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 죽여.
강슬혜는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동시에 제안을 받았다.
다 자신의 회사로 오라는.
그리고 아들을 택했다.
그녀는 꽤 진지했다.
오랜만에 일선에 돌아왔다. 그녀는 훌륭한 일 처리를 보여 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남편과 나눴던 대화가 그런 마음을 더 부추겼다.
“괜찮겠어? 그동안 따로 이런 종류의 일을 한 건 아니니까, 내키지 않으면 안 해도 돼. 필요하면 내가 나서서 광익이 도와도…….”
“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남편이 자신을 무시한 건 아니다. 걱정이 깃든 말에 오해할 정도로 강슬혜는 멍청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서운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여보, 저도 잘할 수 있거든요.’
갱생 마녀란 별명이 괜히 붙은 건 아니다.
변신족은 사납다.
특히나 제 본능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변신족은 그야말로 살아 있는 흉기다.
그걸 갱생시키는 게 제 일이었다.
운으로 단군 그룹이 낳은 가장 훌륭한 교관이 된 건 아니었다.
그 살아 있는 흉기를 다뤄 반듯하게 만들어 놨기에 그럴 수 있었다.
실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당장 세최특이니 뭐니 하는 별명이 붙은 아들과 붙어도 밀릴 생각은 없었다.
특수종의 젊은 시절은 길다. 치기 어린 행동이라 할 수는 없지만, 강슬혜는 아직 자신이 젊다고 생각했다.
객관적으로 봐도 그랬다.
쉰도 되지 않는 변신족은 젊다고 해도 무방하니까.
공주의 호위라는 무리가 갑자기 뒤돌아서서 덤볐다.
강슬혜는 반응했다.
어떤 이유로든 자신을 공격하면 적이다.
그녀는 변신족답게 생각했다.
슁슁.
머리 위로 칼날이 스쳤다.
웬 놈이 두 자루 나이프를 쥐더니 교차해서 휘두른 걸 고개를 숙여 피했다.
뒤로 물러나는 척 속임수를 섞은 그녀는 앞으로 발을 내디디며 몸을 틀었다.
원심력과 무게 이동을 마친 뒤, 왼 주먹을 뻗는다. 잽과 스트레이트의 중간쯤 되는 타격이었다.
펑.
주먹에 맞은 공주는 복부에서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허리가 반으로 접히며 몸이 붕 날았다.
“꺽!”
외마디 비명과 함께 날아간 친구가 퉁-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떨어진 친구의 사지가 부들부들 떨렸다.
“……요즘 애들은 약하구나, 나 때는 안 그랬는데.”
일선에서 물러났던 경력자가 돌아와 흔히 하는 말을 뱉은 그녀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어지간하면 아들의 회사에 들어와 맡은 첫 번째 일을 깔끔하게 끝내고 싶었다.
덕분에 힘이 좀 더 들어간 듯했다.
그래도 죽지는 않았다.
부들부들 떠는 게 그 증거이지 않나.
“쿨럭.”
쓰러진 친구가 피를 토했다.
“괜찮아. 안 죽어. 이 정도로 죽긴 왜 죽니.”
공주의 호위 몇이 자신을 바라보기에 입을 열었다.
“슈트 입었는데…….”
누군가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손맛이 좀 다르긴 했다.
오랜만이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타격 방어 슈트를 입은 상대였다.
그리고 지금 결과는 그 슈트의 방어력을 무시한 주먹이란 소리였고.
“……뭐야.”
여자 호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중얼거렸다.
잠깐의 소강상태, 강슬혜는 무전을 들었다.
“어머, 얘들 덤비는데?”
일단 보고는 해야 하지 않겠나.
무전을 끝낸 강슬혜는 변신족다운 태도를 고수했다. 그대로 다시 내달린 거다.
눈을 동그랗게 뜬 여자가 양손을 펼쳤다.
장풍이라도 쏘나 싶었다.
강슬혜는 경험이 풍부했다. 한때는 수없이 많은 작전에 나갔던 몸 아닌가.
옆으로 몸을 날렸다.
파바박- 하며 아스팔트 바닥에 얇고 가는 것들이 박혔다.
바늘이었다.
강슬혜는 무시했다.
한 번 피한 거로 충분했다.
어느새 여자 호위가 손닿을 거리다.
강각을 발동한 채 땅을 박찼으니, 당연했다.
주먹을 뻗는다. 얼굴이 맞닿기 전이다.
“으아아아!”
몸에 제동이 걸렸다.
염력이었다. 무형의 압력이 전신을 짓누른다. 강슬혜는 여전히 변신족다운 태도를 고수했다.
무시하고 주먹을 뻗었다.
뻥! 우득! 꽝!
헬멧 위로 주먹이 꽂혔다.
얼굴을 맞은 여자 호위의 몸이 옆으로 날아가 주차된 차에 박혔다.
비현실적인 괴력이었다.
“막아서 힘 더 줘 버렸잖아.”
강슬혜는 중얼거리며 차에 박혔던 여자 호위를 보며 다가가 숨결을 확인했다.
그 확인하는 방법도 과격했다.
반쯤 부서진 헬멧을 쪼개서 손가락을 집어넣어 숨결을 확인한 거다.
“살았네.”
그럼 됐지?
라는 표정으로 돌아본다.
그 자체가 공포였다.
“시발, 미쳤네.”
“괴물이잖아.”
호위 몇이 떠들었다. 제 나라말로 떠들어서 알아듣진 못했다.
상관없었다.
“더 하자.”
오랜만의 실전에 강슬혜는 피가 끓었다.
어지간하면 혼자 상대하고 싶었다.
다행히도 다른 이들은 끼어들지 않았다.
아니, 끼어들 틈이 없었다.
본래 계획은 세최특을 붙들어 시간을 끌고 이쪽에서 왕자의 조력자를 제압해야 했는데.
호위 중 리더가 나섰다.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할 수는 없잖아.”
제 동료를 향해 말한 그녀가 헬멧을 벗었다. 머리를 짧게 친 여자다. 두 눈이 노란빛으로 반짝였다.
생기가 가득한 와중에 눈에는 강렬한 의지가 담겼다.
이대로 물러나지도, 지지도 않겠다는 그런 의지.
불멸자가 아님에도 한눈에 보이는 기세다.
“엘렉트라.”
빛나는 눈빛으로 리더가 자기 이름을 밝혔다.
“강슬혜.”
그걸 본 강슬혜도 입을 열었다.
투구도 벗고 제대로 붙어 보자고 나서니, 즐거웠다.
상대가 꽤 하는 거로 보여서 더 즐거웠다.
곧 둘의 눈이 마주쳤다.
여자의 눈에서 빛이 뿜어졌다. 엘렉트라는 제 초능을 십분 발휘했다.
사이오닉 협회에서 인정한 싱글 마스터 능력이다.
지잉.
공기가 떨린다.
중력 조절.
강슬혜는 누군가 어깨에 철근 덩어리를 올려놓은 느낌이 들었고.
곧 뻐근한 통증을 느꼈다.
동시에 즐거움이 배가 된다.
‘무게 치는 기분이네.’
그리 생각하며 강슬혜는 움직였다.
여전히 변신족답게.
생각할 것도 없이 내달렸다.
기분이 더없이 좋았다.
예전 아들 때문에 화림을 찾아갔을 때랑은 상황이 달랐다.
지금은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
남편과 아들을 위해 자신을 감추고 숨겼던 그녀는 이제 없었다.
갱생 마녀만 남았을 뿐.
* * *
시간을 길게 끌 필요가 없다면 그렇게 하는 게 맞았다.
공주의 호위 셋이 앞을 막기에 강각의 힘을 담아 허벅지 근육을 부풀렸다.
부풀린 근육의 힘을 단숨에 폭발시킨다.
펑, 펑, 펑, 펑, 펑.
내 뒤로 땅이 부서져 터지는 소리가 연신 울렸다.
아스팔트 위로 내 발이 닿는 곳이 팡팡 터졌다.
난 좌우로 뛰었다.
변신족의 동체 시력이 아니라면 잡을 수도 없을 만큼 빨리.
상대의 눈에는 순간이동 주문이라도 한 것만큼 단숨에.
초능 특수종이 아무리 단련한다고 해도 순혈의 변신족의 움직임을 잡긴 어렵다.
하물며 난 괴력의 혈통을 타고났음에.
좌우로 뛴 것만으로 시야에서 벗어난다.
자고로 보이지 않는 적을 맞출 수 있는 재주는 흔하지 않은 법이니.
세 명의 호위가 전부 날 놓쳤고.
그리 공간을 좁힌 후, 난 첫 번째 상대의 목에 수도를 내리쳤다.
쩍.
타격 보호를 위해 슈트를 입긴 했다만.
이 정도로는 무리다.
맨손으로 리빙 아머도 때려 부순 몸이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변신족은 싸울수록 강해진단다. 그러니 덤벼.”
어릴 때는 농담 삼아 그러시는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그게 맞는 말인 듯하다.
생각의 와중에 두 번째 호위의 발목을 걷어찼다.
균형을 잃은 상대를 잡아서 메다꽂았다.
꽝!
아스팔트 위에 머리부터 심어두고 세 번째 상대는 등 뒤를 잡았다.
“어디야!”
상대가 사납게 외쳤다.
새된 목소리가 울렸다.
그 목소리 자체에 힘이 있었나 보다.
음파가 파동이 되어 앞으로 퍼진다. 파동이 물리력이 되어 부서진 돌덩이 따위를 깨부순다.
왕자를 향해 퍼지는 파동이다.
내가 지켜 줄 필요는 없었다.
알이 진짜 바보도 아니고, 나만 믿고 저기서 저러고 버틸 리가 있나.
숨겨 둔 호위가 나섰다.
얼굴에 빨간 가면을 쓴 친구였다.
왕자의 앞을 막더니 양손을 펼쳤다.
곧 초능이 발동, 배리어를 만든다.
배리어가 음파 파동을 막아 내며 떨렸다.
반투명한 장막이 부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난 음파를 쏘아 낸 친구의 목을 뒤에서 졸랐다.
슈트의 방어력을 무시하는 괴력으로 초크를 걸었다.
감각을 세워 상대의 숨결 따위를 느꼈다.
딱 기절할 만큼 버티고 놨다.
스르륵 풀썩.
내 몸에 기댄 채로 마지막 호위가 무너져 흘러내렸다.
그녀를 얌전히 옆에 두고 몸을 일으켰다.
나와 공주를 가로막은 게 아무도 없었다.
공주가 손을 들어 제 귀에 있던 무전기를 누른다.
“뭐?”
놀란 목소리다.
“한 명한테?”
재차 말하는 걸 지켜봤다.
공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말이 되나요?”
입을 열다가 공주와 눈이 마주쳤다.
무슨 무전기를 쓰는지, 불멸자의 청각으로도 상대의 목소리가 안 들린다.
“한 명한테 당했대요?”
그래서 물으니.
“네.”
“변신족 여자죠?”
“네.”
“그, 제가 미처 말씀 못 드렸는데, 이번에 제 회사에 입사한 분 중에 좀 하시는 분이 계시거든요.”
내가 말하며 허공에 주먹질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렇다고 십지대를 혼자서 제압해요?”
“셋은 여기 있으니까.”
“그쪽에는 십지대 리더도 있었어요.”
공주의 말에 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요?”
그게 뭐 놀랄 일이라고.
긍낙이 삼촌 말로는, 프로메테우스의 그 크로커다일도 어머니한테는 한 수 접어 준다고 그러던데 뭐.
“……예상했군요.”
“네, 뭐.”
남은 공주의 십지대 셋을 보고 자다 깨도 당할 일이 없을 거로 판단했다.
하물며 과외 선생 둘은 손가락 빨면서 구경하는 수준이니.
“무서운 전력이에요.”
공주가 그리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이 마치 이제는 안심이라는 그런 고갯짓으로 보였다.
자, 이제 어쩔까나.
뒤를 돌아볼 필요도 없었다.
왕자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죽여.”
가면 쓴 호위를 옆으로 물린 왕자가 한 걸음 나서 내 곁에 섰다.
“왕위 계승에 방해자다. 이게 내 부탁이다. 공주를 죽여.”
왕자가 재차 말했다.
친구니까 할 수 있는 부탁이라고 했던가.
눈에 눈물을 머금은 것도 아니고.
말투에 물기가 섞인 것도 아니다.
알은 태연했다.
당연히 이뤄져야 할 일이니, 그리하라는 거다.
뭐, 왕위 계승할 때 방해가 된다면 그렇게 해야겠지.
들어보니까 왕국의 무슨 장로회 같은 곳이 있는데 거기서 인정하는 마지막 관문이 왕위 계승자의 유일성이라고 했던가.
그러니까 살아남은 왕족이 남은 왕족을 깡그리 죽여야 인정한다는 거다.
그게 바로 초능국 패왕의 위엄이라고.
지랄들을 해요.
“당장.”
왕자가 재차 말했다.
“네.”
내가 답하고 몸을 돌렸다.
공주와 눈이 마주쳤다. 무표정하던 공주의 입가가 올라갔다.
공주가 웃었다.
참 예쁘장한 얼굴이긴 했다.
알이 열심히 소개팅해 주려고 했던 공주다.
그리고 난 여기서 내 두 번째 위화감의 정체를 알았다.
공주는 진심이 아니다. 그래서 느껴지는 위화감이다.
이건 한 편의 쇼였다.
공주는 진짜로 알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묫자리를 찾아왔다.
그럼 이 일은 왜 일어났을까?
알이 제 손으로 제 누이를 죽이기 싫어서?
그래서 친구의 손을 빌리러 온 거라고.
난 내가 아는 십 세 친구를 떠올렸다.
과연 그럴까.
모른다. 진짜 내가 죽여 주면 정말 제 속이 편해질지도 모르지.
내가 신도 아니고 남의 속내를 어떻게 아냐고.
다만, 난 내 생각대로 할 뿐이다.
“잘 죽어요.”
그래서 인사를 건네며 공주의 목을 졸랐다.
기술이 아니라 양손으로 바짝 조였다.
손바닥을 통해 맥박이 전해진다.
공주가 눈을 감았다.
독하디독한 성격인가 보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꿋꿋이 입을 다문 채로 버틴다.
졸린 목줄기 정맥이 터지며 울혈이 생겼다.
신음조차 내뱉지 않은 공주의 숨결이 옅어졌다.
쓰러진 공주를 안았다.
“한국에 와서 죽인 건 여기서 전부 끝내고 갈 생각이라 그런 거겠죠?”
방금 막 반항하지 않은 여자를 목 졸라 죽인 내가 물었다.
알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불태울 것이다. 우리는 화장을 선호하지. 내 친구의 나라에서 불에 태우는 것이니, 괜찮겠지.”
머릿속에서 몇 가지 생각이 스쳤다.
“네, 그러죠.”
답하고 나자마자, 팬더 형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전해졌다.
“죽였어? 본 사람은 없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팬더 형한테 일이 터지면 주변 사람을 물려달라고 부탁했다.
정말 일 처리 하나는 완벽한 사람이라니까.
좋다.
홍대 한복판인데 사람을 치웠다.
불멸특수대랑 경찰 쪽 인력을 좀 동원한 듯했다.
“마리도 싸울 수 있는데.”
뒤에서 마리가 중얼거렸다.
시간 끌 것도 없이 혼자서 냅다 달려들어서 해치웠더니, 우리 마리가 조금 아쉬웠나 보다.
“다음에 싸우자. 마리야.”
“네, 오라버니.”
누가 변신족 아니랄까 봐 왜 싸우지 못해서 안달인지.
“가시죠.”
왕자에게 말하고 공주의 시신을 공주님 안기로 안았다.
공주를 공주님 안기로 안으니,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주의 반란은 손쉽게 제압했다.
알은 여전히 태연했다.
다만 말이 조금 적어졌을 뿐.
우리는 호텔로 돌아갔다.
시신은 내가 맡았다. 내가 직접 친구 된 도리로 그리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초능국의 풍습 중에 왕자의 형제자매가 죽으면 왕자와 가장 가까운 친구가 나서서 장례를 맡는다고 했다.
그게 나란다.
그래서 한국에 온 거라고.
핑계가 기가 막혔다.
“승화원 예약해 뒀다.”
팬더 형이 방에 들어오면서 말했다.
“알이 공주의 호위를 같이 태우겠단다.”
“걔들 안 죽이지 않았어요?”
“그랬지.”
“산 채로 태우겠다고?”
“죽여서 태우래.”
거치네, 우리 왕자님.
뭐, 물론 진심은 아니다. 다 보기 좋으라고 하는 짓이란 거지.
“일어나셨어요?”
불멸자의 감각이 뒤쪽에서 느껴지는 숨결이 달라짐을 포착했기에 내가 입을 열었다.
거기에 반쯤 죽었다가 살아난 공주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왜?”
왜긴, 죽이다 말았으니까 살았지.
“좋은 밤이네요. 더 자요. 아직 할 일 많으니까.”
알의 속내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내가 받아들인 건 이거다.
왕자가 진심으로 공주를 죽이고 싶었다면 이런 쇼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그러니 내 식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진짜 살인이 아닌, 사회적 살인으로 알의 부탁을 들어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