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 거기에 하나 더
불멸교 십이사도.
그 이름은 역사가 너무도 깊다.
불멸교의 시작과 관련이 깊으므로 그렇다.
대대로 이어져 온 십이사도 중 하나.
한국에서 불멸교 관리자 중 하나로 발탁된 남자는 아찔함을 느꼈다.
세최특이란 이름을 깔본 건 아니다.
‘실전은 다르다.’
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세최특은 어리다. 경험치가 적다. 정작 유명세를 탄 전투를 보면 인베이더가 상대였다.
그런 그에게 사람, 특수종과의 전투는 어색해야 했다.
그가 생각하기는 그랬다. 그럼 그가 유리할 것이므로.
십이사도 중 하나, 그는 갖가지 기어를 사용할 줄 알았다.
총 열세 개의 기어.
그 정도면 상대를 잡는 것도 충분하리라.
이제껏 실패한 적이 없었다.
순혈 변신도, 마스터 급의 초능도, 마법사도 잡았다.
불멸자는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나섰다.
세최특을 잡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물론 다른 이유도 있지만, 결론은 이거였다.
이길 자신이 있어서 나섰다는 것.
기관단총으로 눈을 속이고 수류탄을 터트렸다.
싸움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 뒤, 그 상대가 변신족이 됐든 뭐가 됐든 급속 경화시키는 발동형 기어를 터트렸다.
스치기만 해도 행동에 제약이 걸릴 터였다.
상대는 피했다.
순간 눈앞에서 사라지는 고속 이동으로.
꽝 소리와 함께 옥상 바닥이 터지는 소리만 울렸을 뿐이다.
십이사도의 눈에 보인 건, 터진 바닥과 사라진 광익뿐이었다.
바닥에 급히 라이트닝 트랩을 깔았다.
밟지 않아도 발동한다. 허공에 뇌전의 막을 만드는 기어다.
파지직.
뇌전이 일어나 눈앞에 스파크를 만든다. 그러나 상대는 그것보다 빨랐다.
그림자가 훅- 하고 제 앞에 나타나고, 그 뒤에 스파크가 터지듯 명멸한다. 그 모은 게 십이사도의 눈에는 느린 화면처럼 보였다.
‘이건 무슨.’
어지간한 변신족과도 겨뤄봤다.
순혈 변신족과 싸운 경험만 수십 번이다.
자신 있었다.
그런데 결과가 끔찍했다.
전후좌우, 어디에도 피할 수 없었다.
직감이 그리 경고한다. 그 어느 곳이든 전부 호랑이 아가리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주저했다. 판단이 느려지고 결국 선택지가 제한된다.
농후한 전투 경험을 지녔지만, 몸이 쉬이 움직이지 않았다. 근육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왜?’
마치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된 기분이 든다.
이유는 간단했다.
상대의 기척이, 상대가 내미는 의도가 자신의 전방위를 압박했으니까.
멈춘 그림자, 광익의 주먹이 흐릿해 보인다. 그 주먹이 제 가슴에 닿았다.
소리가 사라지고 눈앞이 까매진다.
불멸자의 가장 큰 장점은 죽지 않는다는 것.
십이사도는 자신이 졌다는 걸 알았다. 싸워서 이기기 어려운 상대라는 걸 인지했다.
그래도 타격은 주리라 생각했다.
맞는 순간, 몸에 칭칭 둘러 둔 주문 스크롤이 반응했다.
폭발 주문이 담긴 스크롤이다.
스펠 기어, 그것도 일회성으로 사용되는 고가의 스펠 기어였다.
맞는 순간 터질 것이다.
주먹이 닿는 순간,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주변 사물이 훅- 하고 사라졌다.
비명도 신음도 내지를 수 없이 십이사도는 몸이 뒤로 날아갔다.
가슴이 으깨지며 옥상 가운데 삐죽 솟은 출입구에 몸이 처박혔다.
꽈-앙.
그와 함께 제 몸에 붙은 스펠 기어도 터졌고.
십이사도의 기억은 여기서 끊겼다.
* * *
꽝.
폭발 소리가 들렸다.
“음?”
저 양반 몸에 뭘 두르고 다니는 걸까.
한 대 맞더니, 터진다.
곧 출입구 앞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치솟다 못해 앞으로 뻗어 나왔다.
난 주먹을 밀어치며 뒤로 발을 뗐다.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폭발이 동물의 혀라도 된 양, 삐죽하게 내가 있던 자리를 훑었다.
폭발의 여파는 완벽히 피했다. 파편 몇 개가 날아왔는데, 반사적으로 발동한 장갑의 갤럭시 필드가 파편 따위를 막았다.
결론만 말하자면, 손에 그을음조차 남지 않았다.
난 손을 털며 조금 전 내가 한 동작을 되새김질했다.
단순한 패턴과 동작이다.
누군가 이걸 봤다면, 십이사도란 놈이 정면으로 냅다 달려드는 주먹질 하나도 못 막는다고 생각했을 거다.
겉보기에는 그만큼 단순했다.
속을 살피면 조금 다르지만.
응용이었다.
기척과 살기.
불멸자는 기척을 말하고, 변신족은 살기를 논한다.
한쪽은 감추고 속인다면.
다른 한쪽은 드러내고 압박한다.
둘을 섞어 봤다.
그리 어렵진 않았다.
발상을 하니, 자연히 이뤄진다.
기척을 흘리고 속이며 그 안에 살기를 섞는다. 속임수에 알맹이가 생기는 판이다.
상대는 속았다.
움직이지 못했다. 반응하지 못할 속도로 내달리는 건 부가 서비스였다.
그리 완성된 주먹질이다.
일격에 힘을 실었다. 그 주먹을 내미는 것 또한 여러 가지 격투기 원리를 실어 담았다.
일격의 파괴력은 인듀어를 달고 중력 제어실을 뛰어다닌 덕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나쁘지 않네.”
꽤 흡족했다는 것.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숨이 찰 일도 아니었다. 그저 주먹질일 뿐, 난 무전기를 켜 통신기에 대고 입을 열었다.
“정직이 죽었니?”
곧 통신이 돌아왔다.
“살았습니다.”
“오라버니 안 다치셨나요?”
그 뒤 마리의 목소리도.
“멀쩡하지.”
이글이글 타오르는 십이사도를 보며 난 무전기 주파수를 바꿨다.
“형?”
팬더 형이 곧바로 답했다.
“경찰이랑 행안부 쪽도 움직이긴 했는데, 단군 그룹이 제일 반기긴 하네.”
이미 약속된 작전이었다. 설마 이 작전에 십이사도라는 거물이 걸려들 줄은 몰랐지만, 알 게 뭐람.
걸리면 좋은 거다.
이 시점에 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전화를 해야겠다.
통신을 끊고 전화기를 들었다. 곧 전화기 너머에서 늙었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 우리 손주, 밥은 안 굶고?”
“너무 잘 먹어서 탈이죠.”
“어릴 때 많이 먹어야지. 변신이 먹는 거로 지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손주야.”
“지금도 뭐 하나 먹긴 했는데, 이건 외할아버지가 더 좋아하실 것 같은데요.”
“잡았니?”
주어가 빠져도 대화의 맥락이 없어 보여도 얘기는 이어진다.
내가 불멸교를 잡기 위해 덫을 친다는 걸 외할아버지는 알고 있다.
“고위 교도?”
외할아버지가 물었다.
불멸교는 고위급 인사가 아니면 아는 게 거의 없다.
교주가 꼭대기에 있고, 그 밑에 두 명의 부교주가.
다시 그 밑에 십이사도가 있으며 그 밑으로는 고위 교도라 할 수 있는 이들이 있다.
그 고위 교도도 몇 가지로 나뉘긴 한다. 쉽게 말하자면 십이사도 밑에는 또 관할 지역구를 담당하는 주교가 있다.
일반 교도 바로 위에는 선배 교도가 있고.
복잡하다. 자기들만의 세상이다.
불멸특수대 시절, 테러 단체의 구조를 배워서 알긴 하지만 전부 외울 필요는 있을까 싶다.
어쨌든 현 상황에서 일반 교도 이상은 되어야 잡을 가치가 있을 터였다.
“네, 꽤.”
“주교?”
“조금 더 쓰시죠.”
외할아버지가 말이 없길래 내가 말했다.
“제 입으로는 십이사도 중 하나라고 하던데.”
“그놈이 혹시 기어 이것저것 섞어 쓰는 놈이냐?”
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잠깐의 침묵,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숨소리의 끝에 다시 그룹 회장이자, 외할아버지 되는 분이 말했다.
“사람? 아니면 건물에 방위 시스템을 설계해 줄까?”
예전에 단군 그룹과 불멸교가 심하게 다툰 계기가 뭐라고 했더라.
폭탄 테러, 그것도 그룹 핵심 인력을 노린 수작이라고 했던가?
그 중심에 십이사도 중 몇 놈이 있었다고도 들었다.
내가 잡은 놈이 그중 하나려나?
난 착한 손주가 되고 싶었다.
기왕 잡은 거 얌전히 드리고 싶었다.
“거기에 하나 더.”
“……손주가 욕심이 좀 있구나.”
“네, 조금 있는 편입니다.”
사람도 주고, 방위 시스템도 손봐주면 좋고. 거기에 하나 더 바라는 게 뭐 그리 큰 욕심이라고.
“압박이요.”
짧게 말하고 설명했다.
내가 바라는 건 단체의 힘을 이용한 압박이다.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외할아버지는 대가 없이 움직일 분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그 반대로, 거래가 되면 그만큼 믿을 만한 사람도 없다고도 했다.
이건 좋은 거래였다.
“딜.”
외할아버지가 말했고.
“좋습니다.”
난 흔쾌히 답했다.
전화를 끊고 반쯤 타서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는 십이사도를 잘 정리했다.
하는 김에 처음 날 노린 암살 불멸자 놈도 들어다 놨다.
혹시 깰까 봐 목 뒤, 연수 쪽에 수도를 한 방 더 먹였다.
힘이 좀 과했는지, 목뼈에서 우두둑 하는 소리가 났다.
전투 감각이 달아오를 때로 달아오르면 가끔 힘 조절이 안 되기도 한다.
이건 변신족의 본능 때문일까?
아까 내 뒤통수에 권총을 들이댔던 놈의 뒤통수를 보며 놈의 발걸음을 떠올렸다.
엄청 훌륭했으므로, 난 그걸 머릿속에서 답습했다.
따라 하는 건 쉬울 것이다.
기척 죽이기에 더해 중요한 타이밍을 재는 능력까지.
다음에 한 번 써먹어 볼 만했다.
그리 단군 그룹을 기다리는 중, 무전기가 울렸다.
다른 주파수의 연락이 진동 신호로 전해진다.
주파수를 전환하자,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아들, 얘들 여기 뭐 잔뜩 숨겨 놨는데?”
“금고가 있어요?”
돈이라도 잔뜩 숨겨 뒀나.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팬더 형은 불멸교가 덤벼도 잘해야 암살 시도 몇 번 하고 그만두리라 판단했고.
그것도 아니면 당연히 도마뱀 꼬리 자르듯 이 조직을 다 버릴 거라 했고.
그런데 둘 다 아니다.
무려 그 십이사도 중 하나가 직접 왔다.
“직접 와서 볼래?”
어머니가 말했다.
“안쪽은 다 정리됐어요?”
“응. 이건 어디서 났니? 마스크 꽤 좋네.”
“신제품이라고 하더라고요. 아직 어디 출시된 건 아니고.”
잡다한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다.
두다다다다.
오, 단군 그룹 클래스.
다들 밑에서 사이렌 울리고 내달려 오는데, 이쪽은 헬기를 가져왔다.
단군 그룹의 로고를 단 헬기가 머리 위에서 공회전하고 그 밑으로 사다리가 촤르륵 내려오더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머, 광익 씨.”
피지컬 깡패 소진이다.
그녀가 훌쩍 뛰어내렸다.
쿵 하고 묵직한 소리를 낸 소진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잘 지냈어요?”
“네, 무척.”
조금 전까지도 싸우며 잘 지냈지.
“십이사도라니.”
“또 한 건 했군.”
그 뒤에 운비가 내려와 말했고.
마지막으로 도안결이다.
이 새끼 눈빛은 여전하다.
“일격이었나?”
상황을 살피고 내가 해 둔 일을 보더니 입을 연다.
“뭐, 응.”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이 꽤 부담스러웠다.
여자가 이래도 부담스러운데, 남자 새끼가 이러니까 더 그렇다.
“그럼 난 간다.”
말하고 몸을 돌렸다.
“다음에 만나러 가도 되나요?”
“다음에 보러 가도 되나?”
“어머니 보러 가도 될까?”
소진, 안결, 운비가 한 번에 말했다.
불멸자의 청각은 놀랍게 정밀하기에 난 그 셋의 말을 다 알아들었다.
“네, 응, 응.”
답하고 몸을 돌렸다. 출입구 부근에서 불이 꺼지는 부분을 찾아 콘크리트 덩어리를 발로 걷어차 길을 확보한 뒤, 무전기를 통해 말했다.
“지금 가요.”
곧바로 어머니께 답신이 왔다.
“어서 오렴.”
목소리가 약간 흥분하신 것 같은데 괜찮으신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십이사도 놈은 여길 왜 온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까지 와서 덤빌 이유가 없다.
그럴 만한 이유라면.
내 눈이 자연스레 어머니가 계신 건물로 향했다.
“보물이라도 숨겨 뒀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들어갔다.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자연스러운 행동에는 숨겨진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걸으며 난 다음을 생각했다.
어머니를 만나고 곧바로 할 일과 앞으로 해야 할 일.
사람이 필요하긴 했다. 인력이 부족하다. 그 인력을 어떻게 충원할 것인가.
몇 가지 아이디어와 더불어 생각이 교차한다.
떠올렸으므로 그리할 것이다.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잡생각의 끝, 정직이가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은 게 보였다.
양손에 든 도끼와 전신을 피로 물든 마리도.
그 뒤에 몰래 정직이를 도우라고 붙여 둔 장미 또라이도 함께다.
팬더 형을 제외하면 전 직원이 다 출동한 셈이다.
“고생했다.”
공치사하고 난 건물 안으로 쏙 들어갔다.
어머니가 찾은 비밀 금고의 내용물이 무척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