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 미래의 동료쯤
성수동 휴즈 게이트 사건은 연일 뉴스의 중심 주제가 됐다.
“아시잖습니까? 블랙홀은 두 가지 형태라는 거, 게이트가 하나라면 플랜트 형태가 하나입니다. 이번에 터진 성수동 휴즈 게이트는 열렸을 때부터 플랜트 형태였습니다. 블랙홀은 일정 크기 이상이 되면 ‘공장’ 형태로 변한다는 게, 가설이 아니라 확증된 겁니다.”
정부 관계 연구자란 사람이 나와서 말했다.
블랙홀이 ‘문’의 형태가 있다면 ‘공장’ 형태가 있다는 말이다.
이미 수없이 많은 논문으로 증명된 얘기기도 했다.
실제로, 현대에선 마계로 취급받는 MZ(Militarized Zone)에는 플랜트 형태의 홀이 우후죽순처럼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그곳이 MZ가 된 거고.
홀이 터지기 전의 그곳의 본래 이름은 DMZ였고, 한국은 분단국가였었다.
지금은 뭐, 단일 국가가 됐다.
휴즈 게이트 이후 그곳을 MZ로 바꾼 건, 그 지역을 포기해서 붙은 거니까.
“악마의 자궁으로 증명된 이야기죠, 이 사건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인류는 휴즈 게이트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것.”
악마의 자궁은 그 MZ 구역 너머, 본래 북한이 있던 곳을 칭하는 말이었다.
패널로 나온 연구자의 말을 사회자가 받았다.
“네, 그렇게 할 겁니다. 삶이 어려울 때면 우리에게는 그만한 희망이 나오기 마련이니까요.”
이후, 뉴스는 휴즈 게이트 사건 이후 그 일대에 로스트 인베이더, 그러니까 게이트에서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인베이더를 칭하는 말이다.
그 로스트 인베이더를 처리하기 위해 성수동 일대를 여전히 통제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과 불멸특수대, 민간군사기업, 프리랜서 등이 인베이더를 처리하고 있다고도 했고.
이 모든 게 하루 이틀 내에 끝날 일은 아니었다.
딱히 내가 나설 부분도 없었고.
장례식에서 내린 눈은 이틀을 더 내렸고.
그 이틀 동안 난 아이돌이 됐다.
소녀팬 대신, 좀 색다른 팬이 많이 붙었지만.
대한민국 특수종 부대 유일여단에서 나와 말 한 번 나누고자 밤을 지새웠다.
중고 형이 보고 싶으면 직접 찾아가라고 말했더니, 직접 왔다.
그렇다고 한 번만 만나 달라고 플래카드는 너무 했지.
<3세대 영웅, 유광익 님에게 제안할 게 있습니다.>
보통 이런 건 물밑 작업으로 하지 않나.
왜 저러냐고.
“아들, 넌 왜 남자한테 더 인기 있니?”
베란다 앞, 창밖을 보며 어머니가 앞치마에 손을 쓱쓱 닦으며 말했다.
“그렇게 얘기하시니까 몹시 싫네요.”
난 말하고 외면했다.
막상 저렇게 나오니까 더 만나기 싫잖아.
일전에 성수도 휴즈 게이트 사건 마무리하던 순간, 나한테 같이 가자고 했던 간부가 보였다.
몹시 간절해 보이긴 한다만.
내 알 바는 아니었다.
이후 단군 그룹 산하 자회사 사람도 몇몇 찾아왔다.
이쪽은 나한테도 용무가 있었지만, 어머니한테도 많이 연락했다.
“누구요?”
엿들은 건 아니다. 거실에 있는데 어머니가 통화하는 게 들렸을 뿐.
특히나 저 ‘누구요’ 할 때, 어머니 목소리에 날이 선 게 느껴졌다.
“누가 보고 싶다고요?”
목소리를 가다듬은 어머니가 말하고.
“회장님께서.”
수화기 너머 묵직한 목소리가 들린다.
“아, 회장님이요? 난 아는 회장님 없는데?”
틀렸다. 어머니 핀트 상했다.
저 상태라면 아버지의 꽃다발도 무용하다. 최소 투뿔 한우 토마호크로 만든 고기 다발은 깔고 시작해야 한다.
“아버님께서 따님이 보고 싶다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아버지요? 난 아는 아버지 없는데.”
어머니가 저리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어머니께 향했다.
“왜 아들?”
날 보며 묻기에.
“아니요. 아닙니다.”
모른 척했다.
무섭다.
어머니는 당분간 외할아버지와 화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무기차나 리무진은 잘 써 놓고 갑자기 왜 저러나 싶긴 하다.
내가 모르는 사연이 있는 것 같긴 했지만.
난 그걸 꼬치꼬치 묻지 않았다. 가끔은 모른 척해야 좋은 것도 있는 법이다.
기자도 잔뜩 찾아왔다.
인터뷰 한 번만 하자기에, 그건 전부 중고 형한테 넘겼다.
“형이 제 에이전트잖아요. 처리 좀 해 주세요.”
“……나 요즘 너 때문에 하루에 4시간 잔다. 그게 할 소리냐?”
전화가 하루에 오백 통이 넘게 온단다.
“화이팅.”
그래서 보너스를 잔뜩 줬다.
중고 형이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각 방송사, 신문사 기자가 집 앞에서 죽치는 건 없앴다.
남은 건 파파라치 몇 명뿐인데.
저 작자들한테 걸리면 불멸자 타이틀은 버려야지.
기척을 읽고 숨는 건 불멸자의 특기다.
기자가 끝도 아니었다.
무슨 광고 제안도 왔다.
“광고요? 무슨 광고?”
“무슨 은행 광고라는데.”
중고 형이 틈틈이 전해 준 소식이었다.
잠깐 고민했다.
이걸 해, 말아.
일단 접어 뒀다.
진짜 별의별 일이 다 있네.
아, 이런 일도 있었다.
“우윳빛깔 유광익! 사랑해요! 유광익!”
진짜 팬클럽이면 당황스러워도 기뻤을 텐데.
지금 아파트 밖에서 외치는 건 경찰 쪽 인력이다.
하도 안 만나 주니까 저런 짓까지 하는 거다.
미친 거냐고.
전략 한번 특이하다. 부끄럽게 해서 만나자는 거냐고.
이지혜 팀장 누나가 직접 저리 말했다. 부끄러우면 당장 만나자고. 데이트 신청도 언제든 오케이라고.
정중히 거절했다.
이 모든 걸 합쳐도 더 놀라운 건 지금이긴 했다.
대통령이 날 찾아왔다.
“……필요하면 부르시면 되지 않습니까?”
이리 말하며 드물게 아버지가 당황했었지.
무슨 대통령이 나 하나 보겠다고 집에 찾아오냐고.
초인종 눌렀을 때, 엄마가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맞아?”
“허.”
아버지는 혀를 찼지.
그렇게 대통령이 직접 집에 왔다.
청와대로 부른 것도 아니고.
밖에서 보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 되냐고 묻더니, 찾아왔다.
그리고 아버지가 왜 직접 오냐 물으니.
“부르면 안 온다고 해서.”
라고 상큼하게 답했다.
“제가요?”
내가 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유일 여단장이 불러도 안 오고, 청장이 만나자고 해도 어렵다고 하고. 나도 듣는 귀가 있거든.”
TV를 볼 때는 나이도 있고 중후한 느낌이었는데.
실제로 보니, 소탈한 맛이 물씬 풍겼다. 일반인이라고 들었는데 동안이었다.
쉰을 넘긴 얼굴로 보이진 않았다.
얼굴에 광택이 난다.
하긴 요즘 세상에 주름 따위, 크림을 바르면 그만이니까.
리프팅도 필요 없이, 1년만 꾸준히 바르면 주름이 진짜로 개선되는 화장품이 나오는 세상이다.
마케팅 문구가 아니라 실제 그리 이뤄지는 마법의 크림.
실제로 초창기 주름 개선 크림 이름이 매직 뭐였다.
마흔 줄을 넘긴 여성에게는 조루와 탈모보다 이 약을 개발한 회사에 더 열광한다고 했던가.
뭐, 그렇다고 한다.
내가 쓸 일은 없어서 관심은 없다.
어머니가 쓸 일도 없고.
황당해 바라보고 있자니.
“궁둥이가 아주 비싸다고 들었네.”
대통령이 눈웃음을 지었다.
나도 마주 웃었다. 왜 왔는지 궁금하던 참에 대통령이 먼저 말했다.
그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덧붙이며, 혹시 자기 밑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은 없냐고 묻기도 했다.
“비서로 시작하면 딱 좋을 것 같은데.”
“그럼 저분은요?”
대통령 바로 곁에 선 비서가 보였다.
희다 못해 창백한 피부를 보자니, 불멸자로 보였다.
호리호리해 보이지만, 잘 단련된 몸.
슈트 안으로 기어급 무기도 몇 개 있을 테고.
순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대통령 최단 거리 경호원이나 다름없는 위치다.
보통내기는 아닐 터였다.
“나 대통령일세, 비서 하나 더 채용하는 건 일도 아니지.”
네, 그러시구나.
“얌전히 다른 분께 양보하겠습니다. 제가 아침잠이 많아서 출근이 좀 어렵거든요.”
“그럼 점심쯤 나오게.”
농담 따먹기를 하자는 걸까.
빤히 바라보니.
“농담이네.”
대통령이 파하핫 하고 웃었다.
부모님은 별말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시답잖은 얘기나 하러 왔나 싶은 순간, 대통령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날 빤히 보곤,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접었다.
다들 황당해 빤히 보기만 했고, 내가 제일 먼저 반응했다.
“……에? 저기? 대통령님?”
부르며 일어나 손을 뻗으니, 대통령이 내 손을 부드럽게 밀며 말했다.
“고마워서. 싸워 줘서 고마워서 그러네. 국민을 대신해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네.”
찌르르.
심장이 찌릿했다.
사람을 구하려고 한 일이 맞다.
누군가에게 감사를 받을 수도 있다.
다만, 이런 건 예상하지 못했을 뿐.
“그럼.”
대통령은 표창장, 포상금 따위를 준비했다고 말하곤 떠났다.
쿨했다.
“나쁘지 않지. 당 정치를 떠나서, 사람을 위하는 분이니까.”
아버지가 현 정치판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둘 있다고 했다.
하나는 대통령, 다른 하나는 행안부 장관님.
“뭐, 그렇다고 꼭 어디에 소속될 필요는 없다.”
아버지는 내 든든한 배경이었다.
행안부든, 대통령이든, 원하지 않으면 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은근히 함께하고 싶은 눈치이긴 한데.
죄송합니다. 소자, 하고 싶은 일을 찾았나이다.
“네.”
얌전히 답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나저나, 그 새끼는 찾았나.
사람 겉만 보고 모르는 거라고 하더니.
성수동에서 모든 일이 끝나고 내 장비를 찾으려는 순간, 황당한 일을 겪었다.
“그, 들고 냅다 튀더라고, 무거운지 어디서 수레를 가져와서…….”
허풍 심한 쥐 수염 혼혈 불멸자 아재의 말이었다.
광변환 그 자식, 후방에서 나와 쥐 수염 아재와 같이 저격하던 놈이 내 장비를 들고 튄 거다.
순진무구한 눈을 하고 말이야.
나도 깜빡 속았다.
타고난 타짜 같은 새끼다.
아무리 집중하지 않았다지만, 전혀 생각도 못 했다.
찾아야 했다.
무기도 무기지만.
뭐, 다른 이유도 있으니.
그래서 사람을 썼다. 특파라치 신주호란 사람이다. 사람 찾고 조사하는 데 특화된 능력의 프리랜서였다.
일전에 내 뒤를 캐다가 되려 역풍을 맞은 사람.
박혁에게 고용되었었던 사람.
이후 아버지가 이 모든 일을 알게 돼서 세무 조사가 들어가서 회사가 망하기 직전이었던 사람.
난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했다.
“일할래요?”
“제가 지금 일할 처지가 못 돼서요.”
목소리가 다 죽어가더라.
이 사람 능력, 참 탐난다. 탁월한 재능이다. 다만, 그 쓰임 방식이 잘못된 거지.
“세무 조사 빡세요?”
다 알고 물었다. 아버지가 정부 부서에 말 한마디 툭 던진 거로 회사가 중병을 앓고 있으니.
양심의 가책은 없다.
다 제 탓이지, 애초에 탈세에 불법에 저촉되는 일이 많기도 하더라.
어떻게 보면 안 걸리는 일이지만, 작정하고 파면 걸리는 일을 많이도 했다.
“……그쪽 작품이었습니까?”
목소리에 원한이 느껴졌다.
“일 하나 해 줘요. 의뢰비는 네, 그 조사 그만하는 거로 하죠.”
난 프로답게 일만 했고.
아주 잠깐의 침묵 끝에 신주호 사장님은 수락했다.
그게 어제 일이었다.
“찾았습니다.”
그 신주호에게 지금 막 전화가 왔다.
“벌써요?”
내가 알려 준 건 생김새와 광변환 조루 능력뿐인데 벌써?
“광변환 능력자가 흔하진 않거든요. 위치 문자로 찍어 뒀습니다. 그럼 조사는?”
“네, 처리해둘게요.”
제 방식대로 처리해 드릴 예정이죠.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주섬주섬 나갈 준비를 하고 있자니, 아버지가 거실에 앉은 채로 날 빤히 바라봤다.
방문을 열어 놓으면 거실에서 내 방이 정면으로 보이는 구조 덕이다.
“조사 물려주랴?”
“아니요.”
눈치하고 직감, 육감의 영역에서 불멸자는 최고 수준이다.
짧은 통화만으로 무슨 얘기인지 눈치채신 거다.
“해 준다면서? 약속은 지켜야지?”
우리 집은 어머니만 엄한 게 아니다. 아버지도 엄하다.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지.
“네, 지킬 건데요.”
“근데 놔두라고?”
“제가 알아서 하면 안 될까요?”
생각한 바가 있는데, 다 큰 자식 일에 상관하시렵니까.
어머니는 잔소리보다는 주먹을 들지만, 아버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로 한다.
가끔은 그게 더 괴롭다.
그래서 말을 끊으니.
“……여보, 슬혜야, 자식새끼 키워 봤자 다 소용없다더니.”
“에구, 그렇죠. 뭐, 키워 놓으면 남이죠. 유광익 씨, 어디 나가시게요?”
합이 되게 잘 맞는다. 괜히 잉꼬부부가 아니다.
“네, 유연호 씨, 강슬혜 씨, 저 잠시 사람 좀 만나고 오겠습니다.”
“오호, 오늘부터 연을 끊겠다는 거지?”
어머니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이 타이밍에 얌전히 그걸 지켜보던 마리가 끼어들었다.
“마리는 오라버니가 호적에 남아 있길 원해요. 호적 메이트가 되더라도 오라버니와 함께하고 싶어요.”
요새 홀로그램 폰으로 개인 방송 열심히 보더니, 어휘가 늘었다.
“그래, 호적에는 남아 있을게.”
“다행이에요.”
마리가 그리 말해 버리니, 부모님 두 분 다 웃어 버렸다.
저게 그 도끼를 들고 인베이더를 썰던 애가 맞단 말인가.
어쨌든 난 말하고 돌아섰다.
밖에 득실대는 이들이 있는데, 나가는 날 걱정하는 가족이 한 명도 없다.
당연했다.
투명화를 걸긴 했지만, 기척 죽이기로 인베이더 무리한 가운데에서 날뛴 몸이다.
저길 나가며 걸릴 정도로 어설프진 않다는 거지.
“누구 만나러 가시는데? 세최특 유광익 씨?”
어머니가 뒤에서 물었다.
난 현관문을 나서며 답했다.
“도둑놈이요.”
음, 그리고 미래의 동료쯤요.
구상은 했으니, 행동이 남았다.
그 첫 번째 시작이 이 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난 밖으로 나섰다.
기척을 죽이고 사람들 곁을 스치며 나가, 그 도둑놈이 숨은 곳으로 향하고자 했다.
목적지는 마포구 염리동.
“도둑은 왜 잡는다니?”
“오라버니가 일전에 무기를 잃어버렸다고 들었어요.”
“덤벙대기는.”
문이 닫히기 직전, 뒤에서 어머니와 마리의 대화가 들렸다.
덤벙대서 그런 거 아닙니다, 강슬혜 씨. 난 그렇게 속으로 말하며 발을 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