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 나눠 마실 양이 아니었다.
특수종 세계에는 악어새와 같은 무리가 있다.
그중 하나를 통칭 ‘업자’라고 했다.
장물도 팔고 정보도 파는 이들을 말하는 용어였다.
종로3가, 간판과 바깥 유리에 ‘예물 전문’, ‘급매 환영’ 따위를 붙여 둔 옛날 방식의 금은방.
그곳의 주인은 지금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최근에 연달아 터진 일 때문이었다.
덕분에 서울 치안 순위가 훅 내려가기도 한 일들.
어스 블랙홀이 열리는 거야 늘상 있는 일이고, 이상 현상도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있는 일이다.
그런 일 때문이 아니었다.
치안 순위가 내려간 건 다른 이유다.
프로메테우스의 불멸특수대 회사 습격, 일명 화림 습격 사건.
테러리스트 집단이 작정하고 한국에서 일을 벌였다.
매드 사이언티스트 집단의 출현.
미친 과학자 무리, 그것도 상당한 놈이 한국에 들어와 일을 터트렸다.
그 여파로 휴즈 게이트 오픈.
게이트가 열린 성수동은 개판이 됐다.
정부 지원금이 없다면 당장 리어카 끌고 폐지 줍고 살아야 할 사람이 수백이었을 사고다.
굵직굵직한 일만 꼽아도 이렇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세최특.’
지금 전 세계를 뜨겁게 하는 특수종이 있었다.
국내에서만 활동했을 뿐인데도, 각국의 수뇌부부터 시작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인이 된 특수종.
원한다면 특수종 사관학교 출신이 아님에도 군대 핵심 인력이 될 수 있고.
행안부의 요직에 앉을 수도 있다.
그게 싫다면, 단군 그룹에 들어가면 된다.
그럼 나이 서른이 되기도 전에 실장님 소리를 들으며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아버지가 사우전드 페이스, 어머니는 단군 그룹의 사생아란다. 그런 말이 업계에 파다했다.
혈통이 미쳤다.
혼혈이란 소문이 진짜였다.
‘……살다 살다.’
이런 특수종은 처음이었다.
오십 년을 업자로 살았다.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다 못해 두꺼운 수준이다.
불멸과 변신 혼혈, 불멸특수대 초고속 진급자, 1세대 영웅 남명진 사장의 돈줄도 이쪽이 끊었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덕분에 화림이 가난을 면치 못한다고.
그야말로 난놈이다.
그리고 그 난놈이 시원하게 일을 벌였다.
이제까지는 벌어진 일에 대응해서 이름을 알렸다면, 이번에는 작정하고 일을 터트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특수종은 대부분 단체에 속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세최특은 달랐다.
회사를 차렸다. 창업자가 됐다.
돈 때문에? 이유 따윈 모른다.
다만, 회사의 대표가 된 이후의 행보가 골때렸을 뿐.
세최특은 회사를 차리자마자, 성수동 로스트 인베이더를 다 털어 버렸다.
‘이거 완전 또라이 아니야.’
업자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는 정보의 적합성과 신뢰도를 판단하는 데 두 개의 방법을 썼다.
하나는 교차 검증.
이쪽저쪽에서 퍼지는 말을 각각 수집하는 거다.
실제로 본 사람 말도 들어 보고.
퍼지는 소문도 들어 보고.
증거도 찾고.
갖가지 수단을 동원해 정보의 신뢰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실제로 정보를 팔아먹을 때, 이러한 것들이 포함된 전자 서류를 보증서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 보증서에 자신의 이름을 찍어 파는 게 업자의 ‘정보’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발품도 많이 팔아야 하고.
두 번째는 쉽다.
확인 검증이다.
짧게 줄여서 확검.
여기서 확검은 일을 벌인 당사자가 해 준다.
그러니 쉽다는 거다.
소문의 주체가 그 소문을 인정해 주는 거니까.
“그게 출범식이라고?”
업자가 물었다.
김중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출범식.”
“그 미친 짓이?”
업자가 물었다.
김중고도 속으로는 동의하는 바였지만, 겉으로는 태연했다.
이미 벌인 일이다. 발을 굴러도 변하는 건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당당한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김중고는 고개를 다시 끄덕였다.
“네.”
“왜?”
“인베이더 죽이려고 만든 회사니까, 인베이더 잡는 거지. 왜는 무슨.”
김중고의 말에 업자가 이 새끼가 왜 이러나 싶은 눈빛을 보냈다.
다 알면서 개소리하지 말라는 거다.
그럴 만했다.
로스트 인베이더를 잡는 건 국가사업에 가깝다.
휴즈 게이트처럼 대규모 일이 터지면, 그 뒤처리에 투입되는 각 민간 기업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경찰이 다른 지역 치안을 문제로 먼저 손을 털어서 남은 건 민간 기업뿐이었고.
그러니까 수주를 받은 기업.
이 중 일부는 정부 소속이고.
다른 쪽은 기업 소속이며.
또 다른 쪽은 협회 소속이었다.
여러 가지 이권이 얽힌 일이라는 소리다.
그러니까 잡긴 잡는데, 위에서 허락이 떨어져야 한다는 거고.
꽤 큰 파이였다.
그 파이를 누가 먹느냐가 정해져야 했다.
고로 정치다.
정부와 기업, 협회의 정치.
이 정치가 끝나기 전까지는 로스트 인베이더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잘 막기만 할 뿐이었다.
관례였다.
각 단체가 정확하게 이윤을 나눠 먹기 위한 관례.
인베이더의 사체는 돈이 되니까.
사체뿐 아니라, 메인으로 이 일을 해결했다고 공표하는 단체는 그만한 영향력도 얻을 것이다.
이 외에도 이 일을 처리하며 얻는 부수적인 수입이야 널렸다.
세최특은 이처럼 여러 가지가 걸린 일에 재를 뿌렸다.
“눈치 안 본데?”
“……할 일을 한 겁니다.”
업자의 말에 김중고도 딱히 답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정공법을 사용했다.
“위험하잖아요. 인베이더가 돌아다니면.”
김중고가 말을 이었다. 속에서는 한숨이 나왔다.
광익이 놈은 정말 이런 정치 놀음을 모르고 이러는 걸까?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업자는 의뭉스러운 눈으로 김중고를 바라보다가 파핫 하고 웃어 버렸다.
김중고는 십수 년을 알고 지낸 업자 노인이 이렇게 웃는 걸 처음 봤기에 눈이 동그래졌다.
“뭐가 웃겨요?”
그 말에 업자가 허리를 펴며 말했다.
“속이 시원하잖나.”
속이 시원?
업자 할배가 말을 이었다.
“눈치 본다고, 위험하든 말든 인베이더 놔두던 놈들 다 뒤통수 맞은 기분일 테니까.”
김중고도 이 말에는 동의했다.
한국의 민간 기업은 99%가 하청 기업이다.
올드 포스나 엑스큐라시, 협회의 하청 기업.
그리고 그들은 철저하게 상부의 이익을 따라 움직였고.
본래 민간 기업의 취지는 무엇이었나.
큰 규모의 단체들이 놓칠 위험에 대한 민간인의 보호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놈이 하나도 없었다.
업자 노인은 허리를 편 김에 일어난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잠깐만 기다리라, 말하고 카운터 뒤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김중고가 어딜 가나 보고 있으니.
노인이 길쭉한 술병을 가져왔다.
입구를 밀랍으로 단단히 봉하고 겉을 두툼한 천으로 감싼 술병.
김중고는 두툼한 천 안에 있는 게 술병이라는 걸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
“그 친구 가져다줘.”
노인의 말에 김중고가 주는 술병을 받는 대신 틱- 하고 말을 뱉었다.
“내가 그렇게 한 병만 팔라고 할 때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이 업자의 별명은 주조사.
술 빚는 솜씨가 기가 막힌 사람이었다.
그것도 일반 재료가 아닌 아더 사이드 재료로 술을 빚는다.
그 술은 때로는 마약이고, 때로는 위안을 위한 한 잔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 건네준 이 물건은 주조사 노인네가 자신 있게 만든 리미티드 에디션이었다.
“밀봉해 둬서 따면 걸린다. 얌전히 가져다줘. 선물이라고.”
김중고는 끙 하고 한번 앓고는 손을 뻗어 술병을 받으며 답했다.
“뇌물 같은 거면 별 소용 없을 건데.”
“뇌물은 무슨.”
업자도 안다. 뇌물이 먹힐 인간이 아니었다.
회사 차리자마자 출범식이라고 올드포스, 엑스큐라시, 협회 세 곳의 뒤통수를 동시에 후렸다.
뒷일을 생각하는 타입의 인간이 아니었다.
“그냥 줘. 마음에 든다고.”
뇌물이 아니라, 선물이었다.
특수종 세계에 몸담은 이후, 이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관례를 이렇게 시원하게 부수는 건 처음 봤다.
통쾌했다.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피가 끓는 기분도 들었고.
그 답례다.
“뭐, 우리 대표가 좀 미친놈이긴 하니까.”
칭찬의 의미로 말한 김중고가 술병을 챙기며 입맛을 다셨다.
“먹으면 뒈진다.”
주조사 영감이 그를 보며 눈을 부라렸고.
“아, 안 먹어요.”
봉인한 방식을 살폈다.
소싯적에 자물쇠 따고, 금고 따는 거로 이름 날린 장본인이 자신 아닌가.
그런데도 이건 건드릴 수 없었다.
밀봉이 벗겨지는 순간, 향이 퍼질 거고.
그럼 누가 먼저 까먹은 게 티가 날 것이다.
하물며 유광익은 불멸자다.
조금만 느낌이 이상해도 그 위화감을 알아챌 것이다.
‘아쉽네.’
김중고는 입맛만 다실 뿐이었다.
* * *
“허, 이놈 봐라.”
단군 그룹의 회장, 강노석은 혀를 찼다.
당황, 황당, 이런 감정을 느껴 본 게 언제인지.
잠시 말문이 막힐 정도다.
손주 놈 때문이었다.
도와준대도 싫다고 하고.
출범식 하면 자신이 몸소 가 준다고 했더니, 아직 일용직을 쓸 생각이 없다는 이상한 소리를 해댄 손주 놈.
그 결과가 이거였다.
“이게 출범식이라고?”
출범식이라고 하더니, 세 개 단체가 엮인 곳을 뒤집었다.
엄청난 이득이 엉킨 곳은 아니다.
원한다면 성수동 일대 이득 따위야 힘으로 밀어붙여 꿀꺽 삼킬 수도 있다.
지금 차린 회사가 제 손주의 회사였고.
자신이 밀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리 정리된다면 그럴 수 있었다.
다만, 이 모든 건 손주가 자신의 밑에 있다는 걸 인정할 때의 얘기인데.
그놈은 그럴 생각이 개미 똥만큼도 없어 보였다.
‘이놈의 새끼가.’
절로 광익의 얼굴이 떠오를 참이었다.
“반발이 있을 것 같습니다. 회장님.”
아들놈이다.
정확히는 아들 둘.
한쪽은 유광익을 가까이에서 본 이긍낙.
다른 쪽은 강슬혜와 같은 어머니를 둔 강호응이다.
그중 호응이 한 말이었다.
“그러겠지.”
회장이 소파에 몸을 묻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나 예상할 문제였다.
“우리 쪽에서 일을 주는 건 피하시는 게 맞습니다. 이사진 쪽 반발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호응은 강슬혜와 같은 피를 이었지만, 성격은 반대다.
슬혜는 감정적이고 호응은 이지적이다.
호응은 맞는 말만 했다.
이긍낙은 좀 달랐다.
“몰래 도와줄까요?”
나쁘게 말하면 철이 없고, 좋게 말하면 파격적이다.
“그룹 내에 여우 같은 이들이 한둘인 줄 아나?”
호응이 말했다. 나무라는 투였다.
긍낙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걸리면 모른다고 하지 뭐.”
“그리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호응이 고개를 저었다.
둘의 눈이 회장에게 향했다.
결국, 회장이 결정할 문제였다.
“그냥 놔둬.”
회장은 고민 따위는 1초도 하지 않았다.
둘의 입에서 나온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그룹에 들어오라고 했더니 손주가 자신에게 뱉은 말이 불현듯 떠오른 게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싫어요.”
짧고 명쾌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귀엽다. 치기 어린 젊음이 돋보인다. 멋모르기에 이럴 수 있을 테니.
부딪히고 깨져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국내에서 단군 그룹에 손을 안 벌리면 과연 어디서 손을 벌릴 수 있을까?
협회? 이번 일에서 가장 이득을 볼 곳이 협회였다.
그들이 NS 출범식에 가장 큰 피해자였다.
회장의 생각이 맞았다.
같은 시각, 같은 정보를 들은 협회 쪽은 반응이 더 화끈했다.
“아니, 시발, 세최특이고 뭐고 띄워 주니까 눈에 뵈는 게 없나. 이 새끼한테 일 주면 다 뒈진다고 전해라. 경찰이고 뭐고 다 일 주지 말라고!”
협회 간부가 화를 냈다.
그게 곧 협회장과 전체의 뜻이었다.
경찰 쪽은 협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곳이다.
어쩔 수 없었다.
경찰청장 강만추도 고개를 내저었다.
이번 일에는 자신도 도리가 없었다. 최소 몇 달은 숨죽이고 지켜볼 수밖에.
기업이 먹고 살려면 일을 해야 했다.
그 일이 없으면 가지 돈 까먹는 게 회사다.
길어야 1년.
경찰청장은 유광익의 회사가 1년 뒤에는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 *
“이제 어디도 우리한테 일 안 줄 건데, 그거 나한테 따지면 안 돼.”
중고 형이 술병을 건네며 말했다.
“너 생각은 있는 거지? 월급 밀리고 그러는 거 아니지?”
출범식 거하게 성공했는데 왜 이렇게 걱정이 앞서는 건지.
“알고 그런 거지?”
중고 형이 건네 술병을 받았다.
어찌나 잘 막혔는지 향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변신족의 후각으로도 향을 맡을 수 없는 봉인.
이걸 만든 사람이 얼마나 고심하고 노력했는지가 보인다.
“뭘요?”
“우리 일을 해야 한다고.”
“해야죠.”
“일은 누가 주는데?”
반쯤 울상이다.
“누군가 주겠죠.”
그런 중고 형을 보고 말했다.
놀릴 생각은 아니다.
진짜 날 못 믿는 건가 싶어서 그리 말했다.
중고 형은 날 보고 몇 번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
“너 계획이 있구나.”
뭐, 사실 있지만, 아무한테도 말은 안 했다.
중고 형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그리고 우리 사이로 침묵이 흘렀다.
짧은 침묵 끝에 내가 물었다.
“안 나가요?”
사옥 내부, 내 집무실이다. 그러니까 내 개인 공간.
“그거 안 마셔?”
“네.”
말하고 내보냈다.
손에 들고 흔들어 보니 나눠 마실 양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