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 환호가 울리다.
“……저걸 혼자 하네.”
강희모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광익의 의도를 읽은 게 도안결 하나만은 아니었다.
저지선을 잡고 블랙홀 전면에 포위망을 형성하자는 의도.
강희모도 읽었고, 움직였다.
그 이후다.
저지선을 만든 건, 빠져나가는 인베이더를 처리하기 위한 것뿐이었다.
저지선을 만들며 강희모는 잘해야 전력의 오 분의 일이나 지키리라 생각했다. 그랬었다. 냉정한 판단이었다.
다만, 변수를 예상하지 못했을 뿐.
“각 팀 전력 보고합니다.”
무전기를 통해 각 팀 지휘관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알파 팀, 전투 불능 하나.”
운 나쁘게 휠 나이트에 내장이 헤집어진 대원 하나.
“베타 팀, 전원 이상 무.”
휴즈 게이트가 열리면 그 전조 현상으로 크랙과 미니 홀이 열렸다.
이전 휴즈 게이트 발동 때, 이 상황에서만 사상자가 수백이었다고 했는데.
‘혼자 막은 셈이네.’
강희모의 눈에도 움직이는 순간이 전부 보이지 않는다. 저지선 안쪽, 한때 한솥밥 먹던 혼혈 특수종이 날뛰는 중이었다.
전면에 선 변신족 무리도 마찬가지였다.
도안결도 비슷한 걸 느꼈다.
‘유광익.’
안결은 눈으로 광익이 움직이는 걸 봤다. 막 리빙 아머를 부수고 휠 나이트를 향해 돌진하다가 몸을 틀어, 하트 리스의 머리를 으깬다.
곧 그의 어깨에 칼날이 박혔다.
빈틈을 노리던 다른 하트 리스의 짓이었다.
광익은 뒤로 뛰는 것만으로 그 찌르기를 무용케 했다.
뒤로 뛰어 어깨에 꽂힌 검을 뽑고, 다시 앞으로 내달려 자신을 찌른 놈의 머리통을 향해 오른 무릎을 세우더니, 발끝을 쭉 뻗어 상대의 턱을 찼다.
자로 잰 듯한 자세의 앞차기였다.
쩡.
턱부터 시작해서, 머리통이 반으로 쪼개지듯 부서진다.
조금 전 동작에서 두 번의 속임수가 선행되었다.
앞으로 내달리는 순간 왼쪽 어깨가 움직였고, 하트 리스가 거기에 반응했다.
그에 이어 붙이듯 광익은 허리를 틀며 오른 주먹을 보여 줬다.
다시 거기에 하트 리스가 반응.
그 뒤, 앞차기에 머리가 날아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런 발차기에 왜 하트 리스가 막지도 못하고 맞을까에 대해 의문을 품겠지만.
주먹질 좀 하는 변신족이라면 혀를 내두를 터였다.
속임수조차 상대가 반응할 속도로만 했다.
놀라운 통찰력에 이어 육체 장악력, 그리고 미친 듯한 전투 센스까지.
‘나도 할 수 있을까?’
조금 전 동작? 가능하다.
혼자 저 안으로 들어가는 짓?
가능하다.
여기까지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 저 상황에서 멀쩡히 돌아 나오는 건?
홀로 수십, 아니 수백 마리를 때려눕히는 짓은?
그건 모르겠다. 저건 용기일까, 만용일까.
끝 모를 듯 솟던 호승심과 투쟁 욕구가 절로 고개를 숙인다.
“괜찮니?”
옆에서 묻는 말에 고개를 돌리니, 전신을 피로 적신 여자가 보였다.
정확히는 변신족 여자이자 이곳에 아들을 둔 여자, 단군 그룹의 소속이었던 당시 갱생 마녀라 불렸던 몸.
“쟤는 불멸도 반 섞였어. 그러니까 저러지.”
갱생 마녀의 말이다.
맞는 말이었다.
“혹시 칼 남는 거 있으면 좀 빌려줄래? 손은 보태야지. 너도 구경 그만하고 들어오고.”
“이걸 쓰시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운비가 다가왔다.
그가 양손으로 곱게 나이프 두 자루를 건넸다.
그걸 받은 갱생 마녀가 무게를 가늠해 보고 손에 쥐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기어지?”
“퓨어 기어입니다. 아다만티움 합금이라, 찌르고 그으면 그대로 갈릴 겁니다.”
절삭력에 무게를 둔, ‘어린아이라도 강철을 벨 무기’라는 별칭의 운비 전용 기어다.
“나한테 다 줘도 되니?”
“전 여기 또 있어요.”
말하며 운비가 똑같이 생긴 나이프 두 자루를 보여 줬다.
갱생 마녀가 고개를 끄덕였고, 운비가 물었다.
“따라가도 될까요?”
“물론이지.”
“저도, 저도 같이 가요.”
볼이 빨개진 소진도 둘의 곁에 붙었다.
“변신족 전투 수칙은 잘 알지?”
갱생 마녀가 말했다.
불멸과 변신은 다르다.
변신족은 제 몸을 보호하며 싸울 줄 알아야 했다.
갱생 마녀가 달리고, 소진과 운비가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광익처럼 싸울 수 없었다.
대신 외곽부터 차분히, 인베이더를 한 놈 한 놈 분쇄했다.
그중에서도 갱생 마녀의 솜씨는 놀라웠다.
노련하고 깔끔하다. 인베이더의 약점을 잘 후벼 파고 불리한 위치에 서지 않는다.
전투 교본에 나올 법한 포지셔닝과 움직임이었다.
자연스레 소진과 운비도 그녀의 움직임에 맞춰 따랐다.
안결은 자리를 지켰다.
그가 자리를 비우면 놓치는 인베이더가 나올지도 몰랐다.
‘지금 내 오더는 광익.’
그게 명령이다.
그는 명령을 지키고자 했다.
광익이 바라는 일을 위해, 안결은 자리를 지켰다.
뛰쳐나오는 인베이더는 한 마리도 없어야 했다.
그걸 위해서 유광익이 저 안에서 저런 짓을 하는 거니.
강희모와 안결이 놀랐다면, 뒤늦게 도착한 PWAT의 이지혜는 황당했다.
휴즈 게이트, 대형 게이트가 터졌다는 말에 기절할 만큼 놀라 도착해서 본 건.
“뭔 짓이야, 저게.”
홀로 무쌍을 찍는 특수종이었다.
유광익, 아는 사람이었다.
그 앞을 막은 변신족과 불멸자의 이중 저지선도 봤다.
다만, 저지선과 별개로 미니 홀 사이에서 나오는 인베이더가 나오는 족족 부서지고 있었다.
“3차 저지선 잡아 주시면 됩니다.”
황당함에 고개를 돌리니, 눈 밑이 검고 살집이 있는 통통한 남자가 보였다.
“이동훈입니다.”
“알아요.”
유광익은 주요 인물이다. 주변 인물도 당연히 숙지 대상이었다.
이동훈, 전직 불멸특수대이자 실험체 출신, 불멸과 변신 혼혈이다.
다만, 불멸의 피는 옅디옅고, 변신하면 이성을 유지하지 못한다.
치명적인 약점이 두 개나 존재하는 특수종이다.
“3차 저지선이면 됩니다.”
“……네.”
저걸 그냥 놔둬도 되냐고는 묻지 않았다.
압도.
두 글자가 떠올랐다.
유광익이 챔피언 무리가 나오는 블랙홀을 제압했을 때, 그게 한계치에 다다른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하물며 저 혼혈 특수종, 세최특이란 독특한 별명의 주인공이 변신이라도 했다면, 그랬다면.
‘이해라도 가지.’
변신도 안 했다.
자신의 기어를 활용하는 것도 아니다.
순수 변신족의 육체 능력만 믿고 날뛰는데, 그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인베이더 넘버 8 챔피언 한 마리가 1·2차 저지선을 넘었다.
2차 저지선인 불멸자는 그걸 굳이 막지 않았다.
괜히 근접전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하는 게 옳았다.
지휘관, 강희모는 영리했다.
PWAT의 염동 능력자 둘이 나서서 챔피언의 팔다리를 묶고, 그 틈에 머리에 소총을 갈겼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다.
[오후 3시 55분경, 휴즈 게이트의 1차 웨이브 발생.
총 소요 시간 7시 50분.
열두 개의 크랙 발생.
미니 홀 세 개 오픈.
나온 인베이더는 총 네 종류.
넘버링 8 챔피언.
네 개의 팔을 지닌 근접 전문 기술 격투형 인베이더.
넘버링 10 하트 리스.
네 개의 눈을 가진 검술을 쓰는 기술형 인베이더.
넘버링 43 리빙 아머.
유령 갑옷으로 더 유명.
약점이 없다. 탄에 갑옷이 뚫려도 죽지 않는 인베이더.
전신을 분쇄 수준으로 부서야 활동을 멈추는 상대하기 까다로운 육체형 인베이더.
마지막으로 넘버링 65 휠 나이트.
발 대신 바퀴를 달고 차징을 일삼는 인베이더.
육체 형이며 눈만 마주쳐도 위험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빠르고 강한 인베이더.
뒤를 노릴 수 없으면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고위급 인베이더.
사망자 0.
부상자 4, 불멸특수대원 하나, 화랑 팀 셋.
민간인 피해 전무.
그리고.
홀로 8시간 가까운 사투를 벌인 특수종이자.
세 개의 저지선을 펼친 세 종의 특수종 팀을 무용케 만든 특수종 하나.
성수동에 터진 휴즈 게이트의 1차 웨이브를 홀로 막은 특수종.]
그가 절뚝이며 나오며 입을 연다.
“이제 안 나오네요.”
대수롭지 않은 그 말투에 이지혜는 소름이 돋았다.
저 친구는 자신이 한 일을 알고는 있을까?
급해서 주변 통제도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민간인 일부가 남아 있었다.
그중 제 터전이 먹혀 허탈하게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도 있었다.
목숨을 겨우 구한 이들이다.
눈앞에서 터진 끔찍한 참상을 목도하고, 그 참상을 억지로 때려눕힌 영웅도 본 이들.
그들은 홀로 블랙홀 전면에서 걸어 나오는 남자를 봤다.
“……아우, 개멋있어.”
놀라서 우는 바람에 화장이 지워져 검은 눈물을 흘린 여자였다.
그 한마디를 시작으로, 민간인 무리가 괴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아.”
“잘생겼다아아아!”
“최고오오오오오!”
“세최트으으으윽!”
유광익은 여러모로 유명인이었다.
그의 얼굴을 아는 이들도 있었다.
환호가 귀를 찔렀다.
광익이 그걸 보며 말했다.
“주변 통제가 안 됐네요.”
“급해서.”
이지혜가 답하자.
“지금부터라도 하시죠.”
까칠한 태도를 고수하는 얼굴에 흉터가 있는 변신족이 말했다.
“지금 그게 중요할까.”
마지막은 강희모 과장이다. 안면이 있는 불특대 요원이었다.
이지혜는 그 말에 동의했다.
“혼자 다 죽였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짓을 혼자서 할 수 있는 거였냐고요.”
“2차는 혼자 못 막지 않을까 싶은데요.”
말하며 광익이 어깨 뒤를 엄지로 가리켰다.
그의 어깨 위 너덜너덜한 옷가지 위로 빨간 자국이 남은 게 보였다.
막 재생한 자국이었다.
이지혜의 시선이 광익의 어깨를 스쳐 뒤로 향했다.
까맣게 물든 홀이 일렁이는 게 보였다.
멈추지 않은 일렁임이다.
홀은 사람도 아니고 생명체도 아니지만, 마치 뛰쳐나가기 직전의 투우처럼 보였다.
“그래, 그렇지.”
이제부터는 2차를 막기 위한 회의와 병력을 구성해야 할 거다.
와아아아.
일단 저 함성을 지르는 민간인을 안전 구역을 내보내야겠지.
“아우, 좀 피곤하네.”
광익이 말하며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고작 피곤?”
이지혜가 할 말은 강희모가 대신해 줬다.
그 뒤, 그의 어머니가 뒤에서 아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집에 가서 밥 먹을까?”
이쪽 어머니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 아들이 한 일이 어떤 건지 알고는 있는 걸까?
“좋죠. 마리는요?”
“집에 있어. 가는 길에 앞치마랑 칼 사야겠다. 칼 하나 버렸네.”
뭐가 이렇게 평온한데.
이지혜가 빤히 보자, 광익이 그녀를 보고 물었다.
“왜요? 팀장 누나도 배고파요?”
“……또라이.”
세최특, 또는 세최또.
괜히 그런 별명이 붙은 게 아니었다.
그 말을 끝으로 이지혜는 돌아섰다.
자기 깜냥으로 잴 그릇이 아니다.
그저 보고만 올렸고.
그걸 들은 경찰청장은 흥분했다. 수화기 너머로 숨결이 들릴 정도로.
“차세대 영웅이다.”
확신을 담은 말투였다.
휴즈 게이트 1차 웨이브 종결.
기적이라는 뉴스가 나올 일이었다.
광익은 환호를 배경 삼아, 현장으로부터 빠져나와서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 일은 곧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방영됐다.
또 다른 휴즈 게이트의 출현과 더불어.
1차 웨이브를 막은 남자의 존재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
정작 그 주인공인 광익이 잘 먹고 잘 자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 * *
“슬혜야.”
“늦었네요.”
아내가 미간을 찌푸린다. 반쯤은 화가 난 거고, 반쯤은 기쁨이 섞인 얼굴이었다.
진짜 화가 난 건 아니었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일은요?”
“제대로 엿을 선물해 주고 왔지. 한국 전통 느낌 살려서.”
정확히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집단이란 놈들의 기지를 터트리고 왔다.
“일이 좀 있었어요.”
유연호도 알았다. 기절한 만큼 놀라기도 했다.
휴즈 게이트라니.
박혁 그 미친 새끼가 이승 하직하면서 제대로 미친 짓을 했다.
그리고 그 미친 짓, 1차 웨이브로 대량 학살이 예상되는 그 일을 아들이 막았다.
불멸, 변신, 초능 세 개 연합팀이 그저 구경만 하는 수준이었단다.
그 일에 일조한 아내가 자신을 바라봤다.
“여보, 오빠.”
여행 가방을 한쪽으로 둔 채, 연호는 아내의 말을 기다렸다.
눈에 물기가 어린 게 보였다.
불멸자의 예민한 감각이 그녀의 감정이 요동침을 알렸다.
“여보, 오빠.”
한 번 더 부른 그녀가 마저 입을 열었다.
“광익이 태어났을 때요. 얘가 나중에 본능 컨트롤 못 하면 어쩌지, 사고 치면 그땐 어쩌지, 막 그랬거든요. 근데…… 잘 견디더라고요. 그리고 이쪽 일을 하겠다고 덤빌 때는요.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했어요. 그걸 두고 볼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말릴 수도 없었거든요. 걱정했어요. 진짜 너무 걱정했어요. 우리 애가 좀 튀는 경향이 있잖아요.”
전국에 있는 일진이란 일진은 없애버리겠다고 했을 때는 어찌나 황당하던지.
유연호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런데요. 그랬거든요. 근데…… 이제 괜찮을 것 같아요.”
아내가 말한다. 강하지만 여리고 여리지만 강한 아내다.
그녀가 괜찮다고 한다.
“우리 아들, 진짜 괜찮을 것 같아요.”
그녀가 재차 말했다.
유연호도 같은 마음이었다.
아내의 눈에 어린 건 기쁨이었다.
“우리 애, 잘하고 있어요.”
아내가 말을 잇는다.
“그래, 괜찮을 거야. 누구 아들인데.”
“혹시나 살다가 감정 상해도 애랑 싸우지 말아요.”
눈물 어린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었다.
예쁜 눈웃음을 담은 채로 아내가 말했다.
유연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어른 공경을 가르쳐 다행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