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 첫 임무
“유 팀장, 알지? 이번 건은 진짜 곤란해. 차기 대권 주자가 엮인 일이었다고.”
유연호는 장관의 말을 이해했다.
그럴 만했다.
아들이 로스트 인베이더를 깡그리 잡아 치웠다.
그 일은 본래 정부 쪽에서 마무리했다고 발표할 예정이었다.
단 한 마리의 인베이더도 놓치지 않았다고, 서울 치안을 책임지겠다는 대사를 쓰며 정치적 선전으로 써먹을 일이었단 소리다.
거기에 차기 대권 주자가 엮인 일이었고.
유연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설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 말에 장관이 한숨을 푹 내쉬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고가의 의자가 뒤로 적당히 젖혀지며 장관의 몸을 받쳤다.
“아들은 철밥통에 관심 없대? 왜 굳이 이렇게 일을 벌이나? 정부랑 같이 일하면 좀 좋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지 않습니까. 하고 싶은 일 하며 살겠답니다.”
애초에 유연호는 말릴 생각도 없었다.
“권유는 해 봤고?”
“네.”
지나가는 말로 해 봤다. 아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게 기꺼웠다.
제 길을 찾은 자식, 장성한 자식을 보는 게 부모의 기쁨이라 했던가.
어릴 때는 너무 빨리 커서 아쉬웠는데, 어느새 훌쩍 커 버린 걸 보니 뿌듯하다.
“하여간 우리 쪽에서도 일은 못 줘, 군대도 마찬가지고.”
“네, 그렇군요.”
답하고 장관을 바라봤다. 나가려고 인사하려던 참이다.
“진짜 안 돼.”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장관이 되레 눈을 부라렸다.
“저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할 거면 안 걸리게 해. 난 커버 못 쳐 준다. 진짜야. 내 힘으로도 어려워. 안 걸릴 만한 일은 몇 개 줄 수 있지만, 나한테 받았다고 하면 안 되고.”
말하며 장관이 서랍에서 서류철 몇 개를 꺼냈다.
“출처 밝히지 않는다는 약속 지켜야 한다.”
“……네.”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겠지.
유연호는 서류를 받았고.
자리에 돌아와서 내용을 검토했다.
외국 파견부터 시작해, 정부가 비밀리에 진행하는 몇 가지 일이 엮여 있었다.
대선 후보라고 해도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그런 종류의 일.
장관도 무리했다는 거다.
툭.
서류를 덮고 보안 서랍에 넣었다.
자신의 지문이 아니면 열리지 않는 서랍이자, 억지로 열거나 뜯어내 가져가려고 하면 알아서 안의 물건을 소각해 준다.
서류를 넣고 유연호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아들이 사고를 쳤다.
회사를 차리더니, 일을 받아야 할 곳과 불편한 관계를 형성했다.
‘회사 출범식’이란 이름으로.
퉁치고 넘어가려면 대충 어느 곳에든 기대야 할 텐데.
‘또 그렇게는 안 하지.’
이런 건 또 제 엄마 닮아서 고집이 보통이 아니다.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거기에 이 상태가 언제까지고 유지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잊을 테고, 그럼 그때 일을 받아도 무방할 것이다.
다만, 아들이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물어볼까.’
이제까지는 아들이 하는 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이제는 자신도 상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과 함께 주변에 시선을 던졌다.
시선을 느낀 팀원 중 하나와 눈을 마주쳤다.
손으로 잔을 들어 마시는 시늉을 하기에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팀원이 검지를 폈다가 다시 손가락 다섯 개를 펴서 악수하듯 앞을 향해 손목을 꺾었다.
혼자서 가겠다는 수신호다.
알았다는 표시를 보내 주자, 팀원이 주섬주섬 움직였다.
팀원의 등을 보며 유연호는 생각을 이어 갔다.
아내가 아들의 일을 돕기로 했다.
간접적이 아니라 직접 일선에 나서서.
그러니까, 아내가 아들 회사에 입사했다.
아들은 예전에 소개해 줬던 후배도 채갔다.
아내의 친구도 채갔고.
일하며 알고 지낸 이들도 몇 받았다고 들었다.
‘자식이.’
발이 넓은 건지 좁은 건지, 덕망이 좋은 건지, 어떤 건지.
그래도 사람은 부족할 것이다.
전투 가용 인원, 그것도 이 씬에서 경력이 투철한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가령 불멸특수대의 팬텀급의 인재라면 좋을 것이다.
민간 기업의 저력은 그 안에 소속된 이들이 어떠한가로 나뉘기 마련이다.
아들이 욕심이 있다면 인재를 더 받고 싶을 터.
그럼 다음은 누구 차례인가.
‘곤란하군.’
팔짱을 끼며 유연호는 내심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을 제일 먼저 부르고 싶었을 아들이다.
때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어려운 법이다.
자기 일을 존중해서 쉬이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배려심을 보인 것이다.
이해는 한다. 실제로 그런 경우 꽤 곤란하니.
그래도 하나 마음에 틱틱 걸리는 게 있다.
엄마보다 아빠한테 먼저 말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자기는 현업으로 계속 일했고, 엄마는 갱생 마녀라 불렸다곤 해도 꽤 오래 쉬었는데.
잡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 생각의 끝에서 아들이 자신에게 부탁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럼 자신은 이곳을 관둬야 할까?
심히 고민되는 일이었다.
자신이라면 지금 생길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해 줄 수 있었다.
서랍 안에 있는 서류철은 지금 아들 처지에서, 그 어떤 기어 못지않은 무기가 될 수도 있을 테니.
서류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인맥이라면 남부럽지 않으니까.
일을 받는 것쯤이야.
‘작은 일부터 스텝 바이 스텝으로.’
절로 계획이 섰다.
머릿속으로 아들 회사의 앞날을 그렸다. 자신이 합류하게 되면 변할 것들을 떠올렸다.
오늘 저녁, 아들이 집으로 온다고 미리 말했다.
사옥을 마련한 뒤, 간간이 오던 놈이 일부러 약속을 잡고 왔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자신을 보겠다는 거 아니겠나.
그러니까 제 회사 일을 도와달라고 말할 타이밍이라는 거다.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들이 말하면 마지못해 따라가는 모습이 자꾸 그려졌다.
“왜 자꾸 헤죽헤죽 웃어? 팀장.”
나이 먹은 팀원이다. 품에서 담배를 꺼내며 묻는다. 나가는 길로 보였다.
“아닙니다.”
짧게 답하고 보고서 작성에 열중했다.
타닥타닥.
타자를 두드리며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 보니, 보고서에 오타가 가득했다.
“이거 수정 좀.”
여자 팀원에게 맡겼다.
“……뭘 쓰려고 했던 거였나요.”
팀원이 고개를 저었다.
“보고서.”
잡무다. 맡기고 6시가 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칼퇴근이었다.
“뭐 저렇게 일찍 가?”
팀원 중 하나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유연호는 집에 도착했다.
띠리리.
번호키를 누르고 들어가니, 아내와 아들, 마리가 이미 함께였다.
지글지글.
연기 잡아먹는 그릴 세 개에서 삼겹살이 구워지는 중이었다.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오셨어요?”
마리가 먼저 그를 반겼다.
“왔지.”
“식사하셔야죠.”
“손 씻고 와요.”
아들과 아내가 연이어 말했다.
손 씻고 자리에 앉았다.
즐거운 식사 시간, 평소와 같은 시간이었다.
아들이 본론을 꺼냈다.
“마리요. 제가 데려갈게요.”
“뭐?”
유연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이었다.
“얘도 다 컸고, 평생 등골 브레이커로 키울 생각은 아니시잖아요? 제 몫 할 겁니다. 마침 제 오빠가 회사 대표니까 낙하산 태워서 데려갈게요. 사옥으로 집도 옮기고요.”
“마리도 그게 좋아요.”
옆에서 마리가 거든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후, 별 얘기는 오가지 않았다.
정확히는 기다리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일을 다시 하려니 어색하더라고요.”
말하며 얼굴을 붉히는 아내다.
만족스러워 보였다.
“회사에 무슨 일 있어요?”
이십 년을 넘게 함께한 사이다. 불멸자가 아니더라도 남편의 이상을 눈치챈 아내가 물었다.
“아니.”
“표정 안 좋은데.”
“내 표정이?”
“웃고 있는데, 웃는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아내의 직감은 때론 불멸자보다 날카로울 수 있었다.
“진짜 아니야.”
입 밖으로 말하려니, 자신이 좀생이 같았다.
그래서 아들이 마리와 함께 아이스크림이나 사러 나간다고 하는 걸 자신이 대신 가겠다고 나섰다.
“전 메로나요.”
아내는 굳이 캐묻는 대신 메로나를 요구했다.
“응.”
답하고 나섰다. 승강기를 타고 내려와 근처 무인 아이스크림 할인점으로 향했다.
이것저것 바구니에 물건을 담고 다시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유연호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들, 할 말 없냐?”
“네?”
“할 말 없어?”
아들의 발이 멈췄다.
그 눈이 제 손을 향했다.
“제가 들까요? 무거우세요?”
아이스크림 열 몇 개 따위가 든 봉지가 연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안 무겁고. 회사에 인력은 안 부족하고?”
돌려 물었다.
“네, 뭐, 생각해 둔 사람이 몇 명 있고, 데려올 방법도 있고 그래서요.”
다시 걸었다.
걷는 속도를 맞춘 부자가 겨울 밤거리를 걸었다.
눈이 내리지 않은 겨울밤의 공기는 차갑지만, 청량했다.
조금 전까지 집에서 몸을 덥히고 위장을 빵빵하게 채우고 나와서 그럴 것이다.
배가 든든하면 겨울 찬바람도 견딜 만한 법이니까.
아들이 주저하는 걸까.
“편하게 말해도 된다.”
“네?”
“편하게 말해도 된다고. 아빠가, 그래, 당장 회사를 관둘 수는 없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심각하게 고민은 해 보마.”
“뭘 고민해요?”
아들이 모르쇠를 시전했다.
“엄마, 회사로 불렀다며.”
“네.”
“그럼 난?”
“네?”
이 새끼가.
유연호는 불멸자다. 그는 아들의 반응을 보고 알아챘다.
아들은 자신을 회사에 부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
“난 안 불러?”
“아니, 아버지는 철밥통에 피닉스팀에, 회사 잘 다니시면서 왜.”
그게 같냐.
어차피 불러도 갈 수 없긴 했다.
사실이 그렇다.
피닉스팀을 놔두고 빠질 형편이 아니었다.
NS로는 못 간다. 아들이 불러도 갈 수 없다.
그래도, 말이라도 꺼내 봐야지.
* * *
“아버지 왜 그러신데요?”
“그러게.”
마리를 데려가겠다고 말하고 한 다음 날이다.
사옥이 가깝다. 집에서 자고 말고 할 것도 없어서 돌아와 자고 일어난 뒤였다.
어머니가 훈련장으로 출근하시기에 물으니, 어머니가 답하고 웃었다.
“네 아빠 귀엽지 않니? 그 나이에 질투라니.”
“질투요?”
“나만 불렀다고 토라진 거잖아. 아우, 귀여워.”
뭐가 귀여워.
중년 남자를 향해서 쓰지 말아야 할 표현 아닙니까? 어머니?
“아니, 회사 관두고 싶으시대요?”
철밥통에, 피닉스팀 팀장에, 아버지가 하는 일이 하나둘이 아니고.
주일호 아저씨 말 들어 보니, 아버지 사명감이 장난이 아니라고도 하던데, 왜 관두고 여기로 오려고 하는 건지.
“가끔 보면 넌 불멸자인지, 변신족인지 모르겠다.”
옆을 지나치며 주일호 아저씨가 말했다.
“혼혈인데요.”
뭘 당연한 걸 물어.
그 말에 통나무 선생, 가희 이모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
“너 둔하다고.”
“둔탱이 변신족도 아는 걸 눈치를 못 챈 거냐?”
주일호 아저씨가 다시 말했고.
“둔탱이? 나보고 그런 거야? 바퀴벌레?”
“바퀴벌레? 사람을 벌레라고 하는 건가? 무식한 변신쟁이?”
“변신쟁이? 그거 문법은 맞니? 너 초졸이지?”
“미시시피 주립대학 졸업했는데?”
“국어는 배우다 만 거 아니고?”
둘의 눈에서 또 스파크가 튄다.
왜 이 둘은 자꾸 싸우는 걸까.
“둘 다 그만 하세요. 사내에서 피 보기 있기 없기.”
말렸다.
“내가 유치원생으로 보이나? 대표라면 어느 정도 품위를 보여.”
말하고 일호 아저씨가 팩 돌아서 갔다.
“오전 장이 안 좋더라니, 오전 장이 안 좋으면 일진이 안 좋은 건 과학이라니까.”
옆에서 가희 이모가 중얼거렸다.
“두 분은 왜 자꾸 싸워요?”
“몰라.”
가희 이모도 말하고 돌아섰다.
아침부터 분위기 참.
팔짱을 낀 채, 둘을 보다가 관여하지 말자는 결론을 냈다.
지금 저 둘은 친구가 되어 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괜히 끼어들 필요가 없었다.
“변신과 불멸이 사이가 좋긴 힘들지.”
뒤에서 어머니가 말했다.
“엄마는 아빠랑 결혼했잖아요.”
“그건 사기 결혼이고 불멸자인 거 말 안 했잖니?”
불멸자였으면 결혼 안 했을까?
“그래도 엄마는 귀여운 아빠를 만났지, 그리 귀여운 남자가 세상에 또 있겠니? 토라지기는.”
말하며 웃는데, 닭살이 돋았다.
중년 커플의 애정 행각, 특히 부모님의 사이가 워낙 좋아서 이런 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건 좀 심했다.
그리 시작된 하루다.
나도 훈련을 시작했다. 아다만티움이 섞인 바벨을 들고 땀을 흘리는 거로 웜 업.
“선생님, 한 판?”
그 뒤 가희 이모랑 한 판.
다시 어머니랑도 대련.
마리를 불러서 붙기도 했다.
즐겁고 또 즐거우며, 보람찬 시간이 이어졌다.
훈련하며 계속 새로 깨닫고 익히고 몸에 붙인다. 그걸 반복하는 일이 즐겁기 짝이 없었다.
그런 와중이었다.
중고 형이 출근하자마자, 스티븐 최와 특파라치를 대동하고 찾아왔다.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내가 물었다.
“왜요?”
세 명의 얼굴에 비장함이 엿보였다.
아랫입술을 깨문 중고 형이 말했다.
“우리 이대로면 6개월도 못 가. 일이 필요하다고.”
출범식을 멋들어지게 한 여파가 장난 아니라는 잔소리가 이어졌다.
“일 받았는데, 시작은 내일모레예요.”
“……무슨 일을 받아? 내가 에이전트인데?”
중고 형이 되물었다.
“나한테 직접 부탁한 일이라서요. 지인 찬스 쓰자는데, 알겠다고 했지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한테 일을 맡기는 사람이 있는 게 신기한 모양이다.
셋의 서로 눈을 마주쳤다.
뭐, 정부도, 단군 그룹도, 정확히는 아버지와 긍낙이 삼촌이지만, 필요하면 뒤에서 도와준다고 했다.
지혜 팀장도 영 어려우면 잡일이라도 넣어 주겠다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요인 경호요.”
내가 답했다.
NS의 첫 임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