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너 세최특이라고 아냐?
출동 준비를 마친 불멸특수대 앞으로 이중봉 팀장이 섰다.
총원 이백오십.
보안팀 및 분석팀 일부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일자리를 잃은 아더 사이드 파견직 직원 대부분이 모였다.
“서울 시내에 휴즈 게이트가 터졌고, 염병났다. 처리하러 간다.”
간단하고 단순하며 명료한 연설이었다.
“그게 끝이냐?”
팀장 뒤쪽, 흰머리 본부장이 묻는 소리가 들렸다.
이곳에 있는 건 전원 불멸자, 어지간히 속삭이지 않으면 다 듣는다.
“네, 끝.”
“넌 진짜…….”
본부장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고개를 저었다.
연설이 뭐가 중요하다고.
기남은 그리 생각하며 장비를 체크했다.
인베이더 넘버 4 바운스 레더와 케블라 섬유 합성의 방검방탄복.
광학병기로 분류되는 나이프.
홀로그램 스코프를 달아 둔 소총 한 정, 취향에 맞는 글록 권총 한 정.
옥토퍼스 탄을 꽉꽉 채워 둔 소드 오프 한 정.
압축 경화 부츠와 장갑.
방검방탄복 안쪽에 넣어 둔 스퀘어 그레네이드.
원형 수류탄이 아닌 납작하고 네모난 형태의 수류탄이다.
세열, 백린, 섬광, 열화.
네 가지 종류를 다 챙겼다.
“긴장?”
김정아 대리가 물었다.
사수이자, 선배다.
“적당히요.”
기남은 편히 말했다.
“광익이 보겠네.”
정아 대리가 말하고 기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있겠지.
나가서 고생 좀 하고 있으려나?
프리랜서로 활약은 했다고 들었다.
하물며 그 휴즈 게이트 1차 웨이브라고 불리는 크랙과 미니 홀을 맨몸으로 막았다고.
괴물 새끼다.
놈을 떠올리면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이대로 밀리진 않는다.
본가의 압박이나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살다 보면 이런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절대로 지고 싶지 않은 상대.
‘따라잡을 수 있다.’
놈이 혼혈의 혈통을 쓴다면, 자신은 순혈 정가다.
불멸 적통의 피를 이은 몸이다.
기남은 든든한 장비를 두른 채로 일어났다.
“출진.”
이중봉 팀장은 끝내 연설을 더 잇지 않았다.
휴즈 게이트 2차 웨이브라 불리는 오프닝까지 반나절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기남은 버스에 올랐다. 45인승, 적당히 자리를 잡고 챙겨 온 장비 일부를 좌석 밑에 내려놨다.
방탄 타이어와 방탄유리, 신소재를 바른 작전 차량이었다.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은 채, 기남은 제 장비를 물끄러미 보며 생각했다.
‘맨몸으로.’
광익은 맨몸으로 싸웠다. 알몸으로 춤을 춘 격이다. 물론 그는 이겼고, 인베이더를 격파했다.
알몸으로 춘 춤이 사람들의 환호를 받은 셈이다.
대단하긴 하지만, 그 반대로 이런 말도 되지 않을까?
프리랜서로 나서는 바람에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한다고.
그러니까 장비도 갖추지 못하는 거라고.
모아 놓은 돈으로 기어를 사는 것도 일이다.
블랙마켓에서 사면 비용이 몇 배로 뛰고.
그렇다고 불멸특수대의 전용 장비를 민간인에게 팔진 않는다.
프리랜서는 결국 자체 개발하거나, 뒷골목에서 굴러다니는 물건을 사야 한다.
그것도 아니면 대기업에서 프리랜서 대상으로 파는 양산품을 사거나.
버스가 움직인다. 은은한 떨림이 느껴졌다.
유광익.
기남은 원수이자, 룸메이트였던 놈을 만나는 장면을 상상했다.
광익을 만나면 은근히 장비를 보여 줄 것이다.
놀라면 친절히 설명해 줄 것이다.
업그레이드된 방검방탄복은 바운스 섬유 비율을 높여서 어지간한 총탄은 튕겨 내게 됐다고.
연구팀의 공이다.
불멸특수대 전용 방검방탄복은 커스터마이징 장비를 제외하면 최고로 쳐 준다.
거기에 사각 수류탄.
그 외 불멸특수대 고유의 장비 목록까지.
스코프도 불멸자 전용이다.
이것도 개발품이다.
“헤이, 기남.”
요한이 자신을 지나치며 아는 척을 해 왔다.
덕분에 상상에서 헤어 나와 대충 눈으로 인사했다.
요한의 뒤로 우미호가, 그 뒤로는 방귀태가 들어섰다.
“미호야, 위험하면 내 뒤로 와.”
“같이 죽자고?”
둘의 대화가 들렸다.
“아니, 그게 아니네.”
“거리 벌려, 다섯 걸음 안으로 들어오면 성희롱으로 신고한다.”
“……야, 그건 너무 심하지이.”
만담도 아니고 둘의 대화를 한 귀로 듣고 흘리며 기남은 생각했다.
아까 그 상상은 뭐였지?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장비 자랑이라니.
비싼 장난감 샀다고 자랑하는 꼴 아닌가.
그러면서도 기남은 장비를 더 꼼꼼히 챙겼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심장이 뛰었다.
광익을 만나는 순간을 기다린다는 방증이었다.
“싸움이 기대되는 거냐?”
형이었다. 정호남 과장, 그도 이 버스에 탔다.
자기 팀을 챙기는 게 아니라, 동생을 챙기려는 게 여기 탄 이유였다.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자신 때문이겠지. 기남은 딱딱하게 답했다.
옆자리에 앉은 호남이 답했다.
“당연한 말을 하는구나.”
기남은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고, 그걸 본 호남은 물었다.
“싸움에 기대를 거는 편은 아닌 것 같고, 유광익?”
뜨끔했다.
아무리 형제라지만.
“순혈의 힘을 함부로 쓰는 겁니까?”
감각 분화를 써서 자신의 심리 상태를 파악한 걸까?
의구심에 물으니.
“얼굴에 드러난다.”
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릴 때부터 형은 자신의 감정을 잘 읽어 냈다.
같은 피를 이었기 때문일까.
“기대감이 가득하다. 얼굴에.”
그가 말을 이었다.
“작전에 집중하시죠.”
말을 끊었다.
기남은 속내를 끄집어내는 것 따위 정말 싫었다.
곧 작전 지역에 도착했다.
게이트 오픈 8시간 전, 이들은 2차 합류팀이었다.
“저쪽이다.”
내려서 은근히 좌우를 둘러보는데, 호남이 형이 말했다.
그 말에 고개를 돌리니 광익이 보였다
웬 대형 밴을 뒤에 둔 채였다.
주변에 사람 몇이 모인 게 보였다.
“집결까지 30분 준다. 개인 정비 시간.”
호남이 형이 제 팀에게 향하며 말했다.
그건 기남의 팀도 마찬가지였다.
광익에게 다가갔다.
“와, 오랜만이다. 너희 기남아.”
음?
기남은 그 인사를 받으며 광익의 전신을 훑었다.
뭐지?
놈도 예민하기로는 자신 못지않았다. 짧은 순간, 제 시선을 느낀 광익 새끼가 말했다.
“왜? 아, 이거, 별거 아닌데, 뭐더라, 그리핀 섬유에 바운스하고 오거였나. 하여간 인베이더 가죽 합성해서 만든 거라더라, 수납이 좋아, 별명이 군장 슈트래.”
안다. 대기업에서 화랑 팀 외에는 보급되지 않은 특별 슈트.
돈을 때려 박아서 만든 불멸특수대의 방검방탄복보다 우월한 슈트.
그래도 총화기나 다른 종류의 무기는…….
“구경할래? 뭐 하나 빌려줄까? 너도 이런 건 처음 보지? 커피차는 봤어도 무기차라니.”
“뭐?”
절로 되묻는 말이 튀어나왔다.
퉁. 위이잉.
광익이 대형 밴의 문을 열었다.
자동문이었다.
열린 문 안쪽, 개조된 차 안에는 좌석 따윈 없었다.
각종 총화기와 나이프, 대기업에서 작정하고 만든 상급의 양산품.
예민한 불멸자의 눈은 그 사이에 있는 기어도 알아봤다.
기남은 돌아섰다.
장비 수준을 비교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건 작전 지역에서의 활약뿐.
‘유광익보다 많이 죽인다.’
기남의 눈에 불꽃이 타올랐다.
* * *
저거 왜 저래?
하여간 미친놈 머릿속에는 뭐가 들었나 싶다.
너희 기남이 새끼, 대뜸 다가오기에 인사나 하러 오나 했더니 멀뚱히 쳐다만 보다가 간다.
부럽나?
난 조금 당황했는데 말이야.
“할아버지는 뭐 하러 이런 걸 보냈대요?”
밴 조수석에 앉은 어머니가 고개를 내밀며 답했다.
“원래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걸 즐기시는 분이니까.”
“아들 앞입니다. 어머니. 그 말은 할아버지에 대한 선입견을 만드는 거 아닐까요?”
“선입견 아니고, 너도 다 컸으니까 알 건 알아야지. 성인 아니니? 미성년자였으면 넌 엄마 손에 반 죽었어요. 아들. 말 더럽게 안 듣고 이런 데나 쫓아다니는 고등학생이라니, 링에서 7박 8일 면담감이다.”
지금도 팬더 형은 어머니 그림자만 보여도 치를 떤다.
그래서 어머니 보자마자 슈트만 받고 내뺐다.
불멸특수대에서 아는 얼굴이나 보고 오겠다고.
핑계다. 어머니 보자마자 튄 거다.
그래, 괜히 갱생 마녀란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니지.
“네, 전 성인이죠. 할아버지가 잘못했네, 어쨌든 전 속물이라 좋습니다만.”
마리가 얌전히 무기를 구경하다가 입을 열었다.
“마리는 이게 좋겠어요.”
말하며 무엇을 골랐나 보니, 그레네이드 건이다.
수류탄을 발사하는 대규모 살상 무기.
수줍게 웃으며 고르기에는 너무 살벌한 거 아니니?
“써도 될까요?”
“너 해, 다 해.”
밴 안에 무기가 가득하다. 마리가 고른 그레네이드 건부터 시작해서 레일건, 28배 스코프.
신소재로 만든 나이프, 글라디우스도 있다.
맞다. 그 로마 시대의 그 칼.
물론 역사 속과 같은 외양은 아니다.
이건 현대에서 재해석된 물건이다.
몇 가지 합금을 섞어서 만든 칼이다.
정글도부터 시작해서 쓰로잉 나이프, 창, 활도 있다.
일전에 사수가 쓰던 레이저 강선은 아니지만, 나름 신경 쓴 바운스 가죽을 실로 재생산해서 만든 활줄.
친절 가득한 설명서가 옆에 놓여 있다.
아마도 기어에만 이런 설명을 붙여 놓은 듯했다.
스펠 기어는 없지만, 퓨어 기어는 몇 가지 있는 듯하다.
얼마나 돈이 많으면 퓨어 기어를 몇 개나 밴에 넣어서 보내는 거냐고.
어머니는 나머지도 전부 대기업 양산품 또는 화랑 팀 전용 무기에 가깝다고 말했다.
난 거듭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돈이 최고라고.
“속물 아들, 할아버지랑 엄마랑 싸우면 누구 편들 거야?”
어머니가 물었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도 아니고 그게 뭡니까?”
“대답?”
“어머니요.”
눈앞의 주먹은 법과 신념보다 우선하는 법이다.
“요, 잘 지내냐?”
그러고 있자니, 예전 인연이 하나둘 찾아왔다.
처음에는 화림 시절 나한테 넥광익이란 별명을 붙여 준 1조 문신남이다.
“그럭저럭.”
“크, 죽이네, 이건 뭐야. 플렉스구나.”
그렇게 한마디 하며 지나치고.
요한 형과 귀태 형도 왔다.
“다섯 발자국, 다섯 발자국.”
그걸 되뇌는 귀태 형을 보며 뭐냐고 묻자.
“우미호.”
세 글자로 답이 됐다.
대강 조심하라는 말을 하고 넘어가고 둘이 떠난 뒤, 아는 사람이 또 왔다.
“너.”
“포옹은 나 침상에 있을 때 했다며? 억울해 나.”
아더 사이드 진흙 사막 파견 때 같이 근무 섰던 동기다.
까칠이라고 불렀었다.
그 옆에 김다은 대리도 보였다.
“아더 사이드 파견 막혀서 덕분에 일이 없어서 지원 나왔지.”
까칠이와 다은 대리가 한마디씩 뱉었고, 반가워서 손을 뻗었다.
다은 대리와는 평범한 악수.
까칠이는 포옹.
“개인 정비 시간이 짧아서 금방 가야 해. 나중에 보자고.”
까칠이와 다은 대리가 떠났다.
이거 참, 혜민이가 봤으면 또 난리 쳤겠네.
다행인지 아닌지, 슈트가 필요 없다던 강혜민 양은 지금 집중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자리를 비웠다.
마법사에게는 각자 사정이 있는 법이라니까 건들지 않았다.
둘이 떠난 뒤에는 경찰 쪽에서 왔다.
“광익 씨, 전투기는 무리라고 하네요. 아무래도 서울 시내 한복판이니까. 어쨌든 특수종 전력으로 끝내는 걸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어요. 판독기 상으로 네임드 출현은 없을 거로 예상하고요. 밥은요?”
“잘 먹었고, 여기서 또 고칼로리 식량 나눠 준다고 하던대요? 프리랜서 팀에는…….”
“그거 저품질이에요.”
“따로 준다는 사람도 있고요.”
“안 되면 저한테 와요. 같이 먹어요. 물론 어머니도요.”
어머니에게 눈인사까지 건네는 걸 보면, 확실히 팀장 누나는 레벨이 높다.
대놓고 애교 따위를 부리진 않는다. 필요한 포인트에 정확한 타이밍에 던지는 접근법이다. 이런 건 배워야 한다.
“그 마법사 여자애는요?”
“뭐 준비할 게 있다고 해서.”
근데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자세한 얘기를 해 주는 걸까.
난 프리랜서로 지원했다.
싸우라고 하면 싸우고 막으라고 하면 막을 생각이다.
크랙과 미니 홀 때야, 나 아니면 막을 길이 없으니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다.
특수종 전력이 빵빵했다.
“좋아요. 저도 팀을 책임지는 사람이라 가 봐야 해요.”
그렇게 말하고 팀장 누나도 갔다.
그 뒤에 군대 파견 나온 장교가 와서 혹 입대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아들.”
모든 걸 지켜본 어머니가 날 불렀다.
“너 인기 많구나, 평생 동정으로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아, 좀.”
“마리는 동정이란 단어를 모르는데, 뭔가요?”
옆에서 마리가 묻는다.
그러니까 애 듣는데 뭔 소리냐고.
“딸, 동정이란, 평생 생식 기관을 오줌 싸는 거 외에는 써 보지 못하는 걸 말하는데…….”
듣지 말자.
휴즈 게이트 앞에서 무슨 성교육이냐고.
하여간 이런 일들 덕분에 기다리는 시간이 딱히 지루하진 않았다.
착착 시간이 가는 와중이다.
안결, 소진, 운비도 다녀갔다.
그 셋은 각자 화랑 팀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이후, 고칼로리 식단이 왔다.
“소고기 맛 칼로리 바는 처음 먹어 봐요.”
난 순수하게 감탄했다. 대기업의 맛이다. 입맛에 딱 맞았다.
먹고 쉬고, 작전이 다가오기 전, 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프리랜서 몇이 모인 곳이었다.
혜민이는 나중에 합류하기로 했고.
어머니와 마리는 하나로 묶어서 움직이라 하고 난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어머니, 마리, 혜민이에게 이 포지셔닝은 무리니까.
난 4번 타자 대신 저격 라이플을 한 자루 들고 합류한 참이었다.
팬더 형은 불멸 쪽에 합류했다.
양해를 구하기에 그러라 했다.
그렇게 난 혼자 이쪽에 왔다.
“여, 처음 보는 얼굴이네.”
프리랜서 여럿이 모인 자리였다.
혼혈 불멸과 초능 프리랜서가 모인 곳이다.
그중 하나가 날 보고 말한 거고.
“네, 신입입니다.”
대충 답했다.
“오, 신입, 어디서 좀 놀았나 보네. 장비 때깔이 고운데.”
라며 처음 보는 양반이 말하고.
“네, 어릴 때부터 노는 게 제일 좋았죠.”
또 대충 답했다.
노가리 깔 때인가.
“너 세최특이라고 아냐? 내가 그 친구 좀 아는데.”
게이트 열리기 전 저격 포인트를 잡은 곳.
그곳에서 내가 모르는 내 얘기가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