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출범식
특수종의 세상이 된 뒤, PMC 민간군사기업은 수없이 많이 생겼다.
돈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는 법이었다.
그리 만들어진 기업 대부분은 뒷배, 배경, 빽이 있었다.
올드포스, 엑스큐라시, 협회.
세 개의 단체 중 하나와 끈이 닿지 않고서야 시작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그 덕분이었다.
민간군사 기업이 문을 열 때 출범식을 갖는 건 일종의 관례였다.
이 출범식의 목적은 보통 세 가지였다.
그 첫째가 인맥 자랑이다.
정부가 그 뒷배라면 정부 고위 관료나 군대, 경찰 쪽 간부가 오고.
엑스큐라시라면 기업 소속이.
협회라면 협회 쪽 인물이 온다.
단군 그룹 자회사 부장이 오는 것과 본사 소속 이사가 오는 건 꽤 격차가 있는 일이니까.
회사의 낯을 세워 주는 거다. 그래서 인맥 자랑인 거고.
출범식에서 제일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인맥을 확인하는 건, 앞으로 이 회사가 그쪽 라인에서 일을 수주받아서 하겠다는 증명이니까.
두 번째는 체급 측정이다.
별것 아니다. 회사 규모가 이렇다는 걸 보여 주는 거다.
회사의 목적이 다 같지는 않으니까.
전투 가용 인원을 최소한으로 두어 정보를 사고파는 이들도 있고.
그 반대로, 소위 ‘무투파’라 불리는 기업도 있는 법이다.
역으로 일반인 경호를 중점으로 두는 곳도 있고.
특수종의 세상 이후, 일반적인 민간군사 기업은 그 역할과 의미가 많이 변했다.
세 번째는 경력 자랑이다.
이것도 핵심이다.
결국, 이 회사의 오너가 누구냐고 말하는 거니까.
유일 여단 출신의 경호 업체 사장.
행안부 정보부서에서 퇴사한 정보 업체 사장.
사장의 경력을 통해 회사의 색을 보여 주는 거다.
앞으로 이 회사가 어떤 일을 할 거라는 통보이기도 했다.
이런 회사 출범식이 관례로 정착된 게 십 년이 넘었다.
“가죠.”
난 그 관례를 사뿐하게 지르밟기로 했다.
굳이 의도한 건 아니었다.
인맥 자랑이라.
부르면 단군 그룹 회장님부터, 대통령까지도 올 것 같긴 하지만.
그거 자랑해서 뭐하겠냐고.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체급 측정은 더 의미가 없고.
나도 내가 앞으로 뭘 더 할지 모르는데 체급은 무슨.
마지막 경력은 이 출범식을 통해 보여 줄 작정이었다.
왼손에 기생 라이플 완갑, 허리에 아다만티움 정글도, 와이어 나이프와 쓰로잉 나이프 여덟 자루를 전투 조끼에 끼웠다.
4번 타자와 권총 두 자루, 기관단총 한 자루.
개인 무장 완료다.
전투 직전의 복장이었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어머니도 딱 달라붙는 경량 방호 슈트 위로 조끼에 정강이 보호대, 완갑까지 풀 세트 착용이었다.
삼촌을 달달 볶아서 받은 새로 나온 전투 슈트라고 했다.
자동 연발 샷건 하나 허리에 두르고, 허리춤 탄입대에 탄 수십 발을 꽂아 넣은 걸 보니, 든든함을 넘어서 아찔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 무장한 걸 본 게 처음이다.
어머니는 부엌칼 하나만 들고도 살벌했었다.
“오랜만이네. 두근두근한걸.”
어머니의 얼굴에 홍조가 피었다.
신이 난 얼굴이었다.
요 바로 앞이 일전 휴즈 게이트로 인해 로스트 인베이더가 숨은 곳이다.
그러니까 성수동.
내 출범식은 그곳을 치는 거로 하기로 했다.
“이거 진심이지?”
중고 형이 물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지금 여기 무장하고 모인 사람 안 보입니까.
“네.”
마음을 담아 답했다.
“……괜찮을 겁니다.”
옆에서 스티븐 최가 중고 형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게 보였다.
“그러겠지, 그냥 뒤처리할 게 걱정이라 그러지.”
“업보라고 생각해야죠.”
중고 형과 스티븐 최의 눈이 마주쳤다.
둘은 손을 맞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위하는 걸 보니, 아주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의형제를 맺을 기세다.
언제 저렇게 죽이 척척 맞을 정도로 친해졌는지.
“정직이랑 장미는 쉬고.”
거기에 비전투원인 중고 형과 스티븐 최를 빼면 나갈 사람은 총 여섯이었다.
나와 어머니, 과외 선생 세트, 마리와 팬더 형까지.
“오래 끌 것 없으니까, 빨리 해치우고 회식이나 하죠.”
1층 로비 앞에서 모였다. 아직 사람이 오가지 않으니 공기가 차가웠다.
움직여서 몸을 덥히기 딱 좋은 날씨다.
유리문 손잡이를 잡으며 청소업체도 고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참이었다.
“몸 약한 사람은 빠져야 하는 거 아니니? 괜히 다치고 그러면 손 가는데.”
뒤에서 통나무 선생님이 말했다.
본명은 장가희.
화랑 출신, 어머니가 국내에서 갱생 마녀로 이름을 날렸다면, 이쪽은 국외에서 이름을 날렸다.
특수 작전 경험이 백여 회가 넘는 괴물 중의 괴물이라는 게 어머니의 말이었다.
한때 ‘악마’라고 불렸다는데, 그 이유는 듣지 못했다.
하여간 그 통나무 선생이 말했고, 그 말에 발끈한 사람이 있었다.
“뇌까지 근육으로 찬 짐승은 작전 수행 능력이 떨어진다는 거 알고 있겠지? 방해되니, 빼고 가도 나쁘지 않을 거다.”
떡하니 팔짱 낀 주일호, 작대기 선생이 말했다.
사람다운 옷은 입혔지만, 수염은 깎지 않아서 여전히 자연인의 모습이 남았다.
도심을 사랑하고 자신한테는 빌딩 숲이야말로 휴양림이라는 통나무 선생이 미소를 보였다.
“바퀴벌레.”
그건 인신공격인데.
“강간범.”
작대기 선생도 무심히 답했다.
아우, 그것도 좀.
변신족이 전부 강간하거나 싸움에 미친 건 아니거든요.
본능 컨트롤이 문제이긴 한데, 네, 적어도 여기에는 그런 변신족이 없습니다.
실험체 출신 둘, 팬더 형과 마리는 변신족이라는 자각은 있지만, 종족에 관한 자부심은 있지 않았다.
둘을 멀뚱히 바라볼 뿐이었다.
어머니는.
“실전 오랜만인데, 나 녹슬지는 않았겠지?”
둘을 신경도 안 썼다.
그리고 녹이 슬긴요. 그동안 아들 후려 팬 솜씨의 반만 보여도 충분합니다. 어머니.
“네, 절대요. 방금 막 갈아 둔 칼처럼 날카로울 겁니다. 어머니.”
답하고 시선을 돌렸다.
과외 선생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엉켰다.
스파크가 튀는 것 같았다.
둘은 서로를 노려보며 걸었다.
난 잡고 있던 문을 양쪽으로 활짝 열었다.
그런 나를 사이에 두고, 선생 둘이 좌우로 갈라졌다.
“팀으로 움직일 건 아니겠지?”
왼쪽에서 작대기 선생이 물었다.
“네, 뭐.”
로스트 인베이더는 휠 나이트, 리빙 아머 같은 놈들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잘 숨는, 고블린이나 바운스 같은 놈들이지.
그것도 소수다. 무리를 이루면 진즉에 처리됐을 테니, 남은 건 요리조리 잘 숨은 놈만 남았다.
일반인에게는 위협이지만, 특수종 그것도 전투력을 입증한 이들에게는 손쉬운 상대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도 흩어져서 일을 벌일 생각이었다.
“오늘 내에 끝내는 거로 하자.”
오른쪽에서 통나무 선생이 말하고 발을 뗐다.
툭툭 답도 기다리지 않고 길을 나선다. 타이밍 좋게 신호등이 바뀌었다.
통나무 선생은 그대로 건널목을 건넜다.
“그래, 그럼 엄마도 알아서 한다.”
어머니는 둘이 보이지 않는 듯 말하고 훌쩍 먼저 떠났다.
땅을 박차고 벽을 차고 꼬마 빌딩 옥상으로 올라가더니, 폴짝폴짝 건물 위를 뛰어갔다.
가볍고 역동적인 움직임이었다.
“……저 두 분은 원수인가요? 이곳이 외나무다리인가요?”
마리가 물었다.
얘는 요새 책을 읽는다고 하더니, 무슨 책을 읽는 걸까.
“무협지 읽더라. 마리.”
옆에서 팬더 형이 말해 줬다.
“네. 아니야, 원수, 저건 그러니까.”
난 팬더 형에게 답하고 마리를 향해 입을 열다가 멈췄다.
마리는 순진하다. 난 돌려서 표현할 필요를 느꼈다.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
“원래 남녀가 서로 경계하다 보면 날 선 말이 오가기도 해. 저건 그러니까, 친해지는 과정이야.”
“그렇군요.”
마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녀 일은 모르는 거다. 저러다 둘이 응? 알지? 썸 탈 수도 있고.”
“연애 고자 나셨네.”
내 설명을 들은 팬더 형이 말했다.
그 말에 위화감을 느낀 내가 되물었다.
“그럴 땐 보통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연애 박사 나셨네,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 너 연애 고자 맞잖아.”
이걸 뭐, 틀렸다고 할 수도 없고.
날 놀린 팬더 형은 낄낄 웃다가 움직였다.
“대표가 부려 먹으니 직원은 일하러 갑니다.”
“열심히 좀 하시죠. 기왕 나오신 거.”
팬더 형을 그대로 놔두면, 분명 어디서 고블린 한 마리 잡고 슬금슬금 걸어 다닐 것 같았다.
“하여간 마리야.”
“네, 남녀. 알겠어요. 마리는 거기에 관심을 두지 않겠어요. 마리 관심은 여기에 있어요. 오늘 제 도끼에 드디어 피를 먹일 수 있는 걸까요?”
마리가 수줍게 웃으며 제 도끼를 쓰다듬었다.
그 대사랑 행동과 표정이 몹시 안 맞는다. 동생아.
그런 표정은 애착 인형이나 쓰다듬으면서 해 주렴.
“인베이더 피를 먹기야 하겠지.”
“그럼 마리도 가겠어요. 오라버니도 부지런히 때려죽이도록 하세요. 협객 마리가 갑니다.”
마리는 뛰었다. 약간 흥분한 거로 보였다.
일전 휴즈 게이트 이후로 애가 쉽게 트랜스 상태에 빠지는 것 같은데.
그래도 큰 문제는 없을 거다.
본능 컨트롤이 되지 않을 애라면 애초에 어머니가 밖으로 내보내지도 않았을 테니.
그나저나, 회사 차려서 사람 모아 놓고 보니까 어째 상태가 좀.
“안 가? 대표라고 벌써 놀고먹을 생각이야? 아니면 설마, 다 보내 놓고 날? 이 타이밍을 노린 건가?”
뒤에서 로즈가 짖었다.
“뭘 노려요? 설마, 형님이 그런 수준 이하의?”
로즈와 말을 나누는 정직이의 목소리도 들렸다.
둘이 같이 짖었다.
“형님, 해명하십시오.”
난 심각하게 고민했다.
회사 전면 출입구에 개 조심이라고 써 놔야 하는 걸까?
왜 애들이 자꾸 짖나.
걸음을 뗐다.
인베이더나 잡자. 놈들을 때려죽이다 보면 괜찮아질 일이었다.
내 회사 출범식이기도 하고.
들어가는 길에 라인을 쳐 둔 경찰이 길을 막기에 말했다.
“공식 작전 요청서, 여기요.”
“NS요? 처음 들어 보는데.”
신입으로 보였고 특수종도 아니었다.
그는 의무에 충실했다.
“새로 만들었어요.”
“언제요?”
“한 2주 전에?”
“에?”
황당해하는 신입에게 물었다.
“문제라도?”
“아뇨, 없습니다. 들어가시죠.”
경찰의 뒤로 선임자로 보이는 작자가 다가와 몇 가지 물어봤다.
거리낄 것 없이 답해 주고 작전 지역 안으로 들어섰다.
호흡을 참고 감각을 열었다.
개별 전투력이야 변신족이 우월하다지만, 이런 상황에선 불멸자의 힘이 훨씬 유용하다.
골목이나 반파된 건물 사이사이, 드론이 떠다녔다.
정찰용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내 회사 말고 다른 회사에서 나온, 로스트 인베이더를 처리하는 이들의 드론.
드론의 소리를 지우고, 사람 숨소리도 지우고.
그러자 내 귀에 그르륵거리는 소리가 잡혔다.
발을 뗐다.
“음?”
그런 날 누군가 알아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근처 건물 옆에서 드럼통에 불을 피우며 손을 쬐던 특수종이였다.
“세최특?”
그가 중얼거렸고.
그 소리를 뒤로 두고 난 뛰었다.
그르륵거리는 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꽤 빨랐다.
내달리자, 골목 사이에서 뛰는 눈먼 개가 보였다.
눈 대신 후각이 발달한 인베이더.
뛰며 내달린다. 침을 흘리며 사납게 그르릉거린다.
난 달리는 속도 그대로 4번 타자를 휘둘렀다.
통짜 아다만티움으로 만든 총은 훌륭한 흉기가 될 수도 있었다.
뻑.
곧 머리통이 깨진 눈먼 개가 골목 벽으로 튕겨 나갔다.
퍽하고 벽에 부딪힌 눈먼 개의 몸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일단 한 마리.
난 다시 감각을 열었다.
다음 타깃을 찾을 때였다.
찾는 게 일이지, 싸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다음은 고블린을.
다음은 바운스 다섯 마리를.
중간에 헬 페어리도 두 마리 잡았다.
내키는 대로 움직였고, 들리고 보이는 족족 잡았다.
“어어, 여기 우리 구역인데. 너 뭐야?”
막 바운스를 잡았을 때, 뒤에서 누가 물었고.
난 요청서를 보여 줬다.
“나도 공식 허가받고 온 건데.”
“아니, 이거 잡으면 정부 포상금 나오는 거, 세최특?”
말하다 말고 날 알아보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불만 있으면 회사로 와요.”
회사 주소 불러주고 다시 뛰었다.
오늘 내로 이 구역 로스트 인베이더를 싹 쓸어버리려면 바빠 움직여야 했다.
“어? 아니, 근데 이러면.”
뒤에서 중얼거리는 소리는 무시했다.
막 기척을 잡아채 건물 잔해 사이에 숨은 오크를 발견한 참이었다.
뛰면서 나이프를 던졌다.
날아간 나이프가 오크의 머리통에 꽂혔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머리가 뒤로 크게 젖혀졌다가 앞으로 튕기며, 부서진 콘크리트 잔해에 부딪혔다.
죽었다.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저녁 6시까지.
난 장장 한 달 가까이 해결되지 않은 로스트 인베이더를 하루 만에 해결했다.
NS의 출범식이었다.
지나다가 묻는 모든 사람에게 말해 주기도 했다.
“이게 우리 회사 출범식입니다.”
이렇게.
반응은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