뜸 들어가서 반파시킬 순 없지 않나.
난 내 사람이 중요하다. 내 주변이 중요하고, 내 재산이 중요하다.
그러니 당연한 선택인데 말이야.
물론 이렇게 된 이상, 이 일을 활용할 생각이다.
NS가 위험하다는 소문이 이미 파다해서 고용이 어렵다고 하니, 대표인 내가 직접 나서 볼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