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 그 공주 예뻤음?
정보가 어디서 샜는지, 초능국 공주가 죽었다는 말이 커뮤니티에 떠돌았다.
그걸 팬더 형이 발견해서 링크를 보내 줬고.
난 아침으로 준비한 모닝 햄버거 여덟 개째를 씹으며 링크 창을 클릭했다.
키보드를 통해 전자 세계의 전사들이 모인 곳이다.
그러니까 키보드 워리어의 성지 같은 곳.
특수종 커뮤니티였다.
글 몇 개가 눈에 띄었다.
그중 댓글이 제일 많은 걸 클릭했다.
당근을 맛있게 만드는 초능력에 관한 고찰이란 글이었다.
저런 고찰은 왜 하는 걸까.
하여간 몇 개의 댓글 바로 밑으로, 글과 상관없는 댓글이 폭주하는 게 보였다.
말들이 많았다. 참 많았다.
-난 그냥 당근도 맛있는데?
-그냥 당근도 맛있으면 넌 그냥 처먹어.
-우리나라에서 초능국 공주 죽어서 국장 치른다던데 진짜임?
-얘는 또 무슨 병신 같은 소리를 하는 거?
-진짜긴 한데, 어떻게 알았냐?
-세상에 비밀이 어딨음, 한 사람 알면 둘이 아는 거고 둘이 알면 셋이 아는 거고 그러다 보면 지구촌 위아 더 월드 다 알게 되는 거임.
-뭔 병신 같은 소리를 이렇게 길게 하냐?
-초능국 계승식이 원래 왕가 혈통 깡그리 태워 죽이고 시작하는 거임. 별거 아님. 공주 하나 죽었을 뿐.
-아니, 시발, 한 나라의 공주가 죽었다는데 이거 괜찮은 게 맞냐?
-그 공주 예뻤음? 당근은 좋아하나.
-본래 그런다니까. 요즘 초능국 시끌시끌했음, 제일 어린 왕자가 패권 잡았다고.
-그 왕자가 공주를 죽였다는 거? 굳이 한국에서?
-그래서 그 공주 예뻤음?
-왕자가 죽인 건 아니고 기업 의뢰 형식으로 죽였다고 함.
-……기업 의뢰면 세최특? NS가 그 왕자 호위 맡지 않았나? 그럼 겸사겸사 암살도 해 주고?
-뭐, 그럼 괜찮은 거 아닌가, 정식 의뢰고 다음 패권을 잡은 어린 왕자가 부탁한 거면.
-야, 그 공주 예뻤냐고. 시발, 왜 내 질문에는 아무도 답을 안 하냐? 나 안 보이냐? 내 글 블락했냐? 관리자 개새끼야.
-문제는 그게 아님, 이거 쌉 기밀인데, 내가 말해 줌.
-말해, 뭔데?
-뭐냐? 나도 궁금.
-말하면 기프티콘 쏨.
-나 줘, 기프티콘.
-말한다는 놈 어디 감?
-어그로지, 뭘 또 믿고 자빠졌어.
-그래서 공주는 예뻤냐고 개새끼들아. 나 온라인 왕따인 거야? 내 글 안 보여?
-ㅂㅁㄱ.
-하여간 관심받고 싶어 환장한 새끼들이 이렇게 많아요. 그냥 공주가 죽었고 별문제 없이 넘어갈 거임. 그냥 초능국의 원시적인 전통 같은 거라고.
-아, 미안, 급똥이었다. 기밀 알려 줌.
-급똥은 인정이지.
-그래서 기밀은 뭔데?
-공주 안 죽었을 수도 있다.
-튀었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세최특이 안 죽이고 몰래 숨겨 줬다는 소문이 돌고 있음, 이미 알 사람은 다 암.
-그 공주 피오나 공주보다는 예쁘냐? 진짜 아무나 답 좀 해 줘. 진짜, 제발요. 형님들, 답 좀 해 주세요. 나 지금 외로워서 자살 마려워.
피오나 공주보다 덩치는 크지만, 얼굴은 또 예쁘장하다.
그 언밸런스함이 되게 어색하긴 한데, 미추 여부만 따지자면 객관적으로 봐도 예쁜 편이라고 해야 옳겠다.
변신 전 본모습은 당장 할리우드에 진출해도 무방할 외모고.
대강 슥슥 읽어내리면서도 내 동체 시력이면 꼼꼼히 읽는 게 가능했다.
내리던 스크롤에서 손을 떼고 링크 창을 닫았다.
누가 작정하고 소문을 풀었다.
공주가 살았다는 의문을 담은 소문.
이후, 커뮤니티에 현 상황을 정리한 글이 올라왔다.
이게 꽤 심각한 사태라고 서두를 시작하는 글이다.
공주가 죽어야 했었고.
만약 세최특이 숨겨 준 거라면 한국은 진짜 곤란해진 거라고.
글을 쓴 놈의 불씨 지피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다시 댓글이 미친 듯이 달린다. 그건 무시했다.
이후는 뻔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댓글 사이사이, 공주가 예뻤냐는 댓글이 보였다.
그리고 누구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임이란 무엇일까.
내가 뱉은 말을 지키는 것.
책임이란 두 글자를 입에 담았으면 그건 곧 의무가 되는 법이다.
때로는 입으로 한 한마디 말이 수십의 약관을 적어 둔 계약서보다 무거울 수도 있다.
특수종의 세상에서는 특히나 더 그렇다.
신뢰도의 문제도 있지만, 이후 이 판에서 내 말이 지니는 무게감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니 책임지기로 했다면 책임져야 했다.
꼭 나한테 국한되는 말은 아니다.
남명진 사장 또한 책임져야 한다.
내가 회사 때려치울 때, 남 사장은 나한테 빚을 졌다.
따로 계약서도 안 쓰고 약속한 건 아니지만, 빚은 빚이지.
그런 잡생각의 와중이다.
사옥으로 들어서는데 중고 형이 붙들었다.
“공주 진짜야? 이런 와중에 어디 갔다 와? 밖에 기자들이 쫙 깔렸다.”
안 그래도, 들어오는데 회사 앞으로 차가 바글바글했다.
외부 주차장 사이사이 방송사와 신문사 차량이 즐비한 걸 봤다.
덕분에 기척 죽이고 뒷문으로 들어왔다.
건물을 만들 때 뒷문을 만들어서 다행이지.
“전 직장 다녀왔어요.”
“응? 거긴 왜?”
“빚 받으러요.”
“응?”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지 중고 형이 고개를 모로 꺾었다.
“공주는?”
중고 형이 말하며 침을 삼켰다.
“제가 바보로 보여요?”
말하고 돌아섰다.
공주를 살리면 생기는 여파를 내가 모르겠냐는 말이었다.
띵- 하고 승강기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승강기에 몸을 싣는데, 뒤에서 중고 형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바보는 아니지, 미친놈이라 그러지.”
* * *
공주는 심란했다.
자신이 살아남음으로 생기는 문제가 즐비하다는 걸 아니까.
지금이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지 않는 고민이 들 정도로.
살 수 있다면 살고 싶다.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형제자매가 서로 죽여야 계승권을 인정하는 빌어먹을 전통 때문에 이런 상황이 된 거다.
괜히 울적하다가도.
‘김근육이라니.’
그 이름이 떠오르면 픽 하고 웃음이 터졌다.
당황했었다.
그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웃음이 나오다니.
죽음을 각오했다가 살아남았다.
이제는 정말로 죽고 싶지 않았다.
‘책임진다고 했으니.’
공주는 자신의 미래를 맡겨 보기로 했다.
외국인 특수종 하나.
알이 수없이 말했던 친구라고 했던 이.
이제는 세최특이란 이름을 가진 특수종에게.
* * *
초능국의 장로원은 다섯 명의 장로가 이끌었다.
그들은 실질적인 무력도 갖춘 집단이었다.
초능국 장로원의 실질적인 무력은 변신족 둘이 핵심이었고.
“이건 용서할 수 없군.”
“왕자가 왕가를 기만하다니.”
“왕위 계승을 허락할 수 없소.”
그 장로원이 시끌벅적했다.
글로벌 시대다. 한국에서 퍼진 말이 이들의 귀에 들어오는 건 금방이었다.
정보를 팔아먹으려던 이들도 인상을 찌푸릴 일이었다.
팔아먹으려던 정보가 새 버린 바람에.
“아직 확정된 건 없으니.”
대장로가 말했다.
작고 왜소한 체구다. 그의 말에 다른 장로 넷이 시선을 모았다.
“그럼?”
“왕자가 돌아오면 묻는 거로 하지.”
“네.”
대장로의 결정이다.
넷이 입을 모아 답했다.
의심은 깊어진다. 왕자가 돌아오기로 한 날은 아직 사흘이 남은 채였다.
* * *
로즈는 전용기에 올랐다.
통로 건너편에는 광익의 모친이 앉았다.
딱히 별다른 말 없이 자리에 오른 둘이었다.
“이름이 로즈였나?”
이륙을 기다리는 사이, 강슬혜가 물었다.
안대를 두른 채였다.
슬쩍 그녀를 본 로즈가 답했다.
“맞아요.”
“혹시 광익이한테 관심 있니?”
그 말에 로즈는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답했다.
“아니요.”
로즈는 복수를 원했다. 그걸 위해 이곳에 몸을 의탁한 거다.
광익을 남자로 보는 일 따윈 없었다.
로즈는 강슬혜의 말에서 걱정이 담겼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이리 말하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은 범죄자다.
전향했지만, 이전 이력이 나쁜 의미로 화려하다.
강슬혜의 질문에 담긴 걱정이 이리 들렸다.
아들 곁에 있는 범죄자가 신경 쓰이는 거라고.
전 테러리스트, 지울 수 없는 낙인이었다.
그런 생각이 드니, 절로 뒷말이 나왔다.
“걱정하실 일 없습니다.”
그 말에 강슬혜가 안대를 슬쩍 위로 올렸다.
로즈와 눈을 마주친 그녀가 진지하게 물었다.
“아들이 남자로는 좀 별로니?”
“네?”
이 질문은 의도가 읽히지 않았다.
“아니, 애가 진짜 여자한테 관심이 없는 건가, 아니면 주변 여자가 애한테 관심이 없는 건가.”
“……네?”
여전히 의도 파악이 어렵다.
그런 로즈를 보며 강슬혜가 말했다.
“애가 여자를 안 만나서.”
꿈뻑꿈뻑.
당황했다. 이런 얘기를 자기한테 왜 하나.
로즈는 눈을 다섯 번 더 깜빡이고서야 물었다.
“제 전직 아시니까 걱정하시는 거 아닌가요?”
“전향했잖니.”
전향했다고 이전에 지은 죄가 다 씻기는 건가, 아니잖아.
로즈는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제가 다른 마음을 품은 거라면요?”
생각이 뇌를 거치지 않고 나왔다.
그 말에 강슬혜는 피식 웃었다.
“그럼 이 아줌마가 널 한 대 쥐어박을 거야.”
…….
로즈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전직 갱생 마녀, 저 주먹이 한 대 쥐어박으면 혹 하나 나고 끝나진 않을 거다.
그러니까 이건 경고였다.
아들 곁에서 함부로 딴생각하지 말라는.
로즈는 그리 받아들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자신에게는 저주와도 같은 주문도 걸려 있다. 배신할 수 없는 족쇄였다.
그리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로즈는 잡생각을 지웠다. 그저 광익이 짠 계획을 되새길 뿐이었다.
“이륙합니다.”
전용기 승무원이 말했다. 곧 활주로를 달린 비행기가 떠오르며 귀가 막혔다.
로즈는 침을 삼켰다.
기압 차이 때문에, 생긴 불쾌함을 상쇄한 로즈는 눈을 감았다.
둘이 향하는 곳은 초능국이었다.
그러니까 NS의 출장.
공주를 죽인 이후, 후처리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약에 취한 몸을 회복하자마자 하는 일이 이런 종류라니.
딱히 프로메테우스 시절과 다르지도 않은 종류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기만과 거짓, 사기에 가까운 일.
다만 그 목적이 다를 뿐.
프로메테우스 시절에는 그 목적이 인명 살상이었다면 이 일의 목적은 그 반대였다.
* * *
‘공주 하나만 죽인다고 끝나진 않겠지.’
알은 그리 말했다.
그 말에 담긴 아픔이 느껴졌다.
왕위에 오르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은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길이었을 거다.
몇 마디 말 안에 그런 감정이 담겼다.
그게 안타까웠다.
이걸 몰랐으면 모를까, 알아 버린 이상, 유일하게 남은 혈육이 죽는 걸 놔두고 싶진 않았다.
그러니까 일종의 변덕이었다.
앞뒤 상황을 따지고 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책임지겠다고 말했으니, 그 말은 지켜야 하지 않나.
“먼저 가.”
알을 먼저 귀국시켰다.
걱정과 믿음이 반씩 담긴 눈빛의 알을 보내고.
그날 밤 다니엘이 찾아왔다.
공주를 진짜 살렸다면 당장 죽이라고 할 줄 알았더니.
“살렸다면 끝까지 책임져라. 네가 한 일이다.”
공주를 살려 줘서 고맙다는 말로 들렸다.
“턱 안 맞으려면 기본적으로 가드도 올리고. 턱도 좀 당기고 다녀.”
그래서 난 순수한 마음에 조언을 건넸다.
“개자식.”
알한테 한국 욕 찰지게 잘 배웠네.
그리 보내며 어머니와 로즈를 동행시켰다.
출장이다.
물론 출장료는 두둑이 받을 생각이다.
우긴다고 해서 그냥 말로만 우길 생각은 없었다.
알에게 대강 계획은 말했고.
“남 사장님.”
난 곧바로 화림에 전화를 걸었다.
불멸특수대는 불멸자가 모인 집단.
그중에서 화림은 R&D 부서가 강세였다.
특히 아더 사이드 연구팀이 대단하다고 한다.
나도 봤다.
진흙 사막에 갔을 때, 그곳에 연구원이 꽤 많았다.
사실상 그 기지는 전투 가용 인원이 더 중요한데도 그랬다.
이유야 단순했다.
아더 사이드 특별법.
화이트홀을 넘어가면 지구에서는 비인도적 실험이 그곳에서는 허용된다.
몰래 알음알음하기도 한다고 들었고.
그렇다고 해서 인체 실험 따위를 하는 건 아니다.
그저 국내에서는 할 수 없는 실험을 할 수 있다는 거지.
그중 하나, 그걸 빌려 쓰기로 했다.
“……이거로 프로메테우스 일은 잊는 거로 하지.”
남 사장은 조건을 걸고 수락했다.
“아직도 그걸 마음에 두고 있었어요?”
그럴 거로 예상했다. 마음에 두고 있는 거 알고 부탁했다.
그래도 말은 이렇게 하는 거다.
이게 바로 예의라는 거다. 유교 사상 투철한 집 안에서 자란 나다.
“끊지.”
남 사장은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예의 가득 담아 말했는데도 빈정이 상한 듯했다.
사람 속이 왜 이리 좁아.
남 사장의 수락을 받은 후, 나도 알을 따라 출국했다.
알이 보낸 전용기에 짐을 싣고, 전용석에 앉자마자 초능국을 향하는 비행기가 출발했다.
장로원을 설득할 준비를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