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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201화 (201/488)

201. 휴즈 게이트를 터트린 건 누구의 짓인가.

강희모는 이동훈과 상의해 판을 짰다.

변신족에서는 도안결이란 놈과 말을 맞췄다.

‘사장이 보면 좋아하겠는데.’

남명진이 바라는 이상향이 이거였다.

훈련받은 특수종 군대.

특수대 레벨로 훈련받은 특수종의 결합이다.

단합, 화합 따위를 부르짖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리 부르짖었지만 결국 실패했다고 봐야 옳았다.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 사장은 많은 사람을 쳐 냈다.

능히 다음 세대를 이끌 인재가 고작 팀장 지위에 머물기도 했고.

사내 정치에 실패해 임원과 사이가 틀어지기도 했다.

화합을 부르짖으며 정작 자신은 그러지 못했다.

하긴,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사장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게 뭐였든 간에, 지금은 이루기 어려워 보였다.

광익이 나간 후, 회사는 하루아침에 궁핍해졌다.

가난이 찾아왔다.

보릿고개였다.

지금은 그 시기를 힘겹게 건너는 중이었다.

광익이 싸우는 걸 보자니 잡생각이 들었고, 흘러가는 대로 놔뒀던 강희모는 생각을 접었다.

박혁이 막 광익의 앞에 무릎 꿇는 게 보였다.

기도 안 찼다.

저게 저리 쉽게 잡힐 인간이었나.

저 박혁이란 인간이 누구인가.

초능 특수종으로 매드 사이언티스트, 이레귤러 사냥꾼 따위로 불리던 괴물이다.

그 괴물이 굴복한다. 그 장면이 강희모의 눈에 들어왔다.

대규모 병력으로 몰아친 것도 아니고, 힘겨운 싸움을 이어 간 것도 아니었다.

멀리서 보기에는 뚝딱뚝딱하더니 박혁이 무릎 꿇은 거로 보였다.

고로, 싸움이 끝나는 중이었다.

“크허엉!”

아직 이성 따위는 옆집 개에게 줘 버린 실험체가 날뛰긴 했다.

개 대가리를 달고 호랑이 울음을 토하는, 자기 성찰이 부족한 놈이다.

“보오스으으으으!”

세뇌를 당했는지, 무릎 꿇은 박혁을 보며 울부짖는 놈도 있다.

그래도 끝난 건 끝난 거였다.

“알파, 베타, 현 위치 고수, 마지막 한 놈까지 제압한다.”

강희모는 그렇게 말하며 이 일이 끝난 뒤를 걱정했다.

불멸과 변신이 손을 잡은 일이다.

그 중심에는 유광익이 있었지만, 다들 제 이익을 돌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잡은 실험체는 하나하나에 전부 가치가 있었고.

저 박혁이란 놈이 가진 연구 성과 따위를 얻을 수 있다면.

‘로또지.’

파워볼이라고 해도 좋았다.

매드 사이언티스트 집단이 광익을 ‘파워볼 특수종’이라 부른다고 했던가.

역으로 몸집이 큰 올드 포스와 엑스큐라시에게 박혁 또한 같은 신세였다.

저 치가 가진 걸 빼먹을 수 있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익이 딸려올 테니까.

‘골치 아프군.’

이런 싸움은 싫다. 그래도 해야 했다.

괜히 자기가 관리자로 따라온 게 아니다.

광익과 친분이 있으며 일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

‘진급은 괜히 해서.’

이 일에 과장을 단 강희모만큼 적임자는 없었다.

* * *

내 눈에 모든 걸 포기한 자의 정수리가 보였다.

손목 힘줄이 잘리며 그의 손에 있던 나이프가 바닥에 떨어졌다.

난 그 나이프를 주웠다.

딱히 특별한 기어는 아니었다.

주문이라도 새겨진 줄 알았더니.

“뭐 빠지게 익힌 저주가 안 통하다니.”

박혁이 중얼거렸다.

안 통한 게 아니라, 통했는데 무시한 거다.

애초에 맞아야 의미가 있지.

박혁이 고개를 들더니, 무성의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시발, 늙어 죽고 싶었는데. 몰디브 바다 위에서 미녀 삼십 명을 태우고 요트 위에서 복상사로 가고 싶었다.”

꿈이 아주 야무졌다.

“어쩌다 저런 새끼를 만나서.”

누가 만나 달라고 했냐, 자기가 먼저 나 잡겠다고 난리였지.

귀를 후볐다.

계속 들어 줄 이유가 있을까?

손목이 회복될 기미는 없다.

놈의 눈도 더는 녹색으로 빛나지 않았다.

“부모 잘 만나 팔자 편 새끼.”

신선했다. 이런 종류의 욕은 처음이었다.

문득 다 끝난 마당에 저리 입을 터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 보여?”

놈이 말하며 품에 손을 넣었다.

그걸 본 난 반사적으로 손에 있던 나이프를 툭 하고 공중에 띄워서 칼끝을 손가락으로 잡아챘다.

개수작을 부리면 던져서 이마에 장식품으로 꽂아 줄 셈이었다.

날 보던 박혁이 힘줄이 잘린 손을 들었다. 손바닥을 보이며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표현할 생각으로 보였지만, 덜렁거리는 손목만 보였을 뿐이다.

“더럽게 아프네.”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목소리에 고통이 절절히 배어 있었다.

“담배 한 대만 피우자, 마지막 가는 길인데 담배 한 대 정도는 괜찮잖아.”

놔뒀다.

어떤 기세도 느껴지지 않았다. 포기한 사람의 기색이었다.

담배 하나를 꺼내 물은 놈은 주섬주섬 품을 뒤지더니, 라이터를 찾아 불을 붙였다.

칙- 소리와 함께 불꽃이 연초 끝을 태웠고, 곧 연기가 그의 코와 입에서 흘러나왔다.

“맛있어?”

“이승의 마지막 담배라고 생각하니까 꿀맛이다.”

놈은 담배를 몇 모금 빨고 말을 이었다.

난 그사이 전황을 훑었다.

마지막까지 방심은 없다.

상대의 기색을 읽었고, 전황에 이상이 있는지도 살폈다.

작전은 성공이었다.

박혁이 마지막까지 반항해서 결국 팔다리 중 하나를 자르든지, 아니면 몸뚱이 어딘가에 구멍을 내고 끝나리라 생각했었는데.

조금 싱겁게 끝나긴 했다.

그래도 이긴 건 이긴 거다.

“휴즈 게이트가 왜 터진 줄 아냐?”

“뭐?”

“블랙홀에 관해 연구하다가 터진 거다. 그거. 건들지 말아야 할 걸 건드린 거야. 게이트 억제기 따위를 개발한다는 취지 아래 한 짓이지. 그 일로 블랙홀 판독기를 만들긴 했으니, 무조건 손해 보는 장사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하고 싶은 말이 뭘까.

살려 달라는 것도 아니고, 죽기 딱 좋은 날이라고 자조하는 것도 아니고.

포기한 기색은 그대로였다.

“내가 사냥꾼이긴 한데 연구자이기도 하거든. 아더 사이드의 신소재도 좋지. 근데 난 블랙홀을 건드려 보고 싶었단 말이야.”

불길함, 불멸자의 직감이 경고했다.

“너, 무슨 짓 했냐?”

놈이 낄낄 웃었다.

교도소에 수감되어 전과자 코스를 밟고 있는 금발이 떠올랐다.

차세대 판독기, 그것만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막역한 느낌이지만, 때론 이런 예감은 무섭게 잘 맞았다.

“이 일대에 잠자고 있는 블랙홀은 총 일곱 개였다. 일주일 전후로 터질 것들이었지.”

보통 블랙홀은 주기적으로 터지는 암 덩어리 같은 거다.

WAT와 불멸특수대, 변신특수대라 불리는 화랑이 무장한 채 시가지에 주둔하는 게 용납되는 게 아니다.

블랙홀은 현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니까.

그런데 최근에 성수동에 블랙홀이 열렸던가?

기억에 없었다.

성수동 일대의 블랙홀.

금발의 출현.

두 개의 사실이 맞물려 하나의 결론을 끌어냈다.

만약 놈이 발명한 게 판독기가 아니라, 다른 거라면?

“게이트가 열리는 곳을 특정할 수 있는 기계.”

내가 중얼거렸다.

그게 우선이었다. 그 뒤, 내 앞에 게이트를 가져온 거라면?

세계 곳곳에 있는 걸 끌어올 수 있는 건 아닐 거다. 그 정도 기술력을 갖췄다면 이리 숨어다닐 이유가 없으니까.

차세대 판독기로 미리 게이트를 특정한 뒤, 게이트가 열리는 곳을 변동시킬 수 있다면?

휴즈 게이트, 대형 블랙홀은 두 가지로 나뉜다.

네임드가 튀어나오면 헬 게이트가 되는 거고.

네임드가 없으면 그냥 대형 게이트가 된다.

물론 둘 다 지옥문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보통의 블랙홀은 네임드가 튀어나오면 금세 닫힌다.

일전 동대문에서도 그랬지 않나.

그 잠깐에도 피해가 장난 아니었지만, 어쨌든 끝이 있는 싸움이다.

그런데 임의로 휴즈 게이트를 열 수 있다면?

도심 한복판이 전쟁터가 되는 격이다.

그리고 휴즈 게이트가 열리는 원리는.

“게이트 중첩.”

내가 마저 말하니, 박혁이 낄낄 웃었다.

“역사에 이름 한 줄은 남기고 가야지? 거, 다 같이 뒈지기 딱 좋은 날씨네.”

하늘은 높고 구름은 없는 맑은 날이다.

드드드.

땅이 울렸다.

쩌적쩌적하고 박혁의 등 뒤에서 공간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블랙홀의 전조, 균열이다.

“혹시나 내가 잡히면 이 짓거리를 하라고 하긴 했는데, 진짜 하네, 미친 새끼들.”

박혁이 중얼거렸다.

휴즈 게이트가 놈의 말대로 블랙홀을 연구하다가 터진 거라면.

그걸 일부러 할 수 있는 연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휴즈 게이트는 게이트 위로 다른 게이트가 겹치고 겹쳐 생기는 일이다.

최소 세 개 이상의 게이트가 합쳐지면 문이 커진다.

겹문 게이트와는 달랐다. 그건 문이 두 개인 거고.

이쪽은 문 자체가 커지는 거니까.

문이 커지면 나오는 인베이더의 규모가 달라진다.

쩌저저적.

갈라진 틈이 주변 모든 걸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휴즈 게이트 특징, 썰물 현상이다.

“사십 년. 사십 년을 연구한 결과다. 실험해 보고 싶어서 뒈질 뻔했는데, 드디어 내 눈으로 보긴 하는구나.”

중얼거리는 박혁이 몸을 일으키더니, 제 발로 게이트로 향했다.

“봐라, 이게 이 몸이 만든 최고의 아웃풋이다.”

말하고 낄낄대더니 게이트로 성큼성큼 다가간다.

휴즈 게이트는 생기는 과정에서 주변에 있는 사물을 빨아들인다.

벌써 균열 바로 곁에 있던 차 따위가 들썩이는 게 보였다.

휴즈 게이트는 인력을 가지며 균열을 이룬다.

균열이 뜨자마자 언택트 경보가 미친 듯이 울었고, 그걸 본 사람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뛰었다.

“미친놈.”

내가 말했다.

진심이 가득 담긴 한마디였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어떻게 할까.

이건 수십 년간 연구에 몰두해 온 미친 과학자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내가 만든 아이다. 한번 안아 주긴 해야지.”

낄낄대던 박혁은 뛰었다.

잡을 틈도 없었다. 놈의 몸이 홀에 빨려 들어갔다.

우드드득.

피가 튀고 살점이 뜯긴다. 균열이 게걸스럽게 박혁의 몸을 물어뜯어 삼켰다.

다리가 뜯기고 내장이 터지며 피를 흩뿌렸다. 그 피조차 홀에서 생기는 인력이 삼켰다.

블랙홀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게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들썩이는 차, 비명을 지르는 사람, 고막을 상하게 할 작정으로 울리는 경보음.

휴즈 게이트가 열리는 중이었다.

뒤쪽으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광익 씨.”

소진이었다.

“휴즈 게이트다.”

“……네?”

“저 새끼가 뒈지기 딱 좋은 날이라면서 저걸 열고 갔다고.”

놀랐지만, 당황하진 않았다.

이미 열리기 시작한 문이었다.

놈을 죽여도 변하는 건 없었다.

균열이 시작됐으니 완전히 열리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모른다. 휴즈 게이트가 열리는 걸 직접 본 적은 없으니까.

2011년에 터졌을 때는 썰물 현상에 이미 수백이 죽은 뒤라고 했다.

썰물 현상이 일어나는 대형 게이트 근처에 있으면 뭘 할 새도 없이 죽는다.

사람부터 구해야 했다.

“경찰 왔지? 이 일대 통제해서 사람 오가지 못하게 하고. 변신족 일부 돌려서 썰물 현상 범위 내에 있는 사람 구제해.”

“휴즈 게이트요? 십 년 전의 그거?”

소진이 되물었다. 아직 상황 파악이 끝나지 않은 눈치였다.

“저거 안 보여?”

우리 눈앞에 최소 직경 10m 이상의 게이트가 있다. 증거가 코앞에 있는데, 설득하기 위해 입을 털 필요는 없었다.

소진의 눈이 균열을 훑었다.

“……와.”

감탄할 때냐?

“저기 뭐 나오는데.”

소진이 손가락을 들어 게이트 균열을 가리켰다. 나도 눈을 돌렸다. 게이트 균열 사이다.

가지가지 하네.

얼리 인베이더다.

균열이 생기는 틈을 이용해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인베이더.

문이 워낙 크니 균열 자체가 문 자체의 역할을 하는 거였다.

이상 현상이 아니다. 휴즈 게이트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생각을 접었다.

균열 사이에서 나온 인베이더의 대가리가 보였다.

위아래로 눈이 네 개 달린 괴물이었다.

하트 리스, 넘버링 10의 칼잡이 인베이더다.

시작부터 과격하네.

블랙홀이 주변 모든 걸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 같았다.

“가, 사람부터.”

내가 말했다. 소진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인이어 무전기를 하나 건넸다.

“통신기요.”

말하고 뛴다. 그녀도 상황의 급박함을 인지했을 거다.

다음을 생각하기도 전이다.

“아들!”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쿵쿵 뛰어오더니 곁에 붙어 섰다.

“엄마?”

한 손에 식칼을 들고 앞치마를 두르고 오셨다.

“너, 어디 다친 건 아닌 거 같고 저건…….”

어머니도 말문이 막혔다. 잠깐 균열을 보던 어머니가 마저 말했다.

“휴즈 게이트?”

그 물음의 뒤다.

“유광익.”

큰 목소리는 아니지만, 힘이 들어간 음성, 불멸자 강희모 대리였다.

이제 과장 달았다고 했던가.

“게이트 크기가.”

그도 다가와 같은 걸 보고 놀랐다.

투둑.

균열 사이를 뚫고 나온 넘버링 10 하트 리스가 바닥에 떨어졌다.

변신과 불멸 특수대는 일단 사람부터 구해야 한다.

놔두면 성수동 참사 따위의 기사가 날 거다.

그걸 두고 볼 수는 없지 않나.

무전기를 귀 안에 넣으니, 팬더 형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여기서 못 틀어막으면 아작난다. 알지?”

대뜸 들려오는 말이다.

주변 통제를 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 그때까지 할 일은 명확했다.

“나오는 모든 인베이더를 소거하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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