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219화 (219/488)

219. 고구마와 오이소박이

같이 일하자고 했지만, 거절하면 어쩔 수 없었다.

삼고초려까지 할 생각은 없고.

앉은 자리에서 세 번 물어보는데도 안 한다고 하면 뭐, 어쩔 수 없는 거지.

난 단순하게 생각했다.

능력 아깝고.

할 일 없어 보이고.

힘이 남아도는 것 같고.

요즘에도 무슨 가면 쓰고 인베이더 잡으러 다니기도 하고.

일전에 나 도와주러 화림에 오기도 했고.

이후 금세 사라지긴 했지만, 이게 다 세상일에 관심이 있다는 거 아니겠나.

그래서 속사정 따위는 찾아보지도 않고 왔다.

“내가 왜 산속에 사는지는 알고?”

화목 난로 구멍에 부지깽이로 쓰는 쇠꼬챙이를 쑤셔 넣고 뒤적거리자, 연기가 크게 퍼지더니 죽어 가던 불꽃이 살아나며 화르륵 타올랐다.

난로를 계속 때려면 나무를 더 넣어야 할 듯했지만, 선생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불꽃이 살아나 넘실거리는 불이 붙은 숯이 된 나무를 바라볼 뿐이었다.

까만 숯에 불이 붙어 탄다. 연기가 위로 솟았다.

“모르는데요.”

몰랐다.

진심으로.

아버지에게 이 양반이 산속에서 다람쥐와 친분을 나누며 사는 이유를 물어볼까 했지만, 안다고 딱히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았다.

아버지한테 묻는다 해도, 사람 속내까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그걸 듣는다고 해서 내가 무슨 심리상담사도 아니고 작대기 선생, 본명이 주일호라는 한때 내 과외 선생의 속을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다.

이력만 알았다.

본래 출신은 유일 여단의 간부.

군대에서 행안부 특임대로 이적, 몇 년 뒤 다시 불멸특수대로 재직.

이후 산속에서 자연인으로 전직이다.

쇠꼬챙이를 한쪽에 세워 둔 선생이 말이 없기에 내가 덧붙였다.

“연봉이 마음에 안 들어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내 말에 선생의 눈이 나에게로 향했다.

물론 농담이었다.

“혹시 CC였다가 깨졌습니까? 그럼 가능하지, 낯부끄러운 거 잘 못 참고 그러는 거죠?”

“CC가 뭐냐?”

“컴퍼니 커플이요.”

킹능성 있다. 대학 가면 그렇게 휴학하는 사람이 많고, 회사에선 이런 이유로 이직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더라.

“넌, 무슨 생각 하고 사냐?”

“오늘 저녁은 뭐 먹을까 생각합니다. 고구마 직접 재배한 건 아니죠? 맛있네요?”

고구마를 마저 까먹으며 말했다.

그런 날 물끄러미 바라보던 선생이 물었다.

“회사 차렸다고?”

“네. 이름은 NS, 주식회사 규격 외라고 지었죠.”

호호 불어 가며 고구마를 씹어 삼켰다. 입에서 살살 녹았다.

“회사는 왜?”

이 양반, 진짜 몰라서 묻는 건가.

난 눈을 깜빡이며 선생을 보다가 물었다.

“선생님은 고구마를 왜 사서 구웠습니까?”

“뭐?”

“대답해 보세요.”

“구워 먹으려고.”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는 듯 묻는 얼굴이기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저도요.”

작대기 선생이 눈을 깜빡인다.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구워 놓은 고구마를 순삭했다.

더 먹을 게 없었다. 검댕이 묻은 손을 탁탁 턴 뒤에 바닥에 널브려 놓은 은박지를 잘 구겨서 쓰레기 봉지에 담았고, 선생을 보며 말을 이었다.

“회사를 왜 만들겠습니까, 내 마음대로 일하면서 돈 벌려고 만들지.”

창업을 왜 하는가.

국가에 이바지하고 국가 경제를 이룩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미친놈이 어디 있나.

상사가 아니꼬운데, 이 새끼가 내 공적을 가로채기까지 해, 근데 일은 내가 더 잘하는 것 같단 말이야.

그럼 창업하는 거다.

아니면 ‘이거면 돈을 왕창 벌 수 있다’ 싶은 확신이 드니까 덤비는 걸 수도 있지.

나라고 크게 다를까.

나도 같다.

바닥을 거의 정리할 때쯤.

“……넌 또라이야.”

선생이 그리 말했다.

난 그 말투에서 호의와 긍정의 힘을 느꼈다.

“그 말은 같이 하겠다는 거죠?”

“얼굴에 묻은 검댕이나 닦아라.”

말하며 선생이 일어났다.

난로 안의 불이 스러졌다. 꺼진 불을 다시 때우진 않았다. 선생은 그대로 하산할 준비를 했다.

난 얼굴의 검댕을 닦으며 말했다.

“고구마 사 온 거면 좀 어디서 살 수 있을까요? 진짜 맛있는데.”

“……뒷집에서 텃밭 농사하시는 분이 나눠 준 거다.”

“아, 그래요?”

근데 왜 그거 말하면서 쭈뼛거리는 것 같냐.

난 결국 고구마를 구하러 갔다.

그곳에서 한 쉰쯤 되어 보이는 귀농한 돌싱녀가 있었다.

한눈에 봐도 우리 작대기 선생을 보는 눈이 남다른 그런 귀농 돌싱녀였다.

이 양반 산속에서 살면서 할 건 다 하고 살았네, 간간이 연애도 하셨어. 자연인이 아니라 세속인이셨어.

“고구마 다 살게요.”

텃밭에서 나온 고구마가 대략 50kg쯤 됐는데 전부 샀다.

그동안 우리 작대기 선생 돌봐준 기념이었다.

* * *

주일호는 광익을 보며 생각했다.

‘이건 또라이야.’

수없이 했던 생각이다.

불멸자의 피와 변신족의 피를 이은 세기의 혼혈, 세최특이란 별명의 제자.

젊은 시절 주일호는 군대, 행안부, 불특대, 세 곳에 몸을 담았고 실망했다.

“왜 인류를 위해 싸우지 않는 겁니까?”

그리 반항하기도 했다.

불멸자는 쉬이 죽지 않는다. 그러니 희생해서라도 싸워야 한다.

그리 생각했다.

인류를 위해서 희생해, 유토피아를 만드는 것.

“왜 테러 단체와 싸우지 않습니까?”

젊은 날의 치기였다.

반항심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능력을 십분 활용하게 해주지 않는 딱딱한 구조를 원망한 걸지도 모르고.

정확한 이유는 주일호 자신도 몰랐다.

흘러가다 보니 이리됐을 뿐.

광익에게 회사로 뭘 하냐고 물었을 때, 광익이 앞으로 인류를 위해 싸우겠다고 했다면, 그랬다면.

‘따라나섰을까?’

안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광익은 그러지 않았다.

돈을 위해서라고, 멋대로 살면서 잘 먹고 잘살고 싶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그 말이 치기로 느껴지지 않았다.

진짜 그럴 것 같았다.

아니꼬운 놈 때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곳 부수며 그리 나아갈 것 같았다.

그래서 절로 궁둥이가 들렸다.

따라나서야 했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고 싶었다.

생각만 해도 통쾌했다.

젊은 날의 자신이 하지 못했던 걸 하는 놈이다.

그래서 또라이고.

테러 단체를 부수고 휴즈 게이트에 맞서고.

이런 놈이 또 어디 있을까.

“거기 가면 애들 좀 가르쳐 주실래요? 데려온 애가 있는데 제가 가르치다가 영 답답해서.”

“그러지.”

생각 와중에 들려온 말이다.

주일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창밖으로 풍경이 지나간다.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중이구나.

그것도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화려할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주일호, 은퇴하기 전 팬텀과 쌍벽을 이뤘던 불멸자의 귀환이었다.

* * *

“오랜만이네요.”

강슬혜는 침착하게 말했다.

흥분하지 말자고 그리 수없이 되뇌며 왔다.

남편의 조언도 있었다.

“마음 가는 대로 해. 난 네 편이니까. 꾹 참고 억지로 뭘 할 필요는 없어, 그렇다고 후회할 일은 하지 말고.”

서로 비밀을 공유한 뒤로 사이가 더 오붓해졌다.

낮에는 서로를 보는 눈빛이 더 따스해졌고, 밤은 더 뜨거워졌다.

스무 살이 넘은 아이를 둔 부부답지 않은 요즘이었다.

남편을 생각하니, 아버지를 봐도 그리 화가 불쑥 솟아오르진 않았다.

“복귀해라.”

아버지는 변한 게 없었다. 한결같았다.

본론만 불쑥 말하는 화법도 그대로였다.

“어디로요?”

“어디겠냐? 회사로 와야지.”

뒤편에 선, 경호원이자 친구인 아저씨가 보였다.

그 눈에 어린 호의와 웃음기가 보였다.

자신에게 ‘갱생 마녀’란 별명을 붙여 준 사람이었다.

“이제 와서 돌아온다면 성씨 다른 형제자매가 잘도 좋아하겠네요.”

흥분하진 않았어도 말이 부드럽게 나가진 않았다.

제 말에 아버지가 호오- 하고 놀란 입 모양을 해 보였다.

“그런 걸 신경 쓰는 거냐? 불멸자 놈이랑 살다 보니,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

말하며 아버지가 웃었다. 뭐라 답하기도 전에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싸워서 쟁취해라. 그게 변신족답지.”

“됐어요.”

“광익이는 저대로 놔둘 생각이냐? 회사? 좋지, 소꿉놀이로 저만한 것도 없다. 원하면 계열사 하나로 자리 잡는 것도 나쁘지 않고. 그러니까 회사로 들어와라, 아들에게 힘이 되어 줘.”

아버지가 말했다.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시간이 흐른 만큼, 자신이 변한만큼, 아버지도 변했다.

“생각해 봐라.”

자기 생각을 더 밀어붙이지 않았다. 예전과는 달랐다.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는 뒤로, 아버지가 불렀다.

“슬혜야.”

부름에 발을 멈춰 고개를 돌렸다.

“더 예뻐졌구나.”

무표정한 아버지의 말에 강슬혜는 울컥하고 치솟는 게 있었다.

집을 나왔다고 해서 아버지가 아닌 건 아니다.

어머니의 성을 따르게 한다고 해서 그가 정이 없다는 건 아니었다.

어릴 때의 아버지는 그저 아버지였다.

목말을 태워 주고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어 주는 그런 아버지.

“다음에는 불멸자 친구도 같이 보자.”

사위란 말이 입에 익숙지 않아 보였다.

“네.”

강슬혜는 답하고 돌아섰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반쯤 결심했다.

회사로 돌아가자고.

그래서 아들에게 힘이 되어 주자고.

비상하는 아들의 날개를 받치는 바람이 되어 보자고.

그리 생각하며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여전히 아들을 찾는 기자 집단이 득실득실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에게 다가오진 못했다.

“더 접근하면 경호 수칙에 따라 행동하겠습니다.”

그룹에서 보낸 경화 회사, 리얼 가드 직원의 말이다.

“함부로 사진 찍고 기사 내보내면 우리가 찾아갑니다.”

그 옆에는 그룹에서 보낸 법무 회사 발해의 직원도 함께였다.

기자들이 입을 다물었다.

집에 들어가 저녁 준비를 하고 아들이 돌아왔다.

“일찍 왔네?”

평소와 같이 반겼다.

“네, 일이 잘 끝나서 서울 들어오는 길이 막히기 전에 왔지요.”

“어디 갔다 왔는데?”

오이소박이를 하려고 양념을 준비하며 물었다.

부추, 당근, 양파, 새우젓, 까나리 액젓, 소금, 설탕, 다진 마늘, 고춧가루.

간을 보니까 딱 좋았다.

칼을 들고 오이를 벤다. 변신족의 힘을 숨길 이유가 없으니, 단숨에 적절한 두께와 크기로 오이를 자른다. 달인의 솜씨였다.

“오이 써는데 뭘 그렇게까지 해요?”

아들이 물었다.

“버릇이라.”

현역에서 물러난 뒤로도 몸을 단련하는 걸 멈춘 적이 없었다.

“어머니, 부탁이 있어요.”

요리대 너머, 식탁에 앉아 자신을 마주 본 아들이 말했다.

“무리한 부탁이면 유료다.”

평소와 같은 농담이었다.

“이제 저도 다 컸고 마리도 손 탈 나이는 아니잖아요?”

“으응.”

오이를 다 썰고 양념에 버무리며 답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나.

“그러니까 제게 힘이 되어 주세요.”

그 말에 움직이던 손이 멈췄다. 버무리던 오이가 반쯤 양념에 묻은 게 보였다.

안 그래도 회사로 돌아가려 했었다. 아들이 먼저 부탁하는 걸지도 몰랐다.

“입사해 주세요.”

아들이 말했다.

“유료라고 했는데.”

말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와중이다.

다시 양념을 버무렸다. 십자 모양으로 다 자르지 않고 모양을 낸 오이소박이 사이로 양념을 묻혔다.

아들이 말을 이었다.

“우리 회사에요.”

“우리 회사?”

다시 손이 멈췄다.

고개를 들어 물으니.

“네, 제 회사요.”

“단군 그룹 아니고?”

“……거길 왜 가요? 스카우트 제의 들어왔어요? 어머니, 아들과의 의리를 지키시죠. 아니, 그쪽은 아버지와의 의리인가. 고민되시면 어쩔 수 없는데.”

“단군이 배경이 되는 게 편하지 않니?”

말을 자르며 물었다. 아들이 당황한 듯했다.

농담이 섞이지 않은 물음에 아들이 답했다.

“있으면 좋죠.”

그러니까 하는 말이다.

엄마가 거기에 들어가면 네가 몇 배는 편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 말하려는데.

“그래도 됐어요. 없으면 뭐 마는 거고.”

“음?”

“딱히 필요하진 않다고요.”

이걸 당당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뭘 모른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뭘 모른다고 하기에는.

“난 우리 아들 믿어.”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얼마 전에 자신도 그리 생각했다는 걸 떠올렸다.

아들은 다 컸다.

“유료, 연봉 잘 챙겨 드리겠습니다. 지분도 좀 드릴 거고요.”

“알았다.”

“네?”

“알았다고.”

말하며 오이 한쪽을 쭉 뜯어 들었다.

“간 볼래?”

아들이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우적우적 씹더니, 엄지를 치켜든다.

“크, 식당을 차리셔야 하나.”

극찬이었다.

“현관에는 뭐니?”

아까 들어올 때, 뭘 주섬주섬 들고 오는 기척을 느꼈다.

“고구마요. 맛있더라고요.”

“어디서 가져온 건데?”

뜬금없이 고구마라니.

아들은 자신을 빤히 보더니 답했다.

“음, 과외 선생님 전여친한테서 사 왔어요.”

이건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아들은 다 생각이 있다는 걸.

자신을 데려온 것도.

그리고 그 남편의 후배, 불멸자 과외 선생을 데려온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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