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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231화 (231/488)

231. 우기면 되죠

광익이 공주의 죽음을 가장한 순간, 그걸 지켜보는 사람이 몇 있었다.

“이 새끼 봐라? 저거 살렸네?”

각진 턱의 날렵해 보이는 몸을 가진 남자다.

그 말에 백안의 흑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공에 막 광익의 모습과 초능국의 왕자 등이 홀로그램처럼 보이는 중이었다.

초능 천리안이다.

그걸 발동한 흑인 남자는 자신이 본 걸 투영해 주던 이미지 구현기를 끄며 입을 열었다.

“수완이 좋군.”

“실력도?”

“그거야 모르지.”

직접 부딪쳐 보지 않고서야 모른다.

세계 정부 연합, 올드 포스의 전투 간부, 각진 턱의 남자가 까칠하게 자란 수염을 손으로 쓸며 입을 열었다.

“흥미 좀 돋긴 하네.”

재밌는 놈이다.

공주를 죽인 척하며 살렸다.

휴즈 게이트 당시 홍수 터지듯 나오는 특이종 수십 마리를 홀로 죽였다고 했던가.

‘이거 완전 미친놈일세.’

그리 생각하면서도 내심 재밌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체된 미친 세상에서의 신선한 변화였다.

“그 회사 이름이 뭐라고?”

각진 턱 남자의 물음에 백안 흑인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답했다.

“비정상?”

규격 외란 의미였지만, 이들에게 그 의미가 충실히 전달될 리 없었다.

그들은 단어 그대로 해석했다.

특히나 세최특이 이제까지 한 걸 보면 퍽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비정상적인 짓을 하겠다고 대놓고 덤비는구나.”

각진 턱의 남자는 감탄했다.

야생 동물을 보는 기분이었다.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덤비겠다는 거 아닌가.

하물며 지금도 그랬다.

저 공주는 죽어야 했다.

자신이 봤다면 다른 팀도 봤을 테고.

저 왕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게 눈꼴이 시다 못해 배알이 배배 꼬이는 이들은 초능국에 이 사실을 알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왕자의 앞날이 어두울 것이다.

그런데도 살린다.

합의된 일도 아닐 터다.

한국에서 회사를 세운 뒤, 출범식이랍시고 이쪽 나라의 불문율을 부쉈다는 것도 들었다.

여러모로 미운 오리 새끼 짓을 골라서 한다.

그래서 비정상일 것이다.

작정하고 저런 짓을 하기 위해 차린 거다.

각진 턱은 그리 생각하며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공주를 살리다니, 미친 짓이다.”

각진 턱의 말에 흑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공주를 살렸다는 거, 쉽게 알아볼 팀이 많지는 않을걸.”

“저걸 못 알아본다고?”

천재란 족속은 다 이렇다.

자기가 할 줄 알면 다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흑인 남자는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다.

눈이 멀었으니 아무것도 안 보여야 하지만, 마치 보이는 듯 각진 턱의 남자를 똑바로 바라본 그가 입을 열었다.

“천리안으로 훔쳐봐야 하니, 내 수준의 천리안 능력자가 투입돼야 하고. 지금 저 세최특이 한 짓을 알아볼 눈썰미도 있어야 하니까. 전 세계에 나랑 비슷한 능력자와 너 정도의 특수종이 함께 있는 경우가 몇이나 되지?”

“넷? 다섯?”

“그중에 한국에 올 팀이 몇이나 있다고.”

이들은 그리 생각했지만, 실상은 좀 달랐다.

유광익이 이레귤러 사냥꾼 박혁을 때려잡고 휴즈 게이트를 막은 건 대형 사건이었다.

세최특이란 별명이 알음알음 사람들 입을 오가던 시점이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국내를 떠나 세계까지 이름이 퍼진 덕분에, 특수종 세상을 주름잡는 이들이 움직였다.

미친 자들의 세상에서도 제대로 미쳤기에 권력을 잡은 이들.

테러단체의 수장, 군사 기업의 정점에 오른 자들, 세계 정부 연합의 핵심 인사까지.

그중 천리안은 아니지만, 다른 모종의 수단으로 이 장면을 훔쳐본 이들도 있었다.

“정리해서 팔아.”

광익이 공주를 기절시킨 장면을 훔쳐본 동양인이 말했다.

그 말에 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스터.”

팔면 수십억은 호가할 정보다.

초능국 장로원 놈들에게 이걸 알려주고 싶은 단체가 적어도 다섯 손가락은 넘어갈 터였다.

마스터라 불린 남자는 세최특을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

기왕이면 그 능력을 더 제대로.

소문과 실상이 다른 능력자는 수없이 많은 법이니까.

소문 그대로라면, 1순위 스카우트 대상이다.

상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아군으로 만들고 싶은 대상이란 거다.

그 반대라면?

‘죽이고 간다.’

쓸데없이 자신의 발을 옮기게 한 대가다.

남자는 결단했고.

곧 한국에 있는 몇 범죄 조직이 개수작을 부린다는 정보를 접했다.

우연히 들은 이야기다.

재밌는 내용이기에 그는 거기에 끼어들기로 했다.

유광익의 능력을 직접 볼 기회였다.

* * *

작대기 선생 주일호와 장가희의 사이가 나쁜 이유는 단순했다.

‘불멸자의 훈련 덕분에.’

주일호는 지금의 광익을 만드는 데 자신이 일조했다고 생각했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게 도움이 됐긴 했다.

그 생각과 더불어 유연호의 혈통을 알기에 드는 생각이 하나 더 있었다.

‘아무래도 불멸자의 피가 조금 더 진하긴 하지.’

예민한 감각과 기술을 배우는 속도.

모든 게 전부 불멸의 힘이리라.

장가희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변신족 훈련 덕분에.’

처음 만났을 때, 하드웨어만 좋은 돌쇠였다.

그 돌쇠가 멋진 변신족 특수종이 된 데 자신이 일조했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이렇게도 생각했다.

‘변신족의 피가 더 진하긴 하지.’

이러니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다.

한쪽은 은근히 불멸의 피를 우대하고.

다른 쪽은 변신족 피를 우대한다.

본래 불멸과 변신은 오랜 시간 앙숙이기도 했다.

역사가 그걸 증명했다.

엑스큐라시와 올드 포스를 선택함으로 서로 적대하기도 했으니.

그렇게 사이가 나쁜 둘이 처음으로 의견을 모았다.

“봤지?”

주일호가 묻고.

“봤지.”

장가희가 답한다.

“기술이 늘었어.”

주일호가 먼저 핵심을 짚었다.

장가희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전처럼 격투기 같은 걸 따라 하지 않아.”

정확하게 본 건 아니다.

그들은 공주를 죽이기 전, 광익이 싸우는 걸 봤다.

둘은 놀랐다.

틀을 깨지 않으면 결국 실력은 늘지 않는 법이다.

저 나이에 틀을 깬 특수종이 있던가?

둘은 같은 생각을 했다.

없다.

팬텀도, 사우전드 페이스도, 변신족의 날고 기는 이들도, 지구본을 탈탈 털어 천재라 불리는 이들도.

저 나이에 틀을 깨고 자신의 기술을 정립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광익은 했다.

둘은 동시에 가슴속에서 차오르는 뿌듯함 따위를 느꼈다.

그 순간, 서로 눈이 마주쳤다.

처음이었다. 이리 적의 없이 눈을 마주하는 게, 어색했다.

예민한 불멸자에게 어색한 공기는 치명적인 법이다.

뿌듯함 속에서 느껴지는 불편한 공기.

주일호는 이 불편함을 해소하고 싶었다.

그래서 평소와 같은 태도로 돌아오길 바라며 입을 열었다.

“변신족 훈련 따위보다는, 아무래도 내 훈련이 더 유효했지.”

“……진짜 이 바퀴벌레를 으깨 버릴까.”

장가희가 그 말을 받았다.

얼굴이 붉어진 걸 보니, 몹시 화난 게 분명했다.

놔두면 주먹다짐이라도 할 기세였다.

“그만, 왜 둘은 보기만 하면 싸웁니까.”

그런 둘을 보고 광익이 말렸다.

막 회사 중대 발표를 하려고 훈련장에 모인 참이었다.

모이자마자 둘이 속닥거리다 싸운 셈이다.

다툰 아이를 말리는 것 같은 모양새에 둘이 콧방귀를 뀌었다.

다 유광익 때문이었다.

* * *

“그만 해요? 네?”

내가 말하고 다시 모두를 둘러봤다.

중요한 말을 하려는데 말이야.

“그 몸 좋은 애는 어디 갔니?”

엄마가 물었다.

“그 몸 좋은 여자분 얘기인데요.”

“그래?”

엄마가 반색한다. 그 눈에 어린 기대를 보자니, 또 헛된 기대임을 알겠다.

여자 친구 아닙니다. 어머니.

“사실 공주 안 죽였어요.”

“……게임 얘기하는 거 아니지?”

작대기 선생이 물었다.

“아니고. 초능국 공주 얘기죠.”

왕자의 의뢰로 공주를 죽였다. 왕자의 의뢰였다. 이게 왕자의 호위 이면에 있던 NS의 주 임무라고 말했었다. 내가.

“음.”

로즈가 짧은 신음을 흘렸다.

왕가 무역에 관련된 일은 전부 말한 뒤다.

그 말을 들은 중고 형은 반색한 뒤 되묻고 절망했다.

“진짜? 그럼, 일은?”

“형이 해야죠.”

“……어? 내가?”

“그럼 누가 해요.”

이 양반이, 이쪽 일은 당신 전공이잖아.

에이전트가 하기 딱 좋은 일이다. 물론 잡무를 볼 사람을 좀 뽑아야 할 참이다.

그건 스티븐 최가 알아서 할 거다.

실무로 이름 날린 사람 좀 데려오라고 했다.

연봉 1.5배쯤 후려쳐서 데려오라고 했더니, 사람은 돈만 보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래도 재밌네요.”

스티븐 최가 그제야 처음으로 해맑게 웃었다.

“그래, 친구 힘내고.”

그렇게 일을 전부 떠넘긴 뒤, 난 생각했다.

내가 공주 살린 걸 정말 아무도 모를까?

왕자한테 이런 대단한 선물까지 받고 나니 든 생각이다.

내가 한 일을 알아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고 해도, 상상력이 풍부한 놈들이라면 시나리오를 쓸 수도 있었다.

내가 뭘 했기에 왕자가 이렇게까지 잘해 주냐 이거다.

결국, 공주를 빼돌린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거다.

거기에 난 공주만 살린 것도 아니었다. 공주의 호위 열, 왕가의 십지대란 애들도 구했다.

나랑 싸워서 그렇지.

걔들도 한가락 하는 애들이다.

초능국 입장에서 보자면 전력 유출이다.

더욱이 공주는 왕가의 비밀도 몇 개 알 테니.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 신경도 안 쓰는 알이 이상한 거다.

뭐, 그 비밀을 캐서 뭘 할 생각도 없긴 하지만.

그거야 내 사정이고.

장로원이란 적폐 덩어리가 보기에, 난 초능국의 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거다.

“이럴 때 보면 머리가 좋은데 말이야.”

내 말을 들은 팬더 형이 이리 말하며 내 의견에 힘을 실어 줬다.

저건 내 말이 맞다는 거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난 아는 걸 전부 공유했다.

“공주가 살아 있는 걸 알면 왕자님이 곤란한 거 아닌가?”

작대기 선생을 노려보던 통나무 선생이 물었고.

그 대답은 로즈가 했다.

“왕자는 계승권을 잃을 거고, 운 나쁘면 초능국은 내전에 돌입하게 될 거야. 그 와중에 이 일을 주도한 한국의 작은 회사는 그 나라의 주적이 되겠죠.”

장미, 너 머리 좋구나.

“프로메테우스에서 일부러 하던 내분 작전이야.”

내 시선을 느꼈는지 로즈가 입을 열었다.

그래, 본래는 테러 단체에서나 하는 게 내분 작전인데.

난 이걸 진심으로 도왔다는 거지.

“지금이라도 죽이면?”

작대기 선생이 묻는다.

“죽일 거면 살리지도 않았어요.”

살렸고 내가 책임지기로 했다.

“그럼?”

“우길 겁니다.”

……?

다들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기에 다시 말했다.

“우길 건데요.”

“우기면 돼?”

엄마가 물었다.

“네. 증거 없으면 어쩔 수 없죠.”

“정황 증거는?”

“물질적 증거를 가져와야죠.”

“시신을 인수하라고 하면?”

“이미 다 태웠다고 했습니다.”

애초에 알이 한국에 온 이유의 반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수틀리면 공주를 살린 다음 ‘다 태웠다’, ‘증거 없다’ 이러려고.

“그게 우기면 돼?”

“응, 우기면 돼.”

안 될 건 뭔데.

내가 이 세상에 들어와 싸우고 익히고 살아가며 하나 배운 게 있다.

특수종의 세상에서 가끔 힘이 곧 법이 될 수 있다고.

장로원과 초능국이 하나 돼서 덤비면 모를까.

일단 알은 내 편이니까.

딱히 장로원에 밀릴 것도 없다.

“……괜찮은데?”

엄마가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로즈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와 엄마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게 된다고?”

“돼.”

안 될 건 뭐야.

난 우기기로 했다.

공주 죽였어? 라고 물으면.

‘응’이라고 답하고.

‘아니잖아, 너 숨긴 거 다 안다?’ 이렇게 물으면.

‘증거 있어?’라고 답하기로.

“그게 된다고?”

전직 테러 단체 내분 전문가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다 싸우자고 덤비면?”

“싸우지 말자고 타일러야지.”

로즈의 말에 담백하게 답했다.

주먹이 됐든 말이 됐든 잘 타이르면 될 일이었다.

“이거 완전 미친놈이잖아.”

로즈가 말했다.

“남의 아들한테 그러는 거 아니다. 조금 미친놈이야.”

어머니가 그 말을 받았다.

로즈나 어머니나 둘 다 욕인 것 같은데요.

“많이 미쳤지, 저 나이에.”

그 말을 작대기 선생이 받고

“제대로 미친 거지.”

통나무 선생도 거들었다.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마리는 말없이 시선을 피했다.

야, 아니라고 안 해?

마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오라버니는 안 미쳤어요.

할 타이밍이지 않냐?

뭐, 상관없는 일이다.

장로원도 날 그렇게 생각하면 일이 좀 편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긴 했다.

“아, 그리고 사람 좀 늘리려고요. 회사 인원이 아직 부족한 것 같아서.”

“알아서 하세요. 대표님.”

엄마가 말하고 쇠질을 하러 갔다.

무게를 치는 게 세상 즐거운 일 다섯 가지 중 하나인 분이다.

작대기 선생은 정직이를 기다리며 중얼거렸다.

“재능은 동일하지 않지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법이다.”

통나무 선생은 다시 주식 삼매경.

평온한 일상이다.

나도 훈련에 임했다. 더없이 즐거웠다.

몸 쓰는 일, 그리고 정립된 기술을 가다듬는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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