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 오늘부터 전 건물주입니다.
광변환 친구가 있다는 곳은 작은 쪽방이었다.
주인집 곁에 붙어 있는 작은 셋방.
사람 하나 지나갈 만한 철제문을 열고 좁은 길을 따라가니 방문이 보였고.
난 방문을 발로 걷어찼다.
꽝.
부서진 문 안, 막 컵라면 안으로 나무젓가락을 집어넣는 광변환 친구가 보였다.
쪼개진 문 파편이 라면 안으로 떨어졌다. 저 라면을 먹긴 그른 거다.
물론 문 파편이 떨어지지 않았어도 얌전히 먹게 두지도 않았을 터였다.
“여어.”
반가움에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네자마자.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초능 특수종이 곧바로 능력을 발동했다.
그러니까 전신에 빛이 어리기 시작한 거다.
예상한 바였기에 난 무릎보다 높은 시멘트 문턱을 한달음에 뛰어 넘어가 관자놀이 부근을 손등으로 툭- 때렸다.
겉보기에는 장난치듯 때린 것 같지만, 뇌를 흔드는 일격이었다.
맞은 친구의 동공이 가볍게 풀렸다가 돌아왔다.
머리를 흔들어 놓으니, 능력 발동은 당연히 실패였고.
그러자 이 친구는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태세 변환이 놀랍도록 빨랐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뱉은 말이 구구절절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다.
한때 사수였던 정아 누나는 가족을 테러리스트에게 잃었고.
팬더 형과 마리는 실험체였다.
물론 이쪽도 사정이 있을 터였다.
저 구구절절한 사연과 별개로 말이다.
“돈이, 돈이 필요했습니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하는 말에 진실성이 엿보였다. 물론 엿보이기만 했다.
불멸자만큼은 아니지만, 얼굴도 곱상한 편이다. 귀여운 외모다.
눈도 크다.
그 큰 눈에 눈물이 맺힐 듯 말 듯 했다. 비운의 주인공을 보는 기분이었다.
감각을 북돋웠다. 감각 집중이다. 공항에서 기남을 보고 배운 뒤로 부지런히 잘 써먹는 감각 컨트롤 기술을 놈에게 적용했다.
상대의 손짓, 호흡, 동공의 떨림, 눈알의 움직임, 난 모든 걸 눈에 담은 뒤에 결론을 내렸다.
이건 거짓말이라고.
유심히 보지 않으면 안 보인다. 때론 이런 사람도 있다. 능력과 별개로 타고난 재능이 이런 사람.
만약 연기자의 길로 나갔다면 할리우드까지 진출할 대배우가 됐을지도 몰랐다.
뭐, 그것도 다 자기가 뜻이 있어야 하는 법이지만.
방 한쪽에 놓인 4번 타자와 정글도가 눈에 들어왔다.
수레에 싣고 튀었다고 했지만, 그동안 팔려고 부단히 노력했을 터였다.
그러면 일단 근력은 합격이고.
그때 저격수로 전장에 참여한 걸 보면, 제 능력과 별개로 저격 능력도 갈고닦았다는 소리다.
돈 벌어서 총질 훈련을 했다는 거지.
따로 속해 있는 회사가 없다면, 결국 모든 실탄 사격은 돈으로 해결했을 테니까.
제 능력 신장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말과 같았다.
좋은 마인드였다.
무엇보다 능력이 탐난다.
지금도 틈만 나면 몸을 광변환해서 튀려고 하지 않나.
저 변환 능력.
초능에서도 아주 드문 능력 중 하나다.
전신에 불을 붙이는 특수종도 있고, 입김으로 급속냉각을 하는 특수종도 있다.
이런 게 전부 변환계에 속한다.
그중에서도 광변환은 아주 특이하다.
전신을 빛으로 치환, 짧은 시간 동안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이들.
광변환에 성공하면 모든 공격이 투과된다. 빛은 태울 수도, 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다만, 변환계 대부분이 그렇듯, 능력 유지 시간이 짧다.
능력 발동 시간을 일정 이상으로 유지하는 작자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작자는 이미 사이오닉 마스터이지 않나.
사이오닉 마스터, 사이오닉 협회에서 정한 자격증 중 하나다.
단일 능력으로 더블이나 트리플을 가진 이들보다 더 인정받는 초능 특수종이 되지 않는 이상에야 받기 요원한 칭호다.
짧게 불러 ‘사마’, 이걸 다시 풀어서 사이비 마스터라고 낮잡아 부르는 이들도 있지만, 무시할 만한 건 아니었다.
협회에 있는 소위 ‘불닭’이란 초능 특수종이 단일 변환 능력으로 마스터라 불린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니 이 광변환 능력이 얼마나 귀하겠나.
다만, 그 유지 시간이 2초 내외라는 건 아쉽지.
처음 만났을 때, 능력을 쓰는 걸 봤다.
건물이 무너지는 위기는 넘어갔지만, 대신 숨을 헐떡이며 말도 제대로 못 했다.
그건 거짓이 아니었다.
능력이 탐난다. 인성은 나중 문제였다.
어머니가 수없이 말하지 않았나.
“사람 고쳐 쓰는 거야, 방법만 알면 된단다. 어렵지 않아.”
주먹과 발을 주로 사용하고 입을 쓰지 않은 그 방식에 찬성하는 건 아니지만.
세상을 어지럽힐 도둑놈 하나 사람 만들 겸, 그리 만든 사람이 내 편이 된다면 꽤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사회봉사 차원으로 봐도 말이다.
직접 보고 아니다 싶으면 내칠 생각이었지만, 지금 내 느낌에는 나쁘지 않았다.
쓸 만했다.
인성만 손보면 된다.
모든 사고(思考)의 끝에 물었다.
“고치면 사람 되는 경험 해 볼래?”
“……네?”
“아니면, 죽도록 맞고 경찰서로 가는 것도 나쁘진 않고.”
실제로 그걸 택하면 반쯤 죽일 생각이었다.
남의 걸 훔쳤으면 그만한 대가는 치러야지?
그리 생각하는 와중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뒤편이었다.
“누구여?”
집주인으로 보였다. 일흔쯤 되어 보이는 할머님.
흰 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빗어 묶은 채, 부서진 문을 보고 계셨다.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공무집행 중……입니다.”
이 새끼가?
말하는 와중에 놈이 광변환에 성공, 몸이 빛이 되더니 그대로 벽을 투과해서 밖으로 나갔다.
쟤로서는 나름 도박이었을 거다.
고작 몇 초만 유지 가능한 능력.
그거로 벽을 투과하다가 능력이 풀리면 그대로 갇혀 뒈질지도 모르니까.
친절한 조직 폭력배가 시멘트를 부어 주지 않아도 자기가 알아서 굳은 시멘트 사이로 들어가는 셈이다.
놈이 나간 방향으로 기척을 읽음과 동시다.
“다 물어드릴게요.”
말하고 뛰었다. 몸을 사선으로 세우고 어깨로 벽을 들이받았다.
꽝.
벽이 무너졌다.
옛날 방식으로 지어진 콘크리트 더미가 옆으로 터지며 튕겨 나갔다.
회색 먼지를 뚫고 나갔다. 숨을 헐떡이며 놀란 눈을 한 놈이 보였다.
넌 벽을 투과하지만, 형은 벽을 그냥 뚫고 다닌단다.
“후으으, 허억, 하악, 고쳐서 사람, 후우, 하악. 되겠습니다.”
내 눈치 한 번 보고 숨 한 번 고르고 그러더니, 심호흡하고 말을 끝맺는다.
“그게 제 평생 바라던 일이었습니다. 맞습니다. 후우.”
“이름?”
이제야 통성명을 했다.
“한정직입니다.”
이름 참 기가 막히게 지으셨네.
“부모님?”
“고아요.”
“나이?”
“스물입니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래.”
무너진 벽 너머, 집주인 할머니가 보였고 주변에 사람들도 몰리기 시작했다.
이거 너무 소란스러웠나.
전화기를 들었다. 보통 이런 잡무는 중고 형 담당이었다.
“형, 저 여기 기물 파손이 좀 생겨서요.”
“뭐?”
“처리 좀 해 주세요.”
“하.”
중고 형이 이런 일은 참 잘 처리하지.
수화기 너머 한숨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알아서 잘할 거다.
안 그러면 내가 저 형을 끼고 일을 할 이유가 없다.
“저, 목은 좀 놓아주셔도…….”
정직이가 말했다.
난 놈을 빤히 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너 내 동료가 돼라’ 대신 고침 당해 보라고 제안하긴 했지만, 그게 그거라 생각하는 거로 정리 끝이다.
같이 가면 그만이지 뭐.
“그건 진짜 해?”
수화기 너머로 중고 형이 물었다.
난 사람들 시선이 모이기 전에 몸을 움직였다.
한 손에 수화기를 들고 집주인 아주머니한테 계좌번호를 물으며, 다른 손으로는 정직이 목덜미를 그대로 쥔 채 질질 끌고 왔다.
숨을 고른 정직이가 얌전히 날 따랐다.
“놀라셨죠. 계좌 주시면 지금 바로 송금해 드릴게요. 아, 그리고 이 친구는 잠깐 집을 비울 겁니다. 아시죠? 이 친구.”
“안녕하세요, 할머니.”
정직이 인사성 참 밟네.
잠깐 틈을 봐서 내 무기 두 자루 챙기고.
“진짜 해?”
수화기 너머 중고 형이 재차 묻기에 답했다.
“네, 해요.”
지금 중고 형은 내 의뢰로 구청 등 공무집행 기관을 순회 중이었다.
법인 회사 설립과 기타 여러 가지 잡무를 담당해서 처리 중이다.
난 부모님께 결심했으면 단숨에 하라고 배웠다.
주저하고 고민해서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라면 일단 부딪쳐 보고 배우는 게 좋다고 배웠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정부든, 기업이든, 어디든 소속되는 대신, 내 회사를 차리기로.
법인 등록하고 경비 및 경호 서비스업으로 사업자 신고도 해야 했고, 할 일이 많았다.
그래서 중고 형한테 맡겼다.
경비 및 경호 서비스. 말이야 그렇지, 특수종 프리랜서 애들이 뭉쳐서 만드는 기업은 전부 PMC, 민간군사기업이다.
내가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름도 정했다.
“맞지? 세최특? 맞는 것 같은데?”
“어? 진짜다. 세최특이다.”
이름을 되뇌려는데 날 알아보는 목소리가 들렸다.
“할머니, 제가 꼭 보상해 드릴게요.”
말하고 뛰었다. 여기 있으면 기자고 뭐고 간에 다 올 거 아닌가.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건 아니지만, 귀찮은 건 귀찮은 거다. 할 일도 많고.
4번 타자와 정글도가 묵직하게 무게를 늘려 줬다. 그래도 뛰는 데 지장은 없었다.
“이번에 튀면 다리 부러뜨린다.”
정직이의 다리를 염려해 말했다.
“안 갑니다.”
정직이가 정직하게 답했다.
진짜 튀면 그럴 작정이어서 걱정을 담아 말했다. 그 의지가 전해졌는지, 정직이가 얌전히 붙들려 왔다.
택시 탈 형편도 안 돼서 여기저기 뛰며 자리를 벗어났고.
난 이날 저녁에 9시 뉴스 주인공이 됐다.
[세최특, 민간 주택 피해, 그 끝은 서로 좋은 윈윈.]
제목 참.
할머니가 인터뷰 요청에 응했는지 TV에 나왔다.
“그, 돈을 주고 가더라고. 여기 고치라고 그래서 집을 아예 새로 지으려고.”
그 말과 함께 할머니가 해맑게 웃는다. 보기 좋은 미소였다.
“형, 돈 많군요.”
옆에서 빛직이가 말했다.
집으로 데려갈 순 없었다.
그래서 일단 팬더 형한테 데려왔다.
그러니까 지금 난 팬더 형의 스위트 홈에 있었다.
그러므로 빛직이와 팬더 형이 함께 있는 건 당연했고.
“마침 공사 끝났는데 잘 됐다. 거기 같이 가면 되겠다.”
“그래요?”
내 본래 돈을 모아 빌딩을 사려 했는데, 그게 내 사옥이 될 줄은 몰랐다.
“회사 이름은 그대로?”
패딩을 어깨 위로 걸치며 팬더 형이 물었다.
“네, 뭐, NS로.”
회사 이름은 ‘NS’, 한국말로 하면 ‘규격 외’.
대단한 의미는 아니다. 그저 내가 바라기를 규격 외의 회사가 되었으면 해서.
이제까지 흔히 있는 그런 기업과는 다른 곳이 되길 바라서.
그렇다고 대단한 걸 바라는 건 아니다.
내가 바라는 건 한결같다.
인베이더를 죽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또한, 잘 먹고 잘살길 바란다. 잘 먹고 잘사는 과정이 불협화음이 없었으면 한다.
좋은 차를 타고 싶다. 좋은 집에 살고 싶다. 이상형과 알콩달콩 연애도 하고 싶다.
인베이더를 죽이고 특수종의 세상에 살며 일상의 행복도 유지하고 싶다.
그걸 바라면 안 될까?
왜? 왜 그래서는 안 되나.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는 둘 다 놓친다고 하지만, 안 놓치면 된다.
그럴 생각이었다.
누군가는 이런 내 생각을 알면 이상주의자라 할 것이다.
그럼 난 코를 팔 거다. 알게 뭐냐고, 다른 사람 생각 따위.
“회사 운영, 할 일은 내가 생각할 문제라 치고. 인사팀이 없는 이상, 일단 사람은 네가 구해야 하는 거 알지? 아무나 받다 보면 화림 꼴 난다. 특히 요즘 네 유명세를 생각하면 각자 자기 사람을 꽂고 싶어 난리겠지. 뭔 생각하냐?”
나가며 팬더 형이 한창 떠드는 사이, 잠깐 상념에 빠졌었다.
그러니까 앞으로의 목표를 떠올린 거다.
“내 이상형은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요.”
그걸 줄줄이 다 말할 수 없어, 축약해 말해 주니.
“내가 말했지, 네 이상형은 2D 세계에 있다고.”
팬더 형이 더없이 진지하게 말했다.
일할 때는 참 배울 거 많고 유능한 사람인데.
이런저런 여기를 하며 도착한 곳, 택시를 타고 내린 곳이다.
“여기다.”
팬더 형이 옷을 추스르며 말했고 옆에서 빛직이가 추운지 자기 손으로 자기 몸을 감싸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생각해 보니, 얘 급히 오느라 옷도 안 챙겨 왔다.
하여간 건물이 내 눈앞에 있었다.
8층짜리 원룸 건물이.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
변신족으로 뛰어가면 10분 내외다.
역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 쪽이었다.
가장 가까운 뚝섬역이 걸어서 10분이 넘었다.
그러니까 역세권도 아니고 거리도 있는 곳인데.
“비싸네요.”
서울 건물값은 미쳤다.
“보안 시스템은 있지도 않았어.”
팬더 형이 말하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래, 이 형 고생 꽤 했지.
난 원룸 건물을 통째로 샀다.
그리고 안쪽에 기둥을 제외한 벽을 깡그리 밀어 버린 층이 다섯 개다.
맨 위층 하나와 아래층 네 개.
이거 때문에 돈이 꽤 들었다.
구조기술사며 뭐며, 이런저런 사람들이 필요했고.
돈은 들었지만, 장점이 명확해서 이렇게 했다.
건물을 새로 지으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나.
이건 뚝딱 금방이었다.
이거 때문에 그동안 벌어 둔 돈이 꽤 들어갔다.
건물 사고 구조 바꾸고 보안 때문에 이것저것 때려 박고, 안쪽에 훈련 기구 넣고 맨 위층 터서 펜트하우스 만들고.
각종 기어 보관을 위한 시설도 만들고.
하면서 외양도 까맣게 칠해 버렸다.
빛에 반사되는 검은색 실크, 기가 막힌 빛깔이었다.
하, 이게 바로 자본의 힘인가.
내 손으로 번 돈으로 산 빌딩이라니.
“오늘부터 저 건물주입니다.”
난 창업과 동시에 사옥을 샀다.
고개를 들어 건물을 눈에 담았다.
날씨는 맑았고 겨울 하늘의 높고 쾌청했다.
햇살 일부가 건물 옥상 근처에 걸렸다.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