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 십이사도 할래?
그 상대가 범죄 조직 연합이 됐든.
아니면 그 배후에 있다고 추정되는 불멸교가 됐든.
그들이 저격수가 있다는 걸 아는 건 당연했다.
난 열흘 넘게 정직이를 서포트했다.
졸졸 뒤를 따라다니며 근처 빌딩 옥상에서 총질을 했다.
어지간한 놈이 나오면 전부 몸에 바람구멍을 내줬다.
그렇게 저격수 여섯 놈을 잡았고, 정직이의 뒤를 노리는 암살자 다섯을 잡았다.
총 열하나, 이렇게 난리를 피웠는데도 내 위치가 노출되는 걸 예상하지 못한다면 이건 정말 바보다.
슬슬 날 쫓아올 거라 예상했다.
다만,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덤빌 줄은 몰랐지.
기척 죽이기 수준이 남달랐다.
순혈 불멸자에, 단련된 프로다.
자연스레 상대가 나에게 다가오는 과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전투 상황이 되면 으레 발동하는 전투 감각이다.
기생 라이플을 쏠 때.
반동과 총성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으므로 감각의 레이더에 틈이 생긴다.
그 틈에 발을 떼고 거리를 좁힌다.
그러면서도 기척 죽이기는 유지한다.
훌륭했다. 뒤를 잡혔음에도 이 기술을 나중에 따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멸특수대의 전술과는 궤가 다른 은밀함이다. 마치, 암살자 집단에서 작정하고 키운 킬러 같았다.
그렇다고 나도 얌전히 당할 생각은 없다.
예상했기에, 나도 다 대비책을 마련했다.
불멸자의 감각 밖, 감지되지 않은 범위에서 달려드는 변신족을 감지할 불멸자는 흔치 않다.
예전, 머니 & 세이브 타격 작전 당시, 미호가 똑같은 전술에 당했다고 들었다.
마리가 그때의 변신족 역할을 했다.
불멸자의 감각 밖, 정확히는 다른 건물의 옥상에 있다가 땅을 박차고 날아와 내 뒤를 잡은 놈을 덮쳤다.
뒤로 고개를 돌리자, 그림자 하나가 달려들어 내 뒤를 잡은 불멸자를 향해 주먹을 날리는 게 보였다.
습격자 놈이 가까스로 몸을 틀었다.
그림자, 마리는 예상이라도 한 듯, 반대쪽 손을 뻗어 불멸자의 목을 틀어쥐었다.
그리고는 냅다 옥상 바닥에 메다꽂았다.
잡힌 놈이 교묘하게 몸을 틀었다.
곧 놈의 머리가 아니라 어깨가 옥상 바닥과 만났다.
쿵, 우직.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마리는 메다꽂은 자세에서 몸을 공처럼 말더니, 복근과 허리 등의 코어 근육을 이용해 몸을 뒤틀며 주먹을 뻗었다.
마리의 주먹이 상대 가슴팍을 때렸다.
뻥!
공 터지는 소리가 울리며 맞은 습격자가 기침을 토했다.
“컥!”
맞자마자 뒤로 날아간다. 퉁- 하고 땅바닥에 처박혔다가 일어난 놈이 부들부들 떨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눈깔이 동그래졌다.
친구야 많이 놀랐니?
“오라버니?”
“스쳤어.”
말하며 볼을 쓰다듬었다. 어느새 상처는 아물었다. 간질간질하더니, 곧 그 감각도 사라졌다.
최근 훈련을 거듭하며 느끼는 건데, 어째 재생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 같기도 하다.
통나무 선생이 그런 말을 하긴 했다.
기술을 자주 쓰다 보면 늘 때도 있다고.
재생력도 마찬가지로 미세하게 늘기도 한다는데.
그런 것 치고는 난 좀 과한 것 같기도 하고.
뭐, 나쁜 건 아니다.
볼의 상처는 완치다. 기생 라이플에 달린 조준경으로 밑을 내려다봤다.
정직이를 노리고 온 무리가 보였다. 셋이었다. 걸음걸이가 남달라 보이긴 하는데, 이 거리에서 조준경으로 봐서야, 상대 실력을 알 도리가 없다.
“형님, 대표님, 사장님, 저 어떻게 합니까?”
꽤 당황한, 이제는 상대 실력을 가늠할 눈이 생긴 정직이가 무전기를 통해 말했다.
고된 훈련의 결과다.
긁적, 머리를 한번 긁으며 라이플로 상대를 겨눴다.
그 안에 감각이 남다른 놈이 있었다.
한 놈이 시선을 돌렸다. 정확히 내가 있는 위치로.
그러더니 곧 뭐라 뭐라 중얼거리고는 혀를 찼다.
난 조준경을 확대해 그 입 모양을 읽었다.
“저격 포인트 확인, 저격 포인트 확인. 답신 요망.”
답이 있을 턱이 있나.
“끄르윽.”
마리한테 얻어맞은 놈이 피거품을 게워내더니 쿵 하고 머리통을 땅에 처박았다.
변신족의 일격을 두 방이나 허용했다. 그것도 마리가 그냥 변신족인가.
‘훈련 귀신’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제 몸을 단련하는 데 매진하는 노력파 천재다.
괴력의 피를 잇지 않았기에 자기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부단한 노력의 결과가 이거였다.
단, 두 방에 프로 불멸자 아웃.
“마리야.”
“네, 마리가 뒤를 맡겠어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작정하고 쏴 줘야지.
라이플을 겨눈다.
패러사이티움 기반의 기생 라이플 완갑이 총구의 형태를 그린다.
손가락으로 만든 총구 형태 위로 길어진 총신에 꿀렁, 피 세 방울이 들어갔다.
화려함은 없지만, 충실한 파괴력을 가진 탄 세 발, 방아쇠 세 번을 당겼다.
투두둥.
연사라도 되는 듯, 틈도 주지 않고 쐈다.
불멸자의 저격이다.
세 명의 머리를 노린 탄이다.
그리고 셋 다 피했다.
이것 봐라? 보통내기는 아니구나.
퉁퉁.
다시 쏘려는데 누군가가 옥상 철제문을 두드렸다.
“거기까지만 하자.”
그 뒤 들리는 목소리.
마리가 등 뒤에 십자로 맨 도끼 손잡이를 잡았다.
“더 오면 자르겠어요.”
“말 한번 되게 살벌하게 하네, 어딜 잘라?”
“팔이나 다리, 또는 목이요.”
불멸자다. 전투 감각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나다.
상대의 기색만 읽어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상대가 기척 죽이기도, 어떤 비전 기술도 없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세최특?”
날 보더니. 말끝을 높여 부른다.
“사인 필요해?”
툭 말하니.
“됐다, 남자 사인받아서 뭐 하냐.”
얼굴에 미소를 띤 눈이 큰 불멸자다.
잘 생겼다. 순혈 불멸의 특징이 여실히 보이는 외모였다.
특이점이라면 눈이 꽤 컸다.
왕눈이다.
“마리야, 정직이.”
“네, 오라버니.”
저격을 인지하고 감지하고 피한다. 그럼 총보다는 가까운 주먹이 필요하다.
정직이를 구하라고 마리를 보내고 라이플을 완갑의 형태로 돌렸다.
“범죄 소거자가 네 작품이었구나. 취향 좀 그러네.”
놈이 말했다.
“내 취향은 아니고.”
팬더 형 취향이지, 내 취향은 아니다.
마리가 나와 상대를 힐끔 보더니,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상대는 그걸 놔뒀다.
“안 막아?”
궁금해 물었다.
“세최특 하나로도 버겁지.”
말만 그렇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이곳은 옥상이다. 넓다고 할 수 없는 공간, 그럼 불멸자가 유리할까, 변신족이 유리할까.
단연코 말하는데 변신족이 유리하다.
그런데도 상대는 여유만만이었다.
뭘 믿고?
몸에 지닌 장비를 믿고?
뭘까.
“너 불멸교 십이사도라는 거 알아?”
“십이사도, 너무 유치하지 않아? 나한테 취향 탓하더니.”
“내가 한 건 아니고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전통 같은 거라.”
“그래서?”
“너 십이사도 안 할래?”
불멸교, 당연히 예상했다.
아까 날 노린 암살 수준을 봐도 그렇고 본래 작정하고 얘들을 끌어낼 의도로 시작한 일이니까.
팬더 형은 말했다.
“불멸교만큼은 잡기가 너무 어렵다.”
광신의 집단, 불멸교.
그들은 잘 숨는다. 얼마나 잘 숨는지, 예전 단군 그룹과 마찰을 빚었을 때, 외할아버지가 작정하고 쫓은 적이 있다고 들었다.
장장 6개월의 추적.
간간이 불멸교도가 잡혔을 때는 곧 고구마 줄기 캐는 것처럼 윗대가리도 나올 거로 생각했다.
턱도 없는 소리였다.
거기서 끝이었다. 그 뒤를 아무리 캐고 조사해도 나오는 게 없었다.
그 단군 그룹이다.
엑스큐라시가 인정하는 한국의 대기업.
해킹, 추적, 조사, 목격자.
모든 걸 활용했다.
전심전력으로 덤볐다는 거다.
그때 외할아버지는 이 땅에서 불멸교를 지울 작정이었다고 들었다.
결과는 실패다.
싸우고 싶다면 일단 만나야 하는 법이다.
불멸교는 숨었다. 완벽히 숨는 것만으로 단군 그룹의 기력을 뺏은 셈이다.
6개월 뒤, 단군은 포기했다.
이 이야기 외할아버지 앞에서 하면 지금도 꽤 기분 나빠한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 이번 일이 터졌을 때, 대뜸 단군에서 지원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난 거절했다.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그리 잘 숨는 놈들을 끌어내려면 좀 만만해 보일 필요가 있으므로.
세최특이란 이름 하나만으로 만만함은 사라지지만, 그래도 소수로 있어야 한다.
단군에서 화랑대라도 보내면 얘들이 얼굴을 들이밀겠냐고.
우리 작전은 이거다.
불멸교가 범죄 조직을 움직여 공격했으니.
상대의 수단을 없애고.
거기에 반응하면 다 깨부수는 것.
그런데 조직을 툭툭 건든다고 얘들이 진짜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하면 뭐 줘?”
“돈, 명예, 여자, 아, 너 남자 좋아하나?”
“뭐라는 거야?”
도발 수준이 높다.
“아니, 이상형 얘기 들었거든.”
말하며 쿡쿡 웃는다. 도발 수준이 진짜 높았다. 진심을 담은 것처럼 보이는 말이니.
“난 여자가 좋다. 너무 좋아서 침 흘린다고.”
“그래서 할래? 진짜 아까워서 그래.”
그 말에 진정 궁금해졌다.
“프로메테우스도 그렇고 너희는 왜 이렇게 나랑 일 못 해서 안달이 났냐?”
“너 같은 불멸자가 흔친 않으니까. 죽이긴 아깝기도 하고.”
그렇구나. 내가 죽이기 아까운 인재구나.
“너도 십이사도야?”
“응.”
고개를 끄덕인다. 왕눈이의 얼굴에 어린 미소가 여전하다. 자세, 움직임, 모든 게 눈에 들어온 상태다.
달궈진 전투 감각이 상대의 수준을 파악했다.
순혈 불멸자, 전투력을 굳이 따지자면 호남이 형 정도? 순혈 정가의 호위 정도?
고로 나한테 일대일로 덤빌 수는 없다.
그건 당연하다.
이제까지 내가 벌인 일만 알아도 그럴 순 없다.
그런데 덤빈다. 원인이 있다면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다면 원인이 있다.
상대는 혼자 덤빌 만하니까 덤빈다.
툭.
긴 코트를 입은 왕눈이였다.
놈의 손이 뒤로 돌아간다. 코트 뒤쪽 엉덩이를 스치더니, 우지 한 자루가 튀어나왔다.
곧 기관단총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투두두두.
차가운 공기를 데우는 탄환이 허공을 가른다.
총구를 보자마자, 난 반사적으로 옆으로 몸을 움직였다.
툭 땅을 차며 왼쪽으로 뛴다. 내가 있던 곳의 탄이 박힌다. 총구가 날 따라 움직인다.
날 겨누며 놈이 읊조렸다.
“불멸교는 불멸자의 영원을 꿈꾼다. 그건 곧 신이 되는 길이니.”
개소리였다.
왼쪽에서 다시 왼쪽, 작은 원을 그리며 거리를 좁힐 수 있다.
그리 움직였다.
그러자 놈이 수류탄을 까 던졌다.
퉁- 하고 허공에 나는 수류탄을 향해 핸드 불릿을 던졌다.
펑.
폭죽이라도 되는 양 폭발이 일어나며 대기가 짜르르 울렸다.
그 와중에도 기관단총은 여전히 불을 뿜는다.
뛰고 피한다.
최근 훈련을 하며 느낀 게 있었다.
알을 도우며 싸운 뒤, 혼자 섀도 파이팅을 하고 인듀어 최고 단계를 견디고 중력을 올린 뒤에 그 안에서 훈련을 하고.
작대기, 통나무 선생은 내게 더는 가르칠 게 없다고 한다.
어머니도 대련 외에는 날 가르치지 않는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어느새 홀로 걷는 길이 됐다.
그러며 깨달은 게 많았다. 그중 하나가 자연스레 나왔다.
기척을 죽이고 날린다.
불멸자의 비전을 거듭 훈련하며 느낀 건 결국, 이건 몸짓과 손짓으로 상대를 속이고 숨는 작업이란 거다.
난 그걸 응용했다.
좌우로 시선을 던지고 몸짓으로 종용한다. 난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딱.
상대가 뭔가를 던졌다.
머리 위에서 돌 깨지는 소리가 나며 머리 위로 실타래 같은 게 떨어졌다.
무시했다.
변신족의 강각은 순간 속도를 스포츠카의 제로백 이상으로 만들어 주므로.
난 그렇게 했다.
꽝.
땅을 박찼다.
무거운 공기를 찢고 사라졌다.
그러며 기척을 흘리고 속인다.
상대의 품에서 뭔가 자꾸 나왔다.
허공 실타래에 이어, 바닥에 뭔가 깔린다. 작은 기계 장치로 보였는데, 그 위로 파지직- 하고 스파크가 튀었다.
그 전력의 일부가 내 몸에 닿기도 전에 난 앞으로 돌진했다.
돌진하며 주먹을 뻗는다. 여전히 기척을 섞어서.
곧 주먹이 목적지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