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 저지선
눈앞에는 리빙 아머, 휴즈 게이트의 왼쪽 구석에서는 휠 나이트가 튀어나왔다.
난 전황을 머리에 때려 넣으며 상황을 받아들였다.
눈은 사물을 담으며 귀로 듣고, 코로 맡는다.
오감을 집중했다.
리빙 아머를 향해 달려들려는 순간이다.
“끄으윽.”
휠 나이트의 원뿔에 얻어맞은 변신족의 신음이 들렸다.
머리를 맞은 변신족은 잘 맞았다.
맞아서 고소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잘 맞았다.
원뿔 창이 머리를 후리는 순간, 손등으로 원뿔 창의 창대, 휠 나이트의 팔뚝 중간을 쳐 내면서 머리를 옆으로 꺾었다.
늦었지만, 빠른 대응이었다.
궤도를 완전히 꺾진 못해서 뒤틀었고, 그게 그의 목숨을 살렸으니까.
그렇다고 그게 안전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목숨만 살렸다.
신음을 흘리며 쓰러진 채, 전투 불능 상태다.
그 앞에 휠 나이트가 재차 차징을 준비했다.
놔두면 죽을 터였다.
사람을 구하는 데 이유는 없다.
내 손으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판에 무슨 영웅 놀음을 할 이유도 없었다.
그저, 할 수 있으니까 할 뿐이다.
난 발끝을 돌렸다.
이후, 어머니를 향해 입을 열었다.
“혼자서 되죠?”
“말이라고.”
어머니는 대답과 함께 막 공중에 몸을 띄우는 리빙 아머의 머리통으로 돌덩이를 던졌다.
까-앙.
경쾌한 소리가 대기를 울렸다.
그 소리를 뒤로한 채, 난 휠 나이트를 바라봤다.
두꺼운 판금 갑옷, 다리에는 바퀴, 양팔 대신 거대한 원뿔 창 하나를 가슴 중앙에 달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인베이더다.
놈의 가슴이 열린다. 곧 원뿔 창이 뒤로 당겨진다. 증기 따윈 내뿜지 않지만, 그 몸에 담긴 운동 에너지만큼은 여실히 느껴졌다.
각 개체 최소 200 kg가 넘는 무게 덩어리들이다.
그걸 보며 난 오른발을 뒤로 밀고 숨을 참으며 몸을 데웠다.
심장 가열.
변신족의 비기 중 하나였다.
급격하게 뛰는 심장이 혈류를 빠르게 돌게 하는 육체를 다루는 비기.
근력이 강하다는 건 무엇인가.
그건 곧 속도가 빠르다는 의미였다.
강각의 요령을 담아 발로 땅을 밀었다.
곧 훅- 하고 중력이 몸을 짓눌렀다.
속도의 한계를 뚫고 내달린다. 주변 경관이 휙휙 지나치고 목표로 둔 휠 나이트만 눈에 담았다.
공기가 무겁다. 진득한 진흙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았다.
그 멈춘 시간 속에서 오롯이 나만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빨랐다.
오른발로 차고, 왼발로 다시 땅을 찬다.
번갈아 차며 앞을 향해 뛴다. 단순명료한 행동의 반복이었다.
우우웅.
놈의 원뿔 창이 떨리는 게 보였다.
아니, 갑옷 끝부터 끝까지 전신이 떨린다.
모인 운동 에너지를 방출, 휠 나이트의 바퀴가 펑 하고 땅바닥을 긁었다.
추진력을 얻기 위한 것인지, 휠 나이트의 갑옷 뒤에는 분사 장치가 있다.
배기구를 연상시키는 분사 장치가 불꽃을 뿜었다.
내 눈에는 불꽃이 뿜어지기 직전, 불똥이 튀는 것부터 보였고.
불똥이 튀다가 불꽃을 이루어 분사하는 순간, 나도 내가 원하는 위치에 섰다.
펑, 펑, 펑!
땅을 박찬 소리가 나를 뒤따랐고.
휠 나이트의 원뿔 창이 위에서 밑으로 사납게 내리꽂혔다.
본래는 쓰러진 변신족이 있을 자리에 내가 끼어들었다.
원뿔 창이 날 향해 날아오는 게 보였다.
난 발로 땅을 찍으며 몸에 제동을 걸고, 몸을 틀어 손바닥을 뻗었다.
달려드는 가속과 찌르는 힘이 더해져 놈의 차징 속도가 곱절로 빨라진다.
그래서 보통 사람의 눈에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난 보였다.
찰나를 쪼갠 틈에 손바닥으로 원뿔 창을 휘감으며 옆으로 밀어냈다.
힘이나 요령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엄두도 못 낼 묘기다.
물론 난 힘도 요령도 부족하지 않았다.
원뿔 창이 날아드는 타이밍에 옆으로 밀치고.
균형을 잃은 놈의 몸뚱이, 인간이라면 복부쯤의 위치를 주먹으로 갈겼다.
꽝!
꾸드득.
맞은 자리가 움푹 파이고 놈의 몸뚱이 뒤로 훅 날아갔지만, 부서지진 않았다.
전면부 방어만큼은 인베이더 중에서도 상위 클래스다.
오히려 분사 장치에서 불꽃을 퉁 하고 뿜어 내더니, 밀리는 몸뚱이에 제동을 건다.
“거기, 불멸 둘.”
오감이 내 뒤에 있는 상황을 읽었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쉬이 알 수 있었다.
기척을 흘리는 불멸자가 둘이다.
“데려가요.”
“네?”
“쓰러진 변신…….”
텅, 뻥.
밀려났던 휠 나이트가 재차 달려들기에 다시 원뿔 창을 흘리고, 이번에는 바퀴를 걷어찼다.
끼기긱 하고 아스팔트 바닥에 스키드 마크를 만든 놈이 균형을 다잡는 게 보였다.
그걸 보며 난 말을 이었다.
“……족 데려가라고요.”
불멸특수대원 둘이 움직였다.
냅다 달려오더니, 둘이서 쓰러진 변신족의 양팔을 잡고 들었다.
“끄윽.”
쓰러진 변신족은 터프했다.
그 와중에도 기절하지 않았다.
보통이라면 치명상인데.
“고맙, 고…….”
“입 벌릴 시간에 몸이나 추슬러요.”
저렇게 말하니까 유언 같잖아.
답하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휠 나이트가 고위 인베이더지만, 한 마리라면 그래, 솔직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근데 이게 몇 마리냐.
자, 보자, 얼추 세어 봐도 스물이 넘는다.
“시이발, 나 오줌 마려운데.”
왼쪽 끝 편이다. 불멸특수대원, 화림 소속이 아닌 듯했다. 서울 시내에 불멸특수대가 화림만 있는 건 아니니까.
“너도? 나도. 희동아, 멀었냐?”
“말 시키지 마십쇼.”
불멸특수대원 셋이었다.
둘은 투우사라도 된 것처럼 휠 나이트 앞에서 시선을 끄는 중이었고, 하나는 뒤편에서 미처 피하지 못한 민간인을 대피시키는 중이었다.
“어으으으으.”
몸이 얼어서 신음만 흘리는 여자와 남자, 노인과 아이까지.
총 넷이다.
희동이라고 이름 불린 특수 대원은 민간인을 집어 던지다시피 했다.
불멸자를 노리는 휠 나이트 두 마리가 달려드는 게 보였다.
놈들의 지능은 높지 않다.
그저 우직한 차징이 전부다.
그런에도 고위 넘버의 인베이더인 이유는 있는 법이다.
그 돌진을 정면으로 받아 낼 특수종은 흔치 않으니까.
콰드드득.
상대가 돌진하기 전, 놈이 공격할 경로를 예측하고 그 직선상에서 피하던 불멸자 하나의 몸통이 원뿔 창에 스쳤다.
그저 스쳤을 뿐인데, 복부 근육을 찢어발기고 내장이 흘러내렸다.
피가 튄 그가 바닥에 허물어졌다.
눈에서 빛을 잃어 갔다.
난 또 뛰었다.
꽝, 땅을 박차고 불멸자를 노리는 두 마리 휠 나이트를 향해 돌진했다.
그렇게 훌쩍 휠 나이트의 옆으로 붙은 뒤, 한 놈의 팔꿈치를 손바닥으로 올려 쳤다.
퉁.
열린 옆구리에 몸을 뒤틀며 등을 무기 삼아 때린다. 고법이었다.
변신족의 육신은 현실 구현이 불가능한 기술을 가능케 한다.
꽝.
휠 나이트의 몸이 붕 뜨더니 제 동료를 덮쳤다.
텅, 쇳덩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두 마리 휠 나이트가 엉켜 넘어졌다.
“구경할 시간에 동료 데리고 튑시다.”
말하고 돌아섰다.
쓰러진 두 놈의 후면을 잡고 머리통을 주먹으로 연신 후렸다.
꽝, 꽝, 꽝, 꽝!
강체의 요령으로 피부를 단단하게 했는데도 피가 튀었다.
주먹이 찢겼다.
대신 휠 나이트 두 마리도 구동을 멈췄다.
투구의 눈구멍에서 형형하게 빛나던 푸른빛이 사그라들었다.
그사이, 다른 비명이 귀를 때렸다.
“꺄아아아아아아.”
상투적인 비명이란 생각이 들었다.
상투적이라는 건 특색이 없다는 의미니, 위험에 빠진 인간이 내지를 비명에 독창성을 바라는 건 바보 같은 짓일 터였다.
몸이 절로 움직였다.
아까도 한 생각이지만, 딱히 영웅이 되고픈 마음은 없었다.
그저 할 수 있으니까 할 거다.
자신에게 등을 보인 사람이 떠올랐다.
그에게 구한 이유를 묻지 않았다.
당연한 일을 한다는 듯한 눈과 등이었다.
그 사람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내 손이 닿는 곳에서 인베이더에게 죽는 사람이 나오는 꼴이 보기 싫을 뿐이지.
비명을 지르는 여자의 코앞.
하트 리스가 양팔에 달린 검을 내리치는 게 보였다.
다시 찰나를 쪼갠다.
달려들어 공간을 좁히고 칼날 두 개의 궤적을 눈에 담지도 않았다.
그보다 빠르게 주먹을 뻗을 뿐.
펑.
놈의 머리가 터졌다.
뇌수와 피가 허공에서 흩뿌려졌다.
“꺄아아, 아, 아, 아.”
여자의 비명이 독창성을 가지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다 말고 놀라서 눈을 깜빡인다. 그 눈에서 엉겁결에 흐르는 눈물이 맺혀 있는 게 보였다.
“도망 안 가요?”
다시 달린다.
때로는 비명을 좇고, 때로는 변신족이 뭉개지기 직전의 틈을 파고들었다.
진형이 필요했다.
이대로 놔두면 인베이더를 밖으로 내보내게 되고, 그건 또 다른 참사를 부를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을 게으름을 핑계로 놔두진 않는다. 그런 건 배운 적이 없었다.
“아저씨, 한 걸음 앞으로, 그 선 지켜요.”
막 리빙 아머를 허공에서 으깬 뒤다.
양 주먹에 피가 흘렀다.
아무리 강체의 요령이 있어도 안 다칠 수는 없다.
리빙 아머의 갑주도 단단하니까.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살아 있는 갑옷은 딱히 빠르지도 않았고, 대단한 검술을 지니지도 않았다.
다만 단단한 몸을 믿고 덤빌 뿐.
어지간한 화기를 무시하는 몸뚱이는 또 다른 무기가 될 수 있다.
상대하는 방법은 둘, 얼려 부수거나 핀포인트 사격.
난 교본에 없는 세 번째 방법을 썼다.
괴력의 피를 이은 변신족만이 가능한 방법이다.
갑옷째로 으깨고 부쉈다.
“네? 무슨 선?”
팔뚝에서 피를 뚝뚝 흘리는 변신족이 물었다. 내 주먹에도 피가 흘렀다.
“거기로 합시다.”
변신족 아저씨 앞, 인도와 차도를 가르는 턱이 보였다.
난 거길 임시 저지선으로 잡았다.
“그 주먹은?”
“괜찮아요. 저 불멸자예요.”
답을 하고 뛰었다.
“뭐요?”
황당해하는 변신족 요원을 두고 다시 발을 부지런히 놀렸다.
다른 변신족을 구하며.
“거기, 네, 거기 지킵시다. 거길 저지선으로 치는 겁니다. 저지선 잘 지키면 오늘부터 우리 1일.”
선뜻 내 주둥이에서 개소리가 흘러나왔다.
“풋.”
그 와중에 여자 변신족 하나가 웃었다.
위트는 내 피에 흐르니, 이건 다 어머니 덕이다.
윙크 한 번 던지고 다시 달린다.
“불멸자가 왜 여기까지 튀어나온 거냐?”
이름은 까먹었는데, 화림 출신이었다.
저지선으로 정한 곳에서 한참 앞쪽이었다.
“뒤로 물러나, 변신족 뒤로 간격 스물다섯 걸음 잡고 핀포인트 저격.”
소총 한 자루만 있어도 불멸자는 훌륭한 저격수가 될 수 있었다.
불멸특수대는 그런 훈련을 받은 집단이었다.
“화랑! 선을 지킨다!”
때마침 안결의 외침이 들렸다. 내 의도를 읽은 적절한 지휘다.
변신특수대, 화랑은 근접전의 전문가 집단이다.
그들은 벽을 만들었다.
블랙홀을 전면에 두고 적당히 거리를 두고 넓은 포위망을 형성했다.
그게 곧 변신족의 벽.
그 뒤로는 핀포인트 저격수 집단이 서고.
최전방에선 내가 뛰었다.
“뒤로 가라고.”
달리며 바닥에 쓰러진 변신족의 팔 한쪽을 잡고 뒤로 휙 던졌다.
누군가는 받아주겠지.
텅.
“억.”
아무도 안 받아 줬다.
다들 바쁜가 보다.
뭐, 저 정도로 죽진 않을 거다. 휠 나이트 상대하다가 다리가 부러지긴 했다만, 그래도 변신족 타이틀이 있지.
텅.
막 내 앞을 가로막는 리빙 아머의 머리통에 불똥이 튀었다.
핀포인트 저격이다.
단단하다고 해서 충격이 없는 건 아니다.
날 감싼 리빙 아머는 총 셋.
짧은 틈이면 충분했기에 난 그 틈을 타고 움직였다.
몸을 숙이며 기척을 죽이자, 리빙 아머의 투구 속 빨간 불빛이 날 찾는다.
그 틈을 몸을 낮춘 채, 도마뱀처럼 땅을 기었다.
그대로 리빙 아머 하나의 뒤를 잡고 머리통을 잡아 뜯었다.
우득.
무형의 육체, 갑옷이 몸인 놈이다. 머리를 뜯었다고 활동이 멈추진 않았다.
머리를 뜯어내고 몸통에 손가락을 박았다.
우드득.
손톱이 자랐다.
부분 변형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손을 내리긋자, 손톱을 따라, 네 개의 긴 홈이 파였다. 아니, 홈이 파인 걸 넘어서 잘렸다.
자른 몸통을 주먹으로 후렸다.
상대해 보니까 알겠다. 순전히 감으로 안 거지만, 어느 정도 타격을 입으면 활동이 멈추는지 감이 왔다.
그렇게 리빙 아머 셋을 상대하고 다시 내달렸다.
이번에는 휠 나이트가 눈에 보였다.
“아들.”
어머니가 곁을 스쳤다.
숨을 고르는 타이밍인지라 답을 못했다.
그래서 숨으로 답을 대신했다.
“습, 후.”
어머니가 멀어졌다.
주변이 온통 인베이더였다.
위험하다는 직감이 뇌리를 찌르는데.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쳤다.
주변 모든 것이 적, 보이는 족족 부수면 될 일이었다.
난 시간을 잊고 적아를 구분하지 않은 채, 본능에 몸을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