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 내가 책임짐
난 불멸자이자, 변신족.
사람의 목을 조르면서 죽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촉각으로 맥박을 느끼며 힘 조절만 하면 된다.
이후에는 숨소리도 안 들리게 몰래 데려오면 그만인 일이니.
난 그렇게 했다.
그렇게 공주를 살렸다.
“제가 살면 볼리가 곤란해지는데요.”
공주는 진심으로 말했다.
요단강 건널 각오를 했으니 당연했다.
위화감.
공주는 왕자를 습격함으로써 왕자에게 자신을 죽일 정당성을 주려 했다.
이걸 가족 간의 우애가 깊다고 해야 하나.
“네, 그래서 죽여 드리려고요.”
“한 번 살렸다가 다시 죽인다고요? 변태예요? 가학을 즐기는 건가요?”
심히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말이었다.
“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이다.
“오라버니는 변태가 아니에요.”
옆에서 마리가 발끈해서 답했다.
아니, 그걸 왜 네가 발끈해.
“아니, 마리야, 변태인지 아닌지 우리는 모르지. 혹시 모르는 거니까.”
팬더 형이 옆에서 덧붙였다.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마리는 어려워요. 변태는 무엇인가요?”
팬더 형이 극구 설명하려 하기에 그 입을 막았다.
“애한테 무슨 소리를 하려고.”
“스물이 넘었는데 애는 무슨.”
팬더 형이 내 손을 잡아 내리며 답했다.
“아직 애입니다.”
팬더 형은 친절하고, 자신이 아는 걸 알려 주는 것에 주저가 없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난 자세를 바로 했다.
그 뒤, 공주의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꼭 죽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공주의 곁에 굴비처럼 묶인 호위 열 명의 눈이 전부 날 향했다.
그중 다니엘과 엉켰던 친구도 있었고, 어머니에게 두들겨 맞아 반송장이 된 이들도 있었다.
전부 응급 치료는 끝낸 상태다.
이런 치료야, 일도 아니다.
불멸자의 고통 감내 훈련은 결국 제 몸을 헤집는 일이다.
인체의 지식이 절로 쌓인다.
의사 수준은 아니지만, 얼치기 수준으로 치료는 된다는 거다.
그래서 따로 의사를 부를 필요도 없었다.
팬더 형도 이런 쪽 지식은 충분했다.
그리 치료받은 이들의 눈빛 스무 개가 나에게 꽂혔다.
“공주님을 살린다고?”
“왕위 계승 전쟁에 참여하고 싶다는 건가?”
“왕자가 아니라 공주님을 방패로 삼고?”
“이 간악한!”
“그 속내가 더럽구나!”
“결국 공주님의 몸과 우리의 몸까지 바라는 거겠지. 더러운!”
“변태라 했으니 당연하겠지!”
마지막 대사는 뭔데.
피해 의식이 투철한 친구들이네.
“내 몸을 대가로 초능국에 영향을 끼치고 싶다는 건가요?”
공주가 모든 걸 정리해서 묻기에 일단 고개부터 저었다.
왕위 계승 전쟁에 내가 참여해서 뭐가 남는다고 거기에 끼나.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일도 치우기 바빠 죽겠는데.
그리고 미녀이긴 한데, 공주 또한 내 이상형은 아니기에.
“아니요.”
극구 부인했다.
“그럼?”
공주가 되물었다.
“진짜 죽고 싶은 건 아니잖아요?”
일단 개인 의사부터 확실히 해 보자.
죽겠다고 하는 사람 중에 진정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죽고 싶다면 내가 말릴 수도 없지 않나.
내가 공주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또, 내가 하는 일은 어쨌든 위험부담도 안고 가는 거니까.
“이해를 못 했군요. 머리가 안 좋은가요?”
공주가 말했다. 소파에 기댄 채 측은한 눈빛도 함께 보내는데.
이 여자, 생각보다 꽉 막힌 듯하다.
사람이 창의적이지 못하네.
“제가 살면 볼리, 이제는 유일한 알이 될 왕자의 계승에 문제가 생긴다고…….”
“문제 안 생기면요.”
내가 손깍지를 끼고 턱을 받치며 말했다.
“……?”
공주의 고개가 모로 꺾였다.
의문 부호가 절로 떠오르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기에 마저 입을 열었다.
“살아도 되면 살 거예요?”
공주는 대답하지 못했다.
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애초에 문제가 초능국의 장로원인지 뭔지라면.
그 새끼들만 모르면 되는 거 아닌가?
나였으면 일단 그 장로원을 조질 것 같은데.
알에게는 알만의 사정이 있는 듯하니까.
알은 왕이 되기 전에는 장로원의 권한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쓸데없는 전통 따위를 지켜야 한다고.
그 어린애가 제 형제자매를 죽여야 한다니.
처량하지 않나.
자기를 노리는 형제나 자매를 역관광시키는 거야 그래도 해 볼 만하지만.
우애가 깊은 사이였다면?
그래도 죽여야 한다는 게 내가 볼 때는 개소리인데, 또 저 왕국에서는 전통이라니까.
난 심플하게 생각했다.
장로원의 눈만 속이면 된다고.
“전 공주님을 죽일 겁니다. 물리적으로 말고 사회적으로.”
내 말에 다 알면서 날 변태로 몰아간 못된 직원이 나섰다.
“간단합니다.”
팬더 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공주님을 숨길 겁니다.”
이 양반 왜 폼을 잡아.
말하며 미간을 가볍게 찌푸린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굵어지기도 했다.
불멸자의 감각을 속일 순 없는 법이다.
“아무도 못 찾게.”
“그게 쉬울까요?”
어렵지. 당연하다.
하지만 이런 일에도 전문가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팬더 형과 마리,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거다.
“사실 어렵진 않아서.”
팬더 형이 마저 말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문가가 바로 곁에 있었다.
“전문가?”
“접니다.”
공주의 말에 팬더 형이 자신을 가리켰다.
* * *
“형, 가짜 시계를 사는 이유가 뭐예요?”
이동훈은 그 말에 화들짝 놀랐다.
겉으로 티를 내지 않은 채, 모니터에 꽂힌 시선을 뒤로 돌렸다.
고개를 돌려 광익을 보니, 자신이 사 둔 시계와 피규어 따위를 빤히 보는 게 보였다.
“음?”
“제가 알 바는 아니긴 한데, 그 돈 다 어디다 쓰나 해서요.”
한가한 오후의 한때였다.
딱히 일도 없는 훈련의 나날들.
대뜸 묻는 말에 이동훈은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을 뱉으려다가 입을 멈췄다.
숨길 이유가 있을까?
이걸 숨긴 이유는 자신이 실험체 출신이고 불멸자라는 거짓된 신분을 통해 취업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실험체고 뭐고 간에 자신은 부정 취업자가 아니다.
“그, 애들이 있어.”
“숨겨 둔 자식?”
“무슨 헛소리냐.”
“그럼 음, 실험체 애들 모아서 보육원이라도 차렸어요?”
동훈은 또 놀랐다.
가끔 이렇게 던지는 말이 핵심을 파악하곤 한다.
머리가 좋다고 다 이럴 수는 없다.
순전히 감이 좋은 거다.
불멸자라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 다른 불멸자들도 다 그래야 했을 테니.
하지만 이중봉 팀장님한테도 직접 말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맞아.”
“……와, 진짜요?”
진짜 그냥 던져 본 말이었냐?
그랬다.
이동훈은 실험체 출신이었고, 그 삶이 얼마나 팍팍한지 알았다.
돈을 모았다. 그리고 그 돈을 그런 아이들을 위해 썼다.
사치를 부리는 것처럼 이미지 메이킹이 필요했다.
시계와 피규어 따위로 돈의 알리바이를 만든 셈이다.
회계를 조작해서 돈을 돌렸다.
그리 만들어진 작은 보육원.
정부의 지원조차 받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돈으로 굴리는 곳이다.
처음에는 힘들었다.
실험체 출신 아이들을 돌볼 사람들이 없었다.
손이 필요했다.
어쩔 수 없이 이중봉 팀장한테 말할 수밖에 없었다.
팀장이 손을 보탰다.
정아도 손을 보탰고.
그렇게 몇 년 지나니, 애들이 커서 그 애들이 다시 그 집을 돌봤다.
그게 전부였다.
버릇처럼 오랫동안 숨겨 둔 비밀이다.
이제는 숨길 필요가 없는 그런 비밀.
돈은 계속 필요했다. 꽤 많이.
먹고 자고 사는 문제만이 전부는 아니니까.
영원히 숨어 살 수는 없으니 신분도 만들어 줘야 하고, 자립하고 싶은 아이를 위한 지원도 해 줘야 했다.
개중엔 본능에 굴복해 떠난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기준에서는 잘 자랐다.
전부 들은 광익이 입을 열었다.
“회사 차원에서 지원할게요.”
그 말에 동훈은 심장이 부르르 떨렸다.
“뭘?”
“애들 돕는 거라니까.”
“내 일인데.”
“……우리 사이에 선 긋기 있기? 없기?”
가끔 보면 미친놈이 분명하지만.
이럴 때 보면 그 미친 마인드가 좋았다.
동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광익은 그런 동훈을 보며 생긋 웃고 말했다.
“그리고, 알죠? 변신족 본능 조절 훈련 전문가가 회사에 있는 거? 문제 있는 애들 전부 잘 컨트롤해 줄 겁니다.”
“음? 뭐?”
동훈은 갱생 마녀의 훈련을 몸소 받았다.
“아니, 실험체 출신이니까 본능 컨트롤 잘 못 하는 애들도 있지 않나?”
“아니, 잠깐만.”
“그럼 그렇게 하는 거로 하죠.”
광익은 결정했고 자신은 선택지가 없었다.
‘미안하다. 얘들아.’
그 훈련의 강도를 알기에.
아무리 좋은 거라고 해도 지난한 고통의 시간이 행복한 시간으로 바뀌는 법은 아니니까.
* * *
실험체 애들 빼돌려서 숨기는 게 쉬운 일일까.
그것도 불멸특수대 내에서 일하니, 그들의 눈을 피하면서?
나중에 직접 보고 나니, 절로 엄지가 들렸다.
우리 팬더 형 수완이 장난이 아니었다.
숨긴다고 어디 산속에 처박아 두는 대신에 일을 시켰다.
오피스텔 건물 하나 구해서 애들을 돌렸다.
그중 일부가 뒷골목 범죄 조직에 진출하기도 했단다.
정보를 어디서 캐 오나 했더니.
애들을 미친 듯이 돌린 거다.
그중에는 범죄 조직에 투신한 애들도 있고, 프리랜서로 사는 애들도 있었다.
“소매치기요?”
“애가 변신족인데 손재주가 좋더라고.”
애를 소매치기로 키워 놓고 웃는다.
“본능에 휘둘려서 사람 물어뜯고 다니지 않으면 다 성공한 거지.”
사실 이게 한계이기도 했다.
애들 케어한다고 해서 다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다 각자 재능이 있는 것 같아서 알아서 살게 해 준 거다.
하여간 사람 숨기고 신분 만들고 하는 건 전문이라는 거다.
“이런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단언컨대 국내에 저보다 훌륭한 에이전트는 없을 겁니다.”
팬더 형이 공주를 향해 눈을 빛내며 말했고.
공주는 황당해했다.
“그러니까, 지금 죽은 척하라는 건가요?”
“네.”
공주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 두 눈이 날 향한다. 눈빛에서 의미가 읽혔다.
너 미친 새끼니?
흔히 보는 눈빛이기에 난 담담했다.
“굳이 그 위험을 감수하라고?”
공주의 호위 중 하나다. 얼굴이 반쯤 팅팅 부어서 본래 얼굴을 잘못 알아보겠다.
우리 엄마가 그랬니?
“살면 좋은 거니까.”
“하지만, 알게 되면.”
공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몰라요.”
뭐라 말하기도 전에 답했다.
“장로원이 알게 되면…….”
“모른다니까요.”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왕자 주변에 모든 걸 캐내…….”
“모를 겁니다.”
“이건 확신한다고 되는 문제가…….”
“모르게 할 겁니다.”
장로원의 날고 기는 애들이 초능이고 주문이고 간에 써서 날 캐내서 알아내면 그때는 뭐 답이 없지.
무력시위라도 해야지.
걸려도 다음 스텝은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오래 숨길 필요도 없지 않을까 싶고.
“걸리면?”
“내가 책임짐.”
공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답했다.
티키타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날 빤히 보는 공주의 두 눈에 물기가 어렸다.
짧은 침묵이 장내를 감싼다.
그 침묵 속에서 사람들의 숨소리만 귀를 간지럽혔다.
호위들의 눈알이 굴러가고.
팬더 형과 마리가 묵묵히 나와 공주를 바라본다.
그 침묵의 끝에서 공주가 입을 열었다.
“나 살아도 돼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 * *
초능국의 왕자의 비호를 받는다면.
이재호의 머릿속은 핑크빛이었다.
“공주를 죽였답니다.”
그 말에 이재호는 궁둥이가 들썩거렸다.
왕자는 칼이 필요했고 그 칼을 썼다.
왕위 계승에 불필요한 것을 잘라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무엇인가.
한국에 와서 얻을 건 무엇인가.
‘자신의 힘이 되어 줄 배경이 필요하겠지.’
윈윈이 될 것이다.
차기 대선에 영향력을 끼치는 위인에게는 한국이라는 뒷배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 판단했다.
이재호가 일어났다.
“가지.”
“어디로 모실까요?”
“왕자가 있는 호텔로.”
광익의 NS의 움직임은 일거수일투족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세최특이 어느 단체에 소속되지 않고 차린 회사가 아닌가.
하물며 출범식이랍시고 다른 세 개 단체가 차린 상을 순식간에 먹어 치우곤 트림을 ‘꺼억’ 하며 빠진 셈이다.
당연히 모두의 시선이 몰릴 수밖에 없다.
보안이 아주 철저하지도 않았다.
왕자의 위치야 진즉에 다 알았다.
그리고 공주가 죽을 때 주변을 물리긴 했지만, 그래도 볼 사람은 다 봤다.
다들 놀랐다.
타국 왕족 시해라니.
일전에는 왕자 납치, 이번에는 공주 살해다.
초능국의 사람이 방문할 때마다 터지는 사건이 버라이어티했다.
‘왕족을 해쳤다는 핑계가 있으니.’
앞으로 NS가 할 일에 딴지를 걸 수도 있을 거다.
계획이 착착 세워졌다.
이제 남은 할 일은 하나다.
누구보다 빠르고 남들과는 다르게 움직일 것.
‘왕자를 내 편으로 삼는다.’
이재호는 특수종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특수종만큼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사람을 상대하고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만큼은 자신 있었다.
이재호는 사람 마음을 얻는데 특화된 정치인이었다.
왕자가 묵는 호텔에 도착했을 때, 이재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절로 인상이 써진다.
자신뿐 아니라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한 이들이 몇 보였다.
엑스큐라시와 협회 등에서 나온 이들이 왕자의 호텔 앞에 이미 진을 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