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네, 그 새끼는 머저리죠.
박혁은 자신의 존재가 희미해짐을 느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지?
트리플 헤드 오우거 또한 미끼였다.
그가 노린 건 특수종 군대였다.
그걸 잡아먹고 힘을 늘려야 했다.
지속성, 홀의 지속성.
애초에 이 휴즈 게이트는 그런 방식으로 태어났으니까.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그리될 수 있음을 알았다.
그걸 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인베이더나 다름없었다.
그대로 놔뒀으면 아마도 새로운 인베이더의 탄생, 그게 네임드가 될지 넘버를 차지했을지는 모르지만, 그리됐을 터였다.
그럴 수도 있었다.
약간의 행운 또는 불행이 따라 줬다면.
자신의 실험과 연구를 끝마칠 불멸의 삶을 살아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가능하기 위해선, 홀이 이 땅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예전 휴즈 게이트 중 하나가 살아남아 이 땅에 자리 잡은 것처럼.
지속성을 지녀, 악마의 자궁이라 불리는 것처럼.
그리되어야 했다.
그러려면 자신을 위협하는 적을 쳐 내야 했고.
군대를 집어삼키고, 시간도 벌어야 했다.
그걸 위해 준비한 거였다.
인베이더를 쏟아 내고 특이종을 쏟아 낸 모든 건.
문이 닫힌다.
박혁은 자신의 뒤편에 열렸던, 무한한 에너지를 주던 것이 사라져 감을 느꼈다.
‘왜’라는 의문과 함께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그 원류를 찾던 그는 원인을 찾은 뒤, 분노했다.
‘시발 새끼.’
이게 전부 한 놈 때문이었다.
30분이 지나 투명화가 풀린 유광익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원통함에 박혁은 외치고 또 외쳤다.
홀은 마지막 힘을 발동해 그 외침을 밖으로 내보냈다.
왜 저 새끼랑 한 시대에 사는 건지.
왜 저 새끼가 자신의 앞을 막는 건지.
자신이 먼저 노렸다는 건 잊었다.
그저 원망할 뿐.
물론 그는 마법사도 저주술사도 아니었고, 저주술사라 하더라도 원망만으로 실체적 현상이 일어나는 건 아주 드문 경우이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홀이 말을 하는 것과 같은 신비가 일어났을 뿐.
의문과 욕설.
광익을 향한 말이었다.
* * *
문이 일렁이면서 닫히기 시작한다.
홀에서 나오는 인베이더 숫자가 줄었다.
확연히 줄더니, 더는 특이종이 나오지 않았다.
냄새에 민감한 눈먼 개 서너 마리가 달려들기에 주먹으로 머리를 깨서 죽였다.
투명화가 풀린 직후의 일이었다.
눈먼 개를 죽이고 죽어 나자빠진 자이언트의 무릎을 밟고 도약했다.
그대로 공중에서 균형을 잡은 광익은 조약돌을 밟듯 인베이더의 머리통을 밟으며 내달렸다.
닫히는 홀이 일렁이며 소리 비슷한 걸 내뱉었다.
왜애애애, 시바아아알.
마치 누군가가 말하는 것 같았다.
광익은 오크의 머리를 밟는 발에 힘을 주며 몸을 띄웠다.
퍽- 하고 오크의 머리가 터졌다.
그는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바닥에 떨어졌다.
본래 자신이 향할 자리를 노린 하트 리스의 칼날이 허공을 벴다.
상대하려고 몸을 돌릴 필요도 없었다.
뻑, 쩡, 꽝!
누군가 다가와 하트 리스의 칼날 두 개를 손으로 쳐 냈고, 가슴팍을 으깨고 머리통을 부쉈다.
정확히는 무릎으로 가슴을 쳐올리고 머리통을 팔꿈치로 후린 거다.
깔끔하고 위력적인 콤비네이션이었다.
몸 쓰는 게 절정의 경지인 변신족이었다.
속도와 힘의 조화가 능히 보고 배울 만한 상대였다.
“다녀 왔니?”
그 상대가 물었다.
“네, 다녀왔습니다.”
어머니의 물음에 답한 난 뒤를 돌아봤다.
왜애애애, 시바아아알.
닫히는 홀이 여전히 시끄러운 소리를 내뱉는다. 가끔 자연의 소리,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와 같은 것이 사람이 부르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파도 소리가 노랫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이번에는 블랙홀 닫히는 소리가 그랬다.
그리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자꾸 육감과 직감의 영역에서 저 시발이 자신한테 하는 말 같았다.
근데 그게 또 기분 나쁜 건 아니었다.
되게 원통한 느낌이어서 그랬다.
그러니까 욕을 먹은 기분은 아니었다.
된통 당한 상대를 구경하는 기분이지.
“끝나가네요.”
그걸 보며 말하자.
“고생했다. 아들.”
어머니가 어깨를 툭 쳤다.
“그, 특이종을 잡은 거죠?”
바로 곁이었다. 군인으로 보였다.
얼굴은 서른 초반쯤?
물론 일반인은 아니었다.
특수대의 원류는 군대고, 현재 군대도 그런 특수종 부대를 보유하고 있다.
그중 하나로 보였다.
혼혈 변신족이었다. 변신체를 유지하다가 돌아왔는지, 볼에 아직 털이 남은 게 보였다.
변신체는 여우인가.
그 남자가 날 보더니 재차 물었다.
“맞죠? 아까 픽픽 쓰러지던 놈들, 세최특 님이 지금 전장 너머에서 왔잖아요.”
우연히 내가 들어오는 걸 봤나 보다.
“네, 뭐.”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것도 아니고.
굳이 숨길 것도 없어 어깨를 으쓱하니.
“크으으으.”
군인 변신족이 소주 한 병을 원샷으로 때려 부은 것처럼 감탄사를 토해 내더니, 엄지를 치켜들었다.
“음?”
“개멋있었습니다.”
“아, 네.”
그걸 본 게 이 양반만은 아니었나 보다.
근처에 있던 이들도 날 보더니, 다들 소주 한 병을 들이부은 것처럼 똑같은 감탄사를 토했다.
“크으으으으.”
뭐, 그냥 열심히 싸운 건데.
그러니까 효율적으로.
이렇게 하면 편하니까.
피해도 적을 거고.
이 방법은 내가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예전 불멸특수대 시절 토론 때도 나온 얘기였고.
팬더 형도 말 한 적이 있었다.
가장 효율적인 게이트 방어에 관한 얘기 중에 나온 그런 말.
소수 정예 팀으로 핵심 인베이더를 조지면 된다고 했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니까.
그걸 내가 한 거고.
아까의 연장선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저격질을 하고 내려왔더니 날 보던 사람들과 매한가지다.
“아직 싸움 안 끝났다니까.”
내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인베이더가 남았는데 말이야.
“이제 그, 세최특 형씨는 쉬고 계시라고.”
수염이 덥수룩한 프리랜서가 말했다.
특수대도 아니고 화랑도 아니고 PWAT도 아닌 걸 보면, 고용되어 온 몸이겠지 뭐.
그의 복장이 그리 말했다.
블랙홀이 닫힌다.
‘성수동 휴즈 게이트’라고 이름 붙은 대규모 블랙홀이 닫히는 과정이다.
그 옆으로 부서진 건물 잔해, 박살 난 차 따위가 보였다.
이거로 발생한 재산 피해가 어마어마할 터였다.
그래도.
“잘한 거야.”
어머니가 말했다.
마음을 읽힌 기분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도 살았다.
잘 막았다.
어쩔 수 없이 죽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산 사람이 많았다.
두두두두두.
머리 위로 헬기가 날았다.
필요하면 고폭약 덩어리를 쏟아 내야 했을 거다.
헬기 또는 전투기가 그렇게 해야 했을 거다.
나는 머리 위로 나는 저 헬기 안에 있을 폭탄의 규모를 짐작해 봤다.
성수동을 넘어서, 이 일대를 지옥으로 바꿨을 무기였을 거다.
그걸 막았으니까.
반은 만족했고, 반은 불만족했다.
소수 정예.
난 닫히는 블랙홀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혼자보다는 둘이 낫다는 말.
괜한 말이 아니라고.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도 괜히 생긴 게 아니라고.
팬더 형이나 어머니, 마리, 혜민이를 떠나서 어떤 새로운 구상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지쳐.”
옆으로 혜민이가 다가왔다.
눈 밑이 검어졌다. 애도 고생 좀 했다.
투명화 주문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나한테 주문 걸고, 얘도 피 터지게 싸웠을 거다.
“엄마가 여기 온다고 걱정 안 하시디?”
“하지. 남자에 미친년이라고 하시더라고.”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어머니한테 안 들리게 속삭이는 혜민이 머리에 손을 올렸다.
“고생했다.”
“아우, 이럴 땐 최소 이마 키스 아닌가.”
“우리 엄마 앞에서?”
혜민이가 입을 다물었다.
나 혼자 싸운 건 아니었다.
지하에서 열린 블랙홀에서는 인베이더 특공대가 계속 튀어나왔다.
상어 지렁이 따위가 나왔다고도 들었다.
그걸 처리한 건 행안부 특임대, 피닉스팀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아빠.
그리고 트리플 헤드 오우거도 막강한 상대였다.
그걸 잡은 게 쉬운 일은 아니지.
네임드까지는 아니어도 그에 필적할 상대였다.
들어보니, 그 오거 잡으려고 불멸특수대원 스물이 전투 불능이 됐단다.
변신족은 몇이 죽었고.
안결, 소진도 변신해서 그 싸움에 합류했다고 하고.
다 뒈질 뻔했지만 막았고, 그 오거도 죽였다.
어머니도 놀고 있진 않았다.
마리와 어머니, 혜민이 이 자리를 지킨 핵심이었다.
이 셋이 아니었다면 이쪽에서 나온 사상자도 만만치 않았을 거다.
내 몸이 열 개도 아니고 내가 놓치고 보낸 특이종도 있었다.
그놈들도 번번이 막혔다.
자기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싸운 이들이 많다.
결론, 다들 죽을 똥을 쌌다는 거다.
절로 돌아가는 머릿속 생각을 한쪽으로 집어 던지고 입을 열었다.
“쉬고 싶네요.”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지치는 건 지치는 거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했다.
배가 홀쭉해졌다. 만사가 귀찮아지는 타이밍이기도 했다.
어차피 이 뒷수습은 윗대가리 님들 몫이지, 내 몫도 아니고.
슬슬 뒤로 물러나도 될 때라고 생각했다.
“유광익 님.”
그런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군복이다.
아까랑은 다른 군복.
깔끔해 보이는, 전장에 참여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군복.
“잠깐 시간 좀 내주실까요?”
고개가 절로 삐딱하게 꺾였다. 옆으로 살짝 고개를 기울인 채 물었다.
“왜요?”
“……중요한 분이 뵙고자 합니다. 모시겠습니다.”
난 깔끔 군복 남자를 보며 생각했다.
이걸 보면 스티븐 최가 예의는 있는 편이라고.
걔가 테러 단체랑 어울려서 그렇지, 그래도 타이밍도 재고 눈치도 보며 일하는데.
여기는 대뜸 오라 가라 하네.
“나중에요.”
외면하고 몸을 돌렸다. 4번 타자랑 무기도 찾아야 하고 바쁘다.
그 초능 특수종 놈이 설마 들고 튀진 않았겠지? 광변환 초능은 특이하긴 하지만 힘이 좋은 건 아니니까.
내 무기는 대체로 꽤 무거우니까.
“지금 제 얘기를 잘 못 알아들으신 것 같은데.”
그 친구 프리랜서 같던데, 어디 소속이려나.
광변환 초능 능력자로 정말 드물지 않나. 그런데 왜 협회 소속이 아닌 건지.
“유광익 님, 제 소속은 유일 특수여단입니다.”
친한 척 사기 치는 그 아저씨는 살아남았으려나.
이제 진짜 어디서 나 진짜 봤다고 자기가 세최특의 베스트 프렌드라고 하고 다니진 않으려나.
아버지는 별일 없겠지?
“유일 특수여단이 어디를 말하는지 모릅니까?”
군인 작자가 내 어깨를 잡아채려 하는 순간이다.
턱.
그 손을 막은 사람이 보였다.
“그만합시다.”
인베이더 숫자가 확연히 줄어 전투가 끝나가는 시점.
뒤편에서는 이제 후처리를 걱정해야 하기에 사람들이 물러나는 중이었다.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난 얼굴도 모르는 변신족, 아마도 화랑 소속으로 보이는 특수종.
옷이 반쯤 뜯기고 탄 게 보였다. 머리카락도 그슬렸고 팔뚝에 탄 화상 자국도 보였다.
이번 전장에서 꽤 힘들게 살아남은 흔적이 전신에 남은 변신족 여자였다.
“매너 지키라고, 군바리 아저씨야. 여기 전장이잖아. 나서지도 않고 뒤에서 남의 영웅 채가시지 말고.”
사납다. 말투도 살벌하고.
“뭐?”
“군바리 아저씨가 귀가 먹었나.”
이번에는 초능 특수종이다. 협회 복장이다. 이쪽도 뭐, 만만찮게 고생한 흔적이 보였다.
여기저기 붕대를 감아 뒀다.
“더 할 거면 공식적으로 보고하시죠. 저 불멸특수대 소속이니까.”
다른 지부 소속 불멸특수대원도 나섰다.
성수동은 화림 담당이지만, 이번에 일이 워낙 컸으니.
그 셋이 날 슬쩍 바라본다.
그 눈에 어린 건 호의와 감사함.
난 목만 끄덕여 인사하고 돌아섰다.
군바리 아저씨는 곤란해했다.
그러니까 사람이 매너가 있어야지.
매너 메익스 맨이란 말도 못 들어 봤나.
지이잉.
실랑이를 하던 와중이다.
홀이 완전히 닫혔다.
콰직.
그리고 마지막 인베이더도 죽었다.
영리해서 몸을 숨긴 놈들이 아니라면, 눈에 보이는 인베이더 중 마지막이었다.
그 마지막 인베이더 머리에 도끼를 꽂은 마리가 포효했다.
“우오오오!”
“……엄마, 우리 마리 왜 저래요?”
“못 본 척해 줘. 트랜스야.”
변신족은 가끔 저리 트랜스, 몽환 상태에 빠지곤 한다. 적당히 가벼운 흥분감에 취하는 것과 같았다.
“……혜민아. 혹시 폰 있냐?”
“응? 왜?”
“찍어.”
“뭘?”
“마리, 찍으라고.”
본래 흑역사는 기록될수록 찬란한 법.
혜민이 스마트폰을 들었다.
마리를 찍었다.
도끼를 치켜든 그녀의 뒤로 햇살이 허물어진다. 꽤 봐줄 만한 그림이었다.
부서진 건물 잔해 사이로 도끼를 치켜든 변신족.
그리고 그걸 보며 외치는 사람들.
“도끼 여신!”
“세최특!”
내 이름은 아까부터 누가 진짜 지치지도 않고 꺼냈다.
“유과아아앙이이이익!”
어쨌든 싸움은 끝이었다.
* * *
“미친 새끼.”
미소를 숨기지 못하고 이중봉이 말했다.
머리 한쪽을 누르던 수건을 치우며 동훈이 말했다.
불멸자의 몸으로 돌아오니, 피가 거의 멎어 더 누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광익이 말하는 겁니까?”
“그럼 누구 말하겠냐.”
“잘났죠. 제대로 배웠고.”
이중봉은 답하지 않았다.
이번에 광익이 한 일은 누구도 깔 수 없었다.
그만큼 대단했다.
그리고 이중봉은 자기도 한 번 겪었던 일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아니, 나 때보다 더하려나?’
팬텀으로 이름을 날렸을 때, 사방에서 쏟아지던 영입 전쟁이 떠올랐다.
아마도 광익을 노리는 이들은 더 많을 것이다.
홀로 테러 단체와 맞붙은 특수종.
직접 매드 사이언티스트 집단을 부수고.
대형 블랙홀을 막은 영웅.
어떤 수식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남명진 병신.”
이중봉은 미소를 머금은 채, 괜히 사장을 욕했다.
“네, 그 새끼는 머저리죠.”
동훈이 동의했다.
퇴직금조차 주지 않은 전 회사 사장은 개새끼가 맞았다.
범죄자고 뭐고 간에, 자기가 그동안 고생한 게 얼마인데.
동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병신을 연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