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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224화 (224/488)

224. 때려 죽어도 소개팅 분위기는 아니었다.

“누굴?”

중고 형이 묻기에 답했다.

“다른 나라 왕자요.”

십 세, 이제는 십 세가 아니게 된 왕자.

자신을 ‘알’이라 부르라던 어린 외국인 친구가 떠오른다.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욕설이 인상적인 꼬마.

범국가적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게 안쓰러워서 내심 친구가 되어 주자고 마음먹게 만들었던 아이.

왕위를 계승하겠다 마음먹고 돌아간 뒤로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지만, 부단히 연락은 왔다.

그 바쁜 와중에도 메신저를 자주도 보내더라.

사소한 얘기가 많았다.

오늘 점심에 독이 섞였다거나.

요리사를 둘 수 없어서 요리를 배우고 있다는 말도 있었다.

컵라면이 먹고 싶다든가 하는 이야기들.

그리고 언제부턴가 조용하더니, 일주일 전에 이 일을 맡겼다.

[십 세] 한국에 갈 거야. 이번에는 걸그룹 직관을 꼭 할 거고. 컵라면이랑 삼각김밥도 먹을 거고.

[나] 컵라면하고 삼각김밥 수입 안 돼요?

[십 세] 한국에서 먹는 거랑 여기서 먹는 게 같아? 왜 이렇게 낭만이 없어? 그러니까 그 나이 먹도록 애인이 없는 거지.

뭐, 이렇게 깜빡이도 없이 훅 들어와서 사람을 푹 찌르나.

[나] 낭만이랑 애인이 무슨 상관이라고. 그러는 알은 애인 있습니까?

[십 세] 부인이 셋 있지.

말문이 막혔다. 아니, 메신저를 두드리던 손이 멈췄다.

그래도 한 나라의 왕자라 이건가.

겨우 열둘, 열셋 하는 애가 부인이 셋이야?

[십 세] 한국에 있는 동안 경호 좀 해 줘.

하여간 평소에도 한국에 온다는 말을 하도 해서 농담 따먹기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진지했다.

[십 세] 그때처럼 좀 지켜 줘.

그러자고 했다.

마침 출범식도 어떻게 할지 결정한 판이니까.

[나] 나 비쌉니다.

[십 세] 얼마면 돼?

쿨한 왕자는 돈이 많았다.

괜히 초능국 왕위 계승자가 아니다. 최근에 온 연락을 보면 이제 계승 싸움도 안정권에 들어간 것 같고.

[십 세] 열흘 내외로 있을 테니까. 한화로 10억 해.

우리 왕자님 통 큰 것 봐라.

오천만 원이라고 쓰던 메신저를 지우고 단출한 답을 적었다.

[나] 네.

더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으니.

그리 잡힌 일이었다.

“그 왕자?”

팬더 형이 물었다. 막 바벨을 들어 가슴에 자극을 주던 중으로 보였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은 채로 다가오더니 재차 입을 연다.

“초능국?”

“네.”

“……굳이 다른 단체 눈치 볼 필요도 없겠는데.”

중고 형 말이 맞았다.

관례든 뭐든 그거야 국내 사정이고.

외국에서 직접 날 지명해서 일하겠다는데 어쩔 거냐고.

보통이라면 압력이라도 넣겠다고 하겠지만.

아버지가 아직 행안부 핵심 부서에 있고.

어머니는 아니라 하지만, 여전히 단군 그룹의 딸이다.

무엇보다 상대가 초능국의 왕자다.

누가 일국의 왕자, 실질적인 전력을 가진 나라의 왕자를 힘으로 겁박하냐고.

세계 정부 연합이 발 벗고 나서거나.

엑스큐라시 연합체가 나서지 않는 이상에야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마리하고 제가 밀착 경호할 거고. 나머지는 형?”

자잘한 일이야 팬더 형이 알아서 할 거다.

이동 경로, 위험 분자 체크, 식당 등 장소 섭외까지.

중고 형을 부려서 잘 써먹을 거다.

주변 위험 체크야, 또 전문가를 이미 섭외해 두지 않았나.

“신주호 씨 위에 있어요?”

팬더 형이 중고 형한테 물었다.

특파라치, 남의 뒤 캐는 게 전문인 사람인데, 팬더 형 말로는 재능을 다른 방향으로 쓰면 또 활용도가 높다고 했다.

나도 동의하는 바고.

“네, 에, 네.”

벙찐 채, 중고 형이 답하더니 나한테 물었다.

“진짜 그 초능국의 왕자랑 친하다고?”

이거 참 뭐라고 말해야 할까.

목숨을 구해 주고 친구 먹은 사이라고?

그것보다는 더 복잡한 사이일까?

모든 걸 고려한 내가 답했다.

“걔가 절 좀 따라요.”

“……와씨.”

다른 거로는 그러려니 하던 양반이 알이랑 친분이 있다니까 저렇게 놀란다.

그럴 만도 했다.

뒷골목 에이전트에게 초능국의 왕자는 그만한 위세였다.

난 권력자, 그것도 일국의 대통령을 씹어먹을 권력자의 친한 형이 된 셈이니까.

마리랑 내가 마중 나가고.

외부 경호는 작대기 선생이 저격 포인트 체크하고, 통나무 선생과 어머니가 거리를 두고 지키면 된다.

어려울 일은 없었다.

전처럼 딱히 위험이 동반된 것도 아니고 말이야.

“대상은 언제 도착하지?”

정직이의 자세를 봐주던 작대기 선생이 물었다.

“내일 새벽이요.”

“……빨리도 말하네.”

“보안이 생명인지라.”

미리 안다고 달라질 것도 없으니 뭐.

당장 가용 인원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 과외 선생 둘, 나, 마리 정도면 충분했다.

로즈랑 정직이는 아직 못 쓴다.

정직이는 훈련이 필요하고.

로즈는 혈관에 피 대신 자백제가 흐를 판이란다.

훈련도 무리고 휴식이 필요하단다. 쉬라고 했다.

도망가면 어쩌나 걱정은 접었다.

얘 목적이 프로메테우스를 이 판에서 강판시키는 건데.

혼자 나가서 어쩌는 것보다 내 옆에 붙은 게 훨씬 이득이었다.

물론 이런 걸 생각지도 않고 날뛸 수도 있지만, 그 정도로 머저리였으면 애초에 데려오지도 않았다.

단순해 보이는 로즈지만, 그래도 멍청한 건 아니니까.

“쉬겠어. 난 반드시 회복해.”

그리 말하며 회복실에 들어가는 걸 자처한 친구다.

그래서 놔뒀다.

아, 혜민이가 회사에 합류하기로 했다. 어머니에게 받던 수업만 다 받고 나서.

그래서 은근히 혜민이 어머니도 들어오라 했다.

마법사 세계에 대해서도 귀동냥으로 들은 바 있다.

덕분에 스펠 유저보다 스펠 크리에이터가 몇 배는 귀하다는 것도 안다.

그 스펠 크리에이터 중에서도 명인(名人) 소리를 듣는 사람이 혜민이 어머니 되시겠다.

그동안 이 모녀를 노린 주문 사냥꾼 숫자만 어지간한 운동장 열 바퀴를 채운단다.

그러면서도 꿋꿋이 잘 숨고 잘 살아남았다.

그 능력도 탐나고 수완도 마음에 든다.

“우리 사위가 원하면 해야지.”

라고 말하는 뻔뻔함은 좀 부담스럽지만, 이런 농담이 하루 이틀이어야지.

이제는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수준이다.

어쨌든 그리 결정된 일.

그나저나 궁금하긴 하네.

다들 내 회사 앞날을 걱정하던데, 이걸 알고도 걱정하려나.

* * *

“잘한 겁니다.”

알 칼리드 볼리아나.

에르자루드, 초능국의 왕자는 전용기 창 너머를 바라봤다.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시다. 이제 삼십 분이면 공항에 도착할 터였다.

“왕자님.”

바로 옆자리 남자가 계속 알을 불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알이 질문에 늦은 답을 토했다.

씁쓸한 답이기도 했다.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니, 어쩔 수 없다는 위안 따윈 필요 없었다.

복잡한 생각 따윈 버리고 싶었다.

친우의 나라에 온 게 기뻤다.

“기억나지? 다니엘?”

알이 물었다.

옆자리 남자, 다니엘이 답했다.

한국은 일전에 알의 경호 문제로 함께 왔던 곳이다.

다니엘의 기억에도 있는 곳.

강렬한 기억을 남겨 준 사람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네, 제 턱을 쪼갠 유가 있는 곳이죠.”

“그걸 아직 마음에 담고 있었어?”

“오해를 풀기도 전에 주먹질부터 하는 성격 급한 유가 있는 곳이죠.”

“다니엘은 다 좋은데, 속이 너무 밴댕이야.”

“밴댕이가 뭡니까?”

다니엘이 되물었다.

한국식 표현이었다. 알은 밴댕이의 뜻을 풀어서 말해 줬다.

다니엘이 미간이 구겨졌다.

“지금 왕족 앞에서 인상 쓴 거?”

알은 알이었다.

그는 변하지 않았다.

“아닙니다.”

“밴댕이가 꼭 나쁜 건 아니야. 다니엘.”

다니엘은 표정 관리를 했다.

그러자, 전용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자였다.

“볼리, 다니엘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어.”

“아닙니다.”

다니엘은 고개를 저었다.

볼리라는 애칭은 가족이나 부를 수 있는 말이었다. 알은 누이의 말에 알은 웃었다.

“그만하렴. 네 충신을 놀리는 일에 진지해져서 뭐하니?”

촤륵.

좌석 커튼을 젖힌 누이가 미소를 보였다.

이 비행기는 누이의 경호원 열과, 자신의 경호원 열이 함께 탔다.

스물의 경호원과 왕족 둘이 함께 행차한 셈이다.

“유가 보면 깜짝 놀랄 거야.”

그런 누이를 보며 알이 말했다.

알 드리어 레노이, 에르자루드의 또 다른 왕위 계승 자격을 갖춘 여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미소와 함께 까무잡잡한 피부의 미녀가 입을 열었다.

“네가 계속 말한 그 친구지? 치킨마요를 잘 만든다는?”

“편의점 요리의 대가지.”

광익이 들었으면 기도 안 찰 소개였으리라.

첫 만남에 억지로 편의점 음식을 사 오게 한 장본인이 알이었으니까.

왕족 둘이 웃었다.

그사이에 낀 다니엘은 생각했다.

‘놀라기만 할까.’

유라고 부르는 그 특수종은 지금 전 세계가 주목하는 사람이 됐다.

당연히 에르자루드에도 그 이름이 퍼졌다.

알이 그 소식을 듣고 하루 내내 어찌나 뿌듯해하던지.

옆에서 지켜보는 다니엘도 기쁠 지경이었다.

그 유광익, 세최특의 나라에 왔다.

그리고 놀랄 만한 일이 함께였다.

그건 결코 선물이라 부를 만한 건 아니었다.

‘잘한 겁니다. 왕자님.’

다니엘은 속으로 그리 말하고 왕자를 바라봤다.

누이와 웃으며 떠드는 그 모습이 눈에 담긴다.

그의 눈에 왕자의 어깨 위로 어릴 때의 모습이 겹쳐졌다.

이제 힘든 일은 다 넘어왔다.

왕위 계승이 코앞이었다.

다니엘의 눈빛을 본 알 드리어 레노이가 입을 열었다.

“네 충직한 신하가 방금 널 대견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 다 컸다고.”

“……그럼 그동안은 날 애라고 생각한 건가?”

알이 고개를 돌렸다.

“아닙니다.”

다니엘은 답했다. 하루 이틀 있는 일이 아니었다.

초능국의 왕족은 전부 초능력을 가졌다.

그것도 아주 특별한 능력을.

그중 레노이, 공주의 능력은 독심(讀心) 계열이었다.

정확히는 상대의 기분을 느끼는 초능이었다.

“진짜 아닙니다.”

왕자는 눈을 부라렸다.

“요새 생활이 편한가 봐? 다니엘?”

“아주 잠깐 생각한 겁니다.”

흥.

왕자는 콧방귀를 뀌고는 다시 누이와 어울렸다.

다니엘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눈을 돌렸다.

괜히 공주와 눈이 마주쳐서 좋을 게 없었다.

비행기가 착륙했고, 곧 반가운 얼굴이 그들을 맞았다.

“턱은 괜찮고?”

얄밉기로는 왕자와 버금가는 유였다.

* * *

별일 아니었다.

예전처럼 위화감 잔뜩 느끼고 왕자를 경호하겠다고 온 놈들이 암살자로 변신할 일도 없으니.

적당히 서울 구경 좀 시켜주고 그놈의 글레이브 걸스 직관도 해 주면 될 일이다.

아니, 이 부분은 아예 신경을 좀 썼다.

10억, 받은 만큼 서비스를 했다.

일전에 어쩌다 보니, 연예인 매니지먼트랑 연이 닿은 게 있지 않나.

한국 엔터계의 엑스큐라시라 불리는 리프트란 회사가 나에게 거듭 러브콜을 하지 않았나.

디자이어 버그 사건 이후, 연예계 쪽에서도 먹히는 몸이 됐다, 이거다.

그 리프트 이사랑 어찌어찌 인연도 있고.

그래서 부탁 하나 했다.

그게 알을 위한 스페셜 땡스 기프트였다.

머릿속에 작전을 그리 짰다.

오면서 긴장할 일도 아니라고 말했고.

그러니까 달랑 다섯이서 한다고 나섰지.

전용기를 마중 나온 길에 반가운 얼굴이 먼저 보였다.

난 그를 보고 인사를 건넸다.

“턱은 괜찮고?”

다니엘이었다.

금발 싸가지.

지금은 좀 순해졌으려나?

“감히 내 신하를 놀려?”

그 뒤로 알이 나왔다.

경호원도 몰려서 나왔다. 그들은 다가오는 날 향해 경계심을 보였다.

“형태변환자는 아니다.”

경호원 중 하나가 말했다.

눈썹이 진한 백인이었다.

그 뒤로 명품으로 치장한 여자가 하나 나왔다.

걸친 옷, 장신구까지 뭐 하나 저렴한 게 없다.

불멸자의 시선이 상대 전신을 훑었다.

감각이 상대를 읽는다.

단련된 몸, 걷는 걸음걸이에서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경호원은 아니었다.

위치가 그렇다. 왕자의 바로 뒤에서 나타났고 그 왕자의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올리며 인사를 건넸으니.

“알 드리어 레노이예요.”

그녀가 인사를 건넸다.

“내 누이야.”

알이 말했다.

그래, 여기까지는 이 왕자 새끼가 결국 나한테 제 누이를 소개팅해 주려고 이러나 싶었는데.

또였다.

난 또 위화감을 느꼈다.

왕자와 공주.

그 곁에 선 경호원 무리.

언짢은 표정을 숨기는 다니엘.

때려 죽어도 소개팅 분위기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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