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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207화 (207/488)

207. 왜?

이곳에 있는 건 총 셋.

하나는 초능이었고, 나를 포함한 둘은 혼혈 불멸이다.

그중 혼혈 불멸로 추정되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 친구, 처음 봤을 때부터 잘될 것 같더라고. 알지? 내가 불멸특수대 출신인 거?”

쥐를 닮은 수염에 얇은 눈썹, 아는 얼굴인가 싶어 유심히 봤다. 기억에는 없다.

“몰라?”

쥐 수염 아저씨가 묻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특수대였어요?”

되려 물어봤다.

어떻게 말하는지 한번 보자 싶어서.

“신입 넌 어디 산에 있다 왔어? 소문 안 듣고 사냐?”

혼혈 불멸 쥐 수염 아재가 자기 귀를 두드리며 말했다.

“네, 그랬군요.”

“예전에 그 친구 저격 자세 잡아 줄 때, 내가 좀 봐주고 그랬지?”

난 확신했다.

이 아재, 처음 보는 얼굴이다.

“크, 그 친구랑 내가 밥도 먹고, 술도 먹고, 같이 사우나도 가고.”

아, 그러시구나.

같이 사우나도 가고 그랬구나.

어디 나 말고 다른 유광익이 있나 보다.

“진짜예요?”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앳된 얼굴, 그러니까 나보다 어려 보이는 초능 특수종이 물었다.

희고 고운 얼굴의 남자애였다.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얼굴이었다.

눈썹과 머리카락이 옅은 갈색이라 그런지, 사람이 더 옅어 보이는 느낌도 있고.

“초능 신입아, 이 몸이 이 바닥에서만 이십 년 살았다.”

이십 년 동안 산 것치고는 풍기는 기세가 보잘것없다.

스나이퍼 포지션을 지원한 것도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지, 딱히 뛰어난 저격 실력도 아닐 것이다.

잘해야 훈련받은 일반인보다 조금 나은 정도?

혼혈 불멸의 피도 쿼터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고.

훈련으로 얻은 게 아니라 혈통으로 얻은 걸 갉아먹고 사는 양반이다.

예민하게 달궈진 감각이 그의 실력을 읽어 냈다.

“세최특 그분, 만나 보고 싶어요.”

앳된 얼굴의 초능이 말했다.

넌 이미 만났단다.

“다 좋은데, 그 친구가 여자를 좀 많이 밝히더라?”

쥐 수염 아재가 말했다.

네? 누가요?

“같이 술집 몇 번 갔는데, 버릇이 너무 안 좋더라고.”

말하며 쯧 하고 혀를 찬다.

난 기가 찼고.

“그런가요.”

흰 얼굴의 초능 특수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로 믿어 버리는 걸 보자니, 황당했다.

“확실해요?”

내가 물었다.

“신입, 너도 내가 구라치는 것 같냐?”

네, 헌드레드 퍼센트 확신합니다.

당신은 구라쟁이입니다.

피노키오 뺨 후려갈기는 거짓말의 장인입니다.

“뭐, 그렇다고 합시다.”

여기서 내가 그 세최특이라고 말하면 믿을까?

놔두자, 놔둬.

오히려 거짓말하지 말라고 할 양반이다.

구해 주면 보따리 내놓으라고 강짜 놓을 타입의 인간이니.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같이 나갔던 작전이 있었지. 작전 이름은 극비지만, 너희니까 대강 말해 주마.”

피노키오 조상님이 말했다.

쥐 수염이 씰룩이며 움직이는 걸 보는 재미가 있긴 하다만.

난 한 귀로 듣고 흘리며 휴즈 게이트를 주시했다.

저격 포인트를 잡은 이유가 무엇인가.

그건 육감과 직감의 영역 간섭이었다.

감이 안 좋았다는 거다.

그래서 내린 판단은 후위에 남는 거였다.

선두나 전방에 나서면 주변 환경을 확인할 수 없다.

특히나 저 대형 게이트가 열리면 필수로 난전이 될 것이다.

일렁이는 게이트를 보는 중에도, 옆에서 둘이 떠드는 소리는 계속 들렸다.

“그래서, 그 친구가 밥 먹다가 말고 소리치는 거야. 갑자기 저 앞에 게이트가 열렸다고. 아니, 시발 그런데 언택트 경보가 안 울리는 거야, 미치는 거지.”

“그래서요?”

어린 초능 친구는 한창 흥미가 돋는 말투다.

쓸데없는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무시한 채로 내가 입을 열었다.

“작전 시간…….”

시간을 확인하고 재차 이어 말했다.

“22시 50분 맞죠?”

“그래서 내가 응, 딱 말, 뭐?”

말하다 말고 쥐수염 아재가 날 바라봤다.

“시간이요.”

은근히 변신족 살기를 담아 말하니.

“그, 몇 시더라?”

당황한다. 이 양반 작전 시간도 까먹었냐고.

“밤 10시 50분, 맞아요.”

흰 얼굴 초능 특수종이 말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1급 재난 구역으로 선포된 이 일대는 밝디밝았다.

인공조명을 미친 듯이 켜 둔 덕분이었다.

후위, 저격 포인트를 제외하곤 홀 주변에 갖가지 조명 설비로 가득했다.

급조된 펜스도 있다.

게이트를 주시하던 나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현재 시각 22시 22분, 게이트 활동 시작.”

게이트가 열린다. 직감이 왔다. 시각으로 판단해도 그렇고. 즉, 판독기가 본 것보다 더 빨리 열린다는 거다.

“응? 판독기가 틀렸다고?”

쥐 수염 아재가 말했다. 말하면서 곧바로 자세를 잡는다.

이십 년 경력을 항문으로만 드신 건 아니었나 보다. 입에서 나오는 건 다 개소리던데.

판독기가 틀렸다.

그런 경우는 흔치 않다.

있다면 하나뿐, 이상 현상.

인이어로 낀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저격 포인트를 책임지는 불멸특수대원의 목소리다.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전원 사격 준비, 대기.”

사수다. 긴장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목소리지만, 장내에는 긴장감이 내려앉았다.

난 28배 스코프의 배율을 조정해서 홀을 바라봤다.

움직임이 없다. 아니, 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홀은 움직인다. 느껴졌다.

나만 느낀 게 아니다. 저 앞에는 불멸특수대도 있고, 특유의 에너지 파장을 감지하는 초능 특수종도 있다.

작전상 첫 공격을 담당한 포병대가 반응했다.

장내 공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십 분, 짧은 침묵이 흘렀다.

블랙홀이 조용하다.

“신입? 열리는 거 맞아?”

쥐 수염 아재가 물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요.”

옆에서 초능 저격수가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냥 물어본 거야. 세최특도 응? 신입일 때는 실수투성이였거든.”

내가 언제, 이 양반아.

따지고 싶지도 않네.

블랙홀이 일렁이며 가운데 작은 구멍이 열린다.

그 안에서다.

통- 하고 넘버링 4 바운스가 튀어나왔다.

머릿속으로 화림 시절 외워 두었던 인베이더의 정보가 떠올랐다.

작은 구체 모양의 인베이더.

테니스공 크기가 일반적.

주의점 : 튕길수록 빨라지고, 제대로 맞으면 헤비급 복서 펀치를 경험할 수 있다.

총탄을 튕겨 내는 탄성 높은 가죽을 지녔기에 어지간하면 화기로 잡는 건 어렵다.

다만, 움직임을 막으면 상대하기 쉽다.

그물이나, 부딪치는 곳에 오일을 뿌리거나, 급속 냉각, 급속 경화 등 행동을 멈추게 할 무기가 있으면 된다.

인베이더는 이런 방식으로 몇 가지 분류로 나뉘는데, 저렇게 작고 잡기 어려운 건 대부분 버그, 벌레형이라고 했다.

육체형이나, 기술형과는 다른 형태의 인베이더란 거다.

퉁- 나온 인베이더가 조명이 환하게 밝혀진 공간을 훅하고 지나갔다.

본래 초반 공격을 담당한 건 포병대다.

다만, 저거 하나 잡자고 포탄을 쏘아 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초능 특수종 하나가 나섰다.

전방에 섰다는 건 변신족 만큼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는 방증이겠지.

그가 손을 뻗자, 바운스가 공중에서 얼어붙었다.

꽤 뛰어난 결빙 능력자다.

“저 친구, 한국에 있었네?”

쥐 수염 아재가 말했다. 같이 스코프로 보고 있었나 보다.

자세히 보니, 외국인이다.

“에반 타일러, 사이오닉 협회가 자랑하는 결빙 능력자지. 저 친구 한국에 있었구나.”

“저 사람도 아는 사람입니까?”

스코프에 눈을 댄 채 물었다.

블랙홀은 여전히 잠잠하다.

“뭐, 오가며 본 정도라.”

입벌구가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입만 벌리면 구라야.

“선배는 모르는 사람이 없군요.”

옆에 있던 어린 초능 친구가 감탄했다.

이걸 믿는 네가 레전드다.

아무래도 이 친구 때문에 저 쥐 수염 아재가 더 신나는 것 같고.

하여간 블랙홀은 잠잠하다.

이거 왜 이러지.

느낌은 오는데, 일렁이는데, 왜 잠잠…….

뻐-엉.

“……시발.”

쥐 수염 아재가 중얼거렸다.

휴즈 게이트 정면이었다.

대형 블랙홀 가운데가 무슨 농구공 터지듯 공기를 뿜어 내며 터졌다.

균열 따위는 단숨에 쪼개져 깨진다.

게이트가 열렸다.

“현재 시각 22시 41분, 휴즈 게이트 진압 시작.”

무전기를 통해 사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격수가 나설 때는 아니었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게 맞다.

2011년 때와 지금은 너무 달랐다.

그때는 1차 웨이브, 크랙과 미니 홀에 신나게 얻어터진 뒤, 간신히 수습하고 판독기를 돌려야 했다. 그렇게 해서 남은 시간이 고작 반나절이었다.

막기에 급급했었다.

그런 대형 블랙홀이 한 군데도 아니고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네임드도 출현했다.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인류는 준비할 시간이 충분했고, 화력은 발전했으며, 휴즈 게이트는 이미 경험해 봤고, 저 게이트는 2011년보다 작았다.

열린 게이트 안이다.

갖가지 인베이더가 뛰쳐나왔다. 경주라도 하는 듯 내달리며 나온다.

눈먼 개부터 시작해서 고블린, 오크, 바운스, 챔피언, 하트 리스, 리빙 아머, 휠 나이트까지.

많다.

뻥 터진 홀 가운데, 열린 문으로 놈들이 달려든다. 그 위로 포병대의 포격이 떨어졌다.

꽈르르르르르릉!

뇌성벽력이 친다.

인간이 만든 벼락이 인베이더 머리 위로 떨어졌다.

직사포대다.

정면에 대놓고 화력 무기를 집중했다.

열다섯 대의 화력 전차가 성수동으로 진입했다.

물론 그거만 있는 건 아니었다.

꽈르으으응.

두 번째, 곡사포대의 포탄도 떨어졌다.

화기를 견디는 인베이더?

휠 나이트의 전면이 유탄이나 열압력탄의 폭발력도 견딘다고 했던가?

코앞에서 터져도 그을음만 남고 충격으로 인베이더만 튕겨 나갈 뿐이라고?

그것도 어느 정도지, 이런 화력이라면 녹는 게 맞다.

정타를 맞은 휠 나이트도 깨진다. 다만, 곁가지로 맞은 놈들은 살고.

“각 저격 팀, 포지션 유지, 화기 통하는 인베이더 식별 후 준비된 사수로부터 핀포인트 사격 개시.”

단순 명료한 명령이다.

굉음과 굉음 사이다.

벼락이 떨어진 자리, 간신히 살아남은 인베이더 몇이 뛴다.

스코프로 그걸 보며 방아쇠를 견뎠다.

탕.

조금 전의 벼락에 비하면 귀엽다고 생각할 소리다.

날아간 탄이 뛰어오른 고블린의 머리를 뚫었다.

볼트액션 타입의 저격 라이플이 아니다.

연사 타입을 들고 왔다.

곧바로 다음 타깃을 잡았다.

퉁, 퉁, 퉁.

총 네 마리를 쓰러뜨린 뒤, 불멸특수대 쪽에서도 총알이 날기 시작했다.

거, 반응 느리네.

준비된 사수로부터 시작하라잖아.

내가 제일 빨랐고 내가 제일 먼저 찾았다.

일단 넷.

저 인베이더 사이로 넘버링 7 디자이어 버그나, 넘버링 6 헬 페어리 따위가 날아다닐 거다.

휴즈 게이트의 첫 번째 특징은 인베이더 종류가 많다는 거고.

두 번째 특징은 더럽게 많은 개체 수가 나온다는 거다.

포격 이후, 남은 걸 빨리 정리해야 다음 웨이브가 편하다.

저격수의 총탄이 날아든다. 화기에 대응할 가죽이 없는 인베이더가 쓰러진다.

가까스로 전선에 다가온 리빙 아머나 휠 나이트 앞은 변신족과 초능 특수종이 막았다.

스코프가 스치며 한 변신족의 움직임을 잡았다.

휠 나이트의 돌격을 피하며 그 뒤로 수류탄을 던진다.

꽝.

터진 수류탄의 파편이 휠 나이트의 후면을 덮쳤다.

훌륭했다.

저 친구 화랑팀이리라.

휠 나이트는 후면이 약점이다.

다들 잘 싸웠다.

나도 연신 방아쇠를 당겼다.

나오는 놈들을 족족 잡아 죽였다.

“……그 신입 친구야, 진짜 어디서 총 좀 쐈구나.”

옆에서 쥐 수염 아재가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난 초탄을 시작으로 방아쇠 당기는 행위를 쉬지 않고 반복 중이었다.

“허공에 쏘는 건 아니지?”

아재가 말을 덧붙였다.

한 대 때리고 싶다.

“집중.”

말하고 무시한 채, 다시 스코프에 집중했다.

인베이더를 죽이며 내가 아는 얼굴도 찾고 싶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다.

다행히 어머니와 마리는 나서지 않을 터다.

혜민이는 만났으려나?

그 셋은 어디까지나, 번외 전력이다.

무슨 일이 생길까 해서 데려온 거지, 당장 전면에 나설 전력이 아니란 거다.

아버지는 잘 계시려나.

딱히 피닉스팀은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그쪽은 아마 특이종 사냥에 집중하겠지.

일부 엘리트 전력은 다 그럴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전면은 화력으로 때려 부수고 특이종은 소수 전력으로 잡는다.

단순 명료한 전략이었다.

이제까지 잘 먹힌 전략.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던 전략.

비교적 최근에 발생한 이상 현상, 겹문조차도 이 패턴을 바꾸게 하진 못했다.

이 패턴의 핵심은 전방과 후방의 분리이기도 했다.

후위에 있는 저격수는 안전을 보장받으며.

전면에 있는 이들의 부담을 줄여야 했다.

전황을 눈에 담으며 난 불현듯 의구심이 들었다.

‘왜?’

그와 함께 심장이 뛴다.

무심히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과 별개로 머리는 생각한다.

본능은 답을 찾는다.

감각은 주변 모든 걸 받아들인다.

‘왜?’

이유가 뭘까.

왜, 블랙홀은 미리 열리는 것처럼 보였지? 고작 바운스 한 마리만 나오려고?

지금까지 저런 경우가 있었나?

없다. 내가 아는 한은 없다.

게이트 안쪽, 일반 남성보다 서너 배는 큰 거인이 나오기 시작했다.

넘버링 18, 자이언트다.

육체형 인베이더다.

거인이며, 단단하고 힘이 세다.

물론 그게 포탄을 받아 내며 견딜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펑.

날아간 탄에 몸통 반쪽이 날아간다.

땅이 떨린다. 포대가 뿜어대는 벼락이 귀를 울린다.

그리고.

두드드드.

흔들리던 땅이 멈춤과 동시다.

불길한 예감이 뒤통수를 스쳤다.

툭.

옥상 바닥, 시멘트에 금이 쩍 가기 시작했다.

“뭐야?”

쥐 수염 아재가 말하고.

“응?”

어린 초능 저격수도 놀란 외마디 말을 뱉었다.

곧 땅이 무너졌다. 와르르, 하고 건물이 무너졌다.

5층 높이의 옥상에서 저격 포지션을 잡은 채였다.

건물이 단숨에 밑으로 가라앉으며 그 안에서 휘리릭 하고 촉수가 타고 올라왔다.

휘어지는 촉수가 쥐 수염 아재의 발목을 잡는 게 보였다.

“억? 으아아어.”

쥐 수염 아재가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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