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235화 (235/488)

235. 불꽃 조형사

진짜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상대는 예상도 못 할 터였고.

로즈가 대장로를 속이는 건 아무런 이득도 없는 일이다.

오히려 손해만 있다.

이 일 이후, 대장로가 원한이라도 품으면?

일국의 권력자가 품은 원한은 오뉴월에 서리를 내리게 할 수도 있었다.

특히나 초능국의 권력자라면 이걸 물리적으로 가능케 한다.

한여름에 빙결 능력자를 모아 상대를 얼려 죽일 수 있다는 거다.

말 그대로 오뉴월에 서리다.

그게 하등 쓸모없어 보인다고 하더라도 경고의 의미로 그만한 자원을 낭비할 수 있는 게 권력이란 거니까.

그런데도 로즈는 태연했다.

“이거 참.”

대장로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황당했다.

황당함에서 끝나진 않았다.

공항에 도착한 세최특을 놓친 것도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불멸과 변신의 혼혈이라지만, 무려 초능국의 로열 가드 열둘이 가서 특수종 하나를 놓치다니.

잠깐 잡아 두기라도 해야 했다.

그런데, 그조차도 실패했다.

일이 꼬인다. 그게 그를 불쾌하게 했다.

로즈라는 전직 테러리스트란 종자가 이런 짓을 했다고 해서, 자신이 불리한 위치에 서는 건 아니다.

그저 감정이 상할 뿐이지.

그리고 고작 불쾌감을 주기 위해서 왕자가 이런 짓을 꾸몄다면, 저건 세상 다시 없을 머저리일 터였다.

이 일로 자신이 실수하기를 바라서?

얼토당토않은 바람이다.

‘저년, 죽인다.’

이 일이 끝나면 저 맹랑한 테러리스트를 죽일 것이다.

몸 성히 이 왕국을 빠져나가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 결심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성보다 감성이 먼저 꿈틀대며 반응했다.

한평생 이런 취급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까득.

어금니가 절로 맞물린다. 황당함이 불쾌감으로 불쾌감이 금세 분노로 변했다.

“날 속이고 싶었소?”

대장로가 물었다.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대장로를 바라보던 왕자가 되물었다.

“뭘?”

“맹랑한 테러리스트 종자를 써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알이 발뺌했다.

“제 얘기를 하시는 것 같은데, 맹세코 전 이곳에 와 처음 뵙는 분입니다.”

어젯밤 비밀 회동을 아는 사람의 처지에서 보자면 환장할 태도다.

하물며 그 태도의 진실성이 엿보인다면.

그 타이밍에 왕자의 수하와 대장로의 수하가 동시에 둘의 귀에 속삭였다.

대장로 편에 선 몇몇 시선이 로즈에게 꽂혔다.

“얘, 쫄지 마라.”

옆에서 강슬혜가 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맑게 찰랑거리는 물을 한 모금 마신 강슬혜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야, 이런 거 너무 오랜만이라, 아드레날린이 폭발할 것 같아.”

흥분, 기대. 그런 것들이 가득 찬 눈이다.

‘모친도 정상이 아니야.’

싸우고 싶어 환장한 변신족의 눈빛을 가까이에서 보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다.

로즈는 강슬혜의 눈에서 폭발할 것 같은 폭력성을 엿봤다.

놔두면 아무나 잡아 패대기칠 것 같은 그런 충동이 가득한 눈이었다.

“제발 덤벼라.”

강슬혜는 그리 중얼거리기도 했다.

로즈는 슬쩍 그녀와 반대쪽으로 궁둥이를 옮겼다.

그쪽에 앉은 다니엘이 로즈를 힐끗 보더니 물었다.

“어젯밤에 대장로를 만났나?”

넌 사실 배신자냐고 묻는 것 같았다.

여기서 순진하게 그렇다고 할 수는 없었다.

저 작자 속 좀 뒤집어 놓자고 광익이 시킨 일이라 할 순 없는 노릇이다. 보는 눈이 많고 듣는 귀가 많다.

-맹랑한 년.

텔레파시가 머릿속에 울렸다.

정신으로 의지를 전하는 방식이기에 호통이 되진 못했다.

텔레파시는 감정을 담을 수 없다.

그래도 단어 선택에서 상대의 기분을 예측할 수는 있었다.

기분이 더럽다 이거군.

로즈는 그리 생각했다.

-미친 거냐?

그리고 이후에 나온 질문에서 어느 정도 작전이 먹혔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상대는 이쪽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이유가 없으니까.’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따르는 법이다.

특히나 이 정도 사고를 치려면 그만한 대가가 필요하다.

반쯤 목숨 걸고 덤비는 일인데, 마땅히 그만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나.

물론 그 이유라는 건 개인차가 있는 법이다.

대장로는 알을 보며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공주만 죽이면 그만이다.

고작 한 사람의 목숨이면 끝날 일 때문에 이리 허점을 보이다니.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가.

이 일이 결국 자신의 목을 옥죌 텐데?

로즈는 대장로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자신도 같은 생각이었으니까.

공주만 죽이면 그만이다.

하지만 광익은 그 쉬운 길 대신 어려운 길을 택한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데?”

라고 물으니.

“하고 싶으니까.”

이리 답한다.

더 말이 통하지 않는다. 내키는 대로 하겠다는 놈이다. 그러니 설득이 될 리 없다.

공주한테 반한 것도 아니고 친구의 누이라서 구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고 싶단다.

여기서 끝났으면 그냥 미친놈인데.

하고 싶은 일에 맞춰 판을 새로 만든다.

그래서 무섭다.

‘똑똑한 미친놈.’

상대는 황당할 것이다.

텅.

회의실 문, 그러니까 흰색 바탕에 금색 줄이 형이상학적 형태로 그어진 문이 좌우로 활짝 열렸다.

그 가운데 물기 젖은 머리를 터는 광익이 보였다.

“좀 늦었습니다.”

광익은 어깨 위에 긴 나무 상자, 누가 봐도 관이라 부를 수 있는 걸 맨 채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몇몇이 그를 제지하려 하자, 왕자가 호통을 내질렀다.

“내 친구를 모욕할 셈이냐? 내 허락하에 들어온 손님을 막아?”

“저자가 혹 왕족을 시해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하십니까? 무려 세최특이라 불리는 자 아닙니까? 당장 포박해서 위험을 배제하십시오!”

대장로가 그 말을 받아쳤다.

다니엘이 꿈틀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광익을 중심으로 대장로파와 왕자파가 갈린다. 두 집단이 좌우로 벌어진다. 금세 살벌한 공기가 장내를 채웠다.

서로를 향한 적의가 가득했다. 긴장감이 감돈다.

“광이 날 시해한다면 내 목숨을 버리겠다. 친구 하나 설득하지 못한 왕이 어디 있겠나? 그런 왕족이 왕좌에 올라 국민 전체를 대변할 수 있으리라 생각지 않는다. 난 광을 믿는다. 그는 나의 사람이다.”

살벌한 공기를 관통하는 한마디다.

그런데도 긴장감이 사라지진 않았다.

적대감이 곧 행동으로 바뀔 듯한 공기다.

여유를 보이는 건 둘 뿐이었다.

하나는 유광익.

“아니, 왜 싸우고들 그러시나.”

말하며 양손을 펼쳐 보인다. 잠깐 기다리라는 손짓에 기이하게도 긴장감이 한풀 꺾였다.

다른 하나는 그의 모친.

그녀는 기대감이 가득한 눈으로 두 명의 변신족을 바라봤다.

칼브 형제도 눈에 힘을 줬다.

덤비면 전처럼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가득하다.

일촉즉발의 상황, 퉁하고 관을 내려놓은 광익이 말했다.

“싸우는 이유가 두 개라고 들었는데요.”

그의 한마디에 모두의 시선이 꽂혔다.

“왕자님의 계승 자격과 능력 증명이라고 했었죠?”

대장로가 광익을 빤히 바라봤다.

본래 공주를 죽이고 오면 그리하려고 했었다.

그걸 광익이 꼬집었다.

왕가의 일족은 그 능력을 증명할 의무가 있다.

공주는 그 능력이 미흡했다.

상대의 기분을 읽는 독심(讀心) 계열은 초능국에서 하급으로 취급되니.

왕족에게 어울리는 능력이 아니다.

알은 제 능력을 보인 적이 없었다. 열병앓이가 쇼가 아니었냐는 말도 곧잘 나왔다.

광익은 관뚜껑을 열었다.

“증거, 죽은 공주의 시신이면 충분하겠죠?”

관의 안, 드레스를 입고 곱게 누운 공주가 있었다.

* * *

‘이게 뭐냐?’

대장로는 두 번 당황했다.

동시에 가짜는 아닐까 생각했다가 곧 ‘왜’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공주만 죽으면 이런 난리는 안 생긴다.

그리고 이 일의 전면에 나선 건 왕자가 아니라 세최특이란 특수종 놈이다.

그래서 헷갈렸다.

세최특이 나설 이유가 있나?

이런 위험을 감수해서 가짜 시신을 만들어 와?

무역 독점권 때문이라면, 그건 이미 약속한 일이다.

왕자가 떠나며 그걸 확고하게 말하고 갔으니까.

‘왜?’

의문이 머리를 맴돈다.

시신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가짜라면, 최소 올드포스나 엑스큐라시에서 나서야 한다. 기술력 수준이 그렇다. 일개 과학자 나부랭이가 만들 게 아니다.

한국으로 치면 단군 그룹이나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대장로의 추측은 맞았다.

불멸특수대의 DNA 복사 기술 일부로 만든 시신이었다.

이걸 위해 광익은 남명진에게 부탁했고 남명진도 꽤 괜찮은 대가를 받았다.

꾸준히 숨을 옥죄던 행안부와 단군 그룹의 자금 압박이 사라졌으니까.

대장로의 동공이 마음만큼이나 흔들렸다.

시신의 진위 여부를 쉬이 따질 수 없다. 저 정도면 시신을 갖고 며칠은 연구해 봐야 할 것이다.

DNA를 분석하는 것 따위의 연구를.

가짜라면 저 시신 하나 만드는 데만 억이 넘어가는 돈이 들 것이다.

환영과 환상이 아닌 건 이미 확인했다.

텔레파시가 연신 울린다.

-진짜 같습니다.

라는 뜻이 뇌리를 울렸다.

공주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는 능력자 몇이 시신을 살핀 뒤 내린 결론이다.

‘왜 이렇게까지?’

남는 게 없는 장사다.

이유가 없다는 게 맞다.

그래서 헷갈렸다.

로즈라는 잡것이 자신의 속을 뒤집어 엎은 것도 사실상 이유가 없다.

‘이 새끼들 이거 왜 이러는데?’

복잡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대장로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

그 일의 여파가 그의 생각을 헤집었다.

‘진짠가?’

결국, 시신이 진짜에 가깝다는 결론에 다다랐고.

지금 자신이 꽤 불리한 위치에 섰다는 것도 깨달았다.

압박의 수단으로 삼은 무기가 역으로 자신을 노린다.

그래서 다음 무기를 꺼내려 했다.

왕자의 능력 증명 말이다.

한 번도 제 초능을 발휘하지 않은 왕자다. 그 왕족의 능력을 보이지 않으면…….

“내 누이의 시신을 다시 보게 하는 것이 기쁜가? 난 아니군, 불에 태워 없어져야 할 것을 당신 때문에 가져왔다. 흡족한가?”

사실 빈틈은 많았다. 왜 시신은 하루 늦게 도착했는가.

또 왜 광익이 그걸 가져왔는가 등등의 문제가.

대장로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럴 수 없었다. 로즈라는 년이 친 도발로 분노가 치솟았던 게 바로 직전이다.

변신족은 쉽게 이성을 잃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꼭 변신족에 국한된 얘기는 아닐 것이다.

사람의 멘탈은 흔들면 흔들리는 법이니까.

왕자가 양손을 들었다.

“그래서 내 손으로 직접 태우리.”

초능국의 상징은 불꽃이다. 타오르는 불꽃.

* * *

난 그동안 많은 능력자를 봤다.

그중 화염 계열, 열화, 염화.

불을 쏘아내는 능력자도 있었고, 신체 일부를 달구는 능력자도 봤었다.

그중 제일은 이거였다.

한국에서 장난스레 보여 준 능력.

“이게 내 히든카드다.”

알이 자랑스레 말하던 능력.

초능국의 상징은 불꽃.

알은 양손에 불꽃을 일으켰다. 곧 그 불꽃은 스스로 자라났다.

알의 어깨를 타고 솟아 길게 뻗더니, 허공에서 멋대로 휘어지고 엉키며 늘어나고 그어졌다.

화르륵.

불꽃을 마음먹은 대로 휘두르는 능력자.

화염 계열 특이 초능 중에 으뜸으로 꼽히는 능력.

불꽃 조형사다.

열기를 뿜어내는 불꽃은 곧 커다란 호랑이 모양이 됐다.

불꽃이 일으키는 빛이 샹들리에의 하얀 유리 조각에 반사되어 주변에 빨간빛을 뿌렸다.

그 빛이 왕자의 얼굴에도 드리워졌다.

붉게 물든 얼굴이 상기된 것처럼 보였다.

반대로 왕자의 눈은 차가웠다.

“태워라.”

왕자가 읊조린다.

불꽃의 호랑이는 그대로 펄쩍 뛰듯이 허공에서 내려와 공주의 시신을 덮쳤다.

“어?”

“저, 그.”

당황한 몇이 손을 뻗으며 황당함에 입을 열었지만, 앗 하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불꽃 호랑이는 공주의 시신을 태웠다.

깔끔하게 시신과 관만 태웠다.

타닥다탁.

불붙은 시신은 완전 연소했다.

그러니까 증거도 완전 연소다.

불멸특수대에서 저 시신을 넘기며 신신당부했다.

절대로 걸리지 말라고.

만약 걸려도 자신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그래서 태웠다.

깔끔하네.

불은 번지지 않았다. 왕자의 손짓에 완벽하게 가라앉아 사라졌다.

“어떤가, 대장로? 내가 이래도 왕좌에 어울리지 않나?”

저걸 누가 열두 살 먹은 애라고 할까.

몸도 이미 다 컸고.

알의 말에 대장로는 말이 없었다.

그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그걸 보는데, 불길함이 느껴졌다. 누가 뒷머리를 잡아당기는 것 같은 그런 불길함이다.

난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틀었다.

훙.

일은 내 그림자에서 일어났다.

그림자가 일어나서 날 찔렀다.

핏.

그림자와 일체화된 초능 특수종의 짓이었다.

그의 칼날이 내 팔뚝을 스쳤다.

* * *

대장로는 분노와 절망을 동시에 느꼈다. 박탈감도 느꼈다.

‘왕좌가…….’

저 어린 왕자를 이곳에 올린 게 반은 자신의 힘이었다.

조종하기 쉬우리라 생각했다.

수틀리면 죽이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그럼 다음 왕좌는 누가 앉겠나.

자신 아니면 없었다.

그 박탈감과 분노, 절망이 그의 이성을 갉아먹었다.

적어도 둘은 죽여야 직성이 풀릴 듯했다.

그 둘을 바라봤다. 세최특과 로즈.

대장로는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리고 그가 숨겨 둔 칼이 움직였고.

그게 그림자가 광익을 찌른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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