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205화 (205/488)

205. 10시간 전

PWAT도 내부에 별도의 엘리트 팀이 존재했다.

흔히 ‘블루팀’이라고 부르는 집단이다.

블루팀은 파란 견장을 달고 다녀서 생긴 별명이었고, 본래 명칭은 216팀.

창설일에 맞춰 팀 이름을 지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전부 블루라고 부르긴 했다.

그 블루팀의 일원, 팀 내에서 조사와 파악 등 현장을 파헤치는 일에 특화된 대원이 휴즈 게이트 1차 웨이브를 막은 곳에 와 있었다.

이미 국내 주요 전력 모여 저지선을 구축한 곳이다.

블랙홀을 기준으로 반경 1km, 서울 시내 한복판에 민간인 통제구역이 생겼다.

그 통제구역의 안으로 들어선 블루팀 대원은 한쪽 눈을 감고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바닥을 손으로 훑었다.

이지혜가 그 옆을 따랐다.

청장이 직접 내린 명령이었다.

한쪽 눈을 감은 남자의 손길이 현장을 훑는다.

바닥의 파인 아스팔트 자국, 부서진 건물, 콘크리트 철근 따위가 솟은 기둥 따위를.

한쪽 눈을 감은 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움찔거리던 그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무릎에 붙은 회색 먼지가 바람에 흩날렸다.

건조함이 느껴지는 날씨다. 며칠째 비가 오지 않았고 기온은 낮아지는 중이었다.

겨울이 코앞이었다.

“유광익이라고 했습니까?”

덥수룩한 머리의 블루팀이 물었다.

“현재 청장님이 가장 신경 쓰는 사람이죠. 싸우는 걸 보면 왜 그러는지 금세 알 겁니다.”

“혼혈이라.”

블루팀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말은 발보다 빠른 법이다.

유광익에 관한 소문은 금세 퍼졌다.

숨기려야 숨길 수도 없었다.

불멸과 변신의 혼혈.

압도적 전투 능력을 갖춘 특수종.

“혼자 진형을 구축하고, 전방을 힘으로 때려 막은 셈이군요.”

이지혜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의도하지 않았든, 의도했든, 결과가 그랬으니까.

“대단하네요.”

“네, 맞습니다. 그렇게 싸우는 특수종을 본 적이 없어요.”

“아니요, 그거 말고.”

“네?”

이지혜가 보기에 블루팀 대원은 담담해 보였다.

“이 정도로 싸우는 특수종이 흔하진 않지만, 없는 건 아닙니다. 당장 기어를 갖추고 준비만 제대로 되면 팬텀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기어고 뭐고 하나도 없이 이런 일을 했기에 광익의 공적을 깎을 이유는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말하는 걸까?

이유 없이 불쾌했다.

광익을 욕해서?

그와는 아무 사이도 아니다.

농담 몇 번 건넸다고 썸 타는 사이가 될 수는 없으니까.

하물며 유광익이 철벽을 쳤다.

그런데도 기분이 묘했다.

이 새끼가.

절로 이런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뻔했으니까.

아마도 실제로 본 사람과 보지 않은 사람의 차이이리라.

이지혜는 그리 생각하고 말했다.

“직접 보셨다면 달랐을 겁니다.”

“봤습니다.”

“네?”

사람 말문을 막히게 하는 재주를 가진 대원이었다.

“제 능력입니다.”

대원이 한 손을 보이며 말했다.

사이코메트리, 투시 초능의 일종이지만, 그보다 더 귀한 거였다.

사물에 접촉함으로써 그곳에서 일어난 일의 기억을 읽어 내는 초능이었다.

“그것보다는 다른 게 더…….”

여전히 담담한 말투였다. 그가 말하다 말고 입을 닫았다. 이지혜가 그런 대원을 빤히 바라봤다.

무슨 말을 꺼내려다 말았을까.

의문을 담아 바라보니.

“아닙니다.”

눈빛을 느낀 대원이 고개를 저었다. 덥수룩한 머리가 고갯짓에 맞춰 흔들렸다.

뭘까 싶어 바라봤지만, 더는 말이 없었다.

여전히 담담하고 태연하다. 그리 보였다.

하지만 그 속은 아니었다.

‘의도했을까?’

대원은 사물의 기억을 읽으며 유광익의 행동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봤다.

‘진형을 만들었어.’

눈에 띄는 대로 사람을 구한 게 아니다.

움직이는 데 효율적인 동선을 그렸다.

덕분에 저지선이 만들어졌고.

그게 현재 1차 저지선이 됐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최적의 포지셔닝을 잡고, 아군이 그 위치를 고수하게 했다.

크랙이 터지고 미니 홀이 열리고 인베이더가 튀어나오는데도 그렇게 했다.

아무리 강심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럴 수 있을까.

‘우연일까?’

의심과 의문, 그가 블루팀이 된 이유다.

이후, 유광익은 전방으로 뛰어들었다.

과시나 흥분에 의한 짓이 아니었다.

그가 그러지 않았다면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을 테니까.

저지선을 지킬 인원은 적었다.

전면에 나서서 부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몇 마리는 저지선을 뚫고 근처로 나갔을 거다.

하물며 미처 대피하지 못한 민간인 무리가 코앞에 있었다.

저지선 뒤쪽에는 작은 마트도 있었다.

수용 인원은 끽해야 몇백에 불과하지만, 건물이 무너져서 그 몇백 명이 죽었다면 ‘겨우’라고 할 수 없을 터였다.

거기에 대피하지 못한 사람이 득실득실했다.

대형 참사가 예견된 일이었다.

유광익이 홀로 나서지 않았다면 그리됐을 거다.

소름이 돋았다.

이 정도 육체 능력을 보여 주는 특수종이 없는 건 아니다.

세계로 눈을 넓혀 보면 꽤 있다.

제 손가락과 발가락을 합칠 수준은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중 일부는 소문만 들었고 직접 보진 못했지만.

블루팀 대원이 놀란 건 다른 이유다.

그가 보여 준 육체 능력이 아니라 그 판단력과 결단력, 이후 보여 준 수완.

그 수완에, 기어가 없어도 팬텀급의 전투 능력.

“후.”

숨을 뱉었다. 자기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었나 보다.

“안 가요?”

옆에서 안내를 맡은 여자 팀장이 말했다.

“갑시다.”

여자 팀장이 몸을 팩하고 돌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뚱한 태도를 보이는 여자 팀장을 보며 대원도 몸을 돌렸다.

놀라운 특수종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다른 일이기에 그는 유광익에 관한 일을 머리 한쪽으로 미뤄뒀다.

“게이트 오픈까지 48시간 남았습니다.”

게이트에서 나오던 에너지를 판독한 결과다.

1차 웨이브를 막고 나서 2시간이 지났고 이제 남은 건 이틀.

인베이더 무리의 침략이, 2011년에 벌어졌던 참상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싸울 때, 그러니까 그 크랙과 미니 홀을 상대로 싸울 때 머리를 굴리긴 했다.

아니, 자연스러운 판단이었다는 게 옳았다.

본능에 가까운 그런 판단.

그리 움직이면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확신도 들었다.

딱히 계산한 건 아니다.

날아오는 공을 잡아챌 때, 팔을 이만큼 들어 올리고 손가락을 어느 타이밍에 쫙 편다는 계산을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나한테는 그 상황이 그랬다.

그래서 그리 움직였고 날뛰었다.

날 보며 영웅 심리에 젖은 특수종이라고 떠드는 놈도 있었다.

들었지만 흘렸다.

그게 무슨 상관일까.

잡생각과 함께 눈을 떴다.

익숙한 천장, 내 방이었다.

투뿔등심을 킬로 단위로 먹고 내리 아홉 시간을 잤다.

꿈을 꾸긴 꿨는데 기억에는 없었다.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니, 조용했다.

작은 메모가 식탁 위에 놓인 게 보였다.

(장 보러 다녀올게, 마리도 같이.)

어머니 필체였다.

스마트폰 놔두고 웬 메모일까.

생각하고 스마트폰을 켜니, 연락이 여럿 와 있었다.

위험하면 자기 나라로 피신하라는 알을 비롯해 이런저런 연락이다.

중요한 메시지 몇 개만 눈에 담고 답한 뒤, 폰을 소파에 던지고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해가 중천이었다.

잠 한 번 늘어지게 잤다는 소리다.

덕분에 몸이 찌뿌둥했다.

어제 살벌하게 날뛰기도 했고.

휴즈 게이트에서 발생한 1차 웨이브 이후.

군대, 경찰, 불멸특수대, 단군 그룹, 사이오닉 협회가 뭉쳐서 저지선을 구축했다.

국가급 비상이 터졌다.

성수동 일대가 1급 재난 구역으로 지정됐다.

무려 휴즈 게이트다.

2011년의 악몽, 대형 참사 사건.

사상자만 만 단위였다.

그걸 기리는 위령비가 아직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옆에 번 듯이 서 있다.

과거지만, 잊기에는 이른 과거다.

고작 십 년 전이었다.

그런 휴즈 게이트가 터졌는데 어떻게 담담할 수 있을까.

다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휴즈 게이트란 사건 자체가 한 번 겪은 일이기도 했고.

그때보다 기술의 발전, 특히나 기어나 특수종 부대 활용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더욱이 이전 휴즈 게이트보다 현재는 규모가 작았다.

그때는 전 세계에 터진 일이고.

이번에는 국내, 그것도 서울 시내에서 터진 일이다.

게이트 크기도 더 작다고 했다.

범국가적 타격팀 조성은 무리, 결국 국내에서 해결하기로 결정됐다.

아까 스마트폰에 그런 연락이 쌓여 있었다.

“고기 먹자, 아들.”

어머니와 마리가 돌아왔다.

“좋습니다. 어머니.”

고기는 언제나 환영이다.

오겹살이었다.

연기 먹는 그릴을 가져와 코드를 꽂고 고기를 구웠다.

“사람들이 마트에서 사재기나 뭐 그런 거 안 해요?”

“몇 명은 그러려고 하는데, 고기를 사재기하는 사람은 없잖니?”

1급 재난 지역 선포다.

2011년 이후로 국내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그것도 재해가 아니라 블랙홀 때문에 터진 거니까.

위기감을 느낀 사람이 물건을 사재기하는 건 일상이었다.

작은 스테인리스 종지에 참기름을 붓고, 송송 썬 편 마늘을 수북하게 담아 그릴에 올렸다.

마리가 버섯을 똑같은 두께로 잘라 그릴 구석에 놨다.

누가 변신족 아니랄까 봐 칼 하나는 기가 막히게 쓴다.

타닥타닥, 기름을 튀기며 고기가 익는다. 이건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상추에 깻잎 얹고 어머니가 만든 특제 쌈장, 이게 또 기가 막힌 맛이다.

당근, 양파, 파를 송송 썰어서 거기에 된장, 고추장, 참기름, 설탕, 매실액을 넣는다.

아몬드를 잘게 가루를 내서 넣어 농도를 맞추고 참깨 넣고 마지막에 감칠맛 비법 소스.

그 특제 쌈장을 젓가락으로 똑 떠서 고기 위에 얹었다.

밥 한 숟갈 크게 떠서 입에 넣고 쌈을 마저 입에 넣어 씹으면.

우적우적.

육즙이 노래하고 쌈장이 춤을 춘다.

그 와중에 섞인 흰 쌀밥의 조화가 절로 어깨춤을 추게 했다.

“어머니, 이 맛입니다.”

“마리는 감동했어요.”

매일 먹지만, 매일 감동할 만큼 환상적인 맛이다.

다음은 끊인 갈치속젓에 푹 담가 먹고.

그다음은 와사비를 콕 찍어 먹고.

입에 쌈을 넣고 고기를 씹으며 살가운 대화도 나눴다.

“이제 한 서른 시간 남았다던데요.”

“이틀이 채 안 되네, 아들은 어느 쪽으로?”

두툼한 오겹살을 뒤집으며 어머니가 물었다.

“저야 뭐.”

갖은 연락 중의 반 이상은 자신의 소속으로 싸워 달란 거였다.

경찰, 불특, 단군, 초능까지.

초능 협회는 딱히 끈이 없어서 스티븐 최를 통해 연락이 오기도 했다.

치이이익.

고기 기름이 지져지는 소리가 정겹다.

익는 정도를 보며 답했다.

“프리랜서죠.”

굳이 어디 소속으로 싸울 이유가 없다.

“그럼 엄마도 프리로 가야겠네.”

“같이 가시게요?”

“아들 혼자 전선에 보내고 여기서 마음 편히 있을 것 같았니?”

아니요, 그럴 것 같진 않았죠.

먹다 말고 머리를 한번 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싸우는 걸 봤다.

도움이 되면 됐지, 방해될 수준은 아니다.

하물며 변신도 안 한 상태로 이 수준이다.

“다행히 네임드가 나올 것 같진 않다고 하네요.”

판독기 기술이 2011년과는 궤가 다르다.

이미 나오는 인베이더 종류와 형태까지 파악하는 수준이다.

“휴즈는 전부 웨이브야. 네임드는 없어도 특이종은 꽤 나올 거야.”

어머니가 쌈을 싸며 말했다.

특이종은 일반 인베이더에서 변형된 놈들, 네임드 수준은 아니다.

불 뿜는 고블린이나 머리 두 개 달린 오우거 같은 거다.

“마리는 본 적이 없어요.”

된장찌개 한 숟갈에 밥을 쓱쓱 비벼 먹으며 마리가 말했다.

“이 오라비도 한 번밖에 못 봤다.”

“본 적 있니?”

“아더 사이드에서 임무 뛰었을 때요.”

“아, 이 엄마한테 거짓말하고 불멸특수대 재직하던 그 시절?”

디테일하게 꼬집으시네.

“아버지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빠는요?”

“비상이잖아, 나가 있지.”

“아, 끼니는 챙겨 드시는지.”

“스테이크 먹었다고 사진 보내더라.”

어머니가 답하고 피식 웃는다.

말 돌리는 기술은 아버지에게 배웠다.

이게 바로 화술이란 거다.

불리한 소재를 묻어 두는 비법이다.

“프리랜서, 그러니까 자원하는 특수종 전투 가용 인원은 10시간 뒤에 모이라고 하네요.”

그렇게 말하며 젓가락을 놨다.

요란하게 먹었다.

치열하게 먹었고.

본래 잘 먹어야 잘 싸우는 법이니.

폭풍 전의 고요, 전쟁 전의 침묵 상황이다. 잘 먹어야 했다.

배가 든든했다. 위장이 빵빵했고.

“저기.”

마리가 손을 들었다. 우리 둘을 보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마리도 같이 갈래요.”

“……음?”

난 담담하게 상황을 받아들였지만,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한 건 아니다.

괜히 1급 재난 지역 선포가 된 게 아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했어도 인베이더에게 목이 물어뜯기면 죽는다. 휠 나이트 창에 걸리면 몸이 터진다.

그런 곳을 가겠단다.

뭐라 답하기도 전에 어머니가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래?”

“엄마?”

“마리를 위험한 곳에 데려간 건 네가 먼저다, 아들.”

“그거랑 이거랑 같나요?”

“마리를 말릴 거였으면 너부터 말렸지.”

어머니가 식탁 잔해를 닦아 내며 말했다.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지만, 난 왜 번번이 어머니에게 못 이기는 걸까.

반대로 어머니의 태연한 태도를 보니 안심이 되기도 했다.

이유 따윈 없다. 그냥 든든할 뿐.

“마리야, 네 칼질은 일류다.”

그렇게 말하고 다시 잤다.

깬 뒤에는 스트레칭만 했다.

따로 몸을 쓰진 않았다. 훈련이 필요한 시점이 아니다.

에너지를 아낄 때였다.

자고 일어나니, 긍낙 삼촌이 전투 슈트를 보냈다.

최근에 단군 그룹에서 개발한 물건으로 방검방탄복은 기본에, 곳곳에 무기를 담아 둘 수 있는 슈트였다.

공식 명칭은 따로 있다지만, 다들 군장 슈트라고 부른다는 물건이다.

이런저런 무기 수납하기 좋다고 한다.

총 다섯 벌이다.

딱 달라붙는 옷 위로 조끼와 바지를 걸친 다음, 팔에 특수 소재로 만든 보호구를 끼면 끝이다.

착용도 간편하네.

역시 대기업이 만들면 뭐가 달라도 다른가.

“가죠.”

어머니와 마리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현장에 도착하니, 혜민이가 날 기다렸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얘가 우리 엄마를 보더니, 끼를 부린다.

“혜민이 오랜만이다.”

수수하게 웃으며 엄마가 반겼다.

팬더 형도 합류.

어쩌다 보니 팀 단위가 됐다.

휴즈 게이트 오픈이자, 2차 웨이브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10시간.

이곳은 이미 전장이었다.

대포부터 시작해서 아더 사이드를 탐닉한 인류의 모든 무기가 모인 곳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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